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302 vote 0 2022.03.27 (18:58:01)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자들 사이에서 이 물음에 대하여 논의가 분분한 이유는 이거다 하고 보여줄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수학이 무엇인지 논하는 사람은 없다. 수학은 성과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달에 로켓을 보내는데 성공한 자가 좋은 수학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과학은 도구를 만들기도 하고 수확을 늘리기도 한다. 성과로 증명된다. 철학의 성과는 뭐지? 없다. 인류에게 철학은 없다. 성과가 없으면 없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이름을 지었을 뿐이다. 철학 주변을 서성거린 사람은 많았으나 설득력이 있는 답을 제시한 사람은 없다. 


    천문학은 망원경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천문학 비슷한 것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별자리를 보고 길흉을 점치는 정도의 조잡한 것이었다. 확실한 도구가 있어야 한다. 수학의 도구가 숫자라면 철학의 도구는 구조론이다. 이전에 구조론이 없었으므로 철학이 없었던 거다.


    철학은 의사결정을 잘하게 되는 것이다. 상호작용을 늘리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그 도구는 연결이다. 연결이 대상을 통제하는 지렛대가 된다. 궁극적으로 철학의 도구는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가는 성질을 이용하여 우리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사건은 연결 아니면 단절이다. 불은 붙거나 꺼진다. 우리는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불은 놔두면 언젠가는 꺼진다. 놔두면 언젠가는 불이 붙는다? 아니다. 꺼지기는 하는데 붙지는 않는다는게 엔트로피다. 모든 철학의 근거가 궁극적으로 이 하나의 법칙에서 나오는 것이다. 


    단절은 그냥 하면 된다. 연결할 때 모피어스의 빨간약과 파란약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말이 없으면 기병은 없다. 바둑판이 없으면 바둑을 둘 수 없다. 도구가 있어야 한다. 결혼을 하려면 파트너가 있어야 하고 운전하려면 차가 있어야 하고 연결하려면 구조론이 있어야 한다. 


    구조론을 인간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철학이 필요하다. 사건은 연결 아니면 단절이고, 구조론은 질 아니면 입자다.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한다. 질은 연결하므로 결합하고 입자는 단절하므로 독립한다. 역사 이래 인류의 철학은 전부 입자의 철학이자 단절의 철학이었다. 


    입자가 인간과 대칭을 이루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사슴을 잡듯이 대상과 맞서서 대응하려고 하는 즉 인간이 개입하여 왜곡된 것이다. 그 사슴을 어떻게 만났는지가 중요하다. 사슴을 어떻게 잡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복해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왜 만났는지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만나서 행복해지려고 한다. 왜 만났는지가 중요하다. 충분히 만났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만난게 맞아? 너와 나는 만났는가? 너와 나 사이에 권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그것은 만나지 않은 것이다. 이윤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것은 화폐가 아니다. 그냥 구리 조각이다.


    서로는 충분히 만나있지 않다. 당신은 지구와 만났는가? 인류와 만났는가? 자연과 만났는가? 역사와 만났는가? 만나지도 않았는데 만나서 일어난 갈등을 해소하려고 한다.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데도 말이다. 인류는 만나는게 먼저다.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만남이며 그 만남을 방해하는 편견과 혐오와 차별과 싸워야 한다. 질은 결합하므로 연결의 철학이다. 입자는 독립하므로 단절의 철학이다. 인간은 원래 질을 사유하지 못한다. 일단 상대를 만난 다음에 어떻게 맞설지를 궁리할 뿐 어떻게 만날지를 사유하지 않는다. 


    뇌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인류의 모든 사상이 단절의 철학인 이유는 어떤 둘의 연결에는 접착제가 필요하고 그 접착제가 지금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부에서 들어와야 한다. 그것은 도전과 모험과 발견과 발명과 창의로 얻어진다. 그것은 긴밀한 상호작용에 의해 도출된다. 


    그것은 내게 없고 네게도 없지만 함께 하면 주도권 형태로 성립한다. 게임을 한다면 딜러에게 권력이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권력이 작동하고 있으면 둘은 만났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은 힘이고 힘은 에너지고 에너지는 엔트로피를 따른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역사 이래 철학자가 논해온 것은 사랑이나 행복이나 불로장수나 무위나 이상세계다. 그것은 대중에게 상을 주려는 것이다. 고생한 사람에게 대가를 지불한다. 그것은 봄의 파종이 아니라 가을의 수확이다. 연결이 아니라 단절이다. 불교의 해탈이든 기독교의 구원이든 천국이든 극락이든 인간들에게 상을 주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에게 훈장을 주는 것과 같다. 유를 줄 수 없으니 무를 준다. 현실을 줄 수 없으니 내세를 준다. 진실을 줄 수 없으므로 거짓을 준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절절한 만남이다. 그것은 더 높은 세계로의 도약이다.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올라서는 것이다. 


    그것을 정면으로 말한 철학자는 없다. 공자와 니체가 권력을 수긍한 점에서 어렴풋이 그림자를 본 정도다. 남녀가 만나면 기쁜 것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유전자의 장치다. 만나서 얻는 기쁨이 인간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인간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호르몬의 반응에 불과하다. 만남의 의미는 개인에 없고 집단에 있다. 당신이 누구를 만나든 의미가 없지만 당신으로 하여금 만나게 한 집단에게는 의미가 있다. 바둑돌 하나가 어떤 돌을 만나든 의미가 없지만 그 바둑돌을 거기서 만나게 한 행마는 의미가 있다. 


    인간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늘어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컵은 의미가 없다. 상호작용의 과정에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가 중요하다. 인류를 전진하게 하는 힘의 경사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전거는 내리막길에서 탄력을 받는다. 


    인류 문명 차원에서 내리막길의 경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흐름을 이어가고 기세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목적의 존재가 아니며 보상의 존재가 아니다. 이상주의는 인간의 목적이고 행복은 인간의 보상이다. 이상세계의 건설도 만인의 행복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사람을 꼬시는 기술에 불과하다. 광장에 사람을 불러모으는 기술이다. 상호작용을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에 도달하면 인간은 이상을 잃는다. 이상에 도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이상은 필요 없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든 플라톤의 이데아든 석가의 해탈이든 예수의 사랑이든 그것은 어떤 단절이다. 원자는 쪼갤 수 없으므로 단절된다. 이데아는 도달할 수 없으므로 단절된다. 그것이 우상이다. 노자 도덕경에 언급된 도가도 비가도 명가명 비상명의 의미는 이름을 부르면 곧 쪼개진다는 의미다. 


    인간이 진리를 사유화하는 즉 오염된다. 왜곡된다. 유대인은 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면 우상인 것이며 그것은 쪼개는 것이며 단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 여기에 있다면 저기에 없다는 말이다. 신이 저기에 없다면 이미 신과 단절된 것이다. 


    우상은 신을 여기에 모시는 것이며 곧 저기서 없애는 것이며 그것은 단절하는 것이며 신을 죽이는 행동이다. 신이 있고 귀신도 있고 천사도 있고 사탄도 있고 요정도 있고 마귀도 있다면 그것은 신을 난도질한 것이다.


    인도인이 상상한 아바타와 불교의 보살은 신을 잘게 쪼갠 것이다. 천수관음의 손은 천 개다. 신을 잘게 쪼개서 만인에게 하나씩 공평하게 나눠주겠다는 발상이다. 진리는 쪼갤 수 없다. 연결이 진리다. 연결은 쪼갤 수 없다. 진리는 하나다. 연결되면 하나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아이디어는 각별하다. 명명할 수 없고 우상화 할 수 없는 즉 쪼갤 수 없는 신 개념과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사상은 긍정주의다. 그러나 그들의 선민사상은 역시 인류를 잘게 쪼갠 것이다. 그들이 신을 독점하려는 것이다. 유대인 역시 많은 부분에서 단절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유대인의 특별한 신 개념에서 연결의 의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연결은 불과 같다. 타오르는 불은 끌 수 없다. 불은 언제 꺼지는가? 그 들판을 다 태워야 꺼진다. 불은 자체의 힘으로 계속 굴러간다. 연결은 자체의 힘으로 계속 흘러간다. 인류의 문명도 마찬가지다. 문명의 등불은 끝없이 타오른다. 우리는 그 위태로운 항해에서 이탈할 수 없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807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김동렬 2022-04-11 2150
5806 젤렌스키와 푸틴 김동렬 2022-04-10 2301
5805 철학의 첫 단추 김동렬 2022-04-09 1842
5804 우러전쟁의 교훈 1 김동렬 2022-04-09 2108
5803 플러스알파의 의미 김동렬 2022-04-07 1989
5802 비겁한 지식인의 문재인 죽이기 김동렬 2022-04-06 2579
5801 답은 플러스알파다 김동렬 2022-04-06 1781
5800 핀란드인의 행복 1 김동렬 2022-04-05 2350
5799 민주당의 원죄 김동렬 2022-04-05 2298
5798 언어로 사람을 결박하는 지식인 김동렬 2022-04-04 2177
5797 이성이라는 이름의 우상 김동렬 2022-04-04 1918
5796 임무형 명령형 김동렬 2022-04-03 1952
5795 인생의 의미 김동렬 2022-04-01 2432
5794 세상은 도구다 김동렬 2022-03-31 2224
5793 까불다 죽는 이준석 김동렬 2022-03-30 2874
5792 만남 열림 연결 김동렬 2022-03-29 2285
5791 비겁한 지식인 김용옥 김규항 1 김동렬 2022-03-28 2901
5790 열린철학의 초대 김동렬 2022-03-28 1914
» 인류의 모든 사상 김동렬 2022-03-27 2302
5788 책상물림 지식인의 환상 김동렬 2022-03-27 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