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오류가 방향을 헷갈리는 것이다. 임대와 임차를 헷갈리고, 빌다와 빌리다를 헷갈리고, 주인과 손님을 헷갈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혼동한다. '쌀 팔아오너라.'고 하면 쌀집에 가서 쌀을 사오라는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사다와 팔다를 반대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한자어 매매賣買도 발음이 비슷해서 헷갈리기 딱 좋다. 불다와 빨다, 더하다와 덜어내다, 박다와 빼다는 발음이 비슷한데 동작은 반대다. 헤겔의 변증법이니 양질전화니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량이 질로 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엔트로피의 법칙과 맞지 않다. 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건의 닫힌계를 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이라는 개념조차 없기 때문이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여러 사건을 뒤섞어 놓으면 양질전화처럼 보인다. 하나의 사건의 결과가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면 엔트로피의 법칙이 부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건의 동력원과 파워트레인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바닷물이 증발하여 비구름이 되고 빗물이 다시 강으로 흘러간다. 물이 순환한다. 바다가 비의 원인이고 비가 바다의 원인이다? 틀렸다. 물을 순환시키는 주체는 태양이다. 태양이 원인이다. 태양이 바닷물을 증발시키고 중력이 빗방울을 낙하시킨다. 둘은 다른 사건이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헷갈리는 것이다. 이 하나의 원리만 철저하게 파고들어도 세상의 모든 문제는 거진 풀린다. 좌우, 상하, 전후, 강약처럼 대칭되는 것은 서로의 원인이 될 수 없다. 항상 양자를 통일하는 제 3의 존재가 있다. 상부구조가 있다. A가 B의 원인이고 동시에 B가 A의 원인일 경우 양자를 통일하는 진짜 원인 C가 배후에 있다. 약자들이 지역과 성별과 피부색으로 나누어 서로 싸우도록 만들어놓고 이득을 취하는 강자가 배후에 숨어 있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사건의 일방향성을 강조한다. 순환논증의 오류, 후건긍정의 오류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구조론이다. 엔트로피는 진작에 알려졌다. 엔트로피가 열역학에 한정되는게 아니라 자연의 보편적 원리라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모른다. 사건의 일방향성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를 모른다. 모든 사건에는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있고 일방향성이 있다. 사건은 시간을 타고 화살처럼 한방향으로 간다. 사건이 아니라 사물을 보므로 헷갈리는 것이다. 총은 한 개의 방아쇠가 있다. 자동차는 하나의 엑셀레이터 페달로 전진한다. 스위치는 하나다. 의사결정은 한 지점에서 일어난다. 그물이 넓어도 벼릿줄은 하나다.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핵심이 되는 하나에 도달할 때까지 사유를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