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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65 vote 0 2019.10.27 (18:14:29)


    아래글의 분량을 늘린 글입니다.


    구조론이 일반의 편견과 부딪히는 지점은 답이 있느냐에 있다. 사람들은 막연히 답이 없다고 여긴다. ‘인생에 정답은 없어.’ ‘철학에 분명한 답은 없어.’ ‘세상은 원래 답이 없는 거야.’ 이런 식이다. 참으로 편리한 발상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수준이하의 유행을 퍼뜨렸지? 한심한 일이다. 첨단과학이 지배하는 21세기 이 개명한 시대에 봉건시대에나 먹힐 법한 아둔한 소리를 하는 자가 다수 있다니. 그런 멍청한 소리나 할 양이면 도대체 학교는 왜 다닌 거지? 도대체 초중고대 16년 동안 학교에서 무얼 배운 거야?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문제가 있는데 왜 답이 없어? 미쳤냐?


    문제와 답은 대칭이다. 원인과 결과는 대칭이다. 시작과 종결은 대칭이다. 머리와 꼬리는 대칭이다. 앞과 뒤는 대칭이다. 앞은 있는데 뒤가 없다거나, 원인은 있는데 결과가 없다거나, 머리는 있는데 꼬리가 없다거나, 시작은 있는데 종결은 없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둘은 원래 한 세트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왼쪽이 있는데 오른쪽이 없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동서남북에 전후좌우는 동시에 성립하는 것이다. 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바빠서 못 읽었다는 개그맨 농담처럼 말이 안 되는 헛소리다.


    문제가 있는데 답이 없을 수는 없다. 1+1=2처럼 명확하다. 문제를 뒤집으면 답이다. 1+1을 뒤집으면 2다. 2를 뒤집으면 1+1이다. =를 중심으로 좌항과 우항은 대칭이다. 둘은 동시에 성립한다. 앞을 뒤집으면 뒤가 되고, 머리를 뒤집으면 꼬리가 되고, 원인을 뒤집으면 결과가 되고, 시작을 뒤집으면 종결이 된다. 왜 뒤집지를 못해? 바보냐? 이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하등동물처럼 지능이 낮은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지 구조론이 똑부러지는 정답을 제시한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낸다. 조선시대와 비슷하다. 서양 수학자가 맞는 답을 제시하면 선비가 화를 낸다. ‘그렇게 에누리 없이 똑 부러지면 쓰겠느냐고. 사람이 인정머리가 있어야지 말이야. 야박하게 말이야. 덤을 얹어주지 않고 말이야.’ 이런 개소리나 늘어놓는 자는 한 대 맞아야 한다. 글자 배운 어른들 사이의 대화가 통하는 선을 아득하게 넘어선 거다. 시대에 뒤떨어져 낡은 태도를 고수하다가 서세동점에 당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등신같이 앉아서 처맞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에누리없이 똑 부러져야 그게 수학이다. 그래야 과학이다. 각자 과학으로 무장하고 서로 총질해대는 시대에 등신같은 소리는 하지말자.


    ‘종교를 믿을까 말까?' '답은 없고 각자 알아서 하는 거다. 믿어도 좋고 믿지 않아도 좋다.’ 이런 등신같은 소리가 적어도 글자 배웠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된다. 봉건시대는 몰라서 그랬던 거다. 그 시대는 점집을 찾든 교회를 찾든 상관이 없었다. 다만 공자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도무지 못배워먹은 것이다. 21세기 이 시대에 여전히 귀신 찾고, 무당 찾고, 점집 찾고, 종교 찾고, 음모론 찾고, 지구평면설 믿고, 안아키 활동하는 바보들과는 대화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인터넷에 정보가 널려 있다. 비단 구조론이 아니라도 이는 기본적인 상식의 문제다. 제 손으로 등신확인서 쓰면 안 된다. 이 시대에 스마트폰과 SNS로 무장하고 외계인과 채널링이나 하고 라즈니쉬나 추종하고 공산당이나 따르고 주사파짓이나 하고 일베충 짓거리 하고 그런 머저리 행동은 곤란하다. 그건 정보가 부족했던 지나간 시대의 낡은 유행이다. 댄디하지 않고 핸섬하지 않고 근사하지 않다.


    바둑에는 정답이 있다. 물론 정답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바둑판은 넓고 361로 중에 어디에 두든 상관없다. 각자 두고 싶은데 두는 것이다. 그런데 진다. 알파고는 정답을 안다. 여기서 혼선은 당장 한 수로는 정답이 없지만 전체의 확률로는 분명히 정답이 있다는 점이다. 한 방에 끝내는 정답은 없지만 점차 확률을 올려가는 정답은 있다.


    로또의 정답이 분명히 있다. 번호가 다른 800만장을 구입하면 그 중에 하나는 1등에 당첨된다. 실제로 이 수법을 써서 성공한 사람도 있다. 한국은 세금이 많아서 안 된다. 인구가 많은 나라도 안 된다. 인구가 적은 국가나 지방도시의 총 발행량이 적은 로또를 모조리 사들이면 된다. 지금은 갖가지 방어대책을 세워놨기 때문에 이 수법이 먹히지 않겠지만. 카지노도 비슷하다. 확률계산의 천재라면 카지노를 공략할 수 있다. 라스베이가스에서 기술을 쓰다가 출입금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정답은 있다. 다만 한 가지.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정답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그 정답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고 화를 내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이런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고 얼버무리다가 잘못된 판단을 반복하는게 문제다. 전략을 세워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면 소기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수학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더 잘한다. 그런데 해내지 못한다. 인간의 변덕 때문이다. 거의 98퍼센트 성공해놓고 포기하면 그 확률은 누구에게 가겠는가? 뒤에온 사람이 부족한 2퍼센트를 채우고 다 먹는 것이다. 남들이 지갑 주워 간다.


    카지노라도 그렇다. 많은 돈을 집어넣어 이제 잭팟이 터질 때가 되었는데 돈이 바닥나서 일어서는 고객이 있다. 어슬렁거리며 지켜보다가 그런 자리만 찍어서 부자에게 자리를 팔고 푼돈을 챙기며 카지노 주변에서 연명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은 인생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인생에 정답은 있고 그러므로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 장기전을 하면 된다. 98퍼센트 잭팟이 터질 때가 되었는데 돈이 바닥나서 다른 사람에게 행운을 양보하는 바보짓을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인생에는 정답이 있다. 미학에는 정답이 있다. 예술에는 정답이 있다. 정치에도 정답이 있다. 단지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을 뿐이다. 언어의 문제를 사실의 문제로 호도하는게 문제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에게 정석을 설명하기는 불능이다. 구조론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내막을 설명하기는 불능이다. 확률을 모르는 사람에게 확률로 답을 말해주면 시큰둥해한다. 당장 프로야구 감독 중에 확률을 써먹는 감독이 몇이나 될까? 그들은 확률은 야구의 답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건 그냥 무식한 것이다. 그들은 확률을 알려줘도 그것을 써먹는 방법을 모른다. 못 배웠으니까.


    그렇다. 무식은 자랑이 아니다. 그들은 구조론을 모른다. 그러므로 당연한 반응이다. 사실이지 확률은 훌륭한 답이다. 주사위를 한 번 던져서 특정 눈금이 나올 확률은 적지만 백만 번 던지면 답은 명확하다. 한 번 던지면 상대적이고 백만번 던지면 절대적이다. 구조론의 정답을 부정하는 사람은 확률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들은 사실 주사위를 한 번 던진 것이다. 그것은 성의가 없는 것이다. 주사위를 한 번 던지는 것이 이벤트다. 이벤트를 반복하면 구조론이 옳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왜 이 점이 중요한가? 대부분 확률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문제다. 닫힌계에 잡아가두면 확률이 등장한다. 즉 세상이 상대적인 것은 밖에서 바라보기 때문이고 안에 가두면 절대성으로 바뀐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듯이 모든 상대적인 것은 닫힌계에 가두어 절대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상대성과 절대성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상대성을 닫힌계에 가두면 그게 절대성이다. 주사위를 충분히 반복하여 던지면 계에 갇힌다. 외부환경의 영향을 받는게 상대성인데 3개월이 지나면 계절이 변하여 상대적이지만 12개월이 지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절대성이 성립한다.


    컴퓨터 알고리즘에 비유하자. 사실 컴퓨터는 원래 덧셈 밖에 못한다. 뺄셈은? 2-1은 2+(-1)이다. 마이너스를 더하면 그게 뺄셈이다. 곱셈은? 덧셈을 반복하면 그게 곱셈이다. 나눗셈은? 분수를 곱하면 그게 나눗셈이다. 같은 방식으로 방정식이든 함수든 미적분이든 모두 해결되는 것이다. 즉 세상에는 원래 덧셈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양한 셈이 있는게 아니다. 구조론으로 보면 우주 안의 모든 것은 마이너스다. 한 방향으로 간다. 그것은 뺄셈이다. 뺄셈을 뒤집으면 덧셈인데 컴퓨터 언어를 만든 사람이 덧셈을 기준으로 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즉 세상은 이것저것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전부 1인데 이를 뒤집고 쌓고 펼치고 지지고 볶고 데치고 삶고 굽고 절이고 삭히고 기타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하여 칼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주는 지극히 단순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복잡하지 않다. 그럼 복잡한 것은 뭐지? 둘이 섞인 것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물질을 쪼개보니까 소립자의 성질이 참으로 다양하더라. 별게 다 있어. 스핀이라는 것도 있고 양자얽힘이라는 것도 있고. 초끈이론은 10차원 11차원을 들먹이다가 심지어 26차원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당구공의 형태가 다양한게 아니고 쿠션이 다양한게 아닐까? 당구대는 직사각형이다. 오각형 당구대가 있다면? 육각형 당구대라면? 우리가 빛의 성질이라고 알고 있는 여러가지가 사실은 공간의 성질일 수도 있다. 즉 우리가 복잡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수학이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방정식으로 셈이 복잡하다는 말과 같다. 사실은 덧셈 밖에 없는데? 나머지는 프로그램이 연출한 건데? 구조론으로 보면 우주는 마이너스 밖에 없다. 그것을 반대편에서 보면 플러스다. 관점이 다를 뿐 본질은 같다. 빛의 성질이 얄궂은 것이 아니고 공간의 성질을 빛의 성질로 착각한 것일 수 있다. 이렇게 풀면 죄다 풀린다.


    ‘일본인들은 참 이상해.’ ‘아냐. 섬이라서 그래. 제주도 사람도 만만치 않아.’ ‘영국사람은 참 이상해.’ ‘아냐. 섬이라서 그래. 니들도 영국에서 살아보면 그렇게 될 걸.’ 사람을 쳐다보면 복잡하다. 일본인 얄궂고 영국인 해괴하다. 그러나 환경을 보면 간단하다. 세상이 복잡하고 다양하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그대가 상대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상대성을 뒤집으면 절대성이다. 간단하다. 절대성으로 보면 세상은 단순하다. 누가 상대성으로 보랬냐고. 상대성은 인간이 무지했던 봉건시대의 관측법이다. 수학이 없던 시대의 주먹구구와 같다. 컴퓨터가 나왔으면 주먹구구를 졸업해야 한다. 이제는 환경을 파악하여 절대성으로 보는게 맞다. 그런 시대가 되었다. 그런 기술이 있다.


    구조론은 닫힌계를 쓴다. 잡아가두고 문을 닫아걸고 절대성으로 보면 환경에 지배되는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본인은 왜?’ ‘그거야 섬에 갇혔기 때문이지.’ ‘중국인은 왜?’ ‘인구가 너무 많아도 섬과 같이 고립되지. 출퇴근 시간에 신도림역 갈아타기 구간에 가봐.’섬은 작고 작으면 낑긴다. 대륙은 인구가 많고 많으면 낑긴다. 그럴 때 환경에 지배되어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된다. 당신도 출퇴근 시간에 신도림역 구내를 헤매게 되면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등을 떠밀리므로 어쩔 수 없다.


    ‘걔는 왜 저러지? 이해가 안 되네. 이상한 일이야. 세상에 별 넘이 다 있구만. 희한한 일일세. 저 양반은 괴짜구만.’ 천만에. 환경을 보라. 당신도 그 환경에 처하면 그렇게 된다. 절대성으로 보면 절대성이 보이는 것이다. 상대적인 이유는 당신이 상대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을 당신이 봤다면 당신도 나처럼 행동하게 된다. 왜 객관 놔두고 주관으로 보지? 왜 절대성 놔두고 상대성으로 보지? 왜 닫힌계 놔두고 밖에서 보지? 왜 주사위를 한 번만 던지지? 왜 바둑 한 수를 두어놓고 답이 없다고 우기지? 왜 주식을 해도 급등주 한 종목만 찍어달라고 하지? 끝까지 가보라고. 전체를 보라고. 반복해 보라고. 개인을 보지말고 집단을 보라고. 인류 전체를 보라고. 답이 보인다. 단 끈기가 있어야 전체를 볼 수 있다. 장기전을 해야 구조론이 먹힌다.


    보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당구대를 보면 되는데 당구공만 보니까 상대성으로 보인다. 당구공의 속성이 아니라 당구대의 형태가 당구공의 진로를 결정한다. 인간은 다 똑같다. 환경이 다를 뿐이다. 민족성이 어떻고 이런건 대개 개소리다. 환경이 어떤 것이다. 특히 지정학적 구도가 중요하다. 당신도 더우면 옷을 벗고 추우면 옷을 입는다. 아프리카인이 어떤게 아니고 날씨가 어떤 것이다. 러시아인은 왜 불곰처럼 행동하지? 시베리아에 살아보라고. 11월부터 눈이 쌓이기 시작해서 5월이 되어야 외출이 가능하다. 그 긴 겨울동안 뭣하지? 토스토예프스키의 긴 소설을 읽어준다. 그래서 문호가 많다.


    모든 상대적인 것은 간단한 변환을 거쳐 닫힌계에 가두는 방법으로 절대성으로 변환할 수 있다. 확률을 도출하여 정확한 값을 찾아낼 수 있다. 밖에서 보니까 상대적이고 안에서 보면 절대적이다. 안을 만들려면 울타리를 쳐야 한다. 개인보다 씨족이 울타리다. 씨족보다 부족이 울타리다. 부족보다 국가가 울타리다. 국가보다 인류가 울타리다. 인류보다 문명이 더 긴 호흡이다. 더 큰 단위로 보면 닫힌계가 작동하고 확률이 도출되고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단 장기전을 벌여야만 이 원리를 써먹을 수 있다. 바둑에 정석이 있다는 사실은 끝까지 두어봐야 안다. 알파고가 정확한 답을 안다는 사실은 바둑이 끝나봐야 안다. 큰 단위로 보면 항상 정확한 답은 있고 지름길은 있다.


    답이 없다고? 그것을 뒤집으면 답이 있다가 된다. 왜 뒤집지 않지? 바보냐? 상대적이라고? 그걸 뒤집으면 절대적이잖아. 단기전을 뒤집으면 장기전이 된다. 외부관측을 뒤집으면 닫힌계가 된다. 주사위를 한 번 던지는 이벤트를 뒤집으면 확률이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상대적이지만 육로로 가장 빠른 길은 KTX가 절대적이다.


    나는 항상 꼬리라고? 그걸 뒤집으면 항상 머리잖아. 나는 항상 을이라고? 그걸 뒤집으면 갑이잖아. 왜 뒤집지 않느냐고. 단 더 큰 단위로 올라서야만 뒤집을 수 있다는게 함정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이 그 단위에서는 절대 뒤집을 수 없다는게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엔트로피는 마이너스다. 100을 뒤집으려면 최소 101로 출발해야 한다. 밖에서는 뒤집을 수 있지만 안에서는 뒤집을 수 없다. 외부에 대칭을 만들게 되면 뒤집을 수 있다. 외부로 나가야 하는데 섬처럼 고립된 곳이라면 그 외부가 없다. 나갈 수 없다. 뒤집을 수 없다. 구조론은 정답을 제시하지만 현실성이 없을 수 있다. 화성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있지만 돈이 없다. 현실적으로 뒤집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구조론은 그냥 단순히 정답을 찍어주는게 아니고 질,입자,힘,운동,량에 걸쳐 단계적으로 접근하면서 그 상황에 맞는 최선의 대응을 제안한다. 그런데 그게 답이다. 한 방에 끝내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고 절차를 밟아야 한다. 힘들어도 그 답을 받아들여야 한다. 장기전을 해야 한다. 더 많은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박항서 감독에게는 베트남 팀의 답이 보이고 히딩크 감독에게는 한국팀의 답이 보인다. 체력훈련부터 해야 한다. 때로는 오대영으로 지기도 한다. 한 방에 안 되고 힘든 절차를 밟아서 겨우 되는 것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경우 답은 있는데 그것을 설명할 언어가 없다. 구조론이 그 언어를 제시한다. 일의 우선순위가 있다. 그것이 답이다. 답이 여러 개면 가중치가 있다. 그것이 답이다. 중요한 답을 먼저 말해야 한다. 둘 다 잘못했을 경우 힘이 있는 쪽이 원인이다. 노동자와 회사측이 둘 다 잘못했을 경우 답은 회사측에 있다. 어른과 아이가 동시에 잘못했을 경우 어른 책임이다. 집단과 개인이 둘 다 잘못했을 경우 집단의 잘못을 추궁해야 한다. 힘이 있는 쪽이 액션을 취해야 한다. 주도권을 쥔 쪽이 일을 풀어가야 한다. 모든 경우에 답이 있으므로 이에 따라 일처리의 매뉴얼을 만들 수 있다.


    답을 알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사실 실력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겁하니까. 아무데나 두어도 바둑은 되지만 아무데나 두면 그 바둑을 진다. 한 수로 끝나는 답은 없지만 여러 수가 수순대로 모이면 훌륭한 답이 된다. 바둑의 답은 효율적인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상대의 전략이나 기력에 따라 달라지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상대성은 닫힌계에 가두면 절대성으로 변한다. 단 한 단계 위로 올라가야 닫힌계에 가둘 수 있다. 그 층위에서는 안 된다. 머리는 꼬리를 흔들 수 있지만 꼬리는 머리를 흔들 수 없다. 뒤집으면 되는데 뒤집을 수 없다. 그 경우는 개인에서 집단으로 한 층위 올라서면 된다. 개인은 가족에 가두고, 가족은 부족에 가두고, 부족은 국가에 가두고, 국가는 인류에 가두고, 인류는 문명의 진보에 가두면 분명한 답이 도출된다.


    답이 없다고? 그걸 뒤집으면 답이 있잖아. 상대적이라고? 그걸 뒤집으면 절대적이잖아. 문제가 있다고? 문제를 뒤집으면 답이잖아. 원인을 뒤집으면 결과잖아. 간단하잖아. 단 밖으로 나가서 한 차원 올라가야 풀린다. 엔트로피의 방향성에 의해 그 바닥에서는 뒤집을 수 없다는게 딜렘마다. 개인을 뒤집으려면 밖으로 나가서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가족을 뒤집으려면 회사에 출근해서 돈을 벌어와야 하고, 부족을 뒤집으려면 국가로 나아가서 정권을 잡아야 하고, 국가를 뒤집으려면 이웃나라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 용감하게 밖으로 나가야 한다.


    모든 문제에 답은 있다. 그러나 그 답이 당신이 원하는 답은 아닐 수 있다. 답은 밖으로 나가서 뒤집는 것이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기가 싫다.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되는데 나이 들면 안 된다. 이 문제는 외부에서 도와줄 수 없고 본인이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변해야 한다. 답은 나왔고 당신이 답에 맞추어야 한다. 진리를 당신의 기준에 맞출 수는 없다. 그 답은 당신이 원하는 답은 아니지만 당신 가족이 원하는 답이다. 당신의 가족이 원하는 답은 아니지만 당신의 부족이 원하는 답이다. 당신의 부족이 원하는 답은 아니지만 당신의 국가가 원하는 답이다. 당신은 검찰이거나 기레기거나 혹은 엘리트다. 검찰의 답도 기레기의 답도 엘리트의 답도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답이다. 인류의 정답이다. 자신을 바꿀 마음을 먹으면 답이 보인다.


    답이 없을 때는 뒤집으면 된다.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 먼저 자신을 바꾸고, 다음 밖으로 나가고, 환경을 이용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장기전을 하면 된다. 비록 당신이 원하는 답은 아니지만 그 답이 먼저 와서 진을 펼쳐놓고 당신을 부르고 있다. 진리가 당신을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응답해야 한다.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다. 말을 똑바로 해야 한다. 절대와 상대는 같다. 단순한 것이 다양한 것이다. 관측자의 위치만 다르다. 상대를 보는 사람은 지고 절대를 보는 사람은 이긴다. 부분들과 전체는 같다. 전체를 보는 사람은 이기고 부분들을 보는 사람은 진다. 지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진다. 패배한 자는 탈락하고 승리한 자 만이 다음 게임에 참가할 자격을 얻는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0.28 (03:03:44)

"자신을 바꿀 마음을 먹으면 답이 보인다. 답이 없을 때는 뒤집으면 된다.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

http://gujoron.com/xe/113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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