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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120 vote 0 2019.03.13 (14:21:11)

   

    피아구분이 자아다


    인간이 행위에 책임지려고 할 때 그 책임지는 주체가 자아다. 자아가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독립적인 의사결정권이 있다는 것이다. 주인에게는 권력이 있고 노예에게는 권력이 없다. 인간에게는 자아가 있고 동물에게는 자아가 없다. 동물은 사건을 책임질 수 없다. 어린이는 자아가 미성숙하고 정신병자도 자아가 없다. 


    자아는 권력이고 권력의 행사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아는 상대방을 대상화 혹은 타자화하지 않고 반대로 주체화하고 대표화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접하는 것이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프로토콜이 맞아야 소통되고 평등해야 사건이 복제되기 때문이다.


    개그맨의 자학개그는 위악적으로 자신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한다. 자신을 노리개로 시청자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대중에게 아부하는 연예인이 간도 쓸개도 없는 듯이 구는 것이 그러하다. 자신을 상품화하는 행동이다. 노예와 주인 사이에서 그리고 갑을관계가 작동하는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낯선 사람과의 관계라도 마찬가지다. 먼저 인사를 트지 않으면 소통은 불능이다.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동물처럼 서열싸움을 하려고 든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서열싸움을 방치하면 안 된다. 동물이니까 하고 방관하지 말고 서로 대등한 서열임을 깨우쳐줘야 한다.  


    병사들이 암구어를 맞추듯이 사람도 평등하게 소통의 주파수를 맞춰놔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는 주체화할 수 없고 대표화할 수 없다. 대상을 이길 수 없으므로 주체화할 수 없고 대상을 통제할 수 없으므로 대표화할 수 없다. 이는 남녀관계라도 마찬가지다. 성 상품화로 인하여 여성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한다. 


    이는 모든 권력관계에 해당된다. 노예주는 노예를 대상화하고 타자화한다. 아주 물건취급 한다. 노예를 잘 대접해주는 착한 노예주는 괜찮지 않을까? 천만에. 망상에 불과하다. 진정한 평등이 아니면 안 된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편이 설거지를 돕는다며 부인의 동선과 계속 충돌하는 경우이다. 


    노예를 대접하려면 주인은 노예가 무엇을 하는지 몰라야 한다. 알면 침범하고 침범하면 관계가 파괴된다. 노예들끼리 모이면 다들 자기 주인은 자기 없으면 옷도 못 갈아입는 바보라고 자랑하기 바쁘다. 그래야 영역이 겹치지 않는다. 어떤 노예도 자신과 서열이 같은 형편없는 주인을 섬기는 굴욕을 겪고 싶지 않은 거다.


    대상화한다면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며 타자화한다면 통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므로 잘못되고 마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ATM으로 보는 시선이라도 마찬가지다. 팀의 동료로 여기지 않고, 같은 식구로 받아들이지 않고 초대된 손님으로 존중하지 않고 동물처럼 서열을 정한다.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과 통제할 수 없다는 열패감 때문이다. 백인이 흑인을 이길 수 없다거나 혹은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긴다면 그 이면에는 무의식적으로 흑인을 동료가 아닌 통제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며 그 이유는 두려움과 낯설음 때문이다. 어떻게 선제대응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가 무슨 말이라도 걸면 가시 돋친 말로 받아치려고 하는 사람 있다. 매사에 말을 삐딱하게 하는 사람 말이다. 그들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상대방이 인사말로 '여 오늘 날씨 좋지' 하면 '좋긴 뭐가 좋아? 미세먼지가 가득한데.' 하고 받아친다. 매사에 이따위로 구는 사람 있다. 빈정거리고 면박주고 놀리기로만 말한다.


    그런 사람은 자아가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피아구분이 안 되어 있다. 알아야 한다. 세상은 모두 남이고 타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사건에 올라타는 방법으로만 동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족도 함부로 하면 안 되며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경계가 있음을. 먼저 동료가 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진보의 편, 문명의 편, 인류의 편, 진리의 편에 서지 않으면 서먹서먹해지고 마는 것이며 어색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함부로 스킨십을 시도하다가 상대방을 골리고 비난하고 면박주고 빈정거리고 심하면 추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원래는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말하려니 할 말이 그것밖에 없는 거다. 


    친하다는 이유로 서로를 또라이라고 부르는 사람 있다. 만나자마자 배에 강펀치를 먹이는 사람 있다. 짓궂은 게 아니라 인격이 미성숙한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남이다. 타인이다. 초대된 손님이다. 친자식도 마찬가지고 부부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게임에 초대받은 플레이어이며 사건의 주최측이 있다.


    사건 안에서 각자 역할을 얻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건 안에서 팀의 일원이고 동료이고 가족이다. 초대된 손님으로 대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건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건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아놓고 우리를 끌어들인 것이다. 사건 안에서만 어울릴 수 있고 스킨십할 수 있고 친할 수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3.14 (03:36:18)

"세상은 모두 남이고 타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사건에 올라타는 방법으로만 동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 사건 안에서만 어울릴 수 있고 스킨십할 수 있고 친할 수 있다."

http://gujoron.com/xe/107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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