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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040 vote 0 2019.03.18 (15:27:11)

      
    무심은 유심이다


    무심의 심心은 심이다. 심은 연필심이다. 촛불의 심지다. 심은 심어져 있는 것이다. 과일의 심은 씨앗이다. 과일의 핵核이니 핵심이 된다. 심은 코어core다. 식물의 속 고갱이다. 심은 중심이니 센터다. 심은 바퀴의 축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심은 구슬을 꿰는 실이다. 심은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다. 


    심은 에너지를 유도하는 절차다. 에너지를 통제하는 모든 것에 심이 자리잡고 있다. 국가에는 정부가 심으로 자리잡고, 자동차는 엔진이 심으로 자리잡고, 사업에는 본부가 심으로 자리잡고, 인간에게는 마음이 심으로 자리잡는다. 그런데 왜 다들 무심하라고 할까? 다른 뜻이다. 마차의 바퀴가 돌아도 바퀴축은 돌지 않는다. 


    심이 되는 바퀴축이 돌지 않으므로 그 돌지 않음에 의지해서 바퀴가 돌 수 있는 것이다. 심은 전면에 나서서 직접 역할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역할을 나누어 줄 수 있다. 모든 움직이는 것의 배후에는 움직이지 않는 심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는 법이다. 병사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대장은 막사에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625 때의 현리전투처럼 대장이 비행기 타고 날라버리면 병사는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승만처럼 대통령이 열차 타고 도망쳐 버리면 군대는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대장은 태산처럼 의연하게 자리를 지켜야 한다. 바퀴를 돌게 하려면 엔진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만 한다. 엔진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면 고장난 차다. 


    팔다리는 이리저리 움직여도 심장은 의연하게 자리를 지켜야 한다. 심은 다른 것에 의지가 되는 것이며 그러려면 믿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므로 태산처럼 의연해야 하는 것이다. 아기는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무심해진다. 엄마가 아기의 심이 되어 주므로 아기는 마음껏 뛰놀 수 있다. 그러나 엄마는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엄마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면 아기는 불안해서 뛰어놀 수 없기 때문이다. 정중동靜中動이라 했다. 엄마의 정靜을 중中에 두고 아기의 동動을 변邊에 두어야 한다. 아기의 무심을 위해 엄마의 유심이 필요하다. 아기의 동을 위해 엄마의 정이 필요하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도 가지가 흔들릴 뿐 줄기는 의연하게 버텨낸다. 


    심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무심이다. 심이 움직이지 않으므로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무심은 유심이다.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멍청함을 변명할 요량으로 무심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피곤한 일이다. 무심은 과실의 핵이 없는 쭉정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장이 없는 오합지졸이 아니다. 


    정부 없는 국가, 엔진 없는 차, 본부 없는 사업, 마음 없는 사람은 망한다. 무심이면 얼간이다. 아기가 무심해지는 것은 엄마의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무심해지는 것은 정부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라가 잘 돌아갈 때다. 엄마가 유심하므로 아기가 무심하며 정부가 세심하므로 국민이 안심한다.


    그것이 자연스러움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갈 때는 무심해진다. 유심하므로 무심해진다. 왜 그러한가? 심이 밖에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시선은 아기 바깥에 있다. 정부는 국민 바깥에 있다. 심은 보통 내부에 있지만 진정한 것은 심이 바깥에 있다. 배를 움직이는 키는 바깥에 있다. 말을 움직이는 기수는 바깥에 있다. 


    기수가 존재감을 과시하면 말이 놀란다. 말은 기수를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기수가 유심하므로 말과 하나가 되어 말이 무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사물은 대부분 심이 내부에 있다. 볼펜심은 볼펜 안에 있다. 앙꼬는 찐빵 안에 있고 심장은 사람 몸 안에 있고 안방은 건물 안에 있다. 


    진정으로 말하면 심은 바깥에 있다. 방송국은 라디오 안에 없다. 집단은 개인 안에 없다. 집단의 의사결정중심은 개인들의 바깥에 있다. 인터넷은 퍼스널 컴퓨터 안에 없다. 서버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바깥에 있다. 심이 바깥에 있으므로 무심한 것이며 심이 없는 게 아니다. 낮은 단계의 문제는 항상 높은 단계에서 풀린다.


    1차원 문제는 2차원에서 풀리고 2차원 문제는 3차원에서 풀린다. 행복의 심은 성공에 있다. 행복에서 행복을 찾지 말라. 성공의 심은 사랑에 있다. 성공 안에서 성공을 찾지 말라. 사랑의 심은 자유에 있다. 사랑에서 사랑을 찾지 말라. 자유의 심은 존엄에 있다. 자유에서 자유를 찾지 마라. 답은 언제나 한 차원 위에 있다.


    행복은 성공에서 풀리고 성공은 사랑에서 풀리고 사랑은 자유에서 풀리고 자유는 존엄에서 풀린다. 개인의 존엄은 집단과의 관계설정에서 풀린다. 항상 한 단계 높은 곳에서 풀린다. 심이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고민은 바깥의 중앙정부에서 풀리고 한국의 고민은 바깥과의 외교에서 풀린다. 무심의 진짜 의미다. 


    심은 내부에 있는데 내부에는 심이 없다. 자동차의 심은 내부의 엔진이 아니라 바깥에서 들어오는 운전자다. 컴퓨터의 심은 내부의 반도체가 아니라 바깥의 인터넷이다. 심은 바깥에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어떤 마음을 내는 것은 내부에서 화를 내거나 기쁨을 내는 게 아니다. 외부에서 오는 손님을 만날 때 기쁨이 있다. 


    외부에서 침범하는 방해자와 마주칠 때 분노가 있다. 마음은 언제나 바깥과의 관계에 있다. 심은 안테나와 같으니 내부에 있지만 외부와 연결하고 있다. 사사로운 욕심이든 숨겨둔 꿍심이든 내거는 자존심이든 모두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이기심도 이타심도 의협심도 적개심도 조바심도 바깥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개인의 심은 공동체의 발전에 있다. 개인이 성공했다는 건 의미가 없다. 개인의 성공이 공동체의 발전과 맞물려 돌아가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 금고에 화폐가 채워진들 IMF 터져서 은행이 파산하면 의미가 없다. 인류 전체를 이끌어나갈 지도력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개인의 심은 전체의 에너지 파도를 타는데 있다.


    역사의 심은 특정한 집단의 우월이 아니라 문명의 발달에 있는 것이며, 문명의 심은 진리의 보편됨에 있는 것이고, 진리의 심은 신의 완전성에 있는 것이다. 다들 무심을 말한다. 심을 비우라고 한다. 심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바깥에 있는 것이므로 비울 수 없다. 감독은 그라운드 바깥에서 뒷짐을 지고 있다. 


    선수가 무심하려 해도 감독이 벤치에서 사인을 보내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나뭇가지가 무심하고자 해도 바람이 불어대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다. 개인의 문제는 공동체의 레벨로 올라가야 해결된다. 공동체의 문제는 세계와 문명의 진보에서 해결책이 찾아진다. 문명의 문제는 진리의 보편성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항상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야만 문제가 풀린다. 그럴 때 무심해진다. 편안해진다. 무심은 아기가 자기의 소유를 챙기지 않고 엄마를 믿는 것이다. ‘엄마가 나를 키워 잡아먹을 셈으로 대가도 받지 않고 공짜 젖을 주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여 도리질을 하며 젖 먹기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거 곤란한 거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으며, 돌아가는 팽이는 넘어지지 않는다. 배가 노 젓기에 부지런하다면 실패다. 순풍에 돛달고 바람결을 타는 것이 무심이다. 개인은 역사의 진보하는 흐름에 올라탈 때 무심해진다. 개인의 성취가 공동체의 진보로 연결되므로 무심해질 수 있다. 악사의 연주라도 앙상블이 맞으므로 무심해질 수 있다.


    아무 생각이 없이 그냥 멍청하게 있는 것이 무심은 아니다. 왜? 사회가 날로 진보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도 사회는 저만치 달려가 있다. 사회와 개인의 간격은 멀어지고 만다. 떠밀려 나가고 만다. 소외되고 만다. 배척되고 만다. 보수화되고 만다. 어느새 고집쟁이 꼰대 소리를 듣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승객은 버스에 타야 무심해질 수 있다. 경주마는 기수와 호흡을 맞추어야 무심해질 수 있다. 춤꾼은 스테이지가 시끄러워야 오히려 무심해질 수 있다. 일이 되어가는 흐름 안에서 각자의 포지션이 딱딱 맞아떨어질 때 무심해진다. 안절부절못하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문자메시지라도 연락이 오면 바다처럼 무심해진다. 


    인간은 높은 단계에 올라섬으로써 무심해질 수 있다. 심은 대개 과일의 핵처럼 단단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박또박 말대답을 하고 뾰족한 가시로 찌르며 달려드는게 심이다. 아니다. 이는 하부구조에서의 일이요 상부구조로 올라가면 심은 자연의 에너지 흐름으로 있다. 정부는 겉으로 보이는 단단한 하부구조 심이다. 


    여론은, 민심은, 공론은, 민주주의는 보이지 않는 상부구조의 심이다. 날씨라면 기압골이 심이다. 지구라면 중력이 심이다. 진리라는 심은 겉으로 자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자연의 심은 밸런스로 있고 국민의 심은 균형감각으로 있다. 무심은 실로 유심하다. 아기를 지켜보는 엄마의 시선처럼 세심하다. 꼼꼼하고 깐깐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3.19 (02:35:25)

"무심은 실로 유심하다. 아기를 지켜보는 엄마의 시선처럼 세심하다. 꼼꼼하고 깐깐하다. ~ 항상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야만 문제가 풀린다. 그럴 때 무심해진다. 편안해진다."

http://gujoron.com/xe/107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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