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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822 vote 0 2018.08.07 (15:51:03)


    파우스트의 결론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있다. 파우스트는 인간의 대표자로 신과 대결한다. 북유럽의 전래설화로 여러 버전이 있다는데 유명한 괴테의 파우스트는 신과 악마 메피스토가 내기를 하고 다시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와 계약을 맺는 것으로 꼬아놓았지만 본질은 같다.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자는 것이다. '인간에게 과연 희망이 있는가?' 이런 물음이다.


    구조론에 따르면 빛은 있어도 어둠은 없다. 신은 있어도 악마는 없다. 인간은 환경과 대결하는 존재다. 이기면 신을 만나고 지면 악마를 만난다. 악마는 신의 다른 모습들이다. 봉건시대에 인간은 살아내기가 힘들었다. 질병과 전쟁과 천재지변과 가난과 폭군에게 시달리기 다반사다. 그것이 악마다. 신이 있다는 것은 인류문명에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악마가 있다는 것은 질병과 전쟁과 천재지변과 가난과 폭군의 압제가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인간의 고단한 여정이 시작된다. 파우스트는 모르는게 없는 박사지만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젊음까지 잃었다. 아담과 이브 시절만 해도 젊었을텐데 수천 년간 유럽문명을 짓눌러온 기독교의 무게에 눌려 늙었다. 중세유럽은 가난하고 늙은 문명이다.


    파우스트 1부는 소승이다. 욕망과 쾌락과 사랑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을 벌인다. 불교에서 선재동자의 여행과 같다. 그리고 파멸한다. 주인공 버프를 받아 살아나지만 사실 그레트헨과 틀어진 지점에서 파우스트는 죽은 것이다. 아니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먹은 시점에 이미 죽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영혼은 순수하다고 우기는 것은 괴테의 궤변이다.


    파우스트 2부는 대승이다.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에 나선다. 자유롭고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한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아 멈추어라. 이 순간이 아름답다.'고 외치면서 종말을 고하는데 악마는 자신이 내기에 이겼다며 희희낙락 하지만 신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구사하여 영혼을 팔아먹고 여성을 유린한 범죄자 파우스트의 구원을 선언한다.


    왜? 도덕가의 관점으로 보면 파우스트는 막장이다. 그냥 쓰레기다. 파우스트는 인간을 대표한다. 인간을 쓰레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쩌면 1부에서 파우스트는 끝난 것이며 2부는 괴테의 정치발언이다. 왜 괴테는 파우스트가 구원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하긴 피조물이 신을 죽일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파우스트의 죽음은 곧 신의 죽음이 된다.


    작품이 깨지면 작가는 죽는다. 작품을 살리기 위해 작가가 죽는 일은 있어도 작가가 살기 위해 작품을 죽이는 일은 없다. 파우스트의 구원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며 메피스토가 신에게 속은 것이다. 신과의 내기는 하는게 아닌데 말이다. 전지전능하다는 것은 끝난 승부도 뒤집어놓는다는 말이다. 엉큼하기 짝이 없는 신과 내기하면 망하는 수 있다.


    여기서 괴테가 기독교의 예정설을 신봉했다느니 괴테의 의도는 계몽주의라니 하며 말이 많은데 구조론으로 보면 신이 1대고 괴테가 2대고 괴테가 아름답다고 말한 자유주의 이상세계는 3대다. 1부는 소승이며 개인의 도덕적 자질을 심판한다. 계통이 없다. 2부는 대승이고 집단의 방향을 제시한다. 계통이 완성되면서 파우스트의 역할은 끝난다. 아름답다.


    1부는 개인의 자질과 도덕을 논하고 2부는 집단의 의리를 논한다. 그 의리가 아름답다. 도덕으로 망한 파우스트를 의리가 살렸다. 왜? 신은 의리가 있으니까. 신이 파우스트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시간아 멈추어라 세상은 아름답다.'고 선언한 파우스트는 자신의 지옥행을 재촉하며 신이 의리를 지켜 구원할 것을 기대했을까? 이런 질문은 꽤나 잔인하다.


    그것은 마치 노무현이 마지막 담배 한 가치를 피울 때 혹은 노회찬이 고뇌할 때 무슨 계산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계산이 있을 리 없다. 아름다움을 본 사람은 언제 죽어도 좋은 것이다. 내 의리를 지키면 그뿐 신의 의리는 신의 감당할 몫이다. 노무현은 그리고 노회찬은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선언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답변은 YES다.


    인간의 목표는 계통을 만드는 것이다. 씨앗을 뿌리고 떠나는 자는 가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과연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기나 하는 것일까? 믿을 수 있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름다우면 충분하다. 신을 의심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다. 신에게는 신의 미학이 있다. 1대가 씨를 뿌렸으면 여름의 키우기와 가을의 수확은 후대의 몫이다.


    도덕으로 죽은 인간이 의리로 살아난 셈이다. 이것이 파우스트의 결론이다. 왜? 신은 꽤 의리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의리를 지키는 한 신도 의리를 지킨다. 그런데 신은 신 자신의 의리를 지킬 뿐 당신의 의리를 지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후회하지 않는 자가 이긴다. 신은 악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애초에 정해진 신 자신의 계획대로 밀어붙인다. 


    기독교의 신 개념을 갖다댄다면 곤란하다. 인간은 환경과 대결하는 존재다. 환경을 이겨야 한다. 개인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허무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집단의 일에 가담하여 계통을 조직하고 임무를 획득하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호응하는 것이다.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다. 복수하는 것이다. 이겨야 한다.

  

    드라마든 삶이든 그러하다. 보물을 찾았다거나 쾌락을 얻었다거나 미인과 어쨌다거나 하는 것은 파편화된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다. 동물적 본능에 반응하는 것이다. 인생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대칭을 이루는 것이다. 전통적인 드라마는 복수극이다. 원인과 결과를 대칭시켜 사건을 완결시켜야 한다. 사건이 어떻게 완결되느냐다.


    전통적인 복수극은 과거의 부름에 응답한다. 과거에 붙잡혀 있는 점에서 좋지 않다. 춘향과 몽룡은 서로를 애타게 부른다. 호응한다.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다. 역사의 부름에 응답해야 진짜다. 소승의 한계를 넘어 대승의 열린세계로 나아가 계통을 만들 때 완성된다. 그것이 진짜 복수이고 진짜 사랑이며 진짜 아름다움이다. 신의 부름에 응답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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