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37 vote 0 2019.02.22 (11:54:08)

      
    왜 사람을 구하는가?


    지하철 선로에 사람이 떨어졌다면 지체없이 구해야 한다. 이런 것은 평소에 훈련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막상 현장에서 상황을 당하면 당황해서 실행을 머뭇거리게 된다. 이성적인 판단만 가지고는 생각처럼 잘 안 되는 것이다. 평소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연습해 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교육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사람을 구하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사실이지 동료를 구하지 않는 인간은 멸종했다. 네안데르탈인이 그러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더 인간적이었다. 그래서 동료를 구했고 그래서 지금 내 존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미 사건 속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다는 거다.


    이제 상황을 당하여 구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게 아니라 이미 구하고 있다. 개인을 보지 말고 집단을 봐야 한다. 인간은 사건 속의 존재다. 사건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사건이며 사건 안에서 에너지 흐름을 타고 있고 그 흐름에서 밀려나면 네안데르탈인처럼 죽는다. 잘 가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면 죽는다.


    인간은 동료라는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동료를 버리면 죽는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동료에게서 나온다. 위험에 빠진 동료를 구하는 방법으로 인간은 집단으로부터 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이다. 형이 동생에게 빵을 나눠준다. 그런데 왜 빵을 나눠주지? 배 곯은 동생이 불쌍해서? 아니다.  


    형이 동생에게 빵을 나눠주는 행동은 엄마한테 빵을 나눠받는 행동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형이 동생에게 주지 않으면 엄마도 형에게 주지 않는다.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며 사건 안에 필연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새끼곰을 구하지 않는 곰은 진작에 멸종하고 없다. 


    원숭이도 어미 잃은 고아 원숭이를 구한다. 이모 원숭이가 고아 원숭이를 입양해서 제 자식처럼 키운다. 개도 동료가 임신하면 상상임신을 해서 동료의 강아지를 분양받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는 그러한 구함들의 연쇄고리다. 타인을 구함은 집단으로부터 에너지를 조달하여 자신을 구하는 방법이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전개한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사건의 기다. 사람을 구해야 사건은 다음 단계로 진행된다. 부르던 노래는 계속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고 중간에 끊으면 어색하다. 똥 싸다가 중간에 끊을 수 없는 이치다. 그런데 과연 인간은 똥싸고 있었을까?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까? 그렇다. 현재진행형이다.


    개인으로 보면 구함이 새로운 개입이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사회단위로 봐야 한다. 사회로 보면 구하지 않는 게 사회의 진보하는 방향을 트는 부자연스러운 개입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선행과 같다.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움을 다치면 에너지 흐름이 끊겨서 사회는 망한다. 


    동료를 잡아먹는 식인종 부족은 당연히 망한다. 인간 개개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강력한 집단의 에너지 흐름 속에 빨대 꽂아놓고 그 안에서 호흡하고 있었던 거다. 구하지 않음은 그 에너지 파이프를 끊는 것이다. 인간은 무의식 형태로 집단으로부터 부단히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는 거다.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보통은 집단의 에너지 흐름이 아닌 개인의 마음에서 답을 찾는다. 맹자의 측은지심이다. 측은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과연 측은한 마음이 들까? 천만에. 만약 측은한 마음이 든다면 그곳은 당신의 마을이다. 남의 동네에 가면 인간은 태도가 바뀐다. 타자성의 문제다.


    집시 소년 두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었어도 해변의 이탈리아인들은 동요하지 않고 하던 해수욕을 계속 즐기더라. 왜? 집시니까. 그들에게 집시는 자기네 이웃이 아니고, 자기 동료가 아닌 것이다. 미영전쟁에 소집된 민병대들은 자기 고향에서 열심히 싸우다가 남의 동네로 주 경계를 넘어가자 약탈을 자행했다.


    착한 청교도들이 갑자기 야만한 도적떼가 된 것이다. 베트남에 간 국군처럼. 왜 그랬을까? 원래 남의 동네 가면 비뚤어진다. 측은지심은 사라진다. 자기 동네와 남의 동네를 구분하는 선을 넓혀놓지 않은 즉, 공부하지 않아서 의식이 없는 사람은 측은지심을 발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교육되어야 한다. 


    측은지심은 감정이다. 감정은 사건의 원인이 아니다. 구조론으로 보면 정신 의식 의도 생각 감정 순서다. 남의 동네라는 환경의 파악이 정신이다. 내편과 네편을 가르는 것은 의식이다. 정신과 의식이 먼저다. 정신과 의식이 무의식 깊은 곳에서 먼저 판단하고 의도와 생각이 따르며 감정은 그 결과물을 출력한다. 


    감정을 인간 행동의 근거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엄마곰은 새끼곰을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네 살까지 확실히 책임진다. 그런데 새끼곰이 다섯살이 되면 쫓아낸다. 더 이상 돌봐주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정신과 의식이 바뀐 것이다. 인간은 그 경계를 임의로 정한다는 점이 각별하다. 


    당신에게 북한은 내 자식인가 남의 자식인가? 인간은 곰과 달리 그것을 정할 수 있다. 자식을 돌보는 엄마곰이 될지 무개념 수컷곰이 될지는 자신이 정한다. 집시 소년의 죽음을 방관하는 이탈리아인이 될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지는 당신이 정한다. 그런데 말이다. 엄마곰이 될 생각이 없다면 리더가 될 수 없다.


    지하철에 떨어진 사람을 구할 수도 있고 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 구하지 않는 사람은 구조론사람이 될 수 없다. 교양되지 못한 사람은 배척된다. 동료를 잃고 에너지원을 차단당한다. 수도가 끊기듯이 관심이 끊어진다. 변희재가 감옥에서 고생해도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가 외면할 때 죽는 것이다. 


    가수는 청중이 외면할 때 죽고 배우는 관객이 외면할 때 죽고 정치인은 지지자가 외면할 때 죽는다.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사람을 구하지 않고 방관한 사람은 당연히 배척당하고 관심을 끊긴다. 동료애라는 집단의 에너지를 차단당한다. 고립되고 만다. 인간이 깨닫지 못하지만 거대한 에너지 흐름 속의 존재다. 


    그 에너지 흐름은 무리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곧 인류의 진보를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보는 그러한 구함을 통해 이루어진다. 구하지 않으면 에너지를 차단당하고 소외되고 네안데르탈인처럼 멸종된다. 차는 기름이 없을 때 죽고 인간은 사회화가 없을 때 구함을 잃어서 죽는다.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을 때 당신은 죽는다. 쳐다보는 시선들에 의해 인간은 사는 것이며 그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는 방법은 동료를 구하는 것이다.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친한 동료가 아니라도 구해야 한다. 남의 동네 가면 수수방관하는 중국인 곤란하다.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아서 모든 곳이 남의 동네다. 


    그것이 옳고 그것이 선하고 그것이 도덕적이고 그것이 윤리적이고 정의와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에너지의 법칙이다. 전기가 끊어지면 컴퓨터는 작동을 멈춘다. 구함이 끊어지면 사회는 작동을 멈춘다. 인간은 남을 구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구한다. 어미는 자식을 구하여 살고 리더는 무리를 구하여 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9.02.23 (03:28:14)

"쳐다보는 주변의 시선들에 의해 인간은 사는 것이며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을 때 당신은 죽는다."

http://gujoron.com/xe/1065287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9.02.24 (07:22:26)

제게 질문이 들어왔다면 답을 찾기 쉽잖았을 것인데
동렬님의 답은 너무나도 쉽네요. 감사합니다. 인상깊은 구절이 많습니다.

"맹자의 측은지심이 그렇다. 측은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과연 측은한 마음이 들까? 천만에. 만약 측은한 마음이 든다면 그곳은 당신의 마을이다."


"자기 동네와 남의 동네를 구분하는 선을 넓혀놓지 않은 즉 공부하지 않아서 의식이 없는 사람은 측은지심을 발동하지 않는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356 존엄 자유 사랑 성취 행복 1 김동렬 2019-02-26 1399
4355 마음은 진화다 1 김동렬 2019-02-25 1137
4354 마음의 구조론적 관점 1 김동렬 2019-02-24 1026
» 왜 사람을 구하는가? 2 김동렬 2019-02-22 1337
4352 마음은 에너지다 1 김동렬 2019-02-22 1057
4351 나는 누구인가? 4 김동렬 2019-02-21 1548
4350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1 김동렬 2019-02-20 1479
4349 교육은 물리적 제압이 정답이다 2 김동렬 2019-02-20 1183
4348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오해 2 김동렬 2019-02-19 1343
4347 히키코모리가 되는 이유 4 김동렬 2019-02-18 1985
4346 정신과 의식 1 김동렬 2019-02-18 1145
4345 마음이란 무엇인가? 1 김동렬 2019-02-16 1590
4344 명상을 왜 하는가? 5 김동렬 2019-02-15 1844
4343 마음은 바다를 건넌다 2 김동렬 2019-02-14 2064
4342 마음을 깨닫기 1 김동렬 2019-02-12 1838
4341 에너지는 스트레스다 1 김동렬 2019-02-11 1791
4340 한나 아렌트의 인종주의 2 김동렬 2019-02-11 1666
4339 의식의 구조 2 김동렬 2019-02-10 1549
4338 악의 특별함 1 김동렬 2019-02-08 1852
4337 머무르면 죽고 움직이면 산다 2 김동렬 2019-02-07 1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