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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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423 vote 0 2018.06.14 (18:32:16)

    모든 이야기의 시작


    아기의 울음은 집단의 주의를 끄는 행동이다. 지식인의 비판 역시 집단의 주목을 끌기에 성공한다. 철학자가 탄식하는 이유도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당신이 어떤 말을 하든 그저 사회의 주목을 끌고자 하는 넋두리에 불과하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무의식이고 무의식을 작동시키는 것은 호르몬이다. 호르몬이 하는 일은 환경과의 관계설정이다. 당신은 잔뜩 인상을 쓰고 폼을 잡은 채 온갖 언설로 합리화 할 수 있겠지만 경청할 필요도 없다. 그저 호르몬일 뿐이다. 호르몬의 작용에 의하여 에너지가 업되거나 다운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인간은 언제라도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에 견고하게 뿌리내리기를 원한다. 시인은 아름다운 싯귀로 주목을 끌고 여인은 매력을 과시하여 주목을 끌고 깡패는 요란한 범죄로 주목을 끈다. 호르몬이 그렇게 한다. 환경과의 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에너지가 업되면 당신은 행동을 개시한다. 


    그래서? 연결한다는 거다. 당신은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고 있지만 나는 조금도 듣지 않는다. 어차피 당신 방법의 주목끌기에 불과하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이 사람은 또 왜 이럴까?’ 보나마나다. 단지 TV에 나오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철수든 학규든 마찬가지다. 일베든 문빠든 같은 거다. 


    입이 있으니 써먹어야 한다. 뇌가 있으니 굴려봐야 한다. 손가락이 있으니 자판을 쳐봐야 한다. 당신은 선과 악을 분별하고 정의와 불의를 심판하며 사회를 향해 온갖 언설들을 투척하지만 내가 들어줄 이유는 없다. 단지 전략의 차이에 불과하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사건의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1단계를 달성하고 다음 단계로 연결해 간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반면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반응에 의미를 둔다. 상대를 격동시켜 어떻든 현장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한다면 뒷다리를 붙잡고 늘어져서 게임의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위태롭다. 


    자칫 연결이 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쁘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쓰는 기술은 다르지만 사회를 걸고 자빠지는건 같다. 단기전이냐 장기전이냐의 집중력 차이다.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 장기전을 하는 좋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곧잘 집중하지만 단기적으로만 집중하며 사건의 전모를 보지 못하는 보수도 있고 그다지 집중을 못하지만 폭넓은 시야를 유지한 채로 끈덕지게 따라붙는 진보도 있다. 


    선악의 분별은 피곤한 거다. 사건 안에서 관성의 법칙을 유도하여 게임을 이어가는 좋은 사람과 다른 사람을 걸고 자빠져서 작용반작용 원리에 따라 게임을 이어가는 나쁜 사람이 있는 거다. 좋은 사람은 관성이 약해서 시시하게 망하고 나쁜 사람은 상대를 잘못 골라 오지게 망한다. 


    좋은 사람은 얼마 못 가서 망하고 나쁜 사람은 출발하기도 전에 망가져 있다. 그러므로 인생에 답은 없다. 닫힌 사건 안에서는 원래 출구가 없다. 노무현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죽었다. 사방은 벽이다. 에너지는 단박에 고갈되었다. 당신이 노무현을 죽였다. 현실은 착한 사람을 먼저 죽인다.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벽 때문이다.


    학벌벽, 지역벽, 금전벽, 이념벽, 차별벽이 사람을 가둔다. 그리고 죽인다. 죽지 않는 사람은 그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엘리트다. 그들이 벽을 넘는 이유는 상상에 살기 때문이다. 관념에 머무르는 자는 죽지 않는다. 그러나 영혼은 이미 죽어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상상 속의 꿈 꾸는 사람이 현실의 싸우는 사람을 죽인다. 


    아름다운 상상력이 노무현을 죽였다. 반미의 황홀한 상상이 친미의 처참한 현실을 죽였다. 꿈 꾸는 자가 살인자다. 당신이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다. 인간은 언제라도 연결을 꾀한다. 상상의 연결은 동서남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의 연결은 하나를 이어갈 때마다 하나가 끊어진다. 결혼하면 한 사람을 얻는 대신 친구 두 명과 헤어진다. 인간이 나서 죽을 때까지 하는 짓은 연결 뿐이다. 사회적인 주목끌기 뿐이다. 


    나보다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은 없다. 생각은 도구를 쓰는데 도구는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개는 언어가 없어 생각할 수 없고 부족민은 숫자가 없어 셈할 수 없고 인간은 구조론을 얻지 못해서 생각이 깊어질 수 없다. 생각할만한 것은 다 생각했다. 답은 나왔다. 이제 남은 생각의 건수들은 없을 듯 하다.


    생각이란 것은 연결의 고리가 되고 단위가 되는 하나의 완전성을 찾는 것이며 그 하나에 도달하면 끝이다. 사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무한복제와 전개의 영역이다. 인간은 어떻게든 사건을 연결해 가는 존재다. 그런데 이미 연결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길은 연결이다. 도는 길이다. 


    인간은 길을 연결하다가 죽지만 길은 원래 널리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기술도 쓰지만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기술도 쓴다. 그러나 만유는 이미 연결되어 있다. 완전성과 가능성과 방향성과 효율성과 대표성으로 길은 연결될 수 있다. 진리 완전성과 에너지의 가능성과 사건의 방향성과 게임의 효율성과 인간의 대표성으로 천하를 연결하기다.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에 진리의 완전성이 있다. 가능성과 현실성 사이에 에너지가 있다.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 사건의 방향성이 있다. 게임에서의 승리와 패배 사이에 자연의 효율성이 있다. 개인과 집단 사이에 인간의 대표성이 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모두 연결한다. 


    인간이 깨닫지 못할 뿐 모두 연결되어 있다. 361로의 바둑판 점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는 무대 위에서 각자의 흑돌과 백돌을 연결해 가는 것이다. 그렇게 연결하여 마침내 도달하는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음 그 자체다. 중간에 돌을 던져버린다면 과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마지막에 반집승을 얻는 자가 가장 팽팽한 연결형태를 드러낸다. 연결하려면 무엇보다 너와 나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네가 없고 내가 없으면 연결할 수도 없다. 그런데 희미하다. 너와 나의 존재가 희미하다면 신의 존재도 그만치 희미한 거다. 그래서 완전성이다. 본래 희미하던 너와 나의 존재가 넉넉히 확보되어 있다면 추가로 셋이 더 필요하다. 에너지와 질서와 의사결정이다. 


    에너지는 천하에서 나온다. 질서는 시간의 진행에서 나오고 의사결정은 대표성에서 나온다. 비로소 연결할 수 있다. 이제는 의사결정할 수 있다. 당신은 인생의 한 점을 둘 수 있다. 신의 완전성과 기적의 가능성과 기도의 대표성으로 연결하기다. 


    신이 있고 기적이 있고 기도가 먹힌다는 말은 세상과 당신이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말이다. 그 외에 없다. 사랑도 행복도 쾌락도 성공도 자유도 연결하며 에너지를 끌어대는 수단에 불과하다. 과연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 기수와 말이 마음으로 연결되고 자동차와 도로가 물리적으로 연결되고 식물과 햇볕이 사건적으로 연결된다.


    에너지로 연결된다. 문명의 진보를 통해 인간과 집단은 굳건히 연결되어야 한다. 소외되지 않고 배제되지 않고 밀려나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세상의 의사결정중심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태롭다. 멈추면 연결은 끊어진다. 동물은 움직임을 멈출 때 연결이 끊긴다. 식물은 성장을 멈출 때 연결이 끊어지고 인간은 진보를 멈출 때 연결이 끊어진다. 


    밸런스가 중요하다. 너무 뒤쳐져도 안 되고 너무 앞서가도 안 되며 적당히 가도 안 되고 리듬을 탈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짐짓 뒤쳐지는 것이 밸런스고 때로는 선두에서 이끄는 것이 밸런스고 때로는 가운데서 균형을 잡는 것이 밸런스다. 앞서가면 단절되고 뒤처지면 고립되고 가운데 가면 묽어진다. 예술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systema

2018.06.15 (03:58:58)

닫힌계 안에 답이 없다는 것은 계속해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새로운 사건은 인류를 더 연결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건의 원사건을 문명이라고 본다면, 이미 인류를 연결하는 큰 사건은 시작되 있는 것이겠지요. 닫힌계 안에서 분리되 있는 현실과 가장 큰사건의 연결에서 방향성이 성립하기때문에 새로운 사건을 열어갈수 있다고 보입니다. 결국 분리는 작은 사건만 바라봤을때 성립하는 것이고, 진실한 사람은 계속해서 새로운 사건을 열어가는 사람이겠지요.

[레벨:4]김미욱

2018.06.15 (09:28:26)

( 7연. 마지막에 반집승을 얻는 자기 → 자가)
반집승의 달인 이창호가 이 글 보면 좋아할 듯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6.15 (09:44:33)

글을 수정하면서 분량을 두 배로 늘릴 생각입니다. 기다려 주시길

[레벨:4]김미욱

2018.06.15 (11:45:44)

좀 더 밀도있는 글을 쓰실 것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챠우

2018.06.15 (14:52:34)

질문입니다. 가장 헷갈리는 지점입니다.

구조론으로 보자면 여성과 남성이 만나서 커플을 이루는게 아니라

사회와 커플이 만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건의 시작 지점을 어디로 정할지가 가장 헷갈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6.15 (15:04:49)

에너지의 출발점에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가문간의 결혼이냐 두 사람의 연애냐죠.


사건을 규정하기에 따라 다른거.

중매결혼과 연애는 사건이 다르지요.


하룻밤 관계가 아닌 법적 결혼은 

결혼제도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가족은 부족이나 국가와 같은 사회적 단위라는 거지요.

가족이 도출하는 의사결정의 상대적인 효율성에서 


에너지가 작용하여 결혼제도가 있는 것이고

단순한 만남은 그냥 호르몬 에너지의 작용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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