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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492 vote 2 2018.06.13 (18:44:17)

   옛글 정리입니다.


    슈렉과 오우거


    다들 비겁하다. 진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지켜봤지만 인류 문명사 1만 년 동안 단 한 사람이 없더라. 찾아봤지만 70억 있다는 인간군상 중에 단 한 명이 없더라.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 10명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내게는 오래 묵은 울화가 있다. 대화가 되어야 말이라도 붙여보지 참! 오랫동안 혼자 생각해왔다.


    2001년에 나온 영화 '슈렉'이다. 늪에 사는 녹색 괴물 슈렉이 성에 갇힌 피오나 공주를 구한다.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피오나 공주는 예언대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되는데, 그의 진정한 사랑이 슈렉인지라 녹색 괴물 오우거의 모습이 된다. 그 장면에서 다섯 살 꼬마 관객은 울음을 터뜨린다. 드림웍스가 디즈니의 상투적인 설정을 비틀어 조롱한다는 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디즈니 영화라면 당연히 피오나 공주는 면사포를 쓴 백설공주의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끝이 났을 것이다. 타락한 어른들이 순수한 아이를 울렸다. 그 장면에서 왜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을까? 어른들이 잘못했다. 아이는 공주가 되고 싶었던 거다. 공주가 뭐길래? 다섯 살 꼬마가 공주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어린 시절 본 만화의 설정은 비슷하다. 주인공 꼬마는 거지 차림이지만 사실은 고귀한 신분이었던 거다. 괴짜 할아버지가 찾아와서 비밀의 문을 열어젖히는 단서를 알려준다. 한류드라마라면 출생의 비밀이 된다. 사실은 재벌가의 숨겨진 자식이었다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순수한 모습이라는 거다. 인간들 원래 그런거 되게 좋아한다. 인정하자. 다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싶어한다. 노골적으로 가면 차별주의가 된다. 다들 귀족이 되고 양반이 되고 왕자에 공주가 된다면 평민은 누구이고 하녀는 누구인가? 좋지 않다. 그러나 이게 유전자에 새겨진 인간의 본래 모습이라면? 진지한 고민해야 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사는가? 당신은 고귀한 존재인가? 우리는 배워서 안다. 그것이 낡은 신분제도의 잔재라는 사실을. 귀족도 없고 평민도 없는 시대에 어디서 왕자를 찾고 공주를 찾는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이런 것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고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은 다르다. 인간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9할은 여기서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흔히 열등의식이라고 한다. 콤플렉스다. 우월이나 열등이나 같은 말이다. 우월의식이 곧 열등의식이다. 비교하는 건 같다. 남보다 위라면 남보다 아래일 수도 있다. 남보다 위라고 믿고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이 우월의식이다. 왜 서열을 확인하려고 하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왜 불안하지? 그게 열등의식이다. 오만한 자는 불안한 자다. 그것은 원초적 분리불안이다. 집단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왕자와 공주는 밀려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공주를 중심으로 혹은 왕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기는 원래 왕자거나 공주다. 아기는 항상 지켜보는 시선들의 중앙에 있다. 가족들의 시선 안에서 아기는 편안하다. 그 시선을 잃으면 불안하다. 까꿍 하고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면 숨바꼭질 놀이다. 이것이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이다.


    강아지는 주인이 자신을 버리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아기들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의사결정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왜 내가 그것을 해야 하지 하고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왜 밥을 먹어야 하지? 왜 잠을 자야 하지? 왜 옷을 입어야 하지? 왜 친구를 사귀어야 하지? 왜 학교에 가야 하지? 그래야만 가족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켜보는 시선들의 중심으로 진입하려면 옷을 입고 신발을 신어야 한다. 어른들이 원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있었는데도 알아봐 주는 시선이 없으면 서운하다. 칭찬을 들어야 할 타이밍에 칭찬을 듣지 못한다면 허무하다. 반응이 있어야 한다. 고귀한 신분이 되어야 한다. 고귀한 신분은 늘 주목받고 칭찬받는 사람이다. 아기 때는 누구나 고귀한 신분이다. 그러나 다섯 살이 되면서 어색해지기 시작한다. 미운 일곱 살이 되면 난리가 난다. 그냥 단정한 자세로 앉아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 몫의 일을 해야 한다. 집단에 기여해야 한다.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어? 하고 누가 물으면 반드시 대통령이 될 테야라고 답해야 한다. 그래야 집단이 결속한다. 그 한마디로 밥값을 한 것이다. 실수로 만화방 주인이 되고 싶다는 둥 이딴 소리를 했다가는 공기가 살벌해진다. 일곱 살이면 눈치를 봐야 하는 거다.


    바둑을 둔다면 첫 번째 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두 번째부터는 편하다. 상대방이 두는 돌 근처에 두면 된다. 상대방을 따라가며 흉내바둑을 두어도 되고 반대쪽에 대칭시켜도 된다. 상대와 나의 관계에 의해 위치가 정해진다. 상대성의 세계다. 첫 번째 수는? 그 관계가 없다. 상대성이 없다. 절대성의 세계다. 그래서 족보다. 위치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부모와 자식의 위치는 정해져 있다. 족보가 있다. 자식이 엄마에게 오늘부터 내가 엄마할게 엄마는 내 자식이나 해. 이럴 수는 없다. 친구끼리는 내가 대장할게 너는 졸병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상대성이다. 친구와는 상대적이다. 부모와 자식의 서열은 절대성이다. 비가역적이다. 족보다. 우리가 찾는건 사람의 족보가 아닌 진리의 족보다. 일단 족보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특별해야 한다. 다섯 살 꼬마가 왕자를 알면 얼마나 알고 공주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아기가 봉건왕조 시대의 신분제도를 연구했을 리 없다. 그냥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것은 연결이다. 모든 연결에는 서열이 있다. 진행하는 방향성이 있다. 왕자와 공주의 특별함은 바둑의 첫 한 수와 같아서 어디를 두든 상관이 없다. 다들 내가 둔 위치를 보고 거기에 연동시켜 둔다. 다들 아기의 행동을 보고 거기에 연동시켜 행동한다. 바둑으로 말하면 정석이다. 정석은 상대성이 아닌 절대성의 세계다. 족보의 세계다. 에너지의 결이다. 자연스러움이 그 안에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연결구조가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낄 자리가 있다. 세상에 대해 발언할 수 있다. 의사결정구조는 에너지의 연결구조를 따라간다. 족보를 따라 정해진 수순대로 에너지가 연결될 때 자연스럽다. 의사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슈렉은 녹색 괴물 오우거가 아닌 백설공주가 되어야 한다.


    어른들은 다르다. 어린이는 절대성에 살고 어른은 상대성에 산다. 이미 게임은 시작되어 있다. 어른은 상대방이 둔 위치를 보고 자신이 둘 위치를 정하면 된다. 그 세계는 순수하지 않다. 타락해 있다. 아이는 순수하다. 아이는 아직 게임에 뛰어들지 않았다. 게임에 끼어들 자격을 묻는다. 니가 뭔데? 넌 꺼져! 너 여기 왜 왔어? 지구에 온 목적이 뭐니? 얼쩡대지 말고 저리 가! 곤란하다. 첫 한 수는 게임에 뛰어들 자격을 정한다. 그러려면 자격이 있어야 한다. 나는 특별한 존재여야 한다. 아이는 언제라도 바둑의 첫 한 점을 두는 마음자세다. 그것이 순수다.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내 행동을 결정하는게 아니다. 세상이라는 게임판에 선수로 뛰어들지 않았다. 그런데 내게 자격이 있을까? 나는 선수가 맞나? 링 위로 올라가도 되나? 남의 시합에 잘못 끼어들었다가 망신당하고 쫓겨나면 어쩌지? 아이는 공주여야 하고 왕자여야 한다. 공주와 왕자는 언제라도 게임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공주라면 아무 곳에나 두지 않는다. 반드시 그 자리라야 한다. 마땅하고 떳떳해야 한다. 운명의 바둑돌 한 알을 아무 데나 대충 둘 수는 없다. 이후 인생이 통째로 결정된다. 당신의 인생의 첫 바둑돌 한 점을 어디에 두었는가? 반드시 거기가 아니면 안 되는 절대 포지션이어야 한다. 첫 한 점의 좌표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룰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첫수를 손따라 두면 평생 손따라 둘 것이다. 첫수를 아무 데나 두면 평생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 것이다. 첫수를 상대의 반대편에 두면 평생 반대만 하다가 끝날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순수하니까.


    당신은 얼떨결에 태어난게 아니라 우주를 대표하여 특별히 태어났다. 의사결정을 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사건의 중심에서 온다. 대표성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첫 번째 발걸음은 온 우주를 대표하여 결정된다. 달에 도착한 암스트롱이 왼발을 내딛더라도 그러하다. 두 번째부터는 상관없다. 남들이 하는거 보고 적당히 맞춰가면 된다. 분위기에 편승하면 된다. 사람들이 철학입네 하며 이러쿵저러쿵 말들하지만 대개 상대가 이쪽으로 붙으면 나는 저쪽으로 붙겠다는 식이니 상대성의 세계다. 첫 번째 수는 아니고 많이 진행된 게임이다. 그런데 너는 초대받았는가? 왜 왔나? 너의 무대인가? 자격이 있나?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신의 의미는 당신이 어디에 두든 알파고는 바둑판 전체의 돌을 모두 연산하여 정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 귀퉁이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당신은 바둑판 전체를 대표하여 일 수를 가해야 한다. 361로 바둑판 안에서 외딴 구석은 없다. 에너지로 보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사건으로 보면 모두 긴밀하게 엮여 있다. 거미줄 안의 어느 위치에 붙더라도 거미줄 전체가 반응한다.


    특이점은 있다


    우리 솔직해지자. 인간은 누구나 특별해지고 싶어 한다. 다만 남들이 욕할까 봐 이러한 속내를 밝히지 못하는 거다. ‘난 특별해.’ 이러면 남들이 비웃는다. 유태인들만 꿋꿋하게 ‘우리는 특별해.’를 외치고 있다. 집시도 만만찮은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놀아야 하고 너희는 우리를 먹여 살려야 해. 왜? 우리는 특별하니까. 히틀러는 혼혈이라서 피가 더럽다는 이유로 집시를 학살했지만, 집시는 철저하게 집시와 결혼한다. 순종은 무엇이고 혼혈은 무엇인가? 특별한 건 무엇인가? 왕자는 무엇이고 공주는 무엇인가? 신은 무엇인가? 물질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화가 안 되는 것이다. 사건은 특이점에서 시작된다. 특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족보를 밝혀야 한다. 구조론은 에너지로 본다. 물질로 보면 왕자도 없고 공주도 없다. 그냥 다 같은 인간이다.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을 리 없다. 순종도 없고 잡종도 없다. 그러나 사건으로 보면 다르다. 특별한 것이 있다. 순종도 있고 잡종도 있다. 왕자도 있고 공주도 있다. 족보가 있다. 특이점이 있다. 사건의 시작점이 있다. 그 지점은 위태롭다. 그 지점은 연약하다. 초등학교 1학년의 첫 등교와 같다. 그때 타격받으면 평생을 타격받는다. 첫 등교에 앞서 예비소집이 있었다. 엄마 따라 학교에 갔는데 다들 아는 척하며 흑판에 글씨를 썼다. 나는 분필을 잡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엄마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그때 물러섰기 때문에 평생 뒷걸음질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상황은 보호받아야 한다. 왕자와 공주가 아니면 안 된다.


    우리는 사건 속의 존재다. 사건은 연동된다. 하나가 무수히 복제된다. 하나는 완전해야 한다. 복제의 원본이 불량하다면 평생 불량해진다. 첫 번째 단짝이 내게 못된 짓을 했다. 0점 받은 받아쓰기 시험을 백 점을 만들어 달라고 내게 무리한 요구를 했던 거다. 그때는 한 반에 80명이 있었다. 나는 안면인식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선생님이 날 알아보지 못할 걸로 믿었다. 왜냐하면 내가 급우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므로 선생님도 나를 모를 것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선생님은 나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내 이름까지 외고 있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80명의 이름과 얼굴을 어떻게 알지? 짝지의 시험지를 백 점으로 고쳐주었다가 선생님께 뺨을 맞았다. 이후 많은 것이 비틀어져 버렸다.


    물질이 아니라 사건이다. 물질로 보면 개나 사람이나 차이가 없지만 사건으로 보면 다르다. 인간은 진보하는 존재이나 개는 머물러 있는 존재다. 왕자는 있다. 공주는 있다. 그들은 특별하다. 무엇이 특별한가? 대표성이 특별하다. 하나의 사건이 많은 사건을 복제해 낸다. 그 원본은 특별하다. 복제되기 때문이다. 이후 수천수만의 운명이 그 하나에 연동되어 결정되기 때문이다. 왕자와 공주는 특별하다. 왕자는 타국의 공주와 혼인한다. 국가의 대표자로 역할 한다. 왕실간의 국제결혼이 끊어질 때 왕실은 망한다. 왕이 왕인 이유는 왕과 결혼하기 때문이다. 서민과 결혼한 이상 더 이상 왕가가 아니다. 사건에는 반드시 대표자가 있다. 대표자는 특별하다. 대표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복제되기 때문에 특별하다.


    축구는 11명이 한다. 11명의 선수가 한 번씩 공을 잡아본다. 그 순간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팀의 뜻대로 패스해야 한다. 팀이 원하는 것을 내가 대표하는 것이며 공을 잡은 순간 내 뜻이 아니라 11명의 뜻을 따라야 한다. 팀이 패스를 원하면 패스를 해야 하고 팀이 슛을 원하면 슛을 해야 한다. 그것이 대표성이다. 누구든 70억 인류의 대표자 마음을 가져야 한다. 70억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을 읽어야 한다.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신은 있고 기적은 있고 기도는 먹힌다. 신의 존재는 11명이 사건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이며 기적의 의미는 내 의지대로가 아니라 11명의 대표로 슛을 하라는 것이며 기도의 의미는 언제라도 동료의 패스를 받을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는 말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8.06.14 (01:28:22)

구조론은 모든 글들이 다 선언문이자 메타메세지. 메타메세지는 반드시 수신자가 있다. 받을 사람이 받는 것. 이해가 안되면 자신의 인식의 틀을 바꾸어서라도 메세지를 해독해야한다.

... 트럼프의 동영상도 김정은에게 보내는 메타메세지...
메타메세지는 수신자가 언제나 '예스'로 답할수밖에 없다. 서로 통해야 가능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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