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보강입니다.
이건 용감한 이야기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그게 깨는 이야기였다. 다들 신의 어린 양을 자처하며 복종을 맹세하는 판에 니체가 뜬금없이 신을 저격하여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다. 적어도 기독교문화권에서는 그게 말이 되었다. 권력담론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동양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공자가 들었다면 너털웃음을 터뜨렸겠지만 기독교문화권에서는 그게 진지한 이야기다. 신은 죽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자유를 얻었다. 자유 다음은 뭐지? 일의 다음 단계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 노예해방은 됐고 이제는 흑인이 백인을 지배할 차례인가? 진도를 나가줘야 한다. 니체도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해방시켜 주고 투표권 주면 그걸로 땡인가? 배상금 정산은 어쩌고? 두 당 백억 원은 물어줘야 할 판에 말이다. 기어코 일은 벌어졌다. 해결은 간단치 않다. 신은 죽었다며 말로 선언하고 끝내도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신에게 받아내야 할 빚이 많다. 인간이 신을 부려먹어야 한다. 국민이 왕을 섬기던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국민이 대통령을 부려먹는 시대다. 왕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끝내도 되는 판이 아니다. 집단의 결속에 대한 문제와 의사결정구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신의 일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다. 신은 권력이다. 권력을 조직하는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잘못된 권력을 해체했다면 서둘러 새로운 권력을 조직해야 한다. 그 권력은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 그냥 천부인권이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리고 내빼도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유권, 선점권, 특허권, 재산권을 비롯한 일체의 인권과 권리와 권력과 권한의 궁극적 근거문제에 대한 합당한 답을 줘야 한다. 그것이 철학가의 일이다.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원인측과 결과측이 있다. 원인측은 권한, 권리, 권력, 인권의 형태로 존재한다. 천부인권이라는 표현은 그 권력이 자연법칙에서 유도된다는 뜻이다. 권력의 근거를 계속 따져들면 물리학에 도달한다. 결과측은 사랑이니 행복이니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것이다. 원인측의 권리와 권력에 대해서는 니체가 권력의지를 말했을 뿐 그 전이나 그 후로나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다. 진지하게 달려드는 사람이 없다. 결과측의 자유나 행복이나 사랑이나 평등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개 대중들에게 아부하는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이쪽도 진지하게 달려드는 사람이 없다. 봉건시대에는 자유니 행복이니 사랑이니 평등이니 하는게 제법 말이 되었다. 자유가 없던 시절에는 자유가 소중했다. 평등이 없던 시절에는 평등이 명분이 된다. 최저임금제도 없고 의료보험도 없던 시절은 인간이 불행했다. 행복이라고 하면 다들 솔깃해 했다. 왜? 불행하니까. 지금은 혼자 사는 자연인도 행복해 죽겠다는 시절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까져서 사탕발림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세상이 바뀐 거다. 사랑도 시시하고 쾌락도 시큰둥하다. 뭐 아직도 그런데 넘어가는 찐따들이 더러 있지만 우리는 전위다. 멋쟁이는 다른 거다. 용감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근사해져야 한다. 그럴 때가 되었다. 진실을 말하자. 인간은 권력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권력이라고 하면 정치권력을 떠올릴 것이다. 게으른 철학자들이 좋은 어휘를 공급하지 못한 경우다. 남자에게는 매력이 있다. 권력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매력이다. 부족민의 폭력도 매력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금력도 매력이다. 가문이나 학벌이나 신분이 다 매력에 속한다. 매너와 교양과 인품도 매력을 구성한다. 나이가 벼슬인 한국에서는 연장자라는 이유만으로 권력을 가진다. 육체적 외모의 매력과 정신적 내면의 매력과 사회적 신분의 매력이 있다. 어린이는 귀여움 공격으로 어른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여자는 눈웃음으로 남자를 사로잡는다. 그것이 권력이다. 그래서? 사람은 곧 죽어도 탑 포지션에 서고 싶은 것이다. 인류의 의사결정 중심에 서고 싶은 것이다. 매력으로 그것은 가능하고 권력으로 그것은 가능하다. 팽팽하게 긴장된 만인의 지켜보는 시선들의 중심에 섰을 때 인간은 전율한다. 거기서 에너지를 얻는다. 호르몬은 폭발한다.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행복이니 사랑이니 쾌락이니 자유니 평등이니 정의니 도덕이니 이딴 소리들이 철학의 답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애초에 사건의 원인측이 아니라 결과측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아지에게 보상으로 주는 간식과 같다. 그걸로 개를 길들일 수 있겠으나 인간의 가슴을 뛰게 할 수는 없다. 찐따들의 자기위안이난 될 뿐 매력있는, 근사한, 센스있는 멋쟁이들은 그런 것들에 시큰둥하다. 그것으로 한 바탕 일대사건을 벌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라도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현악기의 현을 건드려서 소리를 내려고 하는 존재이며 그 현은 지켜보는 만인의 시선의 중심에 무대 위의 포커스로 있고 그것을 감히 건드리게 하는 것은 권력이며 구체적으로는 매력이다. 구조론의 언어로는 에너지다. 가능성과 현실성 사이에 방향전환으로 그것은 있다. 인간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남자는 재능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틀어버리고 어떤 여자는 미모로 사람들의 시선의 방향을 틀어버리고 어떤 관종은 스캔들로 시선을 틀어버리고 어떤 능력자는 우승컵으로 시선을 틀어버린다. 그럴 때 마음이 복제되고 전파된다. 한 사람의 가슴 속 울림이 만인에 가슴에 메아리친다. 원래 결속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