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의 침묵 달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중학생 때다. 하교길에 친구가 말을 걸어오는데 너네집이 어디냐고 묻는다. 우리집이 지금부터 두 시간을 걸어가야 도착한다는 말을 차마 못했다. 아침에는 버스로 등교했는데 하교는 차비를 아끼려고 8키로를 걸어가야 했던 것이다. 말하기 어렵다. ‘호모가 뭐에요?’ 어려운 질문이다. 말을 꺼내기도 어렵고 대답하기도 어렵다. ‘네 집이 어디야?’ ‘집이 마약소굴이에요.’ 하고 대답하기 어렵다.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아저씨는 무슨 일을 해요?’ ‘나는 이 거리에서 마약을 팔고 있지.’ 말을 할 수 없다. 말할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 꼬맹이 때 좋아하는 애가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말하려면 만나야 하고 만나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는데 비누가 없다. 양치질도 해야하는데 치약이 없다. 날 잡아서 가마솥에 물 끓이고 목욕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인간들과 말하고 살아야 한다는건 피곤한 일이다. 대화할 수 없다. 어떤 말을 할까? 우리집 방 천장에 쥐구멍이 있는데 말야. 가끔 쥐가 구멍으로 내려다 본다구. 눈이 마주치면 기분이 나쁘다구. 천장을 주먹으로 쿵쿵 쳐서 쥐를 쫓아낸다구. 쥐는 구멍으로 쥐똥흘리기 공격을 가해온다고. 좋아하는 여자애와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잖은가 말이다. 더욱 구조론을 말하기는 어렵다. 동생만 내게 말하기 공격을 당했다. 동생은 만만하니까. 동생이 구조론을 알아들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친구들과 말할 수 없다. 박정희 죽은 날 만세 불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전두환 개를 쳐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처단하지?'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없다. 유비는 됐고 관우와 장비가 필요해. 제갈량과 조자룡도 가세해 줘야지. 초딩때 좋아했던 삼국지 이야기를 나눌 만한 애가 없다. 누구에게 이 말을 해. 우리가 여기서 도원결의를 하자고. 장차 천하를 도모하는 거야.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해? 관우 비슷한 애도 없었고 장비 비슷한 애도 보이지 않았다. ‘너랑은 수준이 안 맞아 말이 안통해.’ 이 말을 차마 못했다. 사실이지 말하기 어렵다.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면박주는 말이 되기 다반사다. 말은 꼬리가 있다. 그꼬리를 물린다.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다음 단계가 있다. 추가질문이 들어오면 곤란해진다. 누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싫었다.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준 하나뿐인 친구가 나를 때렸다고는 선생님께 말 못해. 나를 만져준 사람은 너 뿐이라고는 말못해. 흑인의 곤란한 처지를 백인에게는 말 못해. 너를 좋아한다고는 말 못해. 구조론을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차라리 침묵이 낫다. 들을 귀 없는 자에게 귀를 만들어 달아주기 어렵다. 갖추어 준비된 사람의 출현을 기다릴 밖에. 사일런스. 신의 침묵. 만해. 님의 침묵. 님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복제한다. 복제의 자궁을 건설하기다. 달빛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 희미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것말이다. 보려고 할수록 볼 수 없는 그것 말이다. ### 신은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다. 스스로 구원한 자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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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자체의 가는 길이 드러나면,
심리구조가 복제되어
자기안에서 그림이 그려진다.
이심전심의 교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
그 자리에 나올 준비가 된 자들만 나오는 것처럼...
오랜 기다림은 그러니 침묵일 수밖에...
신은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다. 스스로 구원한 자를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