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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007 vote 0 2014.09.16 (21:02:37)

    나도 잘 쓰고 싶다


    “문장력은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바른 문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써 꾸준히 갈고 닦아야 비로소 자신만의 문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국어학자 허재영)


    <- 따분한 글이다. 인터넷은 피가 튀고 살이 뜯기는 실전의 장이다. SNS에서 이런 식으로 지루한 글을 쓰면 안 된다.


    어제 시사 리트윗에 올렸던 신문기사 제목이 ‘나도 잘 쓰고 싶다’였는데 검색해 보니 동명의 책이 나와 있더라. 위는 출판사 서평에서 발췌한 것이다. 요즘 SNS 탓에 글쓰기 붐이 일었다며 이런 책이 조명되는 모양이다.


    ‘자신감’이라니 뜬금없는 정신승리법이다. 이런 식의 추상적인 구호는 독자를 좌절하게 한다. 이건 글 쓰지 말라는 말과 같다. 당장 페북에 올려야 할 판인데 바른 문법 따지며 꾸준히 갈고 닦아서 언제 글 쓰냐고?


    초보자에게는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글쓰기 팁을 찔러줘야 한다. 5분 만에 글쓰기 실력이 늘어야 한다.


    글은 원래 쓰다 보면 느는 것이다. 문제는 ‘쓰다 보면’이다. 일단 써야 한다. 그런데 쓰지 못한다. 쓰지를 못하니 늘지가 않는다.


    그림 그리기와 같다. 일단 스케치가 되어야 한다. 스케치는 미술학원에서 가르쳐 주는 간단한 요령이 있다. 몇 가지 기초적인 테크닉을 익혀 일단 스케치가 되면 재미가 붙어 계속한다. 계속하면 실력 는다.


    ‘일단 읽어지는 글을 쓰자.’ <- 이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SNS라면 5초 안에 눈길을 끌어야 한다. 독자의 뇌를 흥분시켜야 한다. 뇌가 반응하는 구조가 있다. 급소를 짚어주면 된다.


    ###


    연역적 사유를 익히면 글을 잘 쓰게 된다. 연역적 사유는 모형을 쓰는 것이다. 그림을 그려도 먼저 스케치를 하고 색을 칠하듯이, 글쓰기도 먼저 형形을 잡아놓고 내용을 채우면 쉽다.


    ‘밥 로스’의 ‘참 쉽죠.’를 연상해도 좋다. 사실 어렵지 않다. 근본을 알아야 한다. 모든 예술의 근본은 긴장이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근본은 뇌를 흥분시키는 것이다. 그 방법은 대칭을 끌어내는 것이며 대칭에는 내용의 대칭도 있지만 형식의 대칭이 우선이다.


    내용의 대칭은 주인공과 악역을 선과 악의 구도로 대비시키는 것이고 형식상의 대칭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관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주인공과 악역의 갈등에 앞서 작가와 독자의 게임이 있다.


    글쓰기의 형形은 관점이다. 단지 관점을 바꾸기만 해도 재미있는 글이 된다. ‘어제 도둑을 맞았다.’나 ‘어제 밤손님의 방문을 받았다.’나 내용상 같은 말이지만 역시 후자가 더 재치있는 글쓰기다.


    주객전도를 일으켜 포지션을 바꾼 것이다. 도둑과 자신의 관계를 바꿈으로써 독자와 작가의 관계를 바꾼 것이다. 친구끼리 대화를 해도 ‘어제 밤손님의 방문을 받았다’는 식의 표현은 친한 사이에나 통하는 말이다. 벌써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어깨동무한 관계가 된다.


    찻집에 갔다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맞은 편에 앉아서 말하는 관계와 옆자리에 앉아 팔꿈치를 부딪혀가며 말하는 관계가 있다. 어느 쪽이 더 친밀한가?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맞은편에서 옆자리로 이동시켜서 친밀해졌다.


    독자의 뇌가 반응하는 지점은 어떤 기술된 구체적 사실이 아니라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하는 주종관계다. 그 관계가 잘못되면 어색하고 민망해진다. 반면 관계가 잘 정립되면 당당하고 의연해진다. 거기서 뇌가 흥분한다.


    ‘사람이 죽었다.’고 써도 독자는 심드렁하지만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고 쓰면 독자는 혹시나 자기도 공범이 되는게 아닌가 싶어 바짝 긴장한다. 이는 독자를 판단에 가담시키는 수법이다. 이런 간단한 테크닉이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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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의 기본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비틀어 독자의 뇌를 간질이는 것이다. 관계를 뒤집은 다음 한 번 더 뒤집는다면 더 좋은 글이 된다. 이를 또다시 뒤집으면 더욱 좋은 글이 된다.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관점은 최대 네 번까지 뒤집을 수 있다. 꼰 관계를 또 꼬니 짜릿짜릿 하다.


    관점은 주체와 대상이 대면하는 방식이다. 인사를 해도 우연히 마주치는 방법이 있고, 중매인을 세우는 소개팅이 있고, 미리 사절을 보내서 의전을 챙기는 정상회담절차가 있듯이 관점은 다섯가지가 있다.


    이를 터특하여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면 글을 무진장 쓸수 있다. 글은 일단 쓸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라면 쭉쭉 써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왕년에는 백일장에서 상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글과는 담을 쌓은 사람인데 방법을 터득한 이후 이제 막 쓰는건 무한정 쓸 수 있다. 포드 시스템으로 글을 대량생산한다.


    보통은 수사법을 구사한다. 어떤 사실을 이리저리 비틀어 다양하게 연출하는 것이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비틀면 글은 더욱 풍부해진다. 여기다 곱빼기로 작가와 독자의 관계까지 비틀어 3차원으로 연출하면 제곱에 제곱한 셈으로 글은 풍부해진다. 이것만으로 한 없이 쓸 수 있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여름방학 끝나는 날에 한달 치 일기를 몰아쓰려면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초딩일기의 형식은 단순하다. 1. 내가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 2. 엄마한테 들켜서 꾸지람을 맞고 ≫ 3. 반성하고 다짐하는 3단계 구조다.


    “까불다가 접시를 깼다. 숨겨놓은 접시를 엄마한테 들켜서 혼났다. 조심하지 않으면 깨지는 수가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앞으로는 함부로 까불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전형적인 초딩일기 패턴이다. 아무 생각 없이 써도 무의식이 요구하는 형이 있다. 일기에는 초딩 특유의 어떤 강박증이 반영되어 형을 이루고 있다. 그 형을 깨야 패턴을 들키지 않고 한달치 일기를 몰아쓸 수 있다.


    ###


    잘 다듬어진 미문을 쓰려면 옛날에 신문사에서 많이 했던 주부대상 문예강좌 따위 문학수업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런 거창한 것을 떠나서 SNS 활동에 필요한 ‘먹히는 글쓰기’는 구조론이 정답이다.


    먹히는 글은 인상주의다. 인상주의는 문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글을 풍요롭게 한다. 인상주의 방법은 대칭을 쓰는 것이다. 대칭은 문장 안에 있다. 주어와 동사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걸 비틀면 된다.


    그런데 원래 한국어 어순이 따분한 구조다. 한국어는 동사가 맨 뒤에 오는데 사실은 이게 지루한 거다. 동사가 결론인데 결론을 뒤로 빼고 말을 빙빙 돌린다. 그러므로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한국어 어순을 역으로 찌르고 들어가야 활기찬 문장이 된다.


    ◎ 길을 가다가 살얼음이 낀 빙판에 미끄러졌다.
    ◎ 미끄러져도 그렇게 오지게 미끄러질 수가 없었다. 살얼음 때문이었다.


    ‘미끄러졌다’는 결론을 앞세움으로써 독자들의 뇌가 반응하게 한다. 이 수법으로 5초 안에 독자를 집중시킬 수 있다. 길을 갔는지 살얼음이 끼었는지는 사실 독자의 관심 밖이다. 그거 누가 물어봤냐고.


    독자들이 ‘그거 꼬시다’ 하고 반갑게 여기는 것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쫄딱 미끄러졌다.’는 거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주어부를 뒤로 빼고 동사부를 전진시켜야 한다.


    이러한 순서바꾸기를 글쓰기의 기본으로 놓고 이를 다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 먼저 관점을 알아야 한다. 그림이면 소실점이 있듯이 형形은 관점에서 나온다.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느냐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 비틀기다. 주관과 객관이 알려져 있지만 최대 다섯 가지로 변주할 수 있다. 복잡하므로 일단 네 가지만 소개하겠다.


    ◎ 초딩법 - 나는 어제 풋사과를 먹고 배탈이 났다.
    ◎ 중딩법 - 나로 하여금 배탈이 나게 한 것은 어제 먹은 풋사과였다.
    ◎ 고딩법 - 풋사과를 먹으면 으레 배탈이 나기 마련이다. 어제 나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 모형법 - 그대가 폭풍설사를 아는가? 풋사과 한 번 잘못 먹었다가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했다.


    초딩법은 그냥 자기 머리 속에 들어있는 정보를 그대로 꺼집어낸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순서에 맞추어 배치한다. 이건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지루한 글이다. 자기 수첩에다 적어놓을 일은 이렇게 써도 된다.


    중딩법은 주체와 대상을 뒤집어놓았다. 포지션 교체다. 이는 독자를 의식한 글쓰기다. ‘배탈이 났다’는 결론을 앞에 배치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기초다. 물론 모든 글을 이렇게 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SNS에서 주목을 끌려면 순서를 뒤집고 봐야 한다. 그것이 따분해 하는 독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음모론 따위 헛소리를 늘어놓는 글은 긴 스크롤의 압박을 받게 된다. 끝까지 읽어봐야 무슨 소리 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본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눈치보느라고 본론을 뒤에 놓는다.


    암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구라치는 글이 있었다. 굉장히 긴 스크롤의 압박을 받고 나서야 어차피 암은 치료해도 효과가 없으니까 ‘긍정적인 사고’로 기적을 바래자는 본론을 만나게 된다. 뭔소린가 해서 본론 찾느라고 한 참을 낭비했다.


    말도 안 되는 무한동력을 주장하거나, 중국 땅이 우리땅이라거나 등의 헛소리 하는 글은 대개 이 규칙을 따른다. 진화론을 검색하면 창조론 주장이 다수 검색되는데 90퍼센트를 읽을때까지 창조론 주장임을 눈치채지 못한다. 뜬금없이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뭐야 이거! 속았잖아.’


    가장 중요한 자기 주장을 왜 맨 뒤에 감추냐고? 비겁한 글쓰기다. 유머를 빙자한 광고글도 그렇다.


    중딩법은 한국어 문법을 뒤집어 결론을 앞세움으로써 독자를 배려하는 것이며 이야말로 글쓰기의 기본이다. 초장부터 탁 털어놓고 가야 한다. 필자가 초장에 허재영의 글을 밑밥으로 깔아놓은 것도 그렇다. 결론부터 털고 간다. 도무지 이 양반이 뭔 소리를 하려는건지 감을 잡을 수 있게 센 걸로 때려주는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요즘 극장영화가 초반 5분에 승부하듯이 초반부터 세게 가는 거다.


    고딩법은 객관적인 제 3자의 시점에서 비교판단하는 글이다. 이때의 요령은 판단근거를 제시하고 확실한 판단을 해주는 것이다. ‘문장력은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하는 식으로 판단이 불가능한 추상적 단어의 나열은 곤란하다.


    마지막 모형법은 글쓰기의 최고단계다. 이는 어떤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 독립적인 완성형을 들이대는 것이다.


    ‘나는 키가 작다’거나 혹은 ‘남보다 키가 크다’거나 하는 식으로 애매하게 말하면 독자 입장에서 답답하다. 초장부터 ‘키로 가면 최홍만이요. 미모로 가면 김태희요.’ 하고 대략적인 견적을 내줘야 한다.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주기다.


    ‘산으로 치면 에베레스트요 바다로 치면 태평양이요’ 하고 큰 틀을 제시하여 사유의 기준을 찍어준다. 필자가 진리, 역사, 문명, 진보, 완전성을 언급하는 것도 그렇다. 원초적인 방향판단을 해준다. 근데 이건 좀 훈련해야 한다.


    먼저 초딩법으로 써놓고 중딩법, 고딩법, 모형법으로 한번씩 바꾼 다음 다시 이를 역순으로 배치하면 좋은 글이 나와준다. 처음부터 모형법으로 가려고 하면 잘 안 된다. 관점을 넓히는 것은 생선을 뒤집듯이 계속 뒤집는 것이다. 대칭을 따라간다. 초딩법으로 써놓고 뒤집다보면 높은 관점이 얻어진다.


    “그대가 폭풍설사를 아는가?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했다. 여름에 풋과일을 먹으면 으레 배탈이 나기 마련이다. 어제 나의 경우가 그랬다. 나로 하여금 배탈이 나게 한 것은 친구가 무심코 건네준 한 알의 풋사과였다. 어제 저녁에 풋사과 먹다가 배탈나서 개고생했다.”


    먼저 초딩≫중딩≫고딩≫모형으로 썼다가 다시 이를 역순으로 모아놓고 중복된 내용을 제거하면 된다. 필자의 글에 오타가 많은건 이런 식으로 순서 바꾸다가 나는 것이다. 이미 다 쓴 글을 주무르니 집중력이 떨어졌다.


    ###


    대부분 읽어지지 않는게 문제다. 읽어지지 않는 이유는 걸림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 독자의 대칭구도 자체가 걸림이다. 그러므로 좋은 글은 방해자인 작가가 빠져주는 글이다. 관측자의 포지션을 바꾸어야 한다. 거기서 가장 큰 긴장이 얻어진다. 작가가 빠져주는 방법으로 독자와의 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똥 밟았다.’ 이렇게 쓰면 안 된다. ‘발밑에서 무언가 철퍼덕하고 달려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똥이었다.’ 똥이 주인공이 되고 작가는 뒤로 빠진다. 초딩법에서 중딩법, 고딩법, 모형법으로 올라갈수록 작가의 입장이 뒤로 빠진다. 자신의 사적인 경험담이 아니라 보다 객관화 되고 널리 체험을 공유하는 글이다.


[레벨:11]벼랑

2014.09.16 (21:52:25)

아주 유익했습니다. 글쓰기 방법을 새롭게 생각하게됐습니다...구조론적 글쓰기를 단행본으로 내면 어떨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9.16 (21:56:53)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레벨:4]참바다

2014.09.16 (22:36:15)

동렬선생님 감사합니다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4.09.17 (00:09:33)

예전에, 토플 공부할 적에, 구조부터 가르치더이다. 그리고, 그게 되니, 문법은 넘어갔구, 독해는, 구조로 건물짓듯이 되더이다.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4.09.17 (02:52:12)

love you because you are pretty

네가 이쁘기에 널 사랑한다.


제길슨, 여자 다 도망 가겄네...


[레벨:11]큰바위

2014.09.17 (08:09:11)

쓰면 써진다. 

[레벨:3]파워구조

2014.09.17 (09:11:46)

글에 대한 저의 세번째 눈이 떠집니다. 오늘.
선생님 가르침 덕분입니다*.*.*
[레벨:6]반짝

2017.01.01 (16:04:12)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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