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진화한다. 진화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도 진화하고 우주도 진화하고 물질도 진화한다. 그냥 제자리에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환경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외력이 작용한다. 관계를 맺게 된다. 결정하지 않으면 결정당한다. 결정하면 살고 결정당하면 죽는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외력의 작용에 맞서 에너지를 처리하는 형태로 결정해온 것이다. 그 결과는 진화로 나타난다. 진화는 방향이 있다. 생물의 진화는 순전히 우연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 진화생물학계의 입장이다. 틀렸다. 우주 안에 어떤 둘이 공존하여 있으면 반드시 방향성이 생긴다. 중력과 같다. 우주 안의 모든 물체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결국 서로 달라붙게 된다. 혹은 타원궤도를 회전하면서 원심력의 이유로 중력의 힘이 상쇄되어 끌려가지 않더라도 그 공간에 존재하는 한 중력의 영향은 분명히 있다. 어떤 하나가 있으면 우연이지만 둘이 있으면 서로 멀어지거나 아니면 가까워지거나다. 둘이 있으면 둘 사이에 관계가 있으므로 이미 셋이다. 둘 사이에 상호작용이 있으므로 넷이다. 그 변화된 결과가 있으므로 다섯이다. 둘이 하나를 공유하므로 토대의 공유에 의해 일정한 방향성이 생겨난다. 마주 보고 대립된 둘이 공유하는 토대의 결정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이는 엔트로피 법칙으로 설명된다. 만유는 궁극적으로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이며 엔트로피는 에너지의 속성이므로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자연계에 없다. 환경이 있고 생물이 있고 둘의 상호작용이 있으므로 생물의 진화 역시 뚜렷한 방향성이 있다. 그 방향은 이기는 방향이다. 정확히는 환경의 작용에 맞서 자체 의사결정권을 획득하는 방향이다. 의사결정권을 획득하지 못하면 즉 환경의 에너지 작용을 극복 못 하면 죽게 된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외력의 작용을 극복했다는 의미다. 들어오는 에너지를 쳐냈다는 말이다. 이는 물질이라도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작용했을 때 반작용이 있어야 그것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거기에 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다. 암흑물질이라도 분명히 반응은 있다. 인간이 알아내지 못했을 뿐. 외력의 작용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생물은 진화해 온 것이다. 진화는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우위에 서 온 결과다. 우위에 서지 못하는 개체는 죽는다. 환경과의 대결게임에서 이기는 유전자만 남아있다. 생물이 후손에게 유전자를 남긴다는 의도나 목적 따위는 없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늘리며 관계를 긴밀히 하는 방향과 환경과의 대결에서 보다 우위에 섬으로써 부단히 게임에 이겨서 개체가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생태계는 전개한다. 이는 인간사회의 진보법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진보는 도덕이나 윤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선악의 분별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중이 평판권력을 동원하여 정치권력을 제압하려는 즉 대중의 권력의지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것은 진보의 한 가지 요소일 뿐이다. 인간사회의 진화도 역시 개체가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진보한다. 엘리트 진보의 실패가 여기서 일어난다. 엘리트 진보는 대중의 의사결정권을 빼앗는 대신 도덕적으로 선한 목적과 경제적 이익을 제안한다. 대중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주면 무식한 대중들이 이명박근혜를 찍는 잘못된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엘리트 진보는 결정적으로 배반했다. 대중들의 의사결정권을 빼앗는 행동은 보수다. 비록 대중이 어리석어 자기들에게 제공된 의사결정권을 독재자에게 위임해 버린다 해도 권력을 줘야 한다. 대신 대중을 통제하는 기술을 발달시켜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대중의 권력을 빼앗으면 안 된다. 그게 바로 보수이고 퇴보이다. 대중이 잘못된 결정을 한다면 될 때까지 교양하여 수준을 높여야 한다. 진보의 방향은 이기는 방향이다. 여기서 역설이 있다. 단기전을 이기면 장기전을 진다. 부분을 이기면 전체를 진다. 첫 게임을 이기면 작전을 들켜 다음 게임을 진다. 이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작은 게임을 지고 큰 게임을 이겨야 한다. 무조건 이기려고만 하면 안 되고 잡을 게임을 잡고 버릴 게임을 버려야 한다. 생물 역시 이와 같은 전략적 선택을 한다. 세력전략과 생존전략이 그것이다. 환경이 양호할 때는 세력전략을 선택하여 유전자를 남기기보다 일단 많은 영토를 지배하려고 한다. 수컷을 낳는게 그러하다. 수컷은 많을 이유가 없다. 유전자를 남기는게 목적이라면 일부다처제가 맞다. 수컷을 낳는 것은 영토확장의 목적 때문이다. 혹은 여성의 폐경이 그러하다. 자손을 낳기보다 가족을 돌보려고 한다. 그게 세력확장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환경이 나쁘면 개체는 생존전략을 선택한다. 영토의 지배를 포기하고 어떻게든 많은 자손을 퍼뜨려 하나라도 더 살아남게 하려고 한다. 생물이든 인간이든 환경과의 관계에 따른 전략적 선택을 하므로 피상적인 관찰로는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뚜렷한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이기는 방향이다. 의사결정권을 획득하는 방향이다. 에너지에 중간은 없다. 에너지는 흡수하여 계를 형성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의사결정하지 못하면 의사결정당한다. 거기에 타협은 없다. 생태계에 중도는 없다. 진보 아니면 곧 퇴보다. 살지 않으면 죽는다. 결정하면 살고 결정을 당하면 죽는다. 강물은 지류가 본류에 흡수되면 죽는다. 물방울은 큰 방울이 작은 방울을 흡수한다. 행성은 큰 별이 작은 별을 잡아먹는다. 거기서 살아남은 것들은 에너지 작용에 대응하여 능동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한 개체들이다. 우리가 진화의 방향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적절한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흩어지면 방향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확산이라는 방향이 있다. 기체들이 브라운운동을 하며 무질서하게 움직여댄다. 아니다. 사실은 확산해서 균일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에너지는 언제라도 균일한 계를 만드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한 가지 확실한 방향이 있다. 엔트로피가 그것이다. 시간에 방향이 있기 때문에 방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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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