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앞의 잣나무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715 vote 1 2008.12.29 (13:03:36)

아침마다 라디오에서

이런 주절거림을 듣는다오.



###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


(노랑제비꽃 - 반칠환)



###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라는 영화가 상영중이었던가 본데

영화평들을 읽어보았더니 대략

'이해하지 못하겠다'

는 말이 다수 씌어져 있었소.


“왜 느끼지 못하는가?”


하고 쏘아주고 싶었으나

내가 그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참았소.



위 노랑제비꽃 원문을 검색하다가


우리가 살아 가기 위해선

무엇 하나라도 없어선 안되며,

하나 하나가 다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이다.

몇줄의 글로 너무나 크고 진한 감동을 주는 시 이다.


라는 해설을 읽었소.

이런 군더더기가 밉소.


“왜 느끼지 못하는가?”


이 시는 완전의 경지와

그 완전을 통한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소.


그건 느끼는 것이오.

느끼지 못하면 소통은 실패라오.



메시지를 이해하려 하는 사람은

머리 속으로 그리는 습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소.


지구라는 화분에

노랑제비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지 않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니 하는 해설이 붙소.




일찍이 조주는

끽다거(喫茶去) 한마디로 끝냈소.

 


어떤 책을 보았더니 이렇게 씌어 있었소.


조주(趙州)가 절에 새로온 승려에게 물었다.

"내가 전에 자네를 본 일이 있는가?"

"아니오."

"차나 한 잔 들게."


조주는 곁에 있는 다른 승려에게 물었다.

"전에 내가 여기서 자네를 본 적이 있는가?"

"네."

"차나 한 잔 들게."


그 절의 주지가 물었다.

"스님은 왜 전에 본 사람이나 처음 본 사람이나 똑같이 차를 들라는게요?"

"자네는 아직 여기에 있는가?"

"네."

"차나 한 잔 들게."


여기’는 깨달음의 경지다. 여기에 와 본 적이 없다는 말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적 없다는 뜻이니 더 열심히 수행하라는 의미에서 차나 한잔 들게 하고 채찍질을 가한다. 와 본 적 있다는 사람은 조주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으니 역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 차 한잔을 권하여 채찍질 한다. 그 의미를 질문하는 주지 역시 깨닫지 못했으니 차 한잔을 권하여 가열찬 수행을 주문한다. 차나 한잔 들게는 열심히 수행하라는 가르침이다.



문제는 오늘날 사찰에서

스님들이 대략 이렇게 가르치고 있더라는 말이오.


불립문자는 언어를 넘어섬인데

그들은 숨어서 열심히 언어를 제조하고 있었던 것이오.

 

'자기들 끼리만 통하는 비밀언어'

천만에!


깨달음은 언어를 버리고 메시지를 버리고

느낌을 얻는 것이오.

 

조주는 차 한잔을 드는 방법으로

그 상황을 완성시킨 것이오.


그 장면 그대로 찰칵 찍어서 액자에 담아둘 일.

지금 이 순간을 완성시키지 못하면 실패요.


 


왜 느끼지 못하는가?



###


세상에는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완성과 미완성이다.


완성된 것은 완성된 것과 소통한다.


한 송이 노랑제비꽃은 완성되어 있다.

완성된 시인은 완성된 노랑제비꽃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소통하기 위해서.


미완성된 사람은 지나쳐 간다.

미완성의 바쁜 업무를 끝마치기 위해서.


조주는 권한다.

‘차 한잔 들게나.’


그 방법으로 완성시킨다.

그 자리에서.


완성된 사람은 손님과 더불어 차 한잔을 나눈다.

그 방법으로 소통한다.


조주의 마음과.


미완성된 사람은 구한다.

거기서 메시지를 구하고 가르침을 구한다.


느끼지 못한다면 미완성이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 왜 느끼지 못하는가? 김동렬 2008-12-29 6715
7 뜰앞의 잣나무 1 김동렬 2008-12-29 6199
6 뜰앞의 잣나무 2 김동렬 2008-12-29 5551
5 뜰앞의 잣나무 3 김동렬 2008-12-29 5532
4 뜰앞의 잣나무 4 김동렬 2008-12-29 5308
3 뜰앞의 잣나무 5 김동렬 2008-12-29 5386
2 뜰앞의 잣나무 6 김동렬 2008-12-29 4782
1 뜰앞의 잣나무 7 김동렬 2008-12-29 5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