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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470 vote 0 2014.05.26 (18:15:22)

 

    관점의 문제


    ‘깨닫다’는 동사다. 안다면 명사로 표현해야 한다. ‘깨닫다’에서 ‘깨달음’으로 어설픈 명사화를 시도하지만 실패다. ‘동적균형’은 깨달음을 명사로 나타낸 말이다. 왜 명사여야 하는가? 관점의 문제 때문이다.


    움직임의 관측은 역설이 작용한다. 동사로 나타낸다면 관측된 데이터다. 이는 존재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 비친 모습이다. 존재는 존재의 논리가 있다. 존재 자신의 논리로 설명되어야 한다.


    ◎ 관점의 문제 - 존재는 존재 그 자체의 논리로 설명되어야 한다.


    존재 자신이 주어라야 하고 자체적으로 동사를 거느려야 한다. 내부에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갖춘 독립적 의사결정단위라야 한다.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관측자의 입장이 문제로 된 것이 역설이다.


    역설은 자기 논리로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수레를 끄는 주체가 소냐 말이냐에 따라 수레가 달리는 속도가 달린다면 수레 자신의 논리는 없는 것이다. 수레 내부에 엔진이 없기 때문이다.


    동적균형에 이르지 못한 대상의 관측의 경우 관측자의 위치가 중요하게 되고 관점의 개입이 역설을 낳는다. 깨달음은 역설의 모순을 타파한다. 한 번 더 역설하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역설의 역설이다.


    달리는 말은 움직인다. 그런데 사람이 그 말을 타고 있다면? 움직이나 움직이지 않는다. 자동차는 움직인다.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있으면? 움직이나 움직이지 않는다. 곧 동적균형이다. 이중의 역설이다.


    움직이는 것은 말, 움직이지 않는 것은 말과 기수의 관계다. 움직이는 것은 자동차, 움직이지 않는 것은 자동차와 운전자의 관계다. 오류는 관측대상의 움직임 때문이고 관측자와의 관계파악으로 해명된다.


    움직임이 역설을 낳는다. 움직임으로 움직임을 제압하는 이중의 역설이 동적균형이다. 자체의 엔진을 가지고 기세를 타고 흐름을 타고 함께 가는 것이다. 깨달음은 관점의 깨달음이며 동적균형이 정답이다.


    평강공주는 왜 바보 온달을 선택했을까? 온달을 통제할 의도 때문이다. 여론조사에는 왜 안철수의 지지율이 높게 나타날까? 안철수를 바보 온달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바보 노무현의 이미지와 같다.


    말 잘 듣는 바보 안철수를 가르쳐 온달장군으로 키워보려고 한 것이다. 유권자가 안철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거꾸로 공주를 통제하려 한다. 이 놈이 말을 안 듣는 거다.


    좋은 것을 두고 나쁜 것을 선택한다면 그것이 역설이다. 나쁜 것을 가르쳐 좋은 것으로 바꾼다면 이는 이중의 역설이다. 당장의 이득보다 장기전의 주도권을 선택한다. 내 안에 엔진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을 고정된 정의 포지션에 두면 평강공주는 온달을 가르칠 수 없다. 자신을 움직이는 동의 포지션에 둘 때 평강공주는 온달을 가르칠 수 있다. 무엇인가? 안철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정의 포지션이다.


    노무현은 국민과 유연하게 소통하는 동의 포지션이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반대 포지션이다. 국민은 바보 안철수를 가르쳐 보려 했지만 그는 고착된 정의 포지션이라 도무지 교육되지 않는다.


    사실의 관측은 고정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며, 역설은 대상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고, 동적균형은 둘 사이에서 토대의 공유를 본다. 토대의 공유가 없으면 공주도 온달을 가르칠 수 없다. 곧 주도권이다.


    토대를 공유하되 자신이 권한을 선점해야 한다. 자신이 설계한 게임에 상대방을 끌어들여야 한다. 이는 평강공주의 작전이다. 둘은 같은 차를 타야 하며 핸들은 내가 잡아야 한다. 그것이 동적균형이다.


    해가 지구를 돈다면 인간의 입장에서 본 관측이다. 여기서 입장의 문제가 제기된다. ‘해가 지구를 돈다’는 진술에는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관계가 적시되어 있지 않다. 일일이 따지려면 번거롭기 때문이다.


    엄밀한 진술에는 반드시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관계부터 밝혀야 한다. 누구편 입장에서 보았는지다. 보통은 이 부분을 생략한다. 해가 지구를 도는지, 지구가 해를 도는지 사실여부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학교에서 이 부분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무엇을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깨달음의 문제가 교과과정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다. 왜 이걸 대충 넘어가지?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 자연은 에너지가, 사회는 권한이, 인간은 존엄이 관계를 정한다.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관계를 정하는 것은 자연에서 에너지고, 사회에서는 권한이며, 인간에게서는 존엄이다. 태양이 지구를 돌거나 지구가 태양을 돌거나 간에 둘 다 동사로 표현된다. 아직 아는게 아니다.


    에너지의 출처를 밝혀야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도 아니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도 아니고, 공간이 휘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동사로 표현되고 있다면 가짜다.


    실제로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지점을 찍어줘야 한다. 결과측의 보고가 아니라 원인측의 설명이어야 한다. 관측자인 인간의 입장을 배척하고 존재 자신의 논리로 설명해야 한다. 존재는 존재의 논리가 있다.


    쟁반 위에 와인잔 9개가 있는데 웨이터가 그 쟁반을 손에 들고 걸어가고 있다면? 웨이터의 손과 쟁반이 만나는 한 점이 있다. 쟁반에 놓인 9개의 와인잔은 그 한 점을 공유한다. 토대의 공유가 성립한다.


    중요한 것은 그 지점이 하나의 작은 점이라는 거다. 동의 상태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한 점을 공유한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게 아니라, 공간이 휘어진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계의 한 점을 공유하는 것이다.


    지구는 태양주변의 원형궤도에 공전형태로 머무르는 것이며 그 궤도를 이탈하는 즉시 그 한 점을 놓친다. 그 경우 태양계 전체의 에너지 밸런스가 깨진다. 그 이유는 태양계가 움직여가기 때문이다.


    ◎ 동적균형 상태에서 모든 구성원은 한 점을 공유한다.


    물동이를 이고 걸어가는 사람은 머리에 올려진 동이가 약간 움직여야 안정된다. 움직이지 않으면 물동이와 정수리가 만나는 지점이 점이 아니라 면이 된다. 그 경우 중심을 잃고 물동이는 추락한다.


    웨이터가 와인잔이 채워진 쟁반을 나를 때는 한 손으로 날라야 한다. 두 손으로 나르면 동적균형을 이루는 일점이 사라지므로 와인이 쏟아진다. 바게쓰에 물을 담아 운반할 때 한손으로 들어야 한다.


    바게쓰가 무거워서 두 손으로 들다가 물을 엎지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이 강물에 서 있을 때 한 다리로 서는 이유는 두 다리로 서면 넘어지기 때문이다. 목재를 연결할 때 두 번 연결하면 부러진다.


    서로가 지렛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리가 셋인 의자가 다리가 넷인 의자보다 더 튼튼한 데도 이유가 있다. 다리가 셋이면 다리 둘이 대칭을 이룬 상태에서 나머지 하나가 그 일점을 이루기 때문이다.


    동의 상태는 계를 일의적으로 통제하는 일점을 필요로 한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진짜 이유는 태양계가 움직이며 동적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며, 균형을 이루는 일점의 성립에 실패하면 깨지기 때문이다.


    달리는 자전거는 바퀴가 돌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자세가 안정되듯이 지구가 태양을 돌기 때문에 태양계의 동적균형상태가 안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의 인식이 없는 피상적인 인식은 가짜다.


    일반적인 관측은 고정된 관측자가 고정된 사물을 본다. 역설은 고정된 관측자가 움직이는 대상을 본다. 동적균형은 움직이는 관측자와 움직이는 관측대상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는 토대의 공유를 본다.


    관측자는 언제라도 자신을 동적균형 상태에 두어야 한다. 자신의 포지션을 동으로 잡고, 자신의 동적균형과 관측대상을 비교해서 존재의 층위를 판단해야 한다. 에너지의 작용측인지 수용측인지 본다.


    중요한 점은 언제라도 토대의 공유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존재하여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남녀가 밀당을 한다면 보나마나 뭔가 섬씽이 있는 거다.


    박근혜와 이명박 사이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무언가 있는 거다. 안대희가 그 둘 사이에서 공유하는 토대를 잘라내고 이명박을 잡아넣어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올라설 수 있을지는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제법 선문답을 늘어놓으며 아는 척을 한다면 그 사람의 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봐서 단번에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자신을 동적균형에 놓는지 그렇지 않은지만을 간파하면 된다.


    숭산은 상대방의 카드를 읽고 자기 카드를 던지므로 내부에 엔진이 없다. 에너지가 없다. 성철은 상대방의 카드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카드를 던지므로 내부에 에너지가 있다. 자기 계획이 있다.


    숭산이 헛소리를 늘어놓으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닥쳐!” 진짜라면 반드시 주고받는 문답 바깥에서 에너지를 조달한다. 문답은 그냥 하는척 하는 거다. 문제 안에는 문제가 없고 답 안에는 답이 없다.


   


[레벨:6]sus4

2014.05.26 (20:26:46)

1. 깨달음이 어려운 이유는 모든 관측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관측자와 대상과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움직임으로 대상의 움직임을 상쇄하여 불가피한 관측의 오류를 소거해야 한다. 


2. 깨달음은 동적 균형이다. 동적균형은 주고받는 것이다. 영향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공유하는 토대가 있어야 한다. 물과 기름같이 완전히 성질이 다르다면 이 둘은 반응하지 않는다. 같은 차를 타되 포지션은 달라야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사건에 개입할 수 있다.


3. 동적균형 상태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한 점을 공유한다. 그것은 모든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그 점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언제나 존재한다.


### 칼럼 인용, 나름의 요약.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5.26 (20:50:53)

우리의 일상어는 매우 원시적인 언어입니다.

특히 경상도 촌놈들이 쓰는 사투리는 무식하기가 하늘을 찌르는데 


"있잖아요."도 아니고 "안 있나?" <- 안 있기는 뭐가 안 있어? 미쳤구만. 

"아니오."도 아니고 "으은제?" <- 왜 물음표야? 

"맞다."도 아니고 "맞다 아이가?" <- 거기 왜 물음표가 들어가?


경상도 무식어는 상대방에게 공을 토스하는 핑퐁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건 숫제 하나의 문장을 만들지도 못하는 원시적인 언어라 하겠는데


자신이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망설이며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거죠. 

무조건 물음표를 붙여 따지는 식으로 몰아붙이기식 말하기를 쓰기 때문에 


서울사람이 경상도 사람의 대화를 엿들으면 싸움난줄 아는 거죠.

이런 식으로 수동적, 소극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일베충이나 되는 거죠. 


자신이 어떤 나쁜 관습에 빠져 있는지 깨닫고 거기서 헤쳐나와야 합니다.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지 알아채야 합니다. 


관측이 한계가 있는게 아니라 관측회피죠.

리더의 언어가 아니라 노예의 언어입니다.



1.jpg


하노? 뭐라카노? 쓰노?의 노에는 물음표가 붙어 있습니다.

이유없이 물음표를 붙이는게 경상도식.


첨부
프로필 이미지 [레벨:11]까뮈

2014.05.27 (02:14:37)

저의 말 스타일은 먼저 상대방에게 결론을 던져놓고 풀어 놓습니다.(믈론 관찰 후에 던짐)


" 저 놈 또라이 아냐?" 그리고 이러 이러 하니 그렇지 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어떤이는 맞장구치고 어떤이는 대꾸 안하고 어떤이는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맞장구치는 사람과는 대화가 되고, 침묵하는 사람과는 끝,조심하라는 사람과는 서서히 관계 맺기.


다른 경우의 수도 있겠지만 제가 하는 관계설정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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