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이란 무엇인가? 구조론은 어떤 의사결정의 전제조건을 해명한다. 존재는 그 자체로 시공간의 무대 위에서 자기 권한을 연출하는 의사결정이다. 관측 역시 주체와 객체 간의 위상을 판단하는 의사결정이다. 모든 의사결정은 축과 대칭의 구조, 그리고 에너지의 입출력에 따른 대칭≫비대칭으로의 전환을 거친다. 관측 역시 관측의 무대를 세팅하는 절차를 필요로 한다. 관측의 전제조건이 있다. 서로 떨어져 있다면 관측할 수 없다. 손꼽아 낱개를 세든, 자로 길이를 재든, 됫박으로 부피를 재든, 저울로 무게를 달든 모든 관측은 직접적 접촉을 거친다. 간접적 접촉도 직접을 거친다. 두 개체가 있는데 서로 만날 수 없고 접촉할 수 없다면 관측할 수 없는 것이다. 별빛이 허공을 날아와 데이터를 전하는 간접적 접촉이라도 일정부분은 반드시 직접적인 접촉을 거친다. 서로 떨어져 있다면 상대성이 작동하여 정확한 관측이 불가능하다. 강건너 불구경을 하면서도 강건너 사정을 알 수 있는 것은 언젠가 한번이라도 강을 건너가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느린 것은 빠른 것을 관측할 수 없다. 작은 것은 큰 것을 관측할 수 없다. 2차원은 3차원을 관측할 수 없다. 관측할 수 있는 것은 내 오른팔과 왼팔 뿐이다. 내 신체의 일부라야 관측된다. 인간은 땅과 닿아 있으므로 땅도 나의 일부다. 내 눈이 빛을 본다면 빛이 도달하는 거리까지 내가 연장된다. 서울사람이 친구를 부산에 보내놓고 전화한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몸이다.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는 원래 없다. 관측에 있어서는 내가 연장될 수 있으므로 확대된 나의 범위에 속하면 관측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뇌를 벗어난 나의 손도 내가 아닐 수 있다. 이는 역으로 내가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다면 나의 손이 늘어나는 것이다. 혹은 동료를 동원할 수도 있다. 혹은 기록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인간은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늘려갈 수 있다. 인간의 오른손과 왼손 사이에는 상대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우주 공간의 두 포지션 중 하나가 다른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나, 그 반대나 다르지 않지만 내 오른손과 왼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왼손을 멈추고 오른손을 당긴다면 분명히 오른손이 왼손으로 다가간다. 이때 나는 관측자가 되고 오른손은 관측대상이 되고 왼손은 비교대상이 된다. 이때 관측은 상대성이 아닌 절대성이다. 관측의 절대적인 법칙은 관측대상과 비교대상이 관측자의 바운더리 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하며 관측자는 자신을 확대시켜 구조론의 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빨라질 수 있다. 관측자인 인간은 인간의 달리는 속도인 시속 36킬로를 넘어 광속까지 도달이 가능하다. 두 팔을 길게 폈을 때 오른손 끝에서 일어난 사건은 광속으로 뇌에 전달된다. 신경속도가 광속이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자기의 크기를 확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측영역이 늘어난다. 그러나 관측대상이 관측자보다 커질 수 없다는 본질은 남는다. 인간은 자기보다 높은 차원을 관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방법으로 자기를 확대시키면 높은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쓰는 언어의 방해다. 인간의 언어는 본질에서 대화체다. 두 사람 이상이 대칭을 이루어야 의사소통이 되는 구조다. 즉 언어는 관측자가 없이 관측대상과 비교대상의 핑퐁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 한계를 넘어야 한다. 깨달음은 자신에게 관측자 포지션을 주고 관측대상과 비교대상의 역할을 역시 자기 안에서 소화하는 것이다. 자기 안에 별도의 두 포지션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가능하며 그것이 깨달음이다. ◎ 질 – 관측자의 절대성 ◎ 입자 – 관측대상의 상대성 ◎ 힘 – 비교대상의 상대성 ◎ 운동 – 에너지 입력 데이터 ◎ 량 – 에너지 출력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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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측은
내가 내 안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내 바깥은 절대 관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주를 관측하려면 자기를 우주만큼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관측의 기준점인 절대성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맨 먼저 할 일은 좌표를 그리는 일입니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시공간의 좌표가 원래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공간의 좌표가 있긴 개뿔 그건 지금부터 당신이 해야할 일이야.. 하고 아인슈타인이 뒤통수를 쳤죠.
그러게요.
시간은 원래 없는 건데, 자기 안에서 키워져가는 거고, 죽으면 거기서 모든 것이 끝나는 거죠.
공간안에서 버둥대는 육체가 시작되는 지점과 끝나는 시점에서 시간도 멈추기 때문이지요.
재밌습니다.
재밌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어야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데
간접이든 직접이든 접촉이 이루어져야 관측할 수 있다는 말이 재밌습니다.
관측이든, 깨달음이든,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소이다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