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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 명문
[영남시론] 법치와 민주주의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뒤 전(前) 대통령 측 대리인 쪽에서 대한민국의 ‘법치는 죽었다’라는 격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폭력을 앞세운 민중봉기에 의해 권좌가 뒤집혀진 것도 아니고, 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헌법기관에서 내린 결정을 다른 사람들도 아닌 법률가들이 부정하고 있는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들이 보여준 변론 수준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우리나라 법조계의 법치가 어떤 수준이었던가를 짐작하게 하는 일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에 얼핏얼핏 공개된 심판정의 모습은 한 나라의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책임감이나 진중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판정 안에서 태극기가 휘날린 것은 애교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다. 법조계 원로급인 대통령 측 대리인들은 의뢰인의 법률 대리인 자격으로 심판정에 나온 사람이 아니라 사사로운 동창회에 참석한 선배들처럼 처신했다.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 신입생들을 향해 술 취한 선배가 폭언과 폭행을 일삼으며 후배들의 군기를 다잡는 한국사회 특유의 유구하면서도 지긋지긋하고 천박한 선후배 문화가 고스란히 중계된 것이다. 온 국민의 눈이 쏠려 있는 재판인 데도 늙은 전관들의 변론 수준이 저 지경일 정도면 소송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반 재판인 경우는 어떤 수준일까.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정점을 향해 치달을 때 그 곁의 사법부도 들썩였다. 법원 행정처가 내린 어느 판사의 인사조치에 불만을 품은 현직 판사들의 집단대응 때문이다. 그런데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판사들의 청원서를 읽다가 나는 때마침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있던 녹차를 분수처럼 내뱉을 뻔했다. ‘피땀 흘려 이룩한 사법부의 신뢰’라는 문구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판사들인가? 우리나라 사법부의 신뢰도는 OECD 국가 중에서 우크라이나, 칠레와 꼴찌자리를 놓고 다투는 수준이다. 지금 판사들이 들썩이는 것은 불의에는 입을 다물고 불이익에는 파르르 발작을 일으키듯 일어서는 우리나라 전문직들의 고질병이 도진 탓이다. 고작 자리이동에 불과한 ‘인사상의 불이익’에는 분기탱천하면서 음주뺑소니 사고를 내고도 법봉을 휘두를 수 있고, 성매매를 하고서도 사표만 내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그들만의 뻔뻔스러운 특권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6년 내내 꾹꾹 참다가 임기 막바지에 힘 빠진 대법원장을 겨냥한 판사들의 집단 움직임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 지켜보자.
헌법재판소는 ‘박종철의 죽음’과 ‘유월의 함성’이 이루어낸 1987년 체제의 성과물이다. 그 과정에 판사들이 어떤 피땀을 흘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순전히 국민의 힘만으로 태어난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만든 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법체계가 성문법 체계라는 것은 중학교 3학년 정도의 학력만 돼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뜬금없이 ‘관습헌법’을 끌어들인 것이 헌법재판소다. 그리고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절차는 불법이지만 효력은 있다”는 해괴망칙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시중에 “남의 돈은 훔쳐도 소유권은 인정된다”거나 “대리시험을 쳐도 성적은 인정된다”는 식의 법을 조롱하는 패러디가 나돌게 만든 것도 헌법재판소다.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대통령 파면 결정은 역사적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결정은 밀실에 모인 8명의 법률 엘리트들이 내린 결단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광장에 모여든 촛불의 열기와 함성이 법조 엘리트들만의 밀실 법치를 저지한 결과다.
그래서 촛불은 절대 꺼지지 말아야 한다. 민심을 거스른 대통령을 파면시킨 법이 언제 다시 국민들을 향한 채찍과 방망이가 되어 되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능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나마 4년씩이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이 경찰과 검찰을 앞세운 ‘법치’ 아니었던가. 법치주의가 죽었다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조 엘리트들만의 법치주의는 진작 죽었어야 했다.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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