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럼] 민주주의와 비트코인
영화 '1987'은 민주주의를 이뤄가는 우리 역사의 단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신의 연출을 완성한다. 잘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육중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일단 돌아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마치 오래 전부터 연습해왔던 것처럼 각자의 역할을 놀랍게 수행해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에너지가 충분히 쌓이면 될 듯 말듯 잘 이루어지지 않던 일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넘어 둑을 해체하고 엄청난 격랑을 만들어낸다. 거대한 에너지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천재나 의사들이 언제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음으로써 역사의 팀플레이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21세기 들어 새로운 세력이 기성권력을 교체하는 일이 잦아졌다. 인터넷, 스마트폰, SNS, 그리고 최근 블록체인과 IoT를 필두로 한 4차산업혁명 등 일련의 흐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987년 젊은 대학생의 목숨과 광장의 피로 쟁취한 것이 대통령 직선제였던 것처럼 소수가 독점하던 의사결정 체계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어놓는 일이다.
인터넷이 대중의 손에 들어오면서 정보의 물꼬가 터졌고 IT로 무장한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다. 수많은 IT 벤처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낸 천재들은 권력의 지형을 다시 그려냈다. 그러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로 IT권력이 집중되면서 정보를 왜곡하는 그늘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 스마트폰과 SNS가 등장하면서 소수 언론이 독점하던 정보 시장이 해체돼 대중 직거래가 가능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물론 어리석은 대중의 여론재판이 횡행하는 SNS의 그늘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따라 다녔다.
대중을 통제하지 못해서 생기는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독재시대로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진보와 혁신의 빛을 그 그늘로 덮을 수는 없다. 최근에는 가상화폐라는 요상한 놈이 세계를 뒤흔들면서 사회적 역풍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이 현상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영감을 전해주고 있다. 온갖 중계 권력에 대항할 더 섬세하고 직접적인 거래 체계를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단지 가능성을 열었을 뿐 쓸 만한 수준은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행과 같은 전문 중개자의 권위에 제약받지 않는 신용창출과 거래체계 탄생의 기대만으로 가치는 충분히 생성된다. 포털 같은 중개자들은 과도한 수수료와 편협한 편집권으로 정상적인 거래를 왜곡한다. 뿐만 아니라 활자화 되지 못하거나 포털의 편집 대상에 들지 못하는 수많은 콘텐츠는 계량화되지 못한채 스러진다.
옆집 개를 산책시켜주는 어린이의 시간, 복지 비용을 줄여줄 선제적 복지로서의 노인의 자발적 운동, 이웃의 선행, 이 모든 것이 SNS '좋아요' 숫자 말고는 별다른 가치 측정과 교환 방법이 없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그랬듯 우리는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기술을 활용해 의사결정하는 보다 세련된 방식을 고안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의사결정 방식의 혁신을 통해 성장한다. 당장 이해하지 못하는 변혁이 혼란을 초래하더라도 이 일련의 흐름 위에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성장하는 방식임에 틀림없다. 1987년으로부터 30년이 흐르고 우리는 다시 거대한 광장의 에너지를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빛나는 민주주의의 성취를 일구어냈다.
그러나 광장의 성취는 시작일 뿐이다. 우리가 관계맺는 방식, 타인에 개입하는 기술은 여전히 서투르기만 하기 때문이다. 촛불 민주주의의 성취는 우리 생활의 다양한 국면으로 복제돼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 사회주택과 같은 시민사회의 근간을 만드는데로 이어져야 한다. 동시에 4차산업혁명의 기술적 성취에 올라타 보다 세련되게 다듬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 플랫폼에 접속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섬세한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명문입니다!
'완장찬' 중개권력이 타도될 때가 되었습니다.
금융 언론 문화 학계 종교 모든 분야에서~
지구촌의 거대한 흐름이고 우리는 촛불로 그 선두에 서있습니다.
한국이 기대와 주목을 받는 이유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