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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890 vote 0 2018.04.25 (19:20:58)

 

    용감한 이야기를 하자      


    이건 용감한 이야기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했을 때도 그랬다. 당시만 해도 그게 깨는 이야기였다. 다들 신의 어린 양을 자처하며 복종을 맹세하는 판에 니체가 뜬금없이 신을 저격하여 인간들에게 자유를 준 것이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볼만한 일이었다.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다. 적어도 기독교문화권에서는 말이다. 권력담론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동양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거다.


    신은 죽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자유 다음은 뭐지? 일의 다음 단계를 제시해야 한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자. 애들은 가라. 이건 어른들의 이야기다. 그래 노예해방은 됐고 이제는 흑인이 백인을 지배할 차례인가? 이렇게 진도를 나가줘야 용감한 이야기가 된다. 니체도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던 거다. 해방시켜 주고 투표권만 주면 그걸로 땡인 거야? 배상금 정산은 어쩌고? 두당 백억 원은 물어줘야 할 판에 말이다.


    기어코 일은 벌어졌다. 해결은 간단치 않다. 신은 죽었다고 말로 선언하고 끝내도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신에게 받아내야 할 빚이 많다. 이제는 인간이 신을 부려먹어야 한다. 국민이 왕을 섬기던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국민이 대통령을 부려먹는 시대다. 왕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끝내도 되는 판이 아니다. 집단의 결속과 의사결정구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신의 일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이니 행복이니 평등이니 정의니 도덕이니 한다. 개떡같은 이야기다. 하품 나온다. 아직도 그런게 먹힌다고 생각하나? 봉건시대에는 그게 말이 되었다. 자유가 없던 시절에는 자유가 소중했다. 평등이 없던 시절에는 평등이 명분이 된다. 최저임금제도 없고 의료보험도 없던 시절은 인간이 불행했다. 행복이라고 하면 다들 솔깃해 했다. 왜? 불행하니까. 지금은 혼자 사는 자연인도 행복해 죽겠다는 시절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까져서 사탕발림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세상이 바뀐 거다. 뭐 아직도 그런데 넘어가는 찐따들이 더러 있지만 우리는 전위다. 멋쟁이는 다른 거다. 용감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럴 때가 되었다. 사람은 곧 죽어도 탑 포지션에 서고 싶은 것이다. 인류의 의사결정 중심에 서고 싶은 것이다. 이게 진실이다. 철학은 허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 대며 한 조각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하겠다.


    온통 허무다. 사랑도 행복도 쾌락도 명예도 1그램 호르몬의 작용에 불과하다. 세상 만사 마음 먹기에 달렸다. 그 정도는 일천 년 전 원효도 알았다. 해골 바가지에 든 물을 마셔도 생명수라고 생각하면 달콤하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곧 사랑이 된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곧 행복해진다. 술 한 잔으로 금방 쾌락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것에 낚이다니 한심하지 않나? 시시하기 짝이 없다. 간큰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때 그 시절 인간들은 왜 신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했는가? 신과 엮이기를 원했는가? 사는게 힘들어서 그랬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질병에 걸리니 살기가 힘들었다. 노예라도 좋으니 비빌 언덕이 필요했다. 과학이 발전하자 인류는 교만해졌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자. 바람이 불면 창문을 닫자. 질병이 유행하면 백신을 맞자. 신은 필요 없다. 그러나 권력은 필요하다. 신은 죽었다는데 니체는 왜 권력의지인가?


    진실을 말하자. 신은 권력이다. 권력의지는 신의 의지다. 권력이 죽어야 신이 죽는다. 복종대상으로서의 신은 죽었지만 집단의 의사결정의 중심은 있다. 인간에게 권력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을은 되지 않겠다는게 신은 죽었다는 선언이라면 더 나아가 내가 갑이 되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은 권력의지다. 권력은 대상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왜? 서로는 긴밀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통제하지 않으면 통제당한다. 


    공간의 엮임은 큰 문제가 아니다. 살살 빠져나가면 된다. 일본이 미우면 중국에 붙자. 중국이 겁나면 미국에 붙자. 미국이 짜증나면 러시아에 붙자.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시간의 엮임이 문제다. 갑이 아니면 을이 된다. 서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갑이 되려면 탑 포지션을 잡아야 한다. 왜 갑이 되어야 하는가? 갑은 엮여 있는게 아니라 엮고 있다. 에너지가 흐른다. 팬들은 엮여 있고 아이돌은 그들을 엮고 있다.


    세상 만물은 두루 엮여 있다. 그래서 자유가 없다. 노예신분에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자유는 없다. 왜?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흐른다. 흐른다는 것은 시간을 타고 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문제다. 에너지의 세계에는 대표성이 작동하여 한 넘이 다 먹는 일이 벌어진다. 물질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금이 아니면 은이 있다. 대체재가 있다. 다이아몬드가 아니라도 에머랄드가 있다. 에너지는 그렇지 않다.


    대주주 한 사람이 경영권을 틀어쥐고 다 먹는다. 소액주주는 손가락만 빨고 있다. 결국 인간은 에너지를 원한다. 에너지를 통제하기 원한다. 갑이 아니면 을이 되는게 에너지의 속성이다. 누구에게 에너지의 통제권이 있는가? 탑 포지션에 통제권이 있다. 에너지가 들어오는 루트가 있다. 과거에는 외국 책을 번역하는 사람이 갑을 잡았다. 서구의 책을 번역하기만 하면 그 분야의 태두가 되어 존경을 받곤 했다.


    번역이 탑이다. 학문은 원래 서양에서 들어오는 걸로 되어 있다. 먼저 번역한 사람이 먹는다. 번역이라는 관문을 피해갈 수 없다. 관문지기가 완장 차고 어깨에 힘을 준다. 그리고 적폐가 시작된다. 관문지기가 농간을 부린다. 작금의 미투운동도 그러하다. 관문지기의 농간에 저항이 시작되었다. 세월이 흐르면 그런 중간권력이 타도대상이 된다. 지금 혁명이다. 관문지기를 박살내는 것이 문재인의 적폐청산이다.


    조중동이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관문을 틀어쥐고 농간을 부린다. 쳐죽일 일이다. SNS 시대다. 트럼프의 트친이 되면 누구든 고급정보를 언론사보다 빠르게 접할 수 있다. 언론권력이 타격된다. 신을 죽이고 나면 누군가 신의 역할을 대리한다. 처음에는 독재자가 권력을 쥔다. 니체의 초인사상을 히틀러가 써먹는게 그러하다. 다음에는 중간권력이 발호한다. 조중동 권력에 교회의 먹사권력이다.


    지식인 엘리트 권력이 그러하고 비리사학이 그러하고 재벌이 그러하다. 처음은 독재자가 타격되고 다음은 중간권력이 타격된다. 엘리트도 타격되어야 한다. 최후에 누가 권력을 쥐는가? 사람이 권력을 쥐는게 아니라 시스템이 권력을 쥔다. 의사결정구조가 신을 대리한다. 어떻게 가든 의사결정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당신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 노예가 되든 주인이 되든 당신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공간에서는 샛길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시간에 걸리면 얄짤없다. 먼저 결정하는 자가 갑이 되고 뒤에 엮이는 자가 을이 된다. 당신은 을로 시작한다. 엄마가 갑이다. 소년기는 친구들과 평등하다. 어른이 되면 이제 당신이 갑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에너지를 조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에너지의 근원을 부정할 수 없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과 같다.


    열다섯이면 독립해야 한다. 아버지는 비켜줘야 한다. 그다음은? 당신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당신은 무엇으로 어머니 노릇에 아버지 노릇을 할 것인가? 에너지를 조달해야 부모의 자격이 있다. 그 에너지의 근원을 탐구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을 부정할 수 없다. 권력과 권리를 부정할 수 없다. 인권을 부정할 수 없다. 소유권을 부정할 수 없다. 시스템을 부정할 수 없다. 에너지의 용틀임을 부정할 수 없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눠가질 수 없다. 콩 한 알을 쪼개서 나눠먹을 수는 있어도 권력은 나눌 수 없다. 그것이 대표성이다. 나눌 수 없으므로 근원을 추적하면 1에 도달한다. 권력의 공유는 빈말이고 권력의 위임이다. 권력은 상속되고 상속은 친함을 따라간다. 엮인 상태에서 관계의 긴밀함이 친함이다. 엮임의 고리들을 추적하면 근원의 하나에 도달한다. 반드시 있다. 다만 희미하거나 아니면 뚜렷하거나다.


    사건이 희미하면 신은 희미하고 사건이 분명하면 신은 분명하다. 많은 경우 사건은 파도처럼 밀려오다가 기슭에 부딪혀 희석되어 사라진다. 흐지부지 된다. 개미에게 신은 희미하다. 개나 고양이의 신은 희미한 존재다. 집사 정도로만 대접해준다. 박근혜의 삽질처럼 이상한 짓을 벌이면 신은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단호하게 아니오를 시전한다. 문재인의 용감함이면 신은 기적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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