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언제라도 통제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게 구조론이다. 왜 에너지인가?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고 그러므로 통제되기 때문이다. 물질은 그냥 그곳에 머물러 있다. 원자 개념은 깨지지 않는다는 전제로 출발한다. 통제불가능성이다. 옛날에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과 세상은 원래부터 그냥 있다고 믿었다. 통제되지 않는 막다른 세계다. 인간으로서는 어찌해볼 수 없는 궁극의 세계다. 그 수준에 도달하면 답이 나왔다고 믿고 만족한다. 구조론은 사건으로 본다. 사건은 시작과 끝이 있다. 축과 대칭과 호응이 있다. 통제가 된다. 빅뱅의 발견으로 우주는 통제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통제불가능에 집착하고 있다. 뭔가 답이 없고 꽉 막히면 좋아라한다. 공자를 싫어하고 노자를 좋아하는 게 그렇다. 절대주의 공자는 인지의신예라는 정답을 제시하고 당신의 실천을 요구한다. 통제한다. 상대주의 노자는 모든 것을 흐리멍텅하게 만든다. 방치한다. 비겁한 태도다. 세나개를 보더라도 강형욱 훈련사는 개를 다스리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그냥 놔두면 저절로 해결되걸랑요. 이런 비겁한 도피는 없는 거다. 한국의 진보활동가들은 그냥 놔두는 것을 좋아한다. 그냥 놔뒀더니 우리 아이 성적이 올라갔어요. 그냥 놔뒀더니 주식이 따블로 올랐어요. 그냥 놔뒀더니 암이 치료되었어요. 잡초를 뽑지 않고 그냥 놔뒀더니 풍년이 들었어요. 그냥 놔뒀더니 운전면허가 나왔어요. 이런 개소리 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 자유방임주의, 불개입주의는 진보의 적이다. 개입해서 치료해야 병이 낫는다. 빅뱅이론의 확립으로 세상은 절대주의에 지배되며 답은 분명히 있고 우주는 일원론이며 시작과 끝이 명백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빅뱅원리에 충실한가? 빅뱅 이야기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상대주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댄다는 말인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는 안에서 일한다는 거다. 내부에 구조가 있다. 그러므로 통제된다. 구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경제를 논하려면 경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개 밖에서 겉돌고 있다. 지식인이라도 밖에서 겉돌며 공허한 소리를 지껄인다. 답이 없는 교착된 상태, 막다른 상태,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상태를 보면 매우 만족한다.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그러나 그게 과연 좋은 소식인가? 답이 없다는 게 어떻게 철학의 답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떤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나면 무언가 답을 찾았다고 믿고 의기양양해 하는 게 노자 부류다. 인생은 허무해. 허무해서 참 다행이야 하는 식이다. 일본 네티즌들이 2채널에 모여서 한다는 소리가 ‘일본에서 태어나 참 다행이야.’ 일본이 아닌 외국은 위험하고 일본은 안전하다는 식이다. 그래서? 그다음이 없다. 허무한 거다. 안전한 게 과연 좋은 건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참 좋다는 식이면 그냥 죽지 왜 사냐고? 미션은 어쩔거냐고? 단결이 안 되어서 혹은 노력이 부족해서 이런 식의 정신주의적 태도는 겉도는 거다. 축구를 한다면 곧 죽어도 그라운드 안에서 결판내야 한다. 히딩크는 그라운드 안에서 분명한 답을 찾았다. 정신력 이런 것은 그라운드 바깥의 사정이니 가짜다. 애국심이니 충성심이니 엉뚱한 소리 안 된다. 특히 무뇌좌파들과는 신자유주의 나오면 대화가 끝났다고 봐야 한다. 대화할 의지가 없는 자들이 신자유주의를 휘두른다. 패배주의다. 신자유주의란 냉전시절이 좋았는데 냉전 끝나고 소련이라는 적이 없으졌으니까 만만한 일본을 손보겠다는 거다. 그렇다. 전선은 옮겨졌다. 새로운 전단이 열렸다. 미소 냉전에서 한중일 유교권 대 기독교권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이게 본질이다. 전쟁이 붙으면 승산을 보고 신이 나야 한다. 승산을 보지 못한 바보들은 일단 발언권이 없다. 적을 이길 계획이 서지 않았다면 닥쳐! 제대로 된 장수라면 전쟁소식을 듣고 신이 나야 한다. 이길 찬스 왔으니 좋잖아. 미국이 신자유주의라는 장군을 불렀으면 우리는 맞대응하여 멍군을 불러줘야 한다. 우리가 더 실력이 있는데 뭘 겁내는가 말이다. 뭐든 개입하여 에너지의 결에 올라타고 조정하면 통제가 되는 거다. 그게 에너지의 의미다. 물질과 공간과 시간은 원래 그냥 있다는 개념이고 에너지는 내부에 구조라는 이름의 질서가 있다. 그러므로 통제가 된다. 에너지는 양자화되어 있다. 둘이 만나 계를 이룬다. 만나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 만남을 조절하여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은 곳에 자신을 두는게 구조론의 방법이다. 좋은 사람은 정상이 아니면 변방에 있다. 정상까지 올라가기가 힘들므로 의사결정속도가 빠른 변방을 노리는 게 좋다. 의기투합해 동료가 될 확률이 높다. 중간에 있으면 환경에 엮여서 죽도 밥도 안 된다. 촌놈정신은 변방에서 중앙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향원정신은 변방에서 터 닦고 터줏대감노릇 하는 것이다. 진보에 있으면 좋고 보수에 있으면 나쁘다. 젊음에 있으면 좋고 꼰대에 있으면 나쁘다. 변화에 있으면 좋고 안정에 있으면 나쁘다. 변화에서 안정을 지향해야 하지만 안정에 머무르면 안 된다. 변화의 흐름에 휘둘려도 안 된다. 올라타고 운전해야 한다. 통제해야 한다. 빈손으로 있으면 좋고 양손에 가득 들고 있으면 나쁘다. 자신을 전략 예비로 두면 좋고 노른자위로 두면 나쁘다. 만인에게 주목받으려 하지만 그러다가 주도권을 내준다. 감독이 되는 것이 좋고 주연배우가 되는 것은 좋지 않다. 감독은 외부의 에너지를 끌어와 공급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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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활동가들은 그냥 놔두는 것을 좋아한다. 그냥 놔뒀더니 우리 아이 성적이 올라갔어요. 그냥 놔뒀더니 주식이 따블로 올랐어요. 그냥 놔뒀더니 암이 치료되었어요. 잡초를 뽑지 않고 그냥 놔뒀더니 풍년이 들었어요. 그냥 놔뒀더니 운전면허가 나왔어요. 이런 개소리 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 자유방임주의, 불개입주의는 진보의 적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