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agmaglife.com/220946193670 300만이 봤다는데 명성과 평점에 비해서 한국관객의 반응은 그저 그런 정도다. 여성동무들은 두 번, 세 번씩 봤다고들. 둘은 맺어지지 않았다는데 이렇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라나. 뭐 볼 사람은 다 봤을테니. 어쨌든 한국의 여성관객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는데. 영화를 논하려는건 아니다. 여자의 사정은 여자가 알겠고, 남자에게 사랑의 의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둘은 보호본능이다. 남자는 첫째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대상을 찾으려고 하고, 둘째 그 대상을 보호하려고 한다. 여자는 보호받는 위치에 있어줘야 한다. 남자는 왕자이고 여자는 신데렐라다. 페미니스트들이 싫어한다. 이것이 전통적인 드라마의 규칙이다. 남미의 '텔레노벨라'라든가 일본의 '망가'들은 남자가 객지를 떠돌며 개고생을 하다가 다시 첫사랑 그녀에게 돌아온다고. 여자는 여전히 고향을 지키고 있다. 혼자 아이를 키운다. 일본은 마지막에 소꿉동무를 찾아와 결합한다. 한국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여 소꿉놀이를 안해봐서리 어린시절 고향의 소꿉놀이 친구를 찾아가는 패턴은 많지 않을 듯. 이현세 만화에 좀 있었던듯도 하고. 남자는 왜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에너지를 주는 대상을 찾아 밖을 떠돌게 되고 보호본능 따라 안으로 돌아오는 거. 주변을 봐도 그렇고 페북을 봐도 그렇다. 딸자랑에 열심인 딸바보 남자가 많은 것을 보면 보호본능이 남자의 최종적인 정착지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전통에 충실하면 평론가들이 깐다. 라라랜드의 전문가 평점이 나쁘지 않은 것을 보면 전통적인 연애담을 넘어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건데. 라라랜드 8.34 문라이트 7.60 <- 한국의 기자와 평론가들은 라라랜드를 더 높이 평가하는구만. 관객평점은 비슷하고. 어쨌든 작품상은 문라이트다. 에너지를 주는 대상과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대상은 공존하기 어렵다. 남녀는 본래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말씀. 그런데 사랑은 이루어져야 한다? 왜 사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거지? 이루어진다는게 뭔데? 결혼? 결혼이 인생의 목적인가? 여기서 필자가 논하는 한국적 유교 합리주의, 일본의 선종 허무주의, 중국의 도교 실용주의로 볼 때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텐데 한국영화는 일을 거창하게 잘 벌인다. 근데 결말이 복수 혹은 결혼이다. 근데 도깨비는 결혼했남? 끝까지 안 봐서. 한국영화는 원인과 결과가 맞아져야 하며 찰지게 복수하거나 혹은 찰지게 커플을 이룬다. 그렇게 가면 작품수준이 낮아진다. 현실에서 있기 어렵다. 일본영화는 그런 에너지가 없다. 모순과 대립이 극명하지 않은 거다. 몇 달씩 읽는 문학이면 괜찮다. 영화는 한 시간 반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드라마라도 50분짜리 1회 분량 안에 기승전결을 때려넣어야 한다. 서로 모순과 대립을 안은 남녀가 대등하게 에너지를 주고받고, 복수하고 보상받고, 커플되고, 죄다 해내려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그 경우 현실성은 점차 제로가 되어간다. 보편성을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를 마이너스 시켜야 한다. 영화의 전략은 커플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서로 모순된 두 사람의 만남과 충돌, 거기서 얻어지는 강렬한 에너지, 그걸로 이야기를 완성시켜야 한다. 라라랜드라면 뮤지컬이라는 형식이 얼버무리기로는 적당했던 거.
- 한국의 합리주의는 거창하게 일을 벌이는데 수습이 어렵다. 애초에 수습을 포기하고 가면 허무주의가 된다. 일본 망가처럼 결말이 흐지부지 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투입하는 등의 꼼수를 써서 억지 수습으로 가면 작품성이 떨어진다. 기적이 일어나 해결된다는 식의 결말짓기 말이다. 주인공을 죽여버리는 허무주의 수법도 한때 유행한 편법이다. 라라랜드는 영리한 전략을 사용했다는게 필자의 결론이다. 물론 안 보고 하는 이야기. 봐봤자 별거 있겠는가? 하여간 남자는 첫사랑을 못 잊는게 아니고 두 가지 사랑이 있다. 끝까지 가는건 보호본능인데 그다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사랑이 꼭 끝까지 가야 하느냐고? 길게 가면 지루하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무릎맡에서 해주시던 이야기의 결말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건데 과연 그랬을지는 의문. 남자는 에너지를 주는 사람과 연애하고 보호본능을 충족시키는 사람과 결혼하는데 그게 반드시 인생의 모범답안은 아니라는 결론. 그냥 그렇다고. 어쨌든 만남이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결말에 관심을 갖지만 사건의 격발이 중요합니다. 제로상태에서 처음 에너지가 어떻게 유도되는지가 중요할 뿐 결혼해서 백살까지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객이 원하는건 백살까지 잘 먹고 잘 사는 거지만. |
라라랜드에서 결혼에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제보를 주세요..
우연히 너와내가 만났을때 우린 낭만과,꿈,사랑에대해 그토록 그리워했고
순수했고 세상은 어렴풋했다. 그럼에도
날 진심으로 이끌어준 존재
너로인해 난 열정적일수있었다.
겨울까지 지나는 여정은 여전히 너무도 시리다못해 5차원세계를 방불케했다. 자연스럽게 사랑했고 자연스레 멀어져갔다. 이제 현실에도 니가없다. 꿈만을선택한 것도 아니었는데 사랑을 잃었다. 결혼은 빗겨갔지만
이루지못한 사랑을 잊을수있을까
그때 그 행동이 아니었다면 운명은 바뀌었을까?
지금당신은 그순간의 라라랜드를 잊을수 있나요?
---
개인적으로 단한번도 실제로는 본적없는데 중2때 화상채팅사이트를 통해 알게된 특별한 첫사랑, 10년동안 계속 좀 만나자면서 연락을 해오고 그런 충만한 느낌은 처음이고 서로첫사랑이라고 말은하는데 이상하게 엮이고 내가 자신감이 없고 점점 더 연기같아져서 만나지못하다가 그친구 커뮤니티로만 봐왔었는데 최근에 이 허무맹랑한 인연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을즘 라라랜드를 접하게됐습니다. 물론 최근에 꿈에 나와서 인스타그램을 찾아봤더니 결혼해서 아들래미 안고있고 여전히 멋있는사람이고(강남에서 프랜차이즈 3개..ㅋㅋ), 이영화가 이 허구같은 사건을 해석해주고 위로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라라랜드가 마법같은 영화인건 각자의 환경에 대입했을 때 전부 맞아 떨어질수있다는 것때문이 아니겠어요. 라라랜드는 이별노래같아요.
어둑하게 노을 짙어지는 변화의 시간에 어울리는 채색은 언제나 보라색입니다. 차분하면서도 또 동시에 화려해질 수 있는 색. 보라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