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918 vote 0 2016.12.01 (11:58:00)

    

    질문하지마라


    챠우님 동영상을 올려놨던데 볼 시간 없고, 하여간 자기소개 하지마라고 하니 진짜 자기소개 안 하는 사람 있더라. 참 구조론에서 역설은 기본이지. 질문하지 마라고 하니 질문하지 않으면 그건 역설이 아니지 참.


    그냥 묻고 답하는건 질문이 아니다. 그건 공부다. 질문이라는 것은 바리새인이 예수에게 던지듯이 함정을 파고 올무를 놓고 창애를 심고 비수를 찌르는 것이다. 유태인의 율법을 따르면 동전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


    동전에 새겨진 것은 로마황제의 얼굴이고 이는 우상이니 당시 황제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동전을 접촉하는 순간 이미 우상숭배의 타락에 빠진 것이다. 이건 질문이 아니라 공격이다. 공격하려면 전술을 익혀야 한다.


    미리 답을 알고 질문해야 한다. 논어만 해도 제대로 질문하는 사람은 자공 정도다. 자기 의견을 먼저 제시하고 물어야 한다. 번지처럼 ‘농삿일은 어떻게 해야 되죠?’ 이런 멍청한 소리를 질문이라고 하면 안 된다.


    자로는 노상 멍청한 질문을 해서 꾸지람을 들었다. 그건 질문이 아니다. 언어에는 항상 전제가 있다. 질문은 전제를 들추어야 한다. ‘왜 사느냐?’ 이 질문은 ‘너는 왜 아직 죽지 않았느냐? 얼른 뒈져라!’ 이 말이다.


    박그네에게 적당하다. 공격이다. 왜 사느냐고 질문을 하면 ‘산다는 것은 뭐냐?’ 하는 반문이 날아온다. 즉 ‘왜 사느냐’를 질문하려는 사람은 ‘인생은 뭐다.’ 하는 자기 의견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인생은 뭐다’를 정의할 능력 없으면 ‘왜 사느냐’를 물을 수 없다. 이것이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을 익힌 사람은 질문할 수 없게 된다. 질문하면 상대방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박살을 내게 된다. 칼을 휘두르는 거다.


    질문은 칼과 같으니 무사가 칼을 꺼냈으면 베어야 한다. 그러므로 무사는 칼집에서 칼을 꺼내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하면 반드시 죽인다. 물론 예수는 유유히 빠져나갔다. 질문한 바리새인이 패배했다.


    인생은 고다. 이것은 석가의 정의다. 근데 왕자다. 즉 어떤 사람이 희희낙락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석가 출현. 왜 사냐? 아 돈 벌려고 살지요. 돈 벌어서 뭐할래? 출세하지요. 출세해봤자 왕자밖에 더 되겠느냐.


    내가 왕자인데 말여. 별거 없더라고. 맛난 음식도, 화려한 궁궐도, 만인의 칭송도, 백명의 미녀도 별거 아녀. 다 쓸데없다고. 아 내가 왕자라니깐. 내가 다 해봤다니깐. 그거 하나도 잼없다고. 그래봤자 죽는 거여!


    이렇게 초를 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새끼를 칼로 쑤셔버려야 하는거 아니냐고. 이건 뭐 살인나는 거다. 실제로 선방에서 스님끼리 논쟁하다가 목침을 던져 패죽이는 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나곤 했다고. 요즘이야.


    내가 프랑스 여행을 가려는데 ‘프랑스 어디가 좋냐?’ ‘아! 내가 프랑스 가봤는데 말여. 거기 갈 필요없어. 족 같다고.’ 이러면 확 패버려야 하는거 아니냐고. 질문은 목숨 걸어야 한다. 몰라서 묻는건 질문이 아니다.


    반드시 자기 의견을 제출하고 질문해야 한다. 공자의 답은 락이다. 인생은 락이다. 락은 만남이다. 공자는 왕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왕자에게는 동지가 없다. 공자에게는 동지가 있다. 그래서 공자는 답할 수 있다.


    인생의 여행은 함께 가는 길이다. 그래서 만남이 있고 그 만남의 순간에 전율이 있다. 질문과 답은 시인이 운을 띄우고 라임을 맞추는 것과 같다. 주거니 받거니 함께 연주하는 것이다. 대등해져야 질문할 수 있다.


    그런 멋진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반격을 연습해야 한다. 언어에는 전제가 있다. 당연한 전제를 쳐야 한다. 하늘은 왜 푸르죠? 이런 개소리 하면 안 된다. 소 눈에는 하늘이 회색이다. 하늘은 왜 회색이죠?


    이게 맞다. 당신의 눈이 자외선에 가까운 푸른 빛에 잘 반응하는 것이지 하늘이 푸른게 아니다. 하늘이 푸르다고 전제를 까는 순간 이미 틀렸다. 손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면 적외선이 들어와서 빨갛게 보인다.


    하늘은 붉다. 아니 하늘은 색깔이 없다. 당신이 어떤 색을 보든 그것은 태양빛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을 알면 질문할 수 없으며 질문하면 반드시 상대를 패죽이게 된다. 호응할 뿐이다.


555.jpg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708 구조론은 간단하다. image 4 김동렬 2017-01-10 12815
3707 구조론의 단점은 너무 쉽다는 거 image 1 김동렬 2017-01-09 12870
3706 구조론교과서를 펴내며 image 3 김동렬 2017-01-08 44207
3705 우연한 만남은 없다 image 2 김동렬 2017-01-04 14776
3704 인류문명의 골디락스존 image 1 김동렬 2017-01-02 13284
3703 구조론으로 본 인류문명 image 김동렬 2016-12-31 13190
3702 잠수함이 박아도 세월호 안 넘어간다. image 3 김동렬 2016-12-30 14396
3701 매력은 권력이다 image 5 김동렬 2016-12-28 13981
3700 응답하라 인간들아! image 3 김동렬 2016-12-28 12456
3699 자로는 초딩이다 image 9 김동렬 2016-12-26 15972
3698 부름에 응답하라 image 김동렬 2016-12-21 12951
3697 왜 이 시대에 공자인가? image 2 김동렬 2016-12-20 12685
3696 당신도 직관할 수 있다 image 김동렬 2016-12-16 13027
3695 구조론 5분 스피치 image 김동렬 2016-12-14 13145
3694 구조론과 인공지능 image 7 김동렬 2016-12-08 13234
3693 깨달음의 눈 image 김동렬 2016-12-05 12668
» 질문하지마라 image 김동렬 2016-12-01 12918
3691 에너지를 통제하라 image 1 김동렬 2016-11-28 12492
3690 권력의 시장원리 image 김동렬 2016-11-26 12578
3689 권력의 시장가격 image 김동렬 2016-11-25 12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