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권리’가 있다는 거다. 인간에게 권리가 있는 이유는 연쇄적으로 작동하는 일의 전개과정에서 인간이 앞 단계의 포지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앞단계가 해결되면 뒷단계는 수월하게 간다. 그만큼 권리가 성립한다. 사수가 방아쇠를 당기면 방아쇠가 공이를 치고, 공이가 뇌관을 치고, 뇌관이 장약을 치고, 장약이 탄두를 튕겨낸다. 일의 순서는 방아쇠≫공이≫뇌관≫장약≫탄두의 순이다. 이 순서에서 앞 단계는 뒷단계에 대해 권리가 있다. 앞단계가 뒷단계를 지배하는 것이 권력이다. 그 권력을 행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권한이다. 인간에게 언제나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할 때만 그 일 안에서 권리가 있다. 일 바깥으로 나가면 권리가 없다. 나간 사람 몫은 있어도 자는 사람 몫은 없다. 그 일이 함께 하는 집단의 일이라면 정치권력이 된다. 또 일의 종류에 따라 소유권, 선점권, 기득권, 저작권, 인권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권한이 있다. 그 권한의 획득은 의사결정에 의해 성립한다. 의사결정하지 않으면 권리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집단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1/n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기본인권이다. 깨달음은 의사결정능력의 획득이며, 의사결정의 요체는 에너지의 운용에 있고, 에너지의 운용은 사건의 기승전결로 이어가는 일의 흐름에 태우는 것이고, 여기서 에너지를 운반하는 수레가 가지는 대칭성과 순환성, 그리고 운반되는 에너지가 가지는 일방향성과 비가역성의 중첩을 깨닫는 것이 핵심이다. 곧 열역학 1법칙과 2칙이 본래 하나임을 아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언어본능에서 작동하는 바 사실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이를 알고 있으므로 앎과 구분하여 깨달음이다. 언어가 의미를 운반하여 소통이라는 일을 완성시키는 수레가 되기 때문이다. 자연의 물리에너지는 중첩에서 유도되고, 인간의 의사결정에너지는 집단에서 얻어진다. 보통은 ‘사랑’을 논하지만 그 이전에 ‘열정’이 있다. 열정이 에너지라면 사랑은 그 에너지가 노출된 것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자기 안에 열정이 충만해야 한다. 그 열정은 인간의 사회성, 곧 무의식으로부터 조달된다. 이에 깨달음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어떻게 에너지를 조달할 것인가? 둘째 어떻게 에너지를 운용할 것인가다. 에너지는 존엄에서 얻어지고, 자유로 결집하며, 사랑으로 드러나고, 성취로 실현되고, 행복으로 환원된다. 그 존엄의 획득은 집단의 대표성을 얻는데 있다. 집단의 중심으로 쳐들어가서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권자가 되라는 무의식의 요구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열정이 유도된다. 그것을 옳게 연주하면 군자가 되고 나쁘게 소비하면 소인배가 된다. 니체는 권력의지라고 하지만 본질은 대표성이다. 모든 일은 어떤 만남을 통과한다. 손가락이 방아쇠를 만나지 않고 공이가 뇌관을 만나지 않고 총알을 날려보낼 수는 없다. 인간은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는 만남의 현장에서 전율하게 된다. 거기서 열정이 유도된다. 인간은 어떻게든 그것을 하고야 만다. 시인은 노래하게 된다. 화가는 그리게 된다. 음악가는 연주하게 된다. 정치가는 연설하게 된다. 요리사는 끓이게 된다. 결국 사랑하고야 만다. 좋은 재료를 만난 요리사처럼 흥분하게 된다. 마음이 달뜨게 된다. 그리고 저지른다. 그 내면의 에너지를 어떻게 멋드러지게 연주해낼 것인가? 어떻게 요리해낼 것인가?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보통은 실패한다. 인간을 지배하는 세 가지 본능 때문이다. 그것은 집단에 끼려는 종교본능, 서열을 올리려는 정치본능, 대칭을 세우려는 역할본능 때문이다. 만나지 않고 에너지를 얻으려 하므로 이렇게 된다. 종이도 없이 그리려 하고 악기도 없이 연주하려 하고 재료도 없이 요리하려 들면 이렇게 된다. 먼저 만나야 한다. 만나지 못하므로 실패하게 된다. 그렸더니 낙서가 되고, 요리했더니 먹을 수가 없고, 연주했더니 소음이 되고, 사랑했더니 민폐가 된다. 어색해진다. 민망하게 된다. 창피하게 된다. 그러므로 배워야 한다. 극기복례克己復禮라 했다. 군자는 인간의 세 가지 원초적 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극기克己라고 하면 성욕이나 식욕 따위를 떠올리겠지만 그런건 초딩들이나 하는 소리다. 수준 올리자. 언제나 그렇듯이 진짜는 따로 있다. 사랑하기 앞서 열정을 얻어야 하고, 그러려면 제대로 만나야 하고, 미처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마음이 들뜨면 곤란하다. 극기복례로 다스려야 한다. 위대한 만남의 순간에 당신은 멈추어야 한다. 우주선의 도킹처럼 딱 멈춰야 한다. 사수는 격발하기 전에 호흡을 멈추어야 한다. 연인은 키스하기 전에 마주보고 멈추어야 한 한다. 자동차는 승객을 태우기 전에 멈춰세워야 한다. 그래서 극기다. 딱 멈출 수 있는가이다. 제대로 만나려면 말이다.
깨달음은 위대한 만남입니다. 그래서 돈오입니다. 점오는 없습니다. 점수도 없습니다. 만남은 한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전광석화같은 한 순간에 당신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받아들일 것인가 물리칠 것인가? 의사결정능력을 획득했는가? |
이번글 대박이네요. 아주 칠성 사이다 보다 더 시~~원 합니다.^^
뭐눈엔 뭐만 보인다고
"좋은 재료를 만난 요리사처럼 흥분하게 된다. 마음이 달뜨게 된다. 그리고 저지른다. "
좋은재료를 만나보지 못한 요리사는 절대 좋은 요리사가 못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