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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425 vote 1 2015.10.28 (18:08:16)

 

   
    4. 인간의 언어에서 관점.. 사실보다 관점에 주의하라.


    질, 입자, 힘, 다음의 운동은 사건의 실행이다. 사건은 에너지의 입출력 흐름 안에서 가운데의 의사결정을 중심으로 그 앞부분의 상부구조는 결정하고 그 뒷부분의 하부구조는 집행한다. 미학이 결정의 문제라면 언어는 실행의 문제다. 미학은 선과 악처럼 대칭된 둘 중에서 하나를 취한다. 언어는 그것을 전달한다.


    실행은 힘의 전달형태로 되어 있다. 무언가를 실행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로 의사를 전달한다. 쉬운 일은 잘 전달한다. 짜장면을 주문하기는 쉽다. 짜장면을 배달하기도 쉽다. 정확하게 전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 쪽으로 가면 도대체 뭔소린지 알아듣기가 어렵다.


    의사전달이 안 되는 것이다. 예술분야도 그렇다. 왜 이 그림에 높은 가격이 매겨져 있는지 알 수 없다.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분은 잘 전달된다. 감독의 의도를 알아채고 잘 연기하는 배우는 많다. 그런데 조연이다. 주인공은 왜 연기를 못할까? 주인공은 전체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우가 싸움을 잘 하지만 3만병을 이끌 뿐이며 백만대군을 지휘하라고 하면 못한다. 기타는 잘 치는데 오케스트라의 지휘는 못한다. 안철수가 제법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당 대표 일은 잘 못한다. 더욱 나라를 이끌기는 쉽지 않다.


    사건 전체의 맥락을 보지 않고 부분적인 팩트를 들어 부득부득 우기는 사람 있다. 소아병적인 태도다. 전체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마녀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구경하러 온 군중 속에서 히스테리를 일으켜 실신하는 사람이 속출한다. 마녀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왔다. 마녀가 아니라고 판결하면 집단실신 장면을 목격한 군중이 폭동을 일으킬 텐데 이걸 수습할 수 있겠느냐다. 마녀가 맞다고 판결하면 유사한 마녀사냥이 전국적으로 유행할텐데 그건 또 어떻게 수습할 거냐다. 후방효과까지 감안해서 사건 전체를 온전히 책임지는 용기있는 판단을 해야 한다. 지식인이라도 쉽지 않다.


    답은 있다. 마녀재판이라면 사건을 왕 앞으로 끌고가야 한다. 이게 사실은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벌건 대낮에 마녀가 버젓이 돌아다닌다면 이는 신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며 그렇다면 왕의 위신에 관한 문제다. 잠재적인 폭발력이 있는 큰 사건을 지방의 작은 동네에서 판결하므로 재앙이 일어나는 것이다.


    ‘선과 악’이나 ‘옳고 그름’이나 ‘참과 거짓’은 개인의 영역이요 주도권은 팀의 영역이다. 팀에서 이겨야 이긴다. 어떻게든 사건의 주도권을 빼앗아 레이즈를 해야 한다. 당장 10원을 따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판돈을 올려 일괄타결 하는게 중요하다. 큰 판을 만들어야 이긴다. 주도권을 쥐는 자는 큰 판을 이기고 승부에 집착하는 자는 작은 판을 이긴다. 큰 판을 이기려면 첫 게임은 져주고 다음 게임을 살려가야 한다. 기세를 올려서 흐름을 끌어와야 한다. 팀플레이로 이겨야 한다.


    일을 크게 만들어야 바른 판단이 가능하다. 마녀사건을 왕이 맡아야 하듯이 말이다. 무개념 진보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내가 옳다’고 부득부득 우기다가 TV토론에서 이기고 투표에서 진다. 대선과 같은 큰 선거를 앞둔 TV토론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유권자와 친하냐를 따지는 자리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기술자의 영역이며 리더는 팀의 장악이 중요하다. 대장의 판단이 옳아도 병사가 따르지 않으면 전투에 진다. 팀을 꾸리는 자는 리더이며 바른 말을 하는 자는 그 밑에서 일하는 기술자다.


    무엇이 중요하냐다. 넓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어디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큰 일을 크게 보는 것이 관점이다. 크게 보려면 판단을 미루어야 한다. 오늘의 결정이 비록 결과가 나쁘다 하나 미래를 위한 데이터를 얻고 경험을 쌓은 좋은 소식인지는 지금 결정되지 않는다. 합당한 평가는 내일 내가 하기에 달려있다.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지금 판단할 수 없는 것을 억지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 소아병적 태도이다. 이기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세상은 전부 연결되어 있다. 연결된 전체를 판단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언어다. 그런데 그 언어가 틀렸다. 인간의 언어는 대화의 형태다. 주거니 받거니 흐름을 이어가려면 말대꾸를 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반응해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행동하도록 되어 있다. 본심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문재인이 옳아도 지금 천정배는 삐딱하게 가야 한다. 상대가 맞는 말을 해도 어깃장을 놓아야 대화가 이어진다. 그러므로 친한 친구일수록 상대방을 엿먹이며 조롱하는 말투를 쓰게 된다. 그러다가 언어가 비루해진다.


    인간의 언어는 명사와 동사가 의미를 싣는 말을 이루고, 주어와 술어가 대화가 가능한 문장을 이루고, 전제와 진술이 판단이 가능한 명제를 이루고, 조건문과 반복문이 이야기를 완성하는 담론을 이른다. 다층구조로 되어 있다. 보통은 대화에 주의가 쏠린다. 대화를 이어가는 구조로 말한다. 그 방법은 대칭행동이다. 무조건 상대방에게 안티를 걸고 자빠지는 식의 말하기 방법이다.


    참과 거짓, 선과 악, 미와 추, 옳고 그름에의 집착은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도 때문이다. 상대방의 주장에 동조하면 ‘예!’ 한 마디 밖에 할 말이 없다. 어색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려면 ‘아니오!’라고 말해서 발언권을 얻어야 한다. 그 대칭구조에 맞춰 생각하므로 생각의 격이 떨어진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참과 거짓, 선과 악, 옳고 그름에서 결론을 내리지 말고 높은 단위로 올라서야 한다. 말은 문장으로, 문장을 명제로, 명제를 담론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불필요한 ‘자기소개’가 될 수 있다. ‘짜장면이 싫다.’고 말하면 짜장면에 대한 평가로 되는게 아니라, 짜장면을 기준으로 한 역설적 자기평가로 된다. 자신이 판단대상이 된다. 그게 조심해야 할 자기소개식 언어습관이다. 나의 생각을 말하지 말고 진리의 생각과 팀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 현재의 사실을 말하지 말고 미래로 가는 기세를 타야 한다. 남의 말을 자르지 말고 유능한 사회자처럼 다른 사람에게 마이크를 잘 넘기는 말을 해야 한다. 말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술술 끌어내는 말을 해야 한다.


    지식인은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대화 자체의 메커니즘을 따라 흐름을 이어가는 구조로 말한다. 이 사람의 말과 저 사람의 말을 이어서 자연스레 결론이 도출되게 할 뿐 ‘내 생각은 이래.’ 하고 들이대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지도록 만들지 않는다. 결따라 가는 말하기 방법이다. 소크라테스가 자기 주장을 억제하고 계속 질문을 던지듯이 말이다.



    5. 내면의 마음에서 존엄.. 행복 대신에 존엄


    마지막으로는 이익의 수확이다. 처음 사건을 일으켜 에너지를 조달하고, 다음 팀을 복제하여 대칭구조를 세팅하고, 미학으로 의미를 판단하고, 언어로 그것을 전달한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남는 것은 행복이다. 그러나 이러한 메커니즘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행복을 기대하므로 인간은 불행해진다.


    어떤 것을 얻으려면 그 어떤 것보다 한 단계 위에서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법칙이다. 물은 흐른다. 그것을 잡으려 하면 이미 저 아래로 흘러가 있다. 하류에서 잡으려면 상류에서 조치해야 한다. 행복의 상류에 무엇이 있는가? 존엄이 있다. 존엄하면 자유롭고, 자유하면 사랑되고, 사랑하면 성취되고, 성취하면 행복하다. 행복은 최종적인 결과물이다.


    공부는 하지 않고 성적만 기대한다면 실패다. 인센티브가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없더라는 실험결과가 있다고 한다. 행복은 인센트브와 같다. 댓가를 지불한다. 그 순간 을이 된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물이 흐르듯이 사건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준 만큼 받는 것은 거래다. 거래가 끝나면 공허해진다.


    행복은 쉽다. 주정뱅이는 술만 먹으면 행복하고, 도박중독자는 패만 돌리면 행복하고, 섹스중독자는 성매매만 하면 행복하다. 그러나 중독되었다는 점에서 이미 실패다. 그대가 성공을 탐하든, 명성을 탐하든, 돈을 탐하든 이미 중독된 것이다. 불행의 수렁 속에서 탭댄스 추고 있다.


    진짜는 일의 흐름을 이어가기다. 처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고, 다음 팀을 편성해서 주도권을 획득하고, 다음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해서 큰 방향을 정하고, 시간 속에서 순조롭게 진행하면, 행복은 결과물로 따라온다. 누구든 자신이 하는 일 안에서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면 행복은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보통은 흐름이 끊긴다. 외풍 때문이다. 환경변화가 흐름을 끊는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존엄이다.


    세상은 어떻게 말하고들 있는가? 무슨 내려놓으라거나, 칭찬하라거나, 노력하라거나, 믿어라거나, 느리게 살아라거나, 감사하라거나, 친구를 사귀라거나 하며 말들 하지만 개소리다. 인간은 원래 일의 흐름이 손조롭게 연결될 때 행복을 느끼는 동물이다. 그 흐름은 개인보다 팀, 부분보다 전체, 하부구조보다 상부구조, 안쪽보다 바깥에서 얻어진다. 외부와 연결하여 세상의 편에서 팀을 이루고 거기서 에너지를 조달해야 진짜는 가능하다.


    소승보다 대승이어야 한다. 개인에 집착해도 안 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도 안 좋고, 팀을 일으켜야 행복할 수 있다. 그것이 존엄이다. 존엄은 집단의 의사결정서열 1위에 선다. 사건의 중심, 인류의 중심, 긴장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인류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자연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 현악기의 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그 한가운데로 뛰어들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네거리의 신호등처럼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서 존엄은 얻어진다. 그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을 취하는 것이며, 개인적인 노력이 아니라 팀을 복제하는 것이며, 단기적 성과보다 흐름을 잇는 의미를 추구함이며, 구체적인 사실에 몰입하기보다 전체를 보는 관점을 얻는 것이다. 양은 무리 안에 있으면 편안해 하고 사람은 일의 흐름 안에 있으면 편안해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은 사실 이웃과 비교한 것이며, 사회적 갈등 안에서 열등감의 표현이며, 트라우마의 보상심리이며, 동물원의 우리에 갇힌 동물이 정형행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오소리는 우리의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계속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행복할까? 인간은 그러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짜다. 감사, 칭찬, 용서, 신뢰, 존경. <- 이런 단어들은 상처입은 사람들이 쓰는 어휘다. 동물원에 갇힌 신세다. 친절한 사육사를 만났다 할지라도 동물원 안에서의 행복은 한계가 있다. 친절한 주인을 만난 노예의 행복은 끝이 좋지 않다.



DSC01488.JPG


    창작자가 행복한 이유는 작품이 처음 탄생하기부터 관객 앞에 전시되기까지 전체과정을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연주자가 행복한 이유는 처음 곡을 연습할때부터 숙달될때까지 자기 자신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귀에 들리는 소리가 향기롭고, 코로 맡는 냄새가 황홀하고, 눈으로 보는 때깔이 조화로운 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내가 여기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기억하는 자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의 전율함이 존엄입니다. 울컥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레벨:3]대갈장군

2015.10.28 (19:14:57)

할말이 없네요...
[레벨:30]이산

2015.10.30 (16:21:13)

우리는  

이렇게 좋은 동렬님의 글을 공짜로 읽고

다른 많은 사람들, 그들은  

쓰레기 같은 책들을 돈 주고 사서 보고 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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