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이란 무엇인가? 컴퓨터는 반도체에 회로를 심었다. 생물은 세포에 유전자를 심었다. 자동차는 바퀴에 엔진을 심었다. 그렇다면 존재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존재는 에너지에 구조를 심었다. 모든 존재는 주어진 베이스에 어떤 질서를 심어 이룩된다. 그런데 이 부분은 그동안 과학에 의해 탐구되지 않았다. 존재의 근본에 대해서는 원자론 아이디어가 있으나 언어가 혼미하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알갱이’라는 개념은 2500년 전 데모크리토스의 낡은 아이디어다. 원자론은 물질의 존재 이전부터 공간이 베이스로 깔려있다는 전제를 숨기고 있으므로 궁극의 단위에 대한 이론이 될 수 없다. 게다가 그 원자가 어떻게 결합하고 분리되는지에 대한 별도의 이론을 추가로 요구한다는 한계가 있다. 원자론은 독립적으로 완결된 이론이 될 수 없다. 굳이 말한다면 공간이론, 원자이론, 원자의 결합과 분리에 대한 이론이 필요하며 이들 세 이론은 다시 통합되어야 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파껍질을 까듯 물질은 작게 까면 깔수록 또다른 것이 등장한다. 물리학자들은 궁극의 소립자로 렙톤과 쿼크, 게이지 보손을 말하고 있으나 이들 역시 내부에 구조를 가진다는 이론이 등장하고 있다. 과연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것이 이루어졌을까? 천만에! 이 관점은 모순이 있다. 작은 것을 모으려면 보자기가 필요하다. 공간이 그 보자기다. 이들을 결합시킬 접착제도 필요하다. 집을 짓는다 해도 벽돌만으로 다되지 않는다. 공간에 대지가 필요하고 시간에 시공과정이 필요하다. 물질과 별도로 시공간을 해명해야 하므로 이루어진 것이 전혀 없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간다면 플러스 방향이다. 마이너스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세상은 하나의 원형이 무수히 복제되어 널리 이루어진 것이며 그것은 작은 것이 합쳐진 것이 아니라 반대로 큰 것이 잘게 쪼개진 것이다. 이 관점은 시간과 공간을 별도로 해명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과학의 원칙은 쉬운 길로 간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단순한 설명이 정답이다. 천동설을 설명하려면 콤파스로 원을 70개나 그려야 한다. 지동설은 태양 중심으로 몇 개의 동그라미만 그리면 된다. 에너지 개념을 투입하면 전부 해결된다. 데모크리토스는 에너지 개념을 몰랐던 것이다. 에너지는 무규정적인 것이며 큰 것이다. 내부에 구조를 갖지 않는다. 대신 외부에 상호작용을 가진다. 원자는 플러스를 보고 에너지는 마이너스를 본다. 원자는 쪼개서 내부를 보고 에너지는 외부와 작용시켜 본다. 그러므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당신이 늘 보던 곳과 다른 곳을 봐야 한다.
1. 모든 것은 에너지로 설명되어야 한다. 철학의 첫 번째 주제는 마땅히 '존재'여야 한다. 내가 있기 전에 세상이 먼저 있었고, 세상이 있기 전에 존재가 먼저 있었다. 구조론은 먼저 존재를 해명한다. 존재는 인식에 맞선다. 인간의 인식과 대칭된다. 모든 논리의 출발점은 대칭이다. 대칭이 그 대상과 당신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도 먼저 인사를 해야 하듯이 일단 대칭시켜야 한다. 컴퓨터를 쓰려고 해도 먼저 인터넷과 연결시켜야 한다. 인간이 어떤 것을 인식하려고 할 때, 먼저 그 인식대상을 상호작용이라는 도마에 올려야 한다. 미끄러워서 계속 놓쳐버리고 도마에 올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존재다. 유령이나 헛것이나 UFO, 기氣, 각종 ‘몸에 좋다’설과 같은 맹랑한 것들은 도마에 올릴 방법이 없다. 만약 그것을 냉큼 집어서 도마에 척 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다. 헷갈리는 건 뒤에 따라붙는 것이다. 예컨대 거미를 집어서 도마에 올렸는데 뒤에 거미줄이 따라붙는다. 거미는 아침에 줄을 쳤다가 저녁에 먹는다. 거미줄은 거미의 일부인가 아닌가? 인간의 뱃 속에 사는 기생충은 인간의 일부인가 아닌가? 이런 헷갈리는 것을 구분하기 위하여 칼질을 하는데도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바로 구조론의 완전성 개념이다. 사건의 단위로 토막쳐 올리면 된다. 인과법칙에 따른 사건의 연결고리를 추적하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우주 안에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고 반드시 조금이라도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고리는 사건 속에 있다. 공간이 아닌 시공연속체에 있다. 사건을 추적하는 방법은 자연의 대칭, 비대칭성을 추적하는 것이다. 대칭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 공간은 밖에 있다. 그 바깥이 없는데도 대칭을 만들어내는 수가 있다. 카드 돌려막기처럼 잔고가 없으면서 있는척 하며 대칭시키는 방법이 있다. 내부에서 반복하여 대칭인척 하지만 사실은 대칭이 아니므로 환경이 바뀌면 깨진다. 시간의 비대칭성이다.
뱀이 또아리를 틀듯 내부에 모아놓으면 대칭이 되고 다시 뱀이 기어가듯 그 또아리를 풀면 비대칭이 됩니다. 대칭과 비대칭은 안이냐 밖이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하나의 두 가지 모습입니다. 공간은 밖으로 대칭되고 시간은 안으로 대칭되며 외부에서 에너지로 작용하여 그 대칭을 깨면 사건입니다. 사건은 에너지를 뱉어내고 원위치로 돌아가며 스스로 완결됩니다. 그렇게 원자론이 찾던 단위를 이룹니다. 이 방법은 먼저 공간을 베이스로 깔고, 다시 원자를 불러모으고, 다시 시공하여 존재의 형태를 이루는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합니다. 계에 에너지를 투입하면 자동처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