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구조를 보는 것이다. 구조로 본다는 것은 우리가 표면에 내세우는 이념, 목표, 도덕률과 별개로 자체로 돌아가는 내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우리는 선거를 ‘좋은 사람 뽑기’라고 여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좋은 사람 뽑기 이전에 뽑혀야 뽑지. 문재인이 좋은 사람이라 뽑으려 하니 천정배와 정동영이 뒷다리 잡고 늘어진다. 뽑으려 해도 안 뽑히면 안 뽑는다. 밭에 잘 자란 무가 있는데 뽑으려 하니 뽑히지 않는다. 좋은 무를 뽑는게 아니라 뽑아서 뽑히는 무를 뽑는다. 안뽑히는데 어쩌라고. 새누리는 반대다. 너무 잘 뽑힌다. 뽑지 않았는데 지 발로 기어나온다. 근데 허당이다. 그래도 유권자들은 뽑는 수고를 덜어주는 새누리를 찍는다. 농부가 밭에 도착하기도 전에 무들이 지발로 기어나와서 줄을 서 있다. 얼마나 좋냐. 선거제도의 실패다. 축구장은 기울어져 있고 선거제도는 왜곡되어 있다. 문재인을 질타한다고 답이 나오는게 아니라 왜곡되어 있는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 마찬가지다. 어디를 가나 표면의 논리와 별도로 이면의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있다. 창조론도 마찬가지인게 일단 무가 아니다. 뽑히고 싶어서 안달난 똥들이 무인척 하고 밭에 와 있다. 농부가 손을 쓰기도 전에 밭에서 살살 기어나와 경운기 탔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정신병자들은 미쳤다’고 생각하는 거다. 과연 미쳤을까? 사실은 속은 거다. 미친 척 하는 거다. 하긴 그게 미친 거다. 제 정신 있는 사람이 미친 척 하겠냐고. 징병검사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인데, 미친 척 해서 군대 안 가려고 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근데 알고보면 그런 자들이 진짜 미친 자다. 미친 자들이 자신의 미친 상태를 어필하려고 생쇼를 한다. 미친 놈들이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자신이 미쳐있는 사실을 어필하기 위해 ‘사실은요. 제가 예수님이걸랑요.’ 하고 떠들어대니 병무청 공무원이 ‘이 새끼 군대 빼려고 생쇼하네. 미친 넘이 그렇게 말을 잘 해?’ 하고 알아채는데 사실은 그렇게 생쇼를 하는 미친 넘을 현역으로 복무시키니까' 사고가 나는 것이다. 미친 넘이 말은 술술 더 잘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도박중독자들은 자신이 도박중독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럼 왜 도박하느냐? 도박할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뇌에서 호르몬이 팍팍 나와주는데 불행하겠는가? 중독자들은 그 순간이 행복한 거다. 정신병자들이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럴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는 물리적인 상황이다.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거다. 새누리당 찍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새누리가 사기집단이라는거 정확히 알고 있다. 미친 넘들은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새누리 찍으면 행복하니까 찍는 거다. 나라야 개판되든 말든 상관없는 거다. 어차피 자신은 바보이고 꼴통인데, 나라가 멀쩡하면 그게 더 배가 아픈 거다. 도박중독자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도박중독자 되어 인생이 망가졌는데 친구들은 멀쩡하게 잘 살면 배가 아픈 거다. 친구돈 빌리고 가족돈 빌려 주변을 다 망쳐놓는다. 왜? 자기만 망하면 억울하잖아. 내가 도박중독으로 망가졌을 때, 니들은 멀쩡하게 잘 살았지? 빛의 아들이 예수팔이 해서 그 때문에 기독교가 욕을 먹건 말건 자기만 행복하면 되는 거다. 행복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다.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이 그런 존재다. 그래서 슬픈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에 관심없다. 그들이 절대 다수다. 다수가 이기는 정치 게임이라면 그들이 이긴 셈이다. 그러나 진리에 관심있는 소수는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 이건 소수가 이기는 게임이니까. 기독교 신도가 교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매우 얌전하게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칼부림을 하고 있고 성매매를 하고 있다면? 교회에 도박판이 벌어져 있다면? 교회에 갔더니 신천지로 옮겨갈 14만 4천명을 모으고 있다면? 교회에 갔더니 무당이 굿판을 벌이고 있더라면? 그런 개판이라면 누가 교회에 가겠는가? 그런 잡된 것을 싹 없애버리는 교회의 권세 때문에 교회에 가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잡상인과 같다. 지하철공사가 사람들을 모아 얌전하게 의자에 앉혀놨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장사하기에는 딱 좋잖아. 너무나 고맙네. 당신이 교회를 가는 이유는 잡상인이 지하철에 가는 것과 같다. 교회는 십일조를 뜯어가는데 지하철은 부가세도 안 받아가잖아. 구조론이 사람들을 모아놨으니 예수팔이 안성맞춤이라 좋잖아. 어차피 대화는 안 통하는 것. 대화할 이유도 없는 것. 본인만 행복하면 그만인 것. 도박중독자는 도박해서 행복하고 예수팔이는 예수 욕 먹여서 행복하고 새누리 중독자는 박근혜라 행복하고. 그 사람들의 행복을 우리가 질투할 이유가 없다. 다만 대화가 안 되는 지점을 드러내면 그만인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구조론이다. 종으로 자를 수 있다는건 어떤 사람의 자의적인 분별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간을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으로 나눌 수 있다는 멍청한 생각과 같다. 백인종만 하느님이 창조한 아담의 후예이고 흑인종과 황인종은 사탄이 만들었나? 옛날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근데 아는 사람들이 그런 나쁜 짓 하지 말라고 중단시켜서 안 하는 거다. 19세기 노예시대에는 흑인은 오랑우탄이나 침판지와 같은 짐승의 무리라 인간이 아니므로 노예로 부려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종의 구분이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거다. 다윈이 여기에 넘어가서 뻘소리를 한 것은 다윈의 잘못이다. 다윈의 잘못을 근거로 창조론을 주장하면 어불성설. 19세기 때는 미개해서 누구나 오판을 했다. 그때는 유명한 정치가나 철학자들도 인종적인 편견을 태연하게 네세우던 시절이었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주장한 토마스 제퍼슨도 40명의 노예를 거느렸다. 종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며 근거는 오직 유전자 밖에 없으며, 종은 유전자조작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게다가 성별이라는 또하나의 장벽이 있다. 지구상에 어떤 동물이 수컷 한 마리만 딱 남아있다면 그 종은 멸종된 상태다. 있는데 없는 거다. 애매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시간적으로도 장벽이 있다. 양자역학까지 안가더라도 존재가 시공간과 얽혀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하느님이 누에와 나방을 각각 창조했을까? 꽃을 먼저 창조하고 재빨리 벌과 나비를 투입했을까? 무슨 말이냐 하면 왜 아기를 창조하지 않고 성체를 창조하느냐 말이다. 즉 어떤 하나의 인생 전체를 통털어 시간을 반영한 상태에서만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간을 딱 정지시키면 모든 종은 죽는다. 음악과 같다. 생명은 음악이라 시간 상에 존재한다. 우주는 음악이라 시간 타고 존재한다. 그림은 공간에 걸려 있지만 음악은 시간을 타고 흘러간다. 존재는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 상의 존재다. 강물의 흐름을 막으면 그게 호수지 강이 아니다. 전기의 흐름을 막으면 전기가 아니다. 통하지 않는 전기가 전기겠는가? 즉 존재는 시간 상에서 흐르는 존재. 호흡하는 존재, 동적 존재이므로 시간의 흐름에서 내려버린 죽은 존재는 존재가 아닌 거다. 생물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무생물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무생물도 살아서 움직인다. 빛입자를 딱 정지시키면 빛이 아닌 거다. 움직일 때만 존재이고 정지시키면 존재가 아니게 된다. 그런데 양자단위로 들어가면 모든 존재가 그렇다. 즉 우리는 땅바닥을 기어가는 한 마리 거북이를 독립시켜. 거북이의 존재를 일컫지만 엄밀히 말하면 생태계 안에서 성립하는 흐름의 마디일 뿐이며 무생물조차 그러하다. 모든 존재는 살아서 호흡하고 있으며 죽은 존재는 존재가 아니다. 기독교의 창조론이 창조한 존재는 죽은 존재다. 그래서 앞뒤가 안맞다 싶으니까 영혼을 지어낸다. 콧김을 불어넣었다는 소리인데 이건 인도 사람들이 써먹던 거짓말이다.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지 않는다. 육체가 공간이면 영혼은 시간이다. 둘은 얽혀 있으며 실제로는 하나다. 모든 생물 종은 사람의 팔과 다리가 별도로 각각 존재하지 않듯이 생태계에서 딱 분리해낼 수 없다. 하느님이 사람을 창조할 때 팔과 다리를 각각 만들어 조립했다는 말인가? 영혼과 육체를 별도로 만들어 조립했단 말인가? 시간과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조립했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는건 누구나 알고 있다. 팔, 다리, 뇌, 신경계, 위장, 심장 등을 잔뜩 만들어 놨다가 드라이버로 박았나? 염소나 닭이나 개나 소나 말은 비유하면 사람의 심장과 위장과 허파와 간과 같아서 하나도 완전히 분리해낼 수 없다. 인간은 로봇이 아니다. 생물도 로봇이 아니다. 물질도 로봇이 아니다. 우주는 로봇이 아니다. 부품을 조립하는 일은 절대 없다. 창세기 어디에 하느님이 간과 허파를 조립했다고 나오나? 간과 허파를 조립하지 않듯이, 영혼과 육체가 조립되지 않듯이, 시간과 공간이 조립되지 않듯이, 생태계도 조립되지 않는다. 생태계는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하나가 빵꾸나면 줄줄이 망하게 되어 있다. 생태계는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다. 우주 역시 생명체와 같아서 단 하나도 거기서 별도로 분리해낼 수 없다. 태양계에서 지구나 화성을 분리해낼 수 없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게 아니다. 태양과 지구를 포함한 더 큰 계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고도의 에너지 밸런스가 걸려있기 때문에 지구가 조금만 위치를 이탈해도 거기에 강한 저항이 걸린다. 우리는 지구라는 승객이 텅 비어있는 태양계 버스에 타고 있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태양계라는 버스는 승객이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8명 밖에 없을까? 천만에. 꽉 차 있다. 빈 틈이 없다. 고도의 밸런스가 걸려 있다. 버스에 빈 자리가 널널하니 이 좌석에서 저 좌석으로 바꿔도 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지구가 조금만 좌석에서 이탈해도 난리가 난다. 보이지 않는 암흑승객들이 꽉 차 있는 것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게 아니라 그 궤도에 낑겨있다. 궤도에 꽉 끼어서 조금도 위치를 이동할 수가 없다. 지구는 만원버스를 타고 있는 것이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잘못 건드리면 몰살하는 수가 있다. 왜 아토피가 생기고 천식이 생기는가? 시스템을 잘못 건드려서 그런 것이다. 회충도 없고 십이지장충도 없고 편충도 없다. 뱃속에 충들이 없으니 충들과 상호작용하던 항체들과 호르몬들이 패닉을 일으킨 것이다. 아토피 치료하려면 시골에 가서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들을 좀 집어먹고 그래야 한다. 그렇다. 우주 안에 개체는 없고 시스템이 있을 뿐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차피 인류의 99퍼센트는 크로마뇽인에서 별로 나아진게 없습니다. 조금도 진도를 빼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앞서가는 소수가 다수를 이끌어가는 거지요. 우리가 소수파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해야 합니다. 바보들이 우둔하다는건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는건 어쩌면 기운을 주는 소식입니다. 그냥 구조론만 세상에 툭 던져주면 해결되는게 아닙니다. 스티브 잡스도 처음에는 퍼스널 컴퓨터만 툭 던져주면 인간들이 다 알아서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프로그래머들 모아서 소프트웨어까지 공급해야만 했습니다. 그걸로도 부족해서 스마트폰으로 아주 떠먹여주기까지 하고서야 비로소 완전해졌습니다. 우리에게도 2라운드와 3라운드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출발점의 출발점에 서 있는 것입니다. 결코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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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합니다.
도박만화에 잘 나오는 설정 있죠.
열 명의 겜블러와 밤새 도박을 했는데 알고보니
나를 제외한 전원이 사전에 입을 맞춘 한 패거리였더라는 충격적인 사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커다란 한 패거리로 존재합니다.
이때 도박꾼은 당연히 패닉에 빠지는 거죠.
혼자서 짜고 치는 열 명의 적을 어찌 상대해?
그러나 생각해보면 도리어 간단합니다.
포커를 하는데 열 명이 짜고 친다면 이를 역이용 하여
한 방에 열 명을 황천길로 보낼 수 있다는 거.
세상은 개와 소와 당나귀, 오랑우탄 등으로 나뉘어 각각 존재한다면
각각 상대하여 이길 수 있지만 적의 숫자가 많아 괴롭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차피 이길 마음이 없으므로
'중간만 가자' 하고 이 게임판에 뛰어들어, 오랑우탄에게는 졌지만
그래도 당나귀에게는 이겼으니까 됐다는 식의 자기위안.
그러나 진짜라면 끝까지 가야 하는 법.
모두 오링시켜서 빈털터리로 내보내야 합니다.
적의 숫자가 많으면 그 많음을 역이용하면 됩니다.
많으면 세가 있고 그 세의 방향을 바꿔주면 됩니다.
자기들끼리 자중지란 일으켜서 몰살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오히려 쉬운 것입니다.
알고보니 나도 그 열 명과 한 패거리더라는 더 충격적인 사실.
개체로 상대하면 노가다가 많이 필요하지만
시스템으로 상대하면 더 쉽다는 거.
세상을 시스템으로 보는 눈을 얻어야 합니다.
모두 얽혀 있으므로 소실점 하나만 상대해주면 됩니다.
좁은 방에서 열명을 상대하는 방법은
전기 스위치를 꺼버리고 잠시 나갔다 오는 겁니다.
들어와서 불을 켜보면 자기들끼리 찔러서 다 죽어 있어요.
허영만 타짜도 이 방법으로 매조지 하더라만.
알고보니 나도 그 열 명과 한패거리더라는 사실. ㅡ이 말씀은, 저도 그 시스템의 흐름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신가요? 다시 읽어보니, 위에 이미 언급하셨군요.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에 얽혀있기에 시스템으로 보고, 시스템으로 상대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나만 세상의 흐름에서 고립되어 있고
나머지는 다 뒤로 짜웅을 맞춘 패거리라고 생각되지만
그런 불안감이 사실은 세상이 모두를 한 패거리로 끌어들이는 기술입니다.
나만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불안감을 버리고
자신이 주범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느끼는 즐거움은 행복해서가 아니라, 미쳐서 새어나온 광기스러운 웃음이라고 봐야하는 거 같아요..
정말 벼랑끝까지 가봐야 그제서야 성장 의지가 열리는걸 경험했습니다. 때때로 여전히 제 스스로를 방임하고 있을 때면, 아직 이 수준에서 살만한가 보군.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구조론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진리를 통해 얻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왕초보 단계이지만 꼭 온전히 이해하고 제 삶의 구체적인 적용까지 실천하고 싶습니다. 구조론 연구소에게 감사 드립니다. 더 배우고싶은 마음을 느끼게 하는 촉매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