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2장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아름다운 것을 (남의) 아름다운 것으로 알면 그것은 잘못이다.
왜?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판단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소리다. 그렇다면 공통성을 무시하자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인간은 '인간이기때문에' 가지는 인간만의 아름다움은 있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르다. 그러나 생물로서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같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그 근원이 생물의 이치에 기인한 것이지
사물의 이치와는 또 다른 것이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의 기준이 같음만을 두고 객관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주관이 나의 객관이라고 그 본질 자체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순수 객관은 생명체와는 별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객관적인 사물은 나와 무관하게 스스로 존재할 수 있지만
아름다움의 가치는 그런게 아니다. 나(주관)를 중심으로 나올 수밖엔 없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다. 본성상 그렇다는 얘기다.
(내가) 아름다운 것을 (남의) 아름다운 것으로 알면 그것은 잘못이다.
왜?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판단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소리다. 그렇다면 공통성을 무시하자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인간은 '인간이기때문에' 가지는 인간만의 아름다움은 있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르다. 그러나 생물로서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같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그 근원이 생물의 이치에 기인한 것이지
사물의 이치와는 또 다른 것이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의 기준이 같음만을 두고 객관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주관이 나의 객관이라고 그 본질 자체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순수 객관은 생명체와는 별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객관적인 사물은 나와 무관하게 스스로 존재할 수 있지만
아름다움의 가치는 그런게 아니다. 나(주관)를 중심으로 나올 수밖엔 없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다. 본성상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