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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1256 vote 0 2008.07.05 (14:32:21)

 

구조론 개념도

구조를 발견해 보자. 젖가락 두 짝이 구조다. 밤과 낮, 음과 양, 여자와 남자, 하늘과 땅처럼 짝지어 있는 것은 모두 구조다. 존재는 기본적으로 둘이 짝을 지어 한 쌍을 이룬다. 세상에 쌍으로 존재하는 것은 모두 구조다.

구조의 기본은 포지션이다. 포지션은 심과 날이다. 이때 심이 날에 앞선다. 심이 우두머리가 되고 날은 딸린 식구들이다. 차별이 있다. 짝을 짓고 쌍을 이룬 가운데 계급이 다르므로 포지션이 구분된다. 그것이 질서다.

심은 높고 날은 낮다. 밤과 낮이 날이면 둘을 통일하는 하루가 심이다. 음극과 양극이 날이면 전류가 심이다. 천칭저울의 축 하나가 두 접시를 통제하듯이 심 1이 날 2를 지배하는 구조로 존재는 짝지어져 있다.

칼과 도마, 종이와 연필, 활과 화살처럼 작용 반작용의 쌍을 이루는 것도 구조다. 이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일을 할 때는 짝을 짓고 쌍을 이룬다. 구조론은 그 일을 중심으로 존재의 근본을 추적해 들어간다.

자연의 기본은 대칭성의 원리다. 자연의 대칭성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성립한다. 작용 반작용이야말로 모든 구조의 자궁이다. 거기로 부터 심과 날, 쌍과 짝의 포지션과 질서가 유도되어 나오는 것이다.

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심 1이 작용 반작용의 날 2를 통제하는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자전거라면 왼쪽과 오른쪽의 페달이 날 2를 이루고 가운데 페달축 이 심 1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저울과 같다.

구조는 만유의 이면에 깃든 저울이다. 만유는 제각기 내부에 저울 하나씩을 품고 있다. 어떤 것이든 무언가 존재한다면 반드시 그 내부에 심 1과 날 2가 숨어 있다. 세상은 무수한 저울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저울의 바깥에 입력과 출력이 있다. 저울이 심 1에 날 2라면 입력과 출력을 더하여 합이 5로 하나의 구조체를 이룬다. 구조체는 일을 한다.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의 다섯이 하나의 팀으로 세팅되어 일한다.

이 구조체들이 모여서 자연계 혹은 생태계 혹은 인류문명과 같은 거대한 시스템을 이룬다. 세상은 정보≫포지션≫구조≫구조체≫ 그리고 구조체가 고도로 집적하여 이루어진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조는 내부구조다. 심 1과 날 2로 이루어진 저울이다. 외부의 작용에 대응해서 판정을 내린다. 구조체는 여기에 입력과 출력을 더한 것이다. 구조체는 일한다. 에너지 순환의 1사이클을 가진다.

시스템은 다시 그 구조체들이 집적하여 서로 성장하며 소통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구조체가 일하면 잉여를 낳고, 그 잉여에 의해 점점 숫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진보하는 것이다. 시스템을 안다는 것은 진보를 안다는 것이다.

● 구조 - 심 1+날 2로 이루어진 구조체 내부의 저울이다. 외부에서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의 판정을 내린다.

● 구조체 - 구조 3에 입출력을 더하여 5를 이루며 외부작용을 받아들여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형태로 일을 하고 잉여를 남긴다.

● 시스템 - 구조체가 일하면 잉여가 발생하여 양이 증가한다. 양이 증가하면 이탈하게 되므로 서로 연결시키고 서로 소통한다. 성장하고 발전하고 진보한다.

자연은 정보≫포지션≫구조≫구조체≫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구조는 판정하고 구조체는 일하고 시스템은 성장한다. 그러면서 보존한다. 이때 구조체의 일이 진행되는 순서대로 보는 것이 존재론이다.

존재론은 자연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자연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자연의 실상이 인간의 정신에 반영될 때는 거울처럼 순서가 뒤집혀서 거꾸로 입력된다.

그것이 귀납이다. 귀납은 보이는대로 보는 것이다. 귀납은 인식론을 구성한다. 인간의 인식이 귀납적 구조로 일어나는데 비해 사회적인 행동은 연역적 구조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인식과 행동 사이의 괴리가 발생하다.

구조론은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자연에서 배울 때는 인식론을 따라 귀납추론을 전개하고 그 배운 바를 실천할 때는 존재론을 따라 연역추론을 전개한다. 인간사회의 모든 혼선이 실상 여기서 비롯된다.

구조론은 연역과 귀납을 통일하여 모순을 바로잡는다. 존재가 대칭과 평형으로 시간과 공간을 조직하는 순서와 방향을 알고 이것이 인간의 인식에 어떻게 반영되는 지를 알아 인간과 자연을 일치시키는데 구조론의 의미가 있다.

존재론의 세계

● 존재는 정보다.

● 정보는 포지션을 가진다.

● 포지션은 심 1과 날 2로 조직된다.

● 날은 대칭으로 짝을 짓고 평형으로 쌍을 이룬다.

● 한 쌍의 내부에서 심 1과 날 2가 저울을 이룬 것이 구조다.

● 만유의 근본은 작용 반작용이다.

● 구조의 저울이 외부작용에 맞서 반작용으로 판정한다.

● 저울 3의 구조에 입력과 출력의 2가 더해져 구조체 5를 이룬다.

● 구조체는 외부작용을 받아들여 일로 처리하며 그 과정에서 잉여를 낳는다.

● 잉여에 의해 양이 점점 증가되면 구조체는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 구조의 저울은 내적정합-외적전개 성질을 가진다.

● 구조의 외적전개는 나무처럼 ┳꼴을 이루어 자란다.

● 구조체의 입출력은 자체완결-외적소통 성질을 가진다.

● 자체완결성은 한 개체, 한 마리, 한 명으로 독립적인 단위를 이룬다.

● 시스템의 진보성질은 여러 개체가 모여 거대한 생태계, 문명계를 이룬다.

● 구조론의 의미는 만유를 연결하고 낳고 소통하는 데 있다.

● 의미의 대칭성은 투수와 포수, 공격과 수비의 짝짓기로 만유를 연결한다.

● 가치의 평형성은 공 하나가 공격과 수비 양쪽을 통제하므로 잉여를 낳는다.

● 의미로 연결하고 가치로 잉여함으로써 만유는 비로소 작동한다.

● 구조론은 의미로 잇고 가치로 낳고 완성시켜 소통한다.

인식론의 세계

● 지식은 연역된다.

● 연역은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것이다.

● 최고단계의 높은 포지션을 차지해야 연역추론을 전개할 수 있다.

● 자연의 단서를 토대로 귀납추론을 전개하여 최고 포지션에 도달할 수 있다.

● 최고 포지션에서 하나의 보편적 원리를 얻으면 이를 개별적 사실에 두루 적용함으로써 지식이 대량복제가 가능한 것이 연역추론이다.

착상하기

세상이 레고블럭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블럭의 집합도 블럭 한 개를 닮는다. 세상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원자의 모습은 원자의 집합인 은하계의 모습을 닮는다. 부분과 전체는 닮은 꼴이다.

26차원 초끈이론이 주장된다. 세상이 진동하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왜 끈이어야 하는가? 양자론이 기존의 원자개념을 해체했기 때문이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어야 하는데 양자론은 이를 부정한다.

양자론의 성과에 의해 소립자는 무한히 작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작은 것은 점이다. 그런데 점은 크기가 없다. 무한히 작은 점을 아무리 모아도 이렇게 큰 세상이 구축되지는 않는다.

원자의 점 개념으로는 우주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점으로 안 되니 선이 나왔다. 26차원 초끈이론이다. 그러나 선으로도 여전히 부족하다. 면으로 올라간다. 11차원 M이론(막이론) 나왔다.

원자의 점에서 초끈이론의 선, 막이론의 면으로 진보했다. 이제 입체이론만 나오면 된다? 그러나 입체는 자체적으로 정보를 전할 수 없다. 입체로도 부족하니 한 차원 더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밀도의 세계다.

밀도의 차원에서 비로소 정보가 소통된다. 완전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상은 다섯 차원이 존재한다. 점, 선, 각, 입체는 불완전하고 4차원 밀도에서 완성된다. 원자-초끈-막-입체(?)로 부족하고 밀도의 구조론이 해답이다.

구조체이론이 통일장이론을 완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초끈이론을 발상하게 한 점의 크기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구조는 대칭을 낳고 대칭은 점≫선≫면≫입체의 일방향성과 달리 양방향으로 전개된다.

초끈이론의 진동하는 끈 개념에서 끈의 진동하는 성질은 구조론의 대칭성 원리에 따른 양방향 전개 성질과 닮아있다. 수는 1,2,3...으로 커지면서 동시에 0.1≫0.01≫0.001...로 작아진다. 양쪽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기존의 점≫선≫면≫입체 개념은 1,2,3,4..로 커질 뿐 작아지지 않아 양방향 전개가 아니다. 원자≫초끈≫막이론도 마찬가지다. 구조론은 점≫선≫각≫입체를 넘어 밀도 개념에서 비로소 양방향 전개를 성립시킨다.

세상을 좌표로 설명한다면 모눈종이와 같다. 모눈의 한 칸이 1이라면 곧 원자다. 구조론의 밀도 개념은 그 빈 속을 채워넣는다. 기존의 원자, 초끈, 막이론 개념은 그물로 지은 집이다. 뼈는 있는데 살이 없다. 속이 비었다.

골조를 올릴 수 있으나 벽체를 채울 수 없다. 1, 2, 3..으로 전개될 뿐 그 1과 2 사이가 텅 비었다. 구조론의 밀도개념으로 그 속을 채운다. 구조는 사이다. 사이를 채운다. 완성된다. 통일장이론 완성의 비전이 얻어진다.

부분과 전체는 닮는다. 세상이 원자의 집합이라면 우주는 은하계처럼 생겼을 것이고 세상이 레고블럭의 집합이면 우주는 凸처럼 생겼을 것이다. 세상은 구조체 (┳)의 집적이므로 우주는 (┳)꼴로 생겼다.

기존의 원자개념을 기호로 표시하면 ○다. 속이 비었다. 초끈 이론은 반대다. 겉이 비었다. 껍질이 없어 보호되지 않는다. 구조는 원자의 ○ 속에 초끈의 ┳가 들어있다. 겉과 속을 모두 해결한다.

우리는 점, 선, 각, 입체를 볼 뿐 밀도를 보지 못한다. 실제로는 평면을 볼 뿐 입체는 뇌에 의해 2차적으로 해석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인간에게 투시능력이 있다면 밀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중력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구의 모습에서 (┳)꼴을 찾을 수 있다. 가운데 심이 있고 가장자리로 날개가 있다. 저울을 이루었다. 표면에 에너지가 드나드는 입력과 출력의 문이 있다.

겉으로 보면 지구는 ○지만 중력으로 보면 지구는 (┳)다. 살펴보면 나뭇가지에도, 강줄기에도, 산맥에도, 도로망에도, 전자회로에도, 자동차의 메커니즘에도, 생물의 몸에도 무수한 (┳)들이 들어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빛과 그림자

인간은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직접 파악할 수 없다. 전모를 볼 수 없다. 관측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뿐이다. 현상은 그림자다. 거울에 비쳐 좌우가 바뀐 것이다. 그 상은 왜곡된 것이다. 진짜가 아니다.

인간은 그림자를 볼 뿐이다. 그림자가 있다면 어딘가에 빛이 있다. 찾아나서야 한다.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추론의 방법이 소용된다. 추론을 위하여 단서가 필요하다. 단서를 어디서 얻을까? 자연의 규칙성에서 얻는다.

구조론은 자연의 규칙성인 ‘팩트≫패턴≫로직≫메커니즘≫패러다임’으로부터 유도한 존재의 질서다. 보이는 그림자의 배후에서 그림자를 만드는 태양과 빛과 바늘과 스크린들 사이의 숨은 질서를 포착하기다.

인간의 지식은 자연의 실재≫신체감관으로 지각≫규칙성 발견≫정보의 집적에 의한 질서≫귀납추론 전개로 인식론 완성≫존재론으로 전환≫자연의 전개순서에 맞게 연역≫지식의 대량복제로 진행된다.

● 자연을 관측함..  태양≫빛≫바늘≫스크린≫그림자

● 지각하여 단서를 얻음..  색깔, 냄새, 소리, 맛, 촉감

● 비교하여 규칙성 발견..  팩트≫패턴≫로직≫메커니즘≫패러다임

● 추론하여 질서를 발견..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

● 귀납추론 전개로 인식..  지각≫수용≫분석≫종합≫응용

이에 인식론은 완성된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이를 존재론으로 전환시켜야 지식의 대량복제가 가능하다. 존재와 인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인식론의 순서를 뒤집으면 존재론이 된다.

인간에게 보이는 것은 현상 뿐이고 만져지는 것은 물체뿐이다.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꿰뚫어 보는 지혜가 소용된다. 인식에는 얼마든지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를 보고 만진 것은 눈과 손이며 그 전달된 정보를 해석하는 것은 뇌다. 결국 몇 단계를 거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이 중요하다. 우리는 눈으로 본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빛의 파동을 뇌가 해석한 것이다.

우리는 사과가 빨갛다고 믿지만 실로 사과에는 빨강이 없다. 빨강은 뇌가 만들어낸 상이다. 염색체가 투명하여 보이지 않으므로 과학자가 염색하듯이 인간의 뇌는 보이지 않는 빛의 파동에 색을 입혀 염색한다.

우리가 본 것은 자연의 실재가 아니라 뇌가 연출한 것이다. 그 과정에 왜곡이 있고 착시가 있다. 인간이 자연에서 얻은 정보는 모두 그림자다. 그림자가 있으면 어딘가에 빛이 있다. 그 빛을 추적해야 한다.  

우리는 물체를 직접 만져보고 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물질의 강력과 약력, 전자기력, 중력, 마찰력 중에 하나를 만진 것이다. 인간이 얻은 정보는 모두 간접적인 정보다. 표면의 사실과 이면의 진실이 있다. 추론해야 한다.

어떤 정보도 직접 얻을 수는 없고 추론의 근거가 되는 단서를 얻을 뿐이다. 단서로부터 추론하는 과정에 왜곡이 일어난다. 인간은 조금씩 사실을 잘못 알고 있다. 존재론과 인식론을 통일하는 구조론에 의해 바로잡힌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고 했다. 연역의 세계에서는 정보의 대량복제가 가능하다. 자연으로 부터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의 질서를 얻고 이를 토대로 연역하여 인간은 대규모의 지식체계를 구축한다.

연역하기 위해서는 먼저 연역할 수 있는 최고단계의 높은 포지션을 차지해야 한다. 그것은 정보가 고도로 집적된 것이다.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의 순으로 정보는 고도화 된다.

최종 원리의 단계에 도달하고서야 바르게 연역할 수 있다. 공간구조에서는 점≫선≫각≫입체≫밀도다. 밀도에서 연역해야 바르다. 물질에서는 양≫운동≫힘≫입자≫질이다. 질에서 연역해야 바르다.

그 이전 단계에서 연역하면 실패다. 상은 왜곡된다. 연역하기 위해 최초의 단서를 토대로 정보를 집적하여 고도화 시켜가는 과정이 귀납추론이다. 곧 지각≫수용≫분석≫종합≫응용이다. 최종단계에서 응용하면 연역이다.

이러한 인식 메커니즘의 최초 출발지는 자연이며 그것은 태양≫빛≫바늘≫스크린≫그림자다. 그런데 인간은 이를 뒤집어 반대로 본다. 반영된다. 그림자≫스크린≫바늘≫빛≫태양의 순서로 거꾸로 포착된다.

인간의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에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각으로 비친다. 이 모든 것이 그림자다. 신체감관으로 지각되는 정보는 모두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믿기 어렵다. 거기서 규칙성을 포착해야 진실의 문이 열린다.

그림자를 보고 곧 사실을 인식했다고 믿으면 헛것을 본 셈이다. 그것이 인식의 단서가 될 지언정 그 자체로 인식은 아니다. 그 단서들을 비교하여 거기서 ‘팩트, 패턴, 로직, 메커니즘, 패러다임’의 규칙성을 유도한다.

규칙성을 집적하여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를 유도하고 인간의 뇌에 지각≫수용≫분석≫종합≫응용의 순으로 구축한다. 이를 뒤집어 자연의 존재론으로 완성할 때 비로소 실천할 수 있다. 앎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연역과 귀납

자연의 어떤 현상이 있다면 먼저 그 현상을 있게 하는 상층부의 조건들이 전제로 있다. 그림자가 보인다면 그 이전에 빛이 있었다. 우리가 목격한 세계는 그림자의 세계다. 추론하여 빛의 세계를 알 수 있다.

● 연역(존재론의 세계) - 빛에서 그림자로 전개(위에서 아래로)

● 귀납(인식론의 세계) - 그림자를 통해 빛 발견(아래에서 위로)

연역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질서다. 연역이 진짜다. 연역이 정보를 대량복제하여 지식을 성립시킨다. 그러나 연역하려면 상층부 질서에 도달해야 한다. 밑바닥에 깔려 있는 보편원리를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귀납은 연역의 출발점인 원리에 도달하기 위하여 뇌가 정보를 집적하여 고도화 하는 과정이다. 교과서적 지식은 실험과 증명의 귀납추론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인간의 뇌가 실제로 지식을 생산하는 방법은 대부분 연역이다.

실험은 단 한 가지를 실험할 뿐이나 그 실험의 결과로부터 굉장히 많은 지식을 연역해 낸다. 그러기 위해서 실험결과로 얻은 정보들을 정밀하게 세팅해야 한다. 원리를 뽑아내야 한다. 그것이 귀납이다.

귀납은 대개 낮은 수준의 정보를 처리한다. 그러나 깨달음에 의해 귀납적 정보가 연역적 구조로 재질서화되면 어느 순간에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알게 되는 것이다.

사과를 만져보고 사과가 무겁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귀납이다. 이는 낮은 수준의 정보처리다. 사과가 무겁다는 사실에서 보편적 원리인 지구 중력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 연역이다. 이는 높은 수준의 정보처리다.

깨달음이 없으면 연역할 수 없다. 연역하지 못하면 아무리 암기해도 그것으로 시험문제나 풀 수 있을 뿐 참된 지식이 되지 않는다. 그 지식을 현장에서 사용하지 못한다. 지식은 귀납인데 행동은 연역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고 배워도 딴당에 투표하는 실패를 저지른다. 민주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쓸데없이 뇌 안의 공간이나 차지할 뿐이다. 귀납은 참된 지식이 아니다.

세상은 빛과 그림자다. 연역은 빛을 포착하고 귀납은 그림자를 포착한다. 인간은 그림자의 세계에 산다. 그림자는 뇌가 임의로 해석하여 연출한 가짜다. 자연의 참 모습이 아니다. 재질서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존재론 - 배경≫실체≫연관≫이행≫귀결 (방향은 높은 질서≫낮은 질서)

● 인식론 - 응용≪종합≪분석≪수용≪지각 (방향은 낮은 질서≫높은 질서)

존재론은 자연의 모습이고 인식론은 뇌 안에서의 정보처리다. 인식론은 존재론과 반대다. 인간사회의 모든 혼선이 여기서 비롯된다. 인간은 자연의 맞은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에 맞선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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