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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220 vote 0 2009.03.13 (23:05:13)

깨달음은 개념의 획득이다.

‘개념이라는 이름의 논리지도와 나침반’

문제가 어느 레벨에서 조명되느냐다. 개인행동 차원이냐 아니면 천하의 대의 차원이냐다. 신해철은 개인행동의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문제로 여긴다. 그러나 그건 그의 혼자 생각일 뿐이다.

신해철은 말한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그건 니 생각이고, 누가 물어봤냐고?’

개인생각을 말하면 안 된다. 대의를 끼고가야 한다. 문제는 다른 차원으로 비약한다. 신해철이 학원을 홍보하면 학원에 시간을 뺏기는 학생이 1차 피해자이고, 학원비를 뜯기게 된 학부모가 2차 피해자다.

그의 주변에 있다가 신망을 잃은 범진보세력이 3차 피해자다. 분명히 피해자가 있다. 신해철은 피해를 구제할 능력이 없다. 그가 추궁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 3자의 피해를 유발했기 때문에.

비틀즈라면 어떨까? 히피다운 문란한 행동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을 힘들게 한다. 역시 피해자가 있다. 피해자가 비틀즈를 공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비틀즈는 역사에 의해 용서된다.

왜 비틀즈는 되고 신해철은 안 되는가? 나는 늘 말해왔다.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그런데 왜 신해철의 유아독존은 잘못인가? 유아독존 아니라 유아적 치기였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에게는 편들어줄 사람이 없다. 비틀즈의 행동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된다. 젊은이들의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 그 이후로 태어나는 새로운 세대는 명백히 비틀즈의 도움을 받는다.

비틀즈가 만들어놓은 따뜻한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며 태어난다. 비틀즈 이후로 세상은 확 바뀌었다. 68학생혁명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편이기 때문에 용서된다.

분명히 누군가는 비틀즈로 하여 이익을 보았고 그렇게 이익을 본 사람 중심으로 거대한 세력이 만들어진다. 그 세력이 엄호해준다. 전인권이 대마초를 해도 엄호해 주는 세력이 있다.

그러나 어떤 코미디언이 도박을 하면 아무도 엄호해주지 않는다. 도박은 개인비리일 뿐. 인간해방이라는 천하의 대의를 끼고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해철은 착각한거다.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자기생각대로 설치는 천둥벌거숭이는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학원광고는 개인행동이다. 연예인의 해외원정도박과 같은 개인비리, 혹은 신해철 개인의 돌출행동을 옹호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마약을 하든 히피짓을 하든 천하의 대의와 부합하고 역사의 편에 설때 옹호해주는 것이다. 신해철은 그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된 개념이 없었다. 어떤 개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혀 개념이 없다.

시골 농부라도 개념이 콱 박혀 있는 사람이 있고 대학교수라도 개념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의 의미를 헤아려주기 바란다. 지난번에 말한 ‘지성’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를 개인차원에서 해석하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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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죽었을 때 진승과 오광이 먼저 일어났다. 농민의 호응을 얻어 곧바로 대군을 이끌게 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개념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 의심하여 다투다가 진나라 군대에 패하여 죽었다.

항우도 개념이 없었지만 다행히 범증이 조언해 주었다. 지성은 시스템이다. 조언해주는 세력을 끼고 가야 한다. 조언을 들어야 한다. 공분을 일으키고 공론을 따라야 한다. 천하와 함께 가는 길이어야 한다.

초나라 왕의 후손을 찾아 회왕으로 옹립하였다. 새로운 천하에 대한 밑그림을 그린 것이다. 항우가 일시 성공한 것은 약간의 개념이 있었기 대문이다. 그러나 부족했다. 그는 회왕을 죽이고 말았다.

새로운 천하에 대한 밑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곳곳에서 야심가들이 들고 일어났다. 왜 야심가들이 일어났을까? 항우가 새로운 천하의 질서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념이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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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나 ‘신(神)’이라는 개념을 순수하게 ‘하나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터이다. 구조론 역시 순수하게 개념으로, 관계망으로, 하나의 논리지도로 이해해야 하는데.. 사실이지 설명하여 납득시키기가 어렵다.

인간은 원래 개념적 사고에 약하다. 원초적으로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개념은 논리지도 찾기다. 그런데 도무지 지도를 못 찾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절대경로가 아닌 상대경로를 이용한다.  

전라도 장흥이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쭉 내려가서 목포 찍고 강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그림이 딱 나와주는건데 그게 안 된다. 고속터미널 가서 버스만 타면 도착한다는 그림으로 대체한다.

건물을 찾아가되 동서남북의 방향감각으로 찾아야 한다. 눈에 띄는 표지를 이용하여 찾는 사람이 있다. 지하철 타고 가서 무슨 백화점 옆을 살펴본다는 식이다. 이게 상대경로다. 개념적 인식은 절대경로다.

교육도 중요하다. 어떤 일의 전체과정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집단적 과제수행 형태로 배워야 한다. 정답만 찍어주는 교육을 하니 상대경로에 의존한다. 답을 찾아가는 중간과정을 생락하니 개념잡는 법을 모른다.

모든 존재는 고유한 주소지를 가진다. 반드시 모태가 있고 자궁이 있고 족보가 있다. 모든 존재는 자궁에서 유도된 존재이다. 유도과정에 따른 논리지도가 원리다. 지도 안에서 자기 포지션 찾기가 개념이다.

어떤 개념이 아니라 개념 자체의 개념을 잡아야 한다. 수학은 전부 개념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기호가 있고 공식이 있으니 이해한다. 원리는 이해하지 못해도 공식에 대입해서 계산은 잘 한다.

계산만으로는 부족하다. 원리를 알아야 변화에 대응한다. 2등을 하려면 정답만 잘 찍어도 되고, 계산만 잘해도 되지만 일등을 하려면, 정상에 서려면, 한 분야의 리더가 되려면 원리 안에서 개념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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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논리지도가 있다. 지도가 있으므로 주소도 있다. 인터넷이라면 www로 시작되는 IP주소가 있다. 하나의 존재가 자궁에서 유도되어 탄생되는 절대경로가 있다.

원리가 지도라면 개념은 나침반이다. 길을 알고 찾아가는 것이 개념이다. 개념이 없이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하나는 노예의 방법이고 둘은 패거리 방법이다. 노예의 방법은 남 하는데로 따라하는 것이다.

후진국은 특히 이 방법을 쓴다. 한국은 후진국이므로 개념없이도 잘 살아왔다. 그러나 무리의 맨 앞에 가는 사람은 지도와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 한국은 꼴찌였으므로 일본이 앞서가는 길을 뒤따라가기만 해도 되었다.

이게 버릇이 되어서.. 아주 고질이 되어서 항상 어디에 붙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자신이 주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느 편에 붙을 생각만 하다 보니 사고가 극단적으로 흐른다.

이쪽 아니면 저쪽 식으로 극단적이다. 이재오나 김문수처럼 이쪽에서 열심히 하다가 저쪽에 가서도 열심히 한다. 그 중간에서 고민은 필요없다. 어차피 노예는 이 주인을 섬기든, 저 주인을 섬기든 열심히 섬기면 밥은 먹으니까.

두번째 패거리 방법은 적을 만드는 것이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원수집안이 있었다. 원수가문이 없으면 행세를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적을 만들어놓고 적이 가는 방향의 반대로 가는 것이다.

김영삼이 항상 김대중 반대로만 돌듯이. 이게 수법이 되는 이유는 적을 만들면 공동체 내부의 긴장이 높아져서 구성원의 지혜가 한곳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문제가 공동체의 문제로 확대된다.

불안해서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게 되고 그 과정에 답이 찾아진다. 적이 공격하면 방어하고 적이 움츠리면 공격한다. 이렇게 하면 주도는 못해도 대충 중간은 할 수 있다. 거지의 처세술이 된다.

비겁하다. 누군가의 뒤에 줄서는 노예근성 버려야 한다. 적을 만들어 개인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수법 버려야 한다. 이들은 상대경로다. 상대경로가 아닌 절대경로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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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은 경우를 아는 것이다. 갑인지 을인지 알고 합당한 처신을 하는 것이다. 국가나 제도 혹은 조직이나 시스템에 함부로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를 집단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국가, 제도, 조직,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환원시키지 않는 것이다. 개념이 없는 사람은 이게 뒤죽박죽이 된다. 옳은 말도 곧잘 하지만 그것은 우연히 옳은 편에 붙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오마이뉴스 등에서 볼 수 있다. 옳은 말을 곧잘 하는데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영논리를 앵무새처럼 복사해내는 사람. 이런 사람이 변절한다. 자기생각을 말한적 없으니 생각을 바꾸어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

이재오, 김문수들은 이념을 바꾼 적 없다. 원래 이념이 없었으니까. 단지 회사를 옮겼을 뿐이다. 한나라당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밥먹고 사는게 그 쓰레기들의 원래 목적이었으니까.

개념의 유도경로가 있다. ● 원리≫개념≫가치≫의미≫사실

공동체의 삶의 양식에 대입하면 ● 신의 완전성≫진리≫역사≫진보≫문명

개인의 삶에 대입하면 ● 나의 정신≫자아≫삶의 목적≫삶의 의미≫나의 스타일

최종적으로는 삶의 형태 곧 삶의 양식이다. 그것은 스타일이다. 스타일의 완성이 인간이 사는 이유다. 그 스타일은 인류문명과의 소통에 의해 얻어진다. 그렇게 나의 삶을 관통하는 논리지도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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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주민이 관아에 신고를 한다. 사또가 병력을 이끌고 마을에 들어온다. 호랑이를 잡기 전에 소부터 잡는다. 마을 사람들은 소를 잡아다 바치고 술을 바치고 밥을 해대야 했다.

사또는 호랑이는 잡지 않고 애꿎은 마을 사람을 잡아다 곤장을 친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깨닫는다. 돈을 모아서 호피를 구해다 바친다. 사또는 호피를 앞세우고 호랑이를 잡았다며 의기양양 개선한다.

이후로 혹시 원님이 마을에 나타날까 호랑이가 마을을 지키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울며 외치기를 ‘누가 처음에 호랑이 나타났다고 관아에 신고했는가?’ 개념이 없었던 거다.

정약용의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도 있다. 두 청년이 평소에 친한데 하루는 심하게 다투어 주먹이 오가게 되었다. 한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어떤 사람이 살인사건이라며 관아에 신고를 했다.

이게 아전들 귀에 들어가면 일이 커지게 된다. 살인자로 몰린 청년이 자살해 버렸다. 마을을 구하기 위해 자살한 것이다. 문제는 더 커졌다. 아전들이 이 사건을 문제삼아 마을에서 끝내 삼만냥을 뜯어갔다.

마을은 폐허가 되고 주민은 유랑을 떠났다. 마을에 글 아는 양반이 한 사람 있었다면 어떨까? 사또가 마을에 나타날라 치면 먼저 협상을 해야 한다. 상황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서울의 아무개 정승과 교분이 있는데 사또가 문제를 잘 해결하면 대감께 알려서 포상이라도 받게 해드리겠다고 압박해야 한다. 사건을 개별적으로 파악해서 안 된다. 전부 관계를 맺고 있다.

항우가 범증의 충고를 받아들여 초회왕을 옹립함으로써 새로운 천하에 대한 밑그림을 선포해놓고 문제를 풀어가듯이 전체적으로 상황을 통제한 다음에 일을 진행해야 한다. 무개념 각개약진은 안 된다.

외곽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서 닫힌계를 만들어놓고 안으로 조여가며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한 개인이 천하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나는 백성이니 신고만 하면 되고, 사또는 높으니까 호랑이만 잡으면 되고, 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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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길을 갈 것인가?

패거리의 길을 갈 것인가?

완전성의 길을 갈 것인가?

개념이 없는 자는 노예의 길을 가고 패거리의 길을 간다. 생각이라는 것을 안해도 되니 참 편리하고 좋다. 다만 2등까지는 쉽게 가는데 1등은 못한다. 후진국에서는 잘 먹히는데 선진국은 못된다.

http://gujoron.com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09.03.16 (05:34:16)

깨이지 않으면 힘든 부분입니다.

함께 깨이지 않으면 실현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계몽의 차원이 아니라, 미학의 차원에서

흡인되었으면 좋겠군요.

그게 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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