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897 vote 0 2009.02.10 (23:38:23)

[구조론 연구소 ‘이안의 색.계’글의 댓글인데 내용을 추가하려고 합니다.]

참된 사랑은 더 높은 가치에 눈 뜨게 합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더 큰 세계를 바라보게 하고, 더 너른 세계로 몸바쳐 나아가게 합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하여간 저는 그랬습니다.

처음 어떤 사람의 포즈에 관심을 가졌을 때, 고향을 떠나 목숨을 걸고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기로 결의. 공주를 사랑하게 된 기사가 모험여행을 떠나듯이. 동기부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고도 더 큰 세계에 눈을 뜨지 못했다면 그것은 삼류들의 너절한 신세타령일 뿐입니다. 사람을 강하게 단련시키고, 더 높은 세계를 향하여 고독하게 혼자 나아가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술잔이나 기울이며 몽롱한 표정으로 넋놓고 있겠죠. 어차피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 깨달음을 구하는 이가 도를 얻으면 장자가 설파했듯이 계곡물에 발 담그고 노는 일 외에 더 있습니까?

춘향만 하더래도 기생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넘어 인권의식을 깨닫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고독한 인간선언. 왜? 사랑의 의미는, 자신의 낮고 추한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겠다는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거룩하지 않아도 고귀한 척 해야 합니다. 그게 사랑의 진실. 몽룡은 과거에 합격해야 하고 춘향은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해야 합니다. 몽룡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왜냐하면 진정 사랑하는 몽룡으로 하여금 ‘천한 기생따위와 사랑에 빠져서 허둥대게 하는 일’ 만큼 한심한 일은 없기에. 스스로 고귀해지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몽룡은 기생과 놀아난 시정잡배일 뿐.

오스카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언급되듯이, 가장 천한 사랑은, 귀족남자를 사랑하게 되자말자 완전히 긴장을 풀어버리고, 마치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배우가 연기를 포기해 버리는 그런 사랑이죠.

가짜입니다. 진짜라면 사랑은 배우가 더 뛰어난 연기를 하게 되고, 작가가 진정한 작품을 쓰게 되고, 화가라면 걸작을 그리게 되고, 연주자가 진정한 음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동기를 부여하는게 사랑이지요.

좋은 남자 만났으니, 원하는걸 가졌으니, 이제 자신을 돌볼 필요는 없어졌고, 남편이나 섬기면서, 자식이나 키우면서, 자신의 매력을 팽개쳐 버리고, 꼴은 아줌마처럼 해가지고설랑은, 뻔뻔해져설랑은.

남편자랑 자식자랑으로 수다나 떨어대고. 옷도 아무렇게나, 몸매도 아무렇게나, 음식도 아무거나, 남편과 자식을 위해 오직 헌신. 이렇게 망가지는건 최악입니다. 사랑을 가장한 거래지요.

큰 거래 한건 댕기고 맘편하게 놀겠다는 심보. 몸은 힘들어도 맘은 편하다면 가짜. 진짜라면 몸은 편해도 마음은 아슬아슬한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몸고생이 아니라 마음고생이 진짜입니다.

누군가를 위한 희생은 사랑이 아닙니다. 희생은 크게 한번 양보해주고 이후로 맘편하게 살기 위한 수단일 뿐. 한번 큰 거래 성사시키고 난 다음 두고두고 이자받아먹으며 맘편하게 살겠다는 얄팍한 계산.

팽팽한 긴장을 끝까지 끌고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한다면 결코 인생의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배우라면 연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 앞에서 자신의 고귀함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흔히 언론에 보도되는 여배우의 ‘사랑을 위해서 꿈을 접었다’ 최악의 거래지요. 그 남자는 기껏해야 속물 하나의 생계를 책임지는 부담을 얻었을 뿐. 그러니 팽현숙의 미래를 말아먹은 최양락은 가짜.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연인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왜냐하면 그 남자 혹은 그 여자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최고의 사람과 사랑했다는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섹스를 천번하고 뽀뽀를 만번하고 자식을 백명 낳아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사랑은 다만 자신을 온전히 허락하는 것. 시간의 지속이나 접촉의 강약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런 따위는 어설픈 리바이벌에 불과.

단 1초라도, 손끝만 스치더라도 자신의 전부를 들어 상대의 전부를 끌어내는 온전한 소통을 하는 것. 그 이상은 없습니다. 사랑은 몸으로 하는 것도, 마음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의 완성’으로 하는 거지요.

진정한 사랑은 최후의 순간에 신이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희생도 아니고, 헌신도 아니고, 애국도 아니고, 자기 인생을 ‘신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맹하고 아둔한 여자를 좋아하지요. 이른바 백치미라는 거. 비겁하기 때문입니다. 가짜지요. 같이 망가져서 아기나 쑥쑥낳고 잘먹고 잘사는게 속물입니다. 사랑은 자신이 원하는걸 얻는게 아닙니다.

‘마음’이라는 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좋은 악기는 언제라도 최고의 연주자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연주자가 원하는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소리를 내야 진짜입니다.

여자도 그렇고 남자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최고의 음을 끌어내는 것. 그러므로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팽팽한 긴장을 가져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니면 김기덕이 왜 활을 만들었겠습니까?

http://gujoron.com


[레벨:0]나그네

2009.02.11 (16:40:40)


 " 사랑의 의미는, 자신의 낮고 추한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 ! "
 
   화~ ...끝내줍니다 ^^
[레벨:0]나그네

2009.02.11 (16:57:53)


" 진정한 사랑은 최후의 순간에 신이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 ! "

" 그것은 희생도 아니고, 헌신도 아니고, 애국도 아니고 !  "
" 자기 인생을 ‘신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드는 것 !  "

[레벨:6]현진

2009.02.11 (18:39:01)

아하~~

그랬구나...

내가 끊임없이 나를 시험에 들게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모습을 위한 스스로의 몸부림이었구나...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09.02.11 (21:11:33)

철없던 시절에 몰랐습니다.

왜 그 혹은 그녀가 내 마음을 몰라주나

술잔이나 기울였습니다.

돌아와 제 자신을 바라보니

처절하게 무너져 있었습니다.

긴장이 그 팽팽한 떨림이 없이

사랑이 존재하지도 않음을

그렇게 바닥을 치고서야 알게 되는겁니다.

눈떠보니 설국이더군요...

실은, 그 혹은 그녀가 생의 목표가 아니라,

제 스스로가 거듭남이

그게 눈물나게 감사한 아픔이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0.09.28 (19:24:55)

동렬님도 이런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퍼가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설의 어원 update 김동렬 2024-12-25 4231
1971 구조론 쉽게 이해하기 김동렬 2009-02-13 13671
» 삼류사랑 진짜사랑 5 김동렬 2009-02-10 17897
1969 창작의 의미 김동렬 2009-02-04 14794
1968 시계의 구조 image 김동렬 2009-02-02 26116
1967 구조론 학교 image 김동렬 2009-01-30 15347
1966 자기(自記) 2 김동렬 2009-01-28 15844
1965 스펙 좋은 여자의 농담 3 김동렬 2009-01-27 15840
1964 한국인의 뿌리는? 2 김동렬 2009-01-24 16557
1963 레고블럭의 구조 image 1 김동렬 2009-01-23 17699
1962 옛글 다시보기 김동렬 2009-01-20 15436
1961 질이란 무엇인가? 김동렬 2009-01-20 15286
1960 편지 보내기 image 김동렬 2009-01-19 13197
1959 이현세의 실패 image 김동렬 2009-01-15 20092
1958 끝까지 가보기(수정) 김동렬 2009-01-15 12119
1957 자람의 성공과 이현세의 실패 image 김동렬 2009-01-14 16726
1956 질을 이해하기 image 김동렬 2009-01-12 15076
1955 구조론 학교 image 김동렬 2009-01-08 12854
1954 세 가지 악독에서 벗어나길 김동렬 2009-01-07 15098
1953 지구 온난화 주범은 우주선? 김동렬 2009-01-06 18692
1952 감을 잡는 훈련 김동렬 2009-01-01 16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