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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119 vote 0 2009.03.02 (23:38:14)

자본이란 무엇인가?

-지난번 글 ‘경제는 사기다’와 연결됩니다.-

자본주의란 한 마디로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이라 하겠다. 인간의 노동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스스로 가치를 창출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일정한 조건에서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과 또 ‘돼지가 새끼를 치는 것은 봤어도 돈이 새끼를 치는 것은 못봤다’며 아랍에서 고리대금업을 금지시켜버린 마호멧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마르크스와 마호멧은 틀렸다. 노동이 아니라 돈이 돈을 낳는다. 돈이 새끼를 친다. 그래야만 한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돈은 죽는다. 새끼를 낳지 못하는 돈은 반드시 죽는다. 죽어서 휴지가 된다. 이건 절대적이다.

경제는 시스템이며 시스템은 엔진과 같다. 엔진은 계속 돌아야 한다. 출력측의 입력전환이 있어야 하므로 출력이 입력보다 커야 한다. 입력과 출력이 같으면 부하가 걸려서 결국 시동은 꺼진다.

사람이 노동하여 돈 버는 시스템은 옛날부터 있었다. 그러나 돈이 돈 버는 시스템은 명백히 근대의 산물이다. 그 역사가 길지는 않다. 금융제도, 주식회사 제도, 보험제도는 18세기 이래 불환권의 등장과 함께 생겨났다.

그러나 중국의 진상(晉商)들이 서구 자본주의 시스템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여, 주주가 자본을 투자하고 결산기에 이윤을 배당받는 근대적인 경영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던 것을 보면, 돈이 돈 버는 현상은 18세기 이래 유럽에서 생겨난 근대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자연법칙이라 하겠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벌기 때문이다. 사람의 논리가 아니라 돈의 논리를 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돈의 논리가 무엇이냐다. 위험관리다.

‘돈이란 무엇인가? 또 자본이란 무엇인가’가 궁극의 문제로 된다. 자본은 인간이 생산해놓은 물화나 혹은 그 물화를 생산하기 위하여 투입한 노동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권리’를 숫자로 표시하여 나타낸 것이다.

누차에 걸쳐 말했듯이 ‘권리’는 저울이다. 저울이 기울어지는대로 결정한다. 저울의 결정이 문제다. 저울이 무엇을 결정하는가? 연동을 결정한다. 연동이 문제다. 연동에 따라 관리되어야 할 위험이 증대하기 때문이다.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던 원사사회에서도 영토가 있다. 영토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 권리가 있다. 그것은 노동의 결과가 아니며, 인간이 생산한 물화가 아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권도 일종의 권리이며, 이를 숫자로 표기하여 교환가능성을 나타내면 곧 자본이 된다.

자본은 권리다. 권리는 일(work)에 의해 탄생하며 일의 연동법칙이 권리를 낳는 근본이다. 인간이 일하면 그 일에 연동되어 아직 결정되지 않는 미래의 성과에 대한 권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권리란 원인과 결과 사이의 시간차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미지의 다양한 결과적 현상에 대해 원인측이 미리 인과관계를 규정시켜 확인해 둔 것이다.

구조론이 자본을 잘 설명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물질에 있어서는 1+1의 값이 2가 되지만, 구조에서는 집적구조를 조직하기에 따라 3이 될 수도 있고 4가 될 수도 있다. 도마에 무를 올려놓고 칼로 썰되 1회의 칼질에 1개의 토막을 얻는다.

그러나 종이를 반복하여 절반씩 접은 다음 단 1회의 칼질로 무수한 카드를 생산할 수 있다. 이때 종이를 몇 번 접었느냐에 따라 칼질 1회로 생산되는 카드의 숫자가 많아지지만 동시에 그 칼질이 잘못될 경우 자원 전체를 못쓰게 된다.

구조론에 따르면 모든 일은 기본적으로 5회 집적된다. 하나의 일은 다섯차례에 걸쳐 종이가 접힌다. 구조는 정확하게 다섯이 있다. 막대는 5, 바퀴는 25, 저울은 125, 엔진은 625, 컴퓨터는 3125회 종이를 접는다. 집적한다.

종이를 접은 횟수와 집적구조의 효율은 비례하며 만일 일에 실패할 경우, 칼을 잘못 휘두를 경우 위험 역시 같은 비례로 증가한다.

고립된 마을에 백 명이 산다고 치자. 숟가락 한 개를 100명이 공유하면 효율은 백 배로 증가하지만 숟가락이 부러지면 백 명이 밥을 굶어야 하므로 위험 역시 백 배로 증가한다.(공유개념의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에도 같은 본질은 명백히 존재한다. 익스프롤러 하나를 네티즌 90프로가 공유한다. 그만큼 망할 위험이 있는 거다.)

이때 집적구조에 따른 효율과 함께 가는 위험을 숫자로 표시하여 나타낸 것이 돈이다. 돈이 새끼를 치는 이유는 그 위험이 관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큰 이윤은 큰 권리이며, 큰 권리는 큰 효율과 큰 위험의 통제다.

왜 위험이 따르는가? 연동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은 다른 일과 연동된다. 사(士) 계급은 원래 문사가 아니라 무사였다. 사(士)가 전쟁하여 지키지 않으면 공(工)이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할 수 없고, 공이 생산하지 않으면 상(商)이 그 소금을 돌아다니며 팔 수 없다. 앞의 결정이 뒤의 결정을 지배한다. 이것이 권이다.

이때 연동되는 횟수가 종이를 접은 횟수다. 종이를 5회 접으면 이러한 연동이 5회 일어난다. 그만큼 위험이 커진다. 즉 사(士)가 염전을 뺏기면 공(工)도 상(商)도 동시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사가 큰 몫을 가져간다.

돈은 권리다. 권리는 집적구조의 연동원리에 따른 효율과 위험의 통제권이다. 위험은 통제되어야 하므로 권리는 특정한 누군가(개인이나 법인)에 주어져야 하며 잠재적인 위험의 증대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여력을 사전에 비축해야 하므로 이자가 존재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발달사는 효율의 증대에 따른 위험의 분산관리기술 발달의 역사다. 미국경제가 망가진 것은 위험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위험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이면에 축적되고 있는 긴장이 있다. 신자유주의가 그 긴장을 극대화 시켰다. 효율과 위험은 한 쌍이므로 효율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위험이 있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경제는 요소투입에 의한 최적화-구조화≫효율과 위험의 동시 증대≫시간차 획득≫생산력 혁신≫재질서화(패러다임의 변화)로 1 사이클을 그린다. 이때 위험이 증대되므로 시간차가 소진되면 필연적으로 경제는 붕괴한다.

필연적인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이윤을 모아서 보험으로 대비하는 한편 정해진 시간 안에 생산력을 혁신하여 재질서화에 성공해야 한다. 시장이 새로운 리더를 선출하여 그쪽으로 패러다임을 옮겨가는 것이다.

저울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권리의 교체다. 돈은 그렇게 돌고 돌아야 한다. 멈추면 죽는다. 돈이 돈을 낳지 못하면 반드시 죽는다.

생산력의 혁신이 극도로 향상된 미래사회에는 육체노동의 강도가 축소하는 대신 그 저울의 교체는 활발해져서 인간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판단과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육체노동은 감소하지만 인간이 결정해야 할 일의 절대량은 결코 줄지 않는다. 컴퓨터를 시켜서 대신 결정하게 해도 역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총결정량은 끝없이 증가한다.

부자가 돈을 함부로 써버리면 위험관리 포기다. 결국 망한다. 부자가 빈자에게 돈을 나눠줘 버려도 역시 위험관리 포기다. 나눠줄 것은 마땅히 나눠줘야 하지만 자본 자체는 일정한 규모로 보존되어야 한다.

자본의 과도한 집중은 위험의 과도한 집중이다. 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위험 역시 규모가 커지므로 자본은 일정한 정도로 집중되어야 하지만 그럴수록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자본의 집중과 분산이 동시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증권제도다. 주가가 오르면 자본이 집중되지만 오너가 멍청이라는 사실이 시장에 공개되면 주가가 폭락해서 자동으로 분산된다. 주가상승은 옳은 결정에 힘을 몰아주는 것이며 주가하락은 잘못된 결정에 따른 위험분산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인류의 집단지능으로 함께 힘을 모아 만든 것인데 왜 그에 따른 이익을 대자본가가 독식하는가이다. 이 부분은 정치가 해결할 일이다. 자본의 증식 시스템은 다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자본이 새끼를 낳지 않으면 시스템은 사망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란 인간이 힘을 모아 저절로 돌아가는 커다란 엔진(그러나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고장나게 되어 있는)을 하나 만들어놓고 그에 따른 잉여를 비축하여 그 고장의 위험에 대비하며 한편으로는 옆구리에 빨대를 꽂아 조금씩 빼먹는 것이다.

빼먹는 이유는 인간도 그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자본을 비축하여 시스템 붕괴의 위험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을 소비하여 양질의 교육받은 인간을 미리 양성하여 두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대비의 과정이 항상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집 아이가 더 양질의 인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비행위도 재투자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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