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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05 vote 0 2025.03.20 (18:32:01)

    한국 칼럼은 재미가 없다. 일본 칼럼은 더 재미없다. 필자가 신문을 안 읽어서 요즘 어떻게들 쓰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20년 전에 그랬다. 외국 칼럼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유독 한국과 일본만 이상하다. 도무지 기본이 안 되어 있잖아. 이것들이 연구도 안 하나?


    칼럼이라는 것이 건물의 기둥인데 가로쓰기 하는 신문에 세로 기둥을 친 것은 신문사의 편집방향과 관계없는 외부 필진의 기고라는 말이다. 즉 칼럼은 맥락 없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반 도입부가 중요하다. 특별한 기술이 들어가 주는 거다.


    영화를 보더라도 초반 5분에 임팩트를 던져야 한다. 헐리우드는 특별한 기교를 쓴다. 초반에 주인공이 빌런을 퇴치하는 멋진 액션을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서 빌드업을 다시 한다. 초반 5분은 관객을 긴장시키는 의도적인 장치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좋은 칼럼의 방법


    1. 첫 문단에 어떤 완결된 사건을 투척한다. 정 할 이야기가 없으면 삼국지 한 장면을 긁어와도 된다. 

    2. 그다음은 신문 기사를 긁어온다. 이때 장소와 시간과 숫자와 이름이 들어간다. 이 부분은 지루하다.

    3. 옳고 그르고 간에 분명한 가치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한다. 공간적으로 방향전환을 해야만 한다.

    4. 결정된 것을 현실에 접목시켜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분석해 준다. 이는 시간적으로 풀어주는 거다.

    5.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고 구체적인 액션을 찍어준다. 닥치고 이재명 찍어!


    나쁜 칼럼의 방법


    1. 첫 문단에 신문 기사를 긁어와서 주소, 숫자, 이름 따위 딱딱한 것을 쓴다. 

    2. 초반부터 서론, 본론, 결론을 요약해서 자기 할 말을 다 해버린다. 

    3. 2번에 데이터를 추가하여 분량을 늘리고 했던 이야기 또 한다.

    4. 3번에 빠진 것을 추가하여 분량 늘리고 했던 이야기 또 한다. 


    오마이뉴스 기술


    1. 조중동 신문 기사를 긁어온다.

    2. 밑줄 그어가며 한 줄씩 일일이 반박한다. 

    3. 좌파의 강령에 맞추어 데이터를 왜곡한다. 

    4. 미리 정해져 있는 좌파 진영논리 집단사고를 복붙한다. 

    5. 지도부에서 정해준 아전인수 모범답안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첫 문단에 할 말 다 해놓고 했던 이야기 또 하며 데이터를 추가해서 분량 늘리기를 한다. 이러니 재미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입장이 진영논리에 아전인수로 정해져 있다. 의외성은 없다.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글을 꼭 잘 써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글에 구조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구조로 독자들을 긴장시켜야 한다. 어순만 바꾸어도 독자가 긴장한다. 문장을 짧게 끊어주는 것도 긴장유발에 중요하다. 앞에 나왔던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면 안 된다. 접속사를 많이 써도 피곤하다.


    이름이 '삼천갑자동방삭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인 사람이 있었다. '삼천갑자동방삭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홍길동치치카포사리사리센터세브리깡무두셀라'를 만났다. '삼천갑자동방삭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가 '홍길동치치카포사리사리센터세브리깡무두셀라'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되면 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이름이 짧지만 아랍 왕자를 만나버리면 그야말로 뭣되는 거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가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얀'을 만났는데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가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얀'에게 말했다.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얀아 네 동생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요즘 잘 있다냐? 이름 쓰다가 신문사 망한다. 


    특히 일본넘들은 이름을 자꾸 바꿔서 사람 헷갈리게 만든다. 히요시마루, 기노시타 토키치로, 하시바 히데요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죄다 같은 사람이다. 도대체 우리가 이걸 왜 일일이 외어야 되지? 이것들은 서비스 정신이 없다고. 이거 외는 재주로 설대 붙겠다.


    최충헌 관직명 '벽상삼한삼중대광개부의동삼사수태사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상장군상주국병부어사대판사태자태사'로 받아쳐 버려? 최충헌이 거쳐 간 관직명을 모두 쓰시오. 주관식 문제다. 이건 사망이다. 


    글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 긴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대칭구조를 넣어야 한다. 자문자답하면 된다. 글쓰기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다시 트집을 잡아 문제를 제기하고 다시 해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연쇄고리를 만들어 사슬을 이어가는 것이다.


    연역적인 글쓰기라야 한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연역적인 글쓰기는 형을 따라가는 것이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초반에 어떤 사건의 덩어리가 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망치와 모루를 준비하고 난도질을 치는 것이다. 모루는 역설에 의해 인간의 의도와 반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긴장이 유지된다. 뻔한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칼럼이 망하는 이유는 남의 견해를 긁어와서 진영논리, 아전인수, 모범답안, 데이터 왜곡, 받아치기, 밑줄긋기, 인상비평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남이 빨갛다고 하면 나는 파랗다로 받아치는 게 최악이다. 그런데 다들 그런다. 초딩 반사놀이에 본부놀이. 유치찬란.


    유시민이 말했다. 박근혜는 단독범이고 윤석열은 공범이 있다고. 이건 다른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자기를 조금 더 높은 위치에 두어야 이런 형이 보인다. 그냥 받아치려고 궁리하면 이재명이 칼 맞았다 > 긁혔다. 데이터 왜곡에 아전인수다.


    김두관, 유승민, 김부겸, 박용진, 이낙연, 김동연 등은 레토릭이 죄다 아전인수다. 룰을 내게 유리하게 바꿔 달라는 거다. 어린아이 떼쓰기. 지도자의 관점을 보여준 적이 없다. 신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김갑수가 간 큰 짓을 하다가 박살이 났는데 어쨌든 신의 관점이다. 김갑수는 신의 신까지 못 갔지만 신 흉내를 낸 것이다. 신은 인간이 복종하며 책임을 신에게 떠넘겨도 피곤하고 인간들이 리버럴해서 기어올라도 피곤하다.


    우파는 신에게 매달려서 신을 곤란하게 하고 좌파는 까져서 신에게 대든다. 그러므로 신은 중립기어를 박고 김새론 편이나 김수현 편을 들지 않는다. 내막을 알아보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인다. 김갑수는 그걸 들킨 거다.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조건 인간들이 좀 치고받고 사고도 좀 치고 너저분하게 놀아야 신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 이러는 거다.


     칼뱅의 예정설.. 신은 인간의 선악에 관심 없다. 자신의 계획을 따른다. 그 계획은 인간이 서로 싸우다가 똑똑해지는 것이다. 다만 선한 인간이 주변과 잘 협력하므로 더 똑똑할 확률이 높다. 


    자신을 초월자 포지션에 두면 많은 것이 보인다. 그게 연역적 사고다. 어느 쪽이 옳다고 판정하는 게 아니라 여야가 서로 싸워야 흥행이 된다는 거다. 서로 박터지게 싸우라고 억지로 유도하면 김갑수 된다. 주최측의 개입은 약자를 밀어주는 플러스 개입이 아니라 강자의 흐름을 끊는 마이너스 개입이라야 한다.


    실패하는 개입 - 약자에게 무임승차권 제공

    성공하는 개입 - 강자에게 규칙과 도덕 준수 요구


    국가도 이와 유사한게 있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 1조는 신의 눈높이에서 정해졌다. 일본의 덴노는 신이다. 신은 인간의 구심점인데 구심점을 만들려면 인간이 적당히 흩어져 있어야 한다. 도덕국가로 모이면 사회주의로 치달아 폭주한다. 인간들이 말을 안 듣는다.


   1. 미국이 유독 성문제에 관대한 것은 연방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사회의 분위기가 엄격해지면 연방탈퇴 압력이 증대된다. 바이블 벨트가 어떤 짓을 하는지 보면 안다. 유럽은 그 자체로 일종의 연방이다.


    2. 일본은 왕이 300여 개의 다이묘 소국으로 분열된 열도를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왕실의 의미를 강조하려고 3S작전을 쓴 결과가 빠찡코, 프로야구, 섹스중독이다. 정치무관심 원심력을 생산한다.


   신은, 엘리트는, 왕은 사회의 다양성을 원한다. 인간이 흩어져야 자신이 구심점이 된다. 노론이 독점하면 왕권이 약화된다. 선비가 독재하면 왕권이 약화된다. 그러므로 왕은 탕평책으로 신하들을 경쟁시키고 종교도 경쟁시킨다. 특정 종교의 독점은 위태롭다. 그런 눈높이의 차이에서 좋은 칼럼이 만들어진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cintamani

2025.03.21 (09:07:37)

< 시사 리트윗에 달린 동렬님 글을 여기로 옮깁니다. >


접속사를 쓰면 안되는 이유


접속사를 쓰면 안 된다. 이런 말은 흔하다. 그런데 왜 접속사를 쓰지 말아야 하는지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읽고와야 한다. 하드보일드 문체를 알아야 한다. 접속사를 쓰면 안 되는 이유는 신문사 때문이다. 신문 연재는 분량만큼 원고료를 준다. 문장을 늘려야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바다는 내용이 짧은데 원고료를 얼마나 받아야 하는가? 신문사와 연재계약을 했다면 망하는 거다. 왕년에는 길게 늘어지는 글이 유행했다. 원고료 쳐받으려고. 헤밍웨이는 부자라서 돈에 관심이 없었던 거다. 짧게 문장을 끊어주면 화자의 개입이 최소화 된다. 권투중계라 하자. 알리가 쳤다. 그러자 포먼이 받아쳤다. 그래서 알리는 피했다. 이러면 안 된다. 그건 아나운서의 개입이다. 접속사를 넣으면 객관적인 문장이 안 된다. 헤밍웨이는 쓸데없는 묘사를 빼서 독자가 현장을 떠올리게 했다. 바다의 풍경은 작가가 말하면 안되고 독자가 생각해야 한다. 즉 접속사는 자기소개형 문장이 되는 것이다. 알리가 쳤다. 포먼이 받아쳤다. 알리는 피했다. 이래야 관객이 알리와 포먼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접속사가 들어가는 이유는 그래야 작가 입장에서 쓰기 편하기 때문이다. 즉 접속사는 독자에게 필요없지만 작가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을 쓴 다음 접속사를 대거 지우면 된다. 


알리가 쳤기 때문에 포먼이 피하고 받아쳤다. 

알리가 쳤다. 포먼이 피했다. 포먼이 받아쳤다.


두 문장을 비교해보자. 화자가 독자를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엇인가? 접속사는 조리있는 문장에 필요한 것이다. 즉 작가에게는 논리가 필요한데 독자는 필요없다. 작가는 논리라는 고리로 문장을 낚는다. 낚시꾼이 낚았다. 그래서 물고기는 낚였다. 여기서 그래서를 빼면? 물고기가 낚였는지 작가는 알수 없다. 작가에게는 접속사가 매우 필요하다. 생각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즉 모든 문장의 자기소개는 자기 머리를 굴리기 위해 필요한 장치인 것이다. 접속사가 없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글을 못 쓴다. 접속사가 인과관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독자는 필요없다.


이 글에서 헤밍웨이는 사실 필요없는데 굳이 끼워넣는 이유는 독자를 긴장시키는 장치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헤밍웨이 하면 다들 꺼벅 죽잖아. 접속사는 생각의 연결을 나타내므로 논리적인 문장에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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