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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69 vote 0 2024.11.20 (12: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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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의 판전은 강한 에너지의 압박이 걸려 있다. 초딩이 몽당연필로 꾹꾹 눌러쓴 느낌이다. 자획들은 위태롭게 낑겨서 서로를 붙들고 의지하고 있다. 닫힌계가 걸려 있다. 전체의 에너지는 균일하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에 해당한다.


    고흐의 그림과 같다. 잘 쓴 글씨는 아닌 듯한데 이상하게 매력이 있다. 고흐의 그림은 모작이 많다. 표절하기가 쉽다. 이 정도는 누구나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그림이 진짜다. 


    이 영화를 보면 나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걸작이다. 스필버그가 한동안 상을 못 받고 고전한 이유다. 스필버그 영화를 보면 감독은 타고나야 하는 것이고 일반인은 절대 영화감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는 나도 영화감독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준다.


    이문열 소설은 기교를 타고난 장인이 쓰는 것이고 한강의 소설은 그렇지 않다. 채식주의자로 노벨상을 받았다고? 그렇다면 나는 폭식주의자로 가버렷!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진짜다. 평범한 것 같은데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런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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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의 침계는 하나의 에너지 중심이 드러난다. 행진하는 군대와 같다. 빠른 속도감이 느껴지면서도 대오가 무너지지 않는다. 탄탄하다. 강철대오가 속도를 잃지 않는다. 구조론으로는 입자에 해당한다.


    잘 쓴 글씨지만, 잘 쓴다는 점을 드러내는 글씨다. 글씨는 딱 이렇게 쓰렸다 하고 모범을 보인다. 흥행과 비평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욕심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판전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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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교의 글씨는 힘이 있지만 속도가 없다. 에너지의 중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구조론으로는 힘에 해당한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 가는 길에 대웅보전 글씨를 보고 떼버리라고 했다는데. 글씨를 잘 보면 일부러 붓을 떨었다는 혐의가 있다. 유배가 풀리자 돌아가는 길에 현판을 도로 달아놓아라고 했다는데 글자 한 자씩 따로 보면 중심이 느껴지지 않지만 모아놓고 보면 중심이 느껴진다. 자획들이 견고하게 서로를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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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가 이삼만을 글씨를 보고 '노인장은 이 고장에서 밥은 먹겠습니다' 해서 창암의 제자들이 분노했다는데. 일부러 붓을 떨어서 기교를 부린 점을 깎아내린 것이다. 이는 뽕짝이 관객에게 아부하기 위해 목청을 떠는 것과 같다. 청승을 떠는 짓이다. 뽕짝이 음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신파가 예술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일부러 목을 떨고 일부러 애를 울린다. 일부러 동물을 구덩이에 빠뜨려놓고 구해주는 장면을 찍어서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악당과 같다. 귀신을 부르는 글자다. 귀신 나오면 좋지 않다. 괴목 같은 거 좋지 않다. 악몽을 꾸게 만든다. 


    사실 글씨는 잘 쓴 것이다. 문제는 의도다. 붓을 떨어야 가격을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떤다는 게 문제다. 자연스럽게 떠는 것은 인정된다. 일부러 떠는 넘은 용서가 안 된다. 구조론으로 보면 창암의 글씨는 운동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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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이다. 길거리 혁필 아저씨를 흉내내고 있다. 글자로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냥 그리라고. 영화도 마찬가지다. 스크린에 글자를 쓰면 안 된다. 주제의식이나 사회비판은 글자로 하라고. 칼럼을 쓰라고. 자연스럽게 주제의식이 묻어나는 것은 괜찮은데 에너지의 중심과 떨어져서 겉돌면 안 된다. 영화는 이미지가 주가 되고 감독의 의도는 나중에 슬며시 생각나야 한다. 


    예술의 본령을 벗어나 계몽의 의도를 들키면 안 된다. 그것은 비열한 권력의지를 들킨 것이다. 사람을 놀래킬 의도, 가격을 올려받을 의도, 관심을 끌 의도를 들키면 안 된다. 글자는 글자로 승부해야 한다. 구조론으로 보면 량에 해당된다. 이런 것도 많이 만들면 돈은 만진다. 그런데 그림이라고 우겨야 한다. 


    예술과 비예술의 간극은 크다. 예술은 정성이 아니고, 노력이 아니고, 손재주가 아니다. 기이해도 안 되고, 돈이 들어도 안 되고, 난해해도 안 된다.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아이디어 없는 자가 몸으로 때우려고 노력타령을 하는 것이다. 


    1. 장인이 한땀 한땀.. 피곤하다.

    2. 타고난 손재주.. 구경거리냐?

    3. 천번 만번 각고의 노력.. 종놈들이나 할 일.

    4. 이색적인 볼거리.. 소인배들의 관심사.

    5. 뒤통수를 치는 아이디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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