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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540 vote 0 2022.03.03 (17:47:10)

    집을 짓는다면 설계도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림을 그린다면 스케치부터 해야 한다. 완성된 형태를 머리 속에 그려놓고 거기서 빠진 부분을 하나씩 채워 넣는 것이다. 수학공식은 완성되어 있다. 미지수를 찾아서 빈칸을 채우면 된다. 사건의 완전성에 도달한 다음 문제와 비교하여 빠진 것을 채우는 방법으로 생각을 진행해야 한다. 이 방법을 쓰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다.


    보통은 그냥 머리에 힘 주고 앉아 있다. 두통을 앓을 뿐이다. 명상을 한다며 눈 감고 있다. 잠이 쏟아질 뿐이다. 체계적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에게 생각은 어쩌다가 저절로 되는 것이다. 능동이 아니라 수동이다. 그 방법은 패턴의 복제다. 패턴을 감지하면 뇌가 흥분한다. 오랫만에 만나면 반갑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흥분한다.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면 설렌다. 생각을 하는 방법은 패턴에 반응하는 뇌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우연히 아이디어를 떠올릴 확률을 높일 뿐 의도적으로 생각을 진척시키지는 못한다.


    사유는 대칭을 따라간다. 대칭은 좌우의 대칭이다. 대칭된 둘 중에서 한쪽 끝단을 손에 쥐고 있으면 상대편의 반응이 온다. 바둑을 둔다면 그렇다. 상대가 왼쪽에 두면 나는 오른쪽에 둔다. 상대가 저쪽으로 가면 나는 이쪽으로 간다. 이런 식의 사유는 배우지 않아도 곧잘 한다.


    돼지의 주둥이를 말뚝에 묶어놓으면 돼지는 최대한 뒤로 다리를 뻗댄다. 이때 주인이 돼지의 불을 깐다. 인간의 사유라는 것이 돼지의 불까기와 같다. 맹목적으로 상대의 반대로 움직인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하며 인간들이 흑백논리에 이분법으로 가는 이유다. 그렇게 편을 가를 때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생각은 못하는데 반사놀이는 곧잘 한다.


    인간이 생각을 못하면서도 제법 문명에 도달한 이유는 이러한 장군과 멍군, 자극과 반응의 게임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경쟁이 붙거나 전쟁을 하면 둔재도 천재로 변한다. 전쟁을 많이 한 나라가 발전하는 이유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경쟁과 대결의 형태로만 작동하는 이유다. 경쟁이 없고 대결이 없으면 바보가 되는게 인간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호작용구조에 태워주면 인간들은 생각을 꽤 한다. 그러나 이는 의도적인 생각이 아니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자극과 반응에 의해 우연히 사유에 이른다. 환경이 복잡한 나라가 흥하는 이유다. 사막이든 정글이든 환경이 단순하면 인간은 퇴행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가 유리하다.


    환경이 단순하면 상호작용이 감소하고 뇌의 사용이 중단된다. 외부에서 자극이 들어와야 인간은 생각을 하게 된다. 더 강한 자극을 찾다가 보면 극단주의로 흘러가서 결국 전쟁을 하게 된다. 문명의 덫이다. 은자의 나라 조선처럼 조용하게 망하는 나라는 있어도 조용하게 숨어서 발전하는 나라는 없다. 어떻게든 말썽을 일으켜야 흥한다.


    문제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존하다가 점점 바보가 된다는 점이다. 멕시코인들은 신발코를 뾰족하게 하는 취미에 경쟁이 붙어 있다. 1미터가 넘는 길다란 구두코를 자랑한다. 넓은 모자챙을 가진 솜브레로와 잘 어울린다. 우스꽝스럽게 되는 것이다. 남들이 비웃는 줄 모르고 말이다. 파키스탄 운전기사는 버스와 트럭을 괴상한 그림으로 장식한다. 유치하게도 말이다. 부족민은 쓸데없는 문신을 몸에 새긴다. 흑인들은 문신을 새겨봤자 보이지 않으므로 피부에 상처를 내서 칼로 문신을 새긴다. 한국인들은 앞머리로 이마를 완벽하게 가리는 찐따머리를 해서 기어코 등신인증을 받아내고 만다. 등산복을 입고 해외여행을 가서 국제망신을 당하는 등의 괴상한 짓을 일삼는다.


    이런 바보현상은 문명의 중심과 교류가 적은 고립된 지역에서 잘 관찰된다. 어떻게든 삽질을 하고 자신이 바보라는 증거를 만들고야 만다. 의젓한 주연이 아닌 맛깔난 조연이 되는데 집착한다. 몽룡이나 춘향은 시켜줘도 안 하고 어떻게든 방자나 향단이 되려고 한다. 메인요리가 아닌 양념이 되려고 한다. 대들보가 아닌 서까래가 되려고 한다. 역시 무의식의 작용이다. 스스로를 변방의 쓸모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중앙을 위한 소모품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러다가 소모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흑인들이 바지를 엉덩이 아래로 내려서 입는다거나, 히피들이 괴상한 짓을 한다거나, 거리를 온통 낙서로 덮어버리거나 인간들이 노숙을 하는 것도 그러한 무의식의 발로다. 형편이 어려워서 노숙하는게 아니다. 인간에게는 원래 원시인의 노숙본능이 있다.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인간이 삽질을 하는 이유는 삽질을 하도록 시키는 무의식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종교도 무의식에 지배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나라는 국민의 90퍼센트가 종교를 믿는다고 한다. 그래도 국가가 유지되는게 신기하다. 혹은 귀신을 믿거나 독재자를 섬기거나 그에 준하는 괴상한 짓을 하고야 만다. 역시 무의식의 요구다.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대신 삽질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각종 괴력난신을 추종하고 온갖 뻘짓을 일삼는 이유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무의식의 요구 때문이다. 귀신이든, 초능력이든, 사차원이든, 텔레파시든, 음모론이든, 안아키든, 무한동력이든 인간들이 다양한 개소리를 지어내는 이유는 환경의 반응을 끌어내서 그것으로 생각을 대신하게 할 의도 때문이다. 환경과 대칭을 세우고 그 한쪽 끝단을 쥐고 있으려는 심리다. 거미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거미줄의 진동을 감지한다. 인간은 사회의 반응을 감지한다. 팽팽한 긴장상태가 유지된다. 반응이 없으면 반응이 올 때까지 삽질을 해본다. 점점 괴상해진다.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반응하는 존재가 된다. 결국 바보가 되기에 성공한다. 인류를 위한 소모품으로 자신을 희생시킨다.


[레벨:3]야뢰

2022.03.03 (18:26:15)

종교가 비합리적이지만 동렬님말씀보니 인간의구조상 믿음(신)을 가질수밖에없는 존재인가봅니다. 아이러니하게 종교를 차라리 인정하는것이 합리적인 선택으로보입니다.마치 수학의 허수처럼.. 슬슬 활동하기 좋은계절입니다 구조론회원님들 건강하시고 투자대박도 나시고... 

[레벨:6]나나난나

2022.03.03 (19:20:13)

포경수술(할례)같은 풍습도 마찬가지 이유로 하는 뻘짓같은데요. 문신이나 머리모양이나 복장, 버스나 트럭의 장식, 낙서, 음모론 설파 등은 주변 사람한테 보여지는거지만 이건 보여줄 수도 없는건데 이 풍습이 생겨난 원인이 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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