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죽음 정치의 본질은 상황의 통제다. 그것이 다스림이다.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내가 강해져야 한다. 총을 통제하려면 명사수가 되어야 하고 칼을 통제하려면 무사가 되어야 한다. 더 쉬운 방법은 없을까? 만만한 상대를 고르면 된다. 큰 칼은 버겁고 작은 칼이 좋다. 센 활은 버겁고 약한 활이 좋다. 그런데 작은 칼로 적을 물리칠 수 있을까? 약한 활로 호랑이를 잡을 수 있을까?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약한 활을 고른다. 왜? 강궁을 당길 힘이 없기 때문이다. 작은 칼을 고른다. 왜? 칼솜씨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망한다. 적을 물리치는 것은 나중이고 일단 활부터 들어야 한다. 버거워도 강궁을 고른 다음 실력을 기르는게 맞지 않을까? 그렇게는 못 한다. 국민은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다 같이 모여서 함께 실력을 길러야 하는데 그 문제를 의논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람들은 독재자를 좋아한다. 당하기 전까지는. 독재자는 한 명이다. 한 명은 약하다.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긴다. 약한 활을 고르는 심리다. 비겁하게 말이다. 권력자가 여럿이라면? 지들끼리 짜고 국민을 물먹인다. 무사가 칼을 장악하지 못하고 칼에 휘둘린다. 그래서 숫자가 많은 국회는 인기가 없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폭파하겠다고 큰소리치면 허경영도 박수받는다. 윤석열 독재자가 인기를 얻는 이유다. 윤석열은 약점이 많아서 고분고분할 거라고 믿는다. 다루기 쉬운 작은 칼을 고른 것이다. 보통 이렇게 망한다. 트럼프 정치에 대한 호기심이다. 트럼프는 당내에 세력이 없다. 이명박은 기업인 출신이라서 약하다. 박근혜는 고아라서 약하다. 국민은 정치인의 손발을 잘라서 바보로 만들어놓고 정치를 잘하기를 기대한다. 도박을 하는 것이다. 이런 때 안철수 등판해 주신다. 나는 손도 없고, 발도 없고, 사람도 없고, 세력도 없고, 아주 등신이니까 대통령 시켜줘. 이런다. 약한 국민에게는 약한 지도자가 제격이잖아. 반복되는 비극이다. 세력이 있는 정치인은 기득권화되어 국민을 배반한다. 고립된 정치인은 폭주하거나 혹은 말라 죽는다. 문제는 타자성이다. 독재자는 남이다. 왜 남이 내게 잘해주기를 바랄까? 내가 직접 실천하지는 않고? 민주주의는 국민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좋은 정책이라도 남에게 맡기면 안 된다. 내가 직접 해야 한다. 약한 활을 고를 것이 아니라 내가 팔힘을 키워야 한다. 작은 칼을 고를 것이 아니라 검술을 연마해야 한다. 강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고 그 강한 대통령을 강한 국민이 통제해야 한다. 어떻게? 깨어 있는 시민의 결집된 힘으로. 집단지성이 강한 대통령을 통제할 수 있다. 강한 국민에 강한 지도자가 올바른 방향이다. 약한 국민이 약한 지도자를 선출했다가 결국 지도자를 죽이거나 전직을 감옥에 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비겁하다. 언론도 비겁하고, 국민도 비겁하고, 정치인도 비겁하다. 국민이 집단지성으로 뭉쳐 강해지려고 하자 겁먹은 자들이 있다. 비명을 지른다. 국민독재라는 말까지 나왔다. 586 독재라는 말도 나왔다. 왜 그들은 국민이 강해지는게 두려울까? 왜 약한 국민이 약한 지도자 뽑아놓고 도박정치를 하다가 잘 안 되면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싶어 할까? 역시 타자성의 문제 때문이다. 내 손으로 정치인을 뽑아놓고 각자 생업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뽑은 정치인을 내가 핸들링해야 한다. 여기서 갈린다. 정치인을 핸들링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언로가 있어야 한다. 미디어를 장악해야 한다. 패거리가 필요하다. 숫자가 많아야 한다. 페북에 모여라. 집단지성으로 밀어보자. 깨어있는 시민들은 연대하라. 아뿔싸! 큰일이다. 화이트칼라 좌파들은 시간이 남아돌아서 하루종일 페북질만 한다는데 나는 공장에서 일하느라, 농장에서 소 키우느라 페북 못하니 손해다. 나는 무식해서 끼지 못하잖아. 나는 먹고 사는게 바빠서,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못하는데 내 빼놓고 지들끼리 인터넷에서 그러고 논다니 야속하다. 섭섭하다. 울화통이 터진다. 내가 직접 정치를 핸들링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다. 공정하게 너희도 정치에 관심을 끊어라. 보수생각이다. 문제는 변화다. 변화는 현장에서 일어난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나서게 된다. 공정하게 나도 손 떼고 너도 손 떼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정치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이득을 보는건 물리적 현실이다. 주식도 아는 사람이 먹는다. 부동산도 아는 사람이 먹는다. 정치도 아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농사도 아는 사람이 더 많은 수확을 가져간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625가 일어나자 군인이 득세해서 군바리가 대통령이 되고, 인터넷이 등장하자 화이트칼라가 득세해서 민주당이 유리하다.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집단지성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다수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전진한다. 정의당은 소수고 민주당은 다수다. 소수파가 옳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소수파는 정치의 주체가 아니다. 남이다. 진중권에게 정치는 남이다. 그들은 활을 고를 뿐 자신의 팔힘을 키우지 않는다. 다수파는 주체다. 팔힘을 키운다. 강한 지도자를 키우고 더 강한 집단지성으로 통제한다. 소수파가 오판하면 오판이다. 다수파가 오판하면 시행착오 끝에 검술이 늘어난다. 약한 국민이 약한 대통령을 뽑아놓고 전직을 감옥 보내는게 관례로 굳어져서 문재인을 감옥에 보내려고 역시 약점이 많은 약한 윤석열을 띄우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비참하게 굴 것인가? 무능한 기업인이 흔히 하는 짓이다. 유능한 부하는 내보낸다. 무능한 아첨꾼에게 권력을 줬다가 일이 잘못되면 목을 자르고 다른 무능한 아첨꾼으로 대체하기를 반복한다. 결국 죽는다. 국민이 강해져야 한다. 강한 국민의 등장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장수는 명마를 무서워하지 않고 무사는 명검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타자성 - 약한 논객이 통제할 수 있는 약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주체성 - 강한 대통령을 뽑고 더 강한 국민의 집단지성이 통제해야 한다. 내 것은 강할수록 좋고 남의 것은 약할수록 좋다. 남의 것을 이용하려다가 거꾸로 당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나를 성장시켜 가는 과정이다. 나는 깨어 있는 시민의 집단지성으로 존재한다. 나의 성장을 무서워하지 말라. |
항상 떠먹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