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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980 vote 1 2020.09.13 (10:59:15)

      

    인간은 대단히 어리석다.


    프로야구 통계에 babip이라는 것이 있다. 타자가 페어지역으로 날린 공 중에서 안타의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다. 홈런과 파울, 삼진을 빼고 그라운드에 떨어진 땅볼과 플라이볼 중에서 안타가 되는 비율이 바빕이다. 타자는 바빕이 높을수록 좋고 투수는 낮을수록 좋다.


    1999년 보로스 맥크라켄이라는 대학원생이 특이한 발견을 했다. 메이저리그 A급 투수들의 바빕이 비슷하더라는 거다. 실력에 따라 차이가 나야 하는데 랜디 존슨이든 박찬호든 노모 히데오든 거의 2.90 근처에서 놀고 있다. 세 개를 맞으면 그중에 하나는 안타가 된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매년 바빕이 들쭉날쭉하다는 점이다. 홈런이나 포볼이나 삼진이나 다른 기록은 투수의 기량이 있는 만큼 매년 고르게 나오는데 바빕만 높았다가 낮았다가 한다. 그러다 결국은 평균에 수렴한다. 게다가 유명 투수들의 바빕은 결국 비슷하게 간다.


    이 말은 맞춰 잡는 투수는 없으며 투수는 결국 삼진뿐이라는 말이다. 동시에 많이 맞는 경우는 운이 나빠서 그런 것이며 운은 평균에 수렴하므로 바빕이 갑자기 높으면 다음 해에는 더 낮아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래를 예측한다고?


    이러면 광분하는 도박사들 많다. 난리가 났다. 재미있는 점은 처음에는 황당한 주장이라며 일축되었다가 이후 전세가 역전되어 바빕이론이 대세가 되어 마니아 중심으로 숭배되다가 다시 정밀한 통계에 의해 상당 부분 반박되었다는 점이다. 구조론의 이중의 역설과 같다.


    '뭔 개소리야? 돌았냐?' > '어 진짜네? 와우!' > '내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되었다. 반전의 반전이다. 바빕이론이 중요한 발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맞춰 잡는 투수는 분명히 있다. 회전이 많이 걸린 위력적인 공을 낮게 던지면 그 공을 퍼 올려서 장타를 날리기 힘들다.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1999년에 발표된 이후 십수 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혼란에 몰아넣은 바빕의 비밀이 왜 아직도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았느냐다. 일부는 진실이었고 일부는 단순한 통계오류였다. 그런데도 비밀은 풀리지 않았다. 아직도 운이 어떻고 헛소리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의 바빕은 거의 비슷한데 왜 개인별 성적으로 보면 매년 바빕은 들쑥날쑥한가? 검색해 보면 이 부분은 여전히 우연으로 나온다. 바빕이론이 나온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우연은 없다. 필자는 전략적 대응으로 본다. 에이스들은 기량이 있다.


    어떤 공이 잘 맞는다면 다음 해는 변화구를 개발하고 투구패턴을 바꾼다. 평균에 수렴하는 이유는 운 때문이 아니라 선수와 팀이 변화에 맞대응을 하기 때문이다. 2년 차 징크스가 그렇다. 첫해는 몰라서 당했고 다음 해는 현미경 야구로 분석하고 수비시프트를 적용한다.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선수는 다시 맞대응을 한다. 분석 > 대응 > 맞대응이 바빕을 들쑥날쑥하게 만들면서도 평균에 수렴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빕이론은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바빕은 선수가 어디까지 통제가능한가다?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타자들은 답을 찾았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똑딱이를 버리고 장타를 연구해서 공을 멀리보내기 시작했다. 홈런이 양산되고 있다. 맞대응을 한 것이다. 투수들도 답을 찾아가고 있다. 좋은 마무리투수는 바빕이 낮다. 결론은 우리가 운이라고 믿는 사실의 상당 부분은 맞대응의 결과더라는 말이다. 


    세상은 결국 게임이다. 나폴레옹도 어떤 해는 이기고 어떤 때는 진다. 운인가? 지는 이유는 상대가 맞대응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비전술의 고수 웰링턴을 만난게 패인이었다. 러시아군이 몽골군에게 당하면서 습득한 청야전술도 그렇다. 운이 아니고 치밀한 맞대응이다. 


    나폴레옹의 전술은 뻔하다. 소년병을 풀어 전장을 어수선하게 만들고 혼란이 극에 달했을 무렵 정예를 투입하여 종심을 관통한다. 그러려면 전장의 분위기를 잘 읽어야 한다. 기세를 파악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 나폴레옹은 아무리 불리해도 전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상대의 약점이 보이면 예비대를 있는 대로 투입하는 올인전략을 썼다. 반대로 적군은 대장이 막사에서 나오지 않으니 임기응변 못 하고 전황이 유리한데도 예비대를 투입하지 않는가 하면 도주하면서 뒤를 막는 데 예비대를 소비한다. 그런 나폴레옹도 워털루에서 털렸다.


    배가 아파서 네시간 동안 막사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쯤 뭔가 변화를 줄 타이밍인데 아무런 신호가 없으니 유명한 근위대도 도주해 버렸다. 반대로 웰링턴은 침착한 준비로 변수를 줄였다. 혼란하게 만드는 것은 공격측의 주특기다. 변수를 줄이는 것은 수비다.


    롬멜도 나중은 주특기를 간파당했다. 몽고메리가 치밀한 수비로 빠른 의사결정의 장점을 상쇄한 것이다. 에이스들은 상대의 맞대응에 역으로 맞대응한다. 맞대응은 변화를 부르고 변화에 상대가 대응하지 못하면 그게 운으로 보인다. 게임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을 가지고 세계의 천재들이 수십 년씩 논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은 확실히 머리가 나쁜 거다. 그 외에 다른 걸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게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네거리는 혼란하다. 장사의 고수들은 네거리에서 좌판을 벌인다. 


    정치도 고수들은 네거리를 선호한다. 극좌나 극우의 막다른 골목으로 가면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변화에 맞대응할 수 있는 위치에 자신을 두어야 한다.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운이 아니라 변화와 대응이다.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이 지갑타령한다.


    노무현이 지갑을 주웠지. 진보 엘리트인 나는 정답을 정확히 아는데 고졸 노무현은 정답도 모르면서 막 질러대다가 운이 좋아서 그중의 하나가 겐또 맞았지. 천만에. 노무현은 침착하게 변화를 읽고 있었다. 바람의 방향을 간파하고 있었다. 태극기 할배들도 마찬가지다.


    촛불부대가 지갑 주웠지. 막 질렀는데 운으로 최순실 태블릿이 터진게 로또 됐잖아. 그게 서랍에서 왜 기어 나오느냐고? 우리도 막 질러보세. 지르다 보면 태블릿이나 표창장이나 청탁전화나 뭐라도 하나 건진다고. 질러버려! 그러다 코로나에 걸려 콜록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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