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에너지 + 관계다. 유전자가 있다면 모든 경우의 수가 잠재해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발현되는 것은 지극히 일부다. 나머지 숨은 가능성은 변이에 의해 획득된다. 유전자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있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망실되면 그 숨은 유전자가 발현되는 것이다. 존재도 이와 같다. 무수한 가능성이 잠복해 있다. 그것은 관계다. 내 친척 중에 검사와 판사와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들의 힘을 빌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 힘을 사용하면 곤란해진다. 배경을 과시할 수 있지만 그 숨은 힘을 자주 사용하면 안 된다. 결국 사건이 일어난다. 사용한 힘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힘이 노출되면 상대가 맞대응하기 때문이다. 존재는 많은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 사건이 일어나면 그중에서 일부를 사용한다. 한 번 사용하면 가능성은 소비된다. 두 번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힘은 에너지의 낙차를 사용한다. 사용하면 연결되고 연결되면 균일해지고 균일해지면 낙차가 사라진다. 포지션을 잃는 것이다. 내가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 밑에서 도전자가 치고 올라 온다. 방어하려면 조금 내려가야 한다. 10층을 차지하고 있는 챔피언은 9층에서 올라오는 도전자보다 더 유리하다. 가만있으면 10층에서 대결하게 된다. 챔피언의 이익이 없다. 홈 어드밴티지 없이 동등한 조건에서 싸우게 된다. 9층에서 10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막아야 한다. 계단에서 싸우다 보면 이기든 지든 9층으로 내려가게 된다. 싸우는 과정에서 10층의 유리함을 소비한다. 1 + 1 = 2가 아니다. 1 + 1 = 2 + 다. 1과 +와 1이 합쳤으니 2와 +가 있다. 그 플러스는 관계다. 관계는 사건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런데 사건의 진행 중에는 살아있다. 우리는 존재가 에너지와 관계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관계는 사건의 진행 중에 나타난다. 사건이 종결되면 관계는 사라지므로 무시한다. 권리금이 그렇다. 다른 업종이 들어오면 권리금은 사라진다. 옷가게를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점포를 넘긴다. 인테리어와 인지도와 고객명단을 승계하면 권리금을 챙길 수 있다. 인테리어를 뜯어내고 원상복구하기도 한다. 원상복구하면 권리금을 받을 수 없다. 열역학 1법칙은 사건의 전과 후를 비교한다. 사건이 종결되면 관계는 소멸하므로 권리금이 없다. 2법칙은 사건의 현재 진행 중인 상태를 규명한다. 사건을 연결시켜 권리금을 받으면 엔트로피 현상이다. 닫힌계의 권리금은 감소한다. 감가상각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존재가 물질과 관계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엔트로피는 쉽다. 엔트로피는 닫힌계를 확정할 때 정해지고 무조건 감소한다. 태어날 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친척은 몇 명이든 무조건 줄어든다. 촌수의 마디가 줄어드는 것이다. 왜? 닫힌계 안에서 에너지의 작용은 그 관계의 소비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관계는 연결하고 연결하면 균일하고 균일하면 낙차가 사라져서 사건은 중단된다. 관계는 일회용 소모품이다. 열 명의 친구에게 모두 돈을 빌렸다면 이제 돈을 더는 빌릴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친구가 열 명이면 관계가 10이다. 그 10을 소비한 것이다. 신인왕이 될 기회는 한 번뿐이다. 그 한 번의 기회를 소비한다. 관계를 전부 사용하기는 매우 어렵다. 출발선에서 100의 관계를 갖고 있다면 그는 금수저다. 먼 친구부터 소비해야 한다. 가까운 친구 등쳐먹지 말자.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단계를 밟지 않고 바로 량을 소비하면 전략의 실패다. 자원을 채취하여 써먹지도 못하고 게임에 진다. 관계는 잠재된 관계와 살아있는 관계와 죽은 관계가 있다. 바둑을 둘 때 화점에 두는 이유는 그 자리에 상대적으로 관계의 연결이 많기 때문이다. 목 좋은 자리다. 네거리라면 관계가 넷이니 3거리보다 장사가 잘된다. 3거리는 2거리나 1거리보다 낫다. 2거리는 지나가는 통로이고 1거리는 막다른 골목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사를 트지 않으면 관계는 잠재된 관계다. 둘의 상호작용이라야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 보면 관계가 먼저다. 바둑판이 먼저 있어서 361개의 관계망이 존재한다. 그다음에 바둑알이 두어지는데 실제로는 바둑알을 잘 연결해야 관계가 살아나고 바둑알을 잘못 놓으면 죽은 관계가 된다. 바둑을 둘수록 관계는 소비되므로 판이 다 메워지면 0이 된다. 잠재된 관계, 살아있는 관계, 죽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따지고 보자면 복잡하지만 반드시 제한이 있다. 유전자가 연출할 수 있는 돌연변이 숫자는 사전에 수학적으로 정해져 있으며 절대 그 주어진 몫을 전부 찾아 먹지는 못한다. 그중에서 일부는 반드시 망실하게 된다. 전체 경우의 숫자 중에서 일부는 써먹고 일부는 망실되며 갈수록 경우의 수가 소비된다. 진화할수록 조건 안에서 진화의 가능성은 소멸한다. 물론 초기조건을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놈 유전자 숫자가 생각보다 적은 이유는 그 초기조건의 변화가 어려운 탓이다. 동물의 유전자가 A형이라면 B형은 없을까? 혹은 이중나선의 회전방향이 어떤 형이라면 다른 유형은 없을까? 이런 식으로 추가되면 초기조건 변화가 일어나는데 자연계에서 관측된 바가 없다. 초기조건은 단순해서 추가되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는 마이너스다. 애플을 갤럭시가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특허 때문인데 특허는 반드시 우회하는 방법이 있지만 손으로 접촉하는 부분은 그 우회로를 숨기지 못한다. 내부에 감춘다면 우회할 수단이 있다. 애플이 왼쪽으로 하면 갤럭시는 오른쪽으로 하고 별도로 특허 내면 된다. 손을 직접 접촉하면 손가락을 부러뜨리지 않고 우회할 길이 없다. 이런 이유로 초기조건은 단순하기 때문에 우회할 수 없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전혀 다른 DNA 배열이 있을 수 있는데 지구의 모든 DNA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방향이 같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