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9719 vote 0 2003.05.25 (14:35:11)

진중권의 오바질도 때로는 귀엽게 봐줄만 하다. 처음에는 장난기로 생각했다. 『진중권 이 사람 참 짖궂은 양반이군!』 난 짖궂은 괴짜들을 좋아한다. 격의없이 통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진중권의 오바질이 단순한 장난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인간성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연평총각 소동 때였다.

나는 꽃게잡이 어부를 해봐서 바다의 사정을 안다. 바다는 때로 늪 같다. 1미터 앞도 안보이는 자욱한 바다안개 속을 항해할 때의 섬뜩한 공포.. 안개가 끼는 날은 파도도 없다. 하얀 죽음 속으로 서서히 빨려들어가는 느낌.. 이런건 체험해 본 사람만 안다.

바다에서는 모든 것이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바다에서는 1마일이 1.8키로가 되는 것도 착시현상 때문이다. 바다에서는 모든 것이 허구다.

바다에서 정보의 소통은 선장들간의 무선교신으로 이루어지는데 당국과의 교신은 상당부분이 선장들끼리 사전에 입을 맞춘 거짓임은 물론이다.

20년전 이야기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바다’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연평총각의 보고를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바다에서는 모든 것이 허구이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은 누구도 모른다.

우리 때는 선원들끼리 농담으로 『당국에는 거짓으로 보고했는데.. 사실은 여기가 중국 영해다. 저쪽에 가물가물 하는 것이 바로 산동반도란다.』이런 소리도 곧잘 하곤 했는데 물론 허풍이다.

연평총각의 배에서 선원들이 비슷한 농담을 하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다. 『사실은 여기가 바로 북한 영해인데 우리는 지금 월선조업을 하고 있다. 비밀은 꼭 지켜야 해!』 초보어부 연평총각이 그 농담을 곧이 곧대로 믿어버렸을 수도 있다.  

바다에서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육안으로 관측해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까만 점으로만 보이는 것이다. 월선을 안해놓고 월선을 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비극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다에서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누가 틀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훗날 연평촉각의 보고는 상당부분 오해로 판명되었다. 나는 연평총각이 선원들의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정한다. 그렇지만 바다에서는 모든 것이 허구이기 때문에 연평총각의 주장 중 일부가 사실일 개연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바다는 위험하다. 바다는 본래 위험하므로 우리 어선들이 월선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북한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서로가 바다의 위험을 인정하고 남북한 당국간에 협의해서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연평총각의 보고 중 상당부분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전체적으로는 유익한 보고, 또는 유의미한 보고였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은 그 당시 처음부터 흥분해서 주체문예소조 운운하며 소설을 써제끼기 시작했다. 아마 진중권은 아직도 연평총각을 비방한 데 대해 사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전지적 작가시점’이 아니라 『전지전능적 군자시점』으로 소인배들을 굽어보는 진중권의 시각에서는 연평총각 따위 조무래기(진중권이 잘 쓰는 표현)에게 사과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보는 시선이 비뚤어져 있다. ‘전지전능적 군자시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위치에서 인간들을 개미보듯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한겨레 창간 15주년 특집 기고문에 까지 연평총각을 비방하고 있었다. 기절할 일이다. 그는 왜 자신의 잘못을 조금도 반성하지 않을까? 왕자병인가?

이런 식이어서는 누구와도 동지가 될 수 없다. 이런 식이어서는 한번 생겨난 문제가 절대로 수습되지 않는다.

누구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강준만의 잘못도 많지만 『그래 강준만이 잘못했다』 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런데 진중권에게는 그렇게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자신의 잘못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버리는 것이다.

서프라이즈 식구들도 많은 잘못이 있지만, 그들은 서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있기 때문에 결국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문제해결 능력이다. 서로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이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 앞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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