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본령 예술의 본질을 봐야 한다. 그런데 본질에는 본질이 없다. 예술에는 예술이 없다. 예술된 대상에는 예술이 없다. 그려진 캔버스, 새겨진 조각상, 연주된 음악에는 예술이 없다. 그것은 그저 매개일 뿐이다. 반대쪽 주체를 봐야 한다. 그것을 그리고 조각하고 연주한 사람의 자부심과 긍지, 자존심과 우월감이 예술의 본질이다. 그럴 때 호르몬이 나와준다. 예술은 호르몬이다. 이는 위태로운 것이다. 자부심과 긍지는 동시에 차별주의로 나타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경멸, 인간에 대한 혐오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예술가 중에 욕쟁이가 많다. 그들은 경멸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은 고상하고 도도하고 오만하니 한마디로 자기애다. 예술가들은 얼마간 나르시시스트다. 심하면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분류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하고 혼자 행복한 자들이다. 그들은 친구가 없다. 만나면 서로 칭찬하지만 헤어지면서 ‘흥! 밥맛이잖아.’ 하고 빈정거린다.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있어 서로 찌른다. 고갱이 그렇게 이죽거리고 떠나자 고흐는 자기를 쐈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예술이라는 위험한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마약의 매력을. 예술의 본질을 잘 설명하게 하는 사람이 삼국지의 하안이다. 청담사상과 죽림칠현의 뿌리가 된다. 이태백이건 소동파건 왕희지건 대개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오석산이라는 마약을 퍼뜨린 사람이기도 하다. 하안은 대단한 미남이었다고.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얼굴을 보려고 줄을 선다. 외모를 가꾸었는데 언제나 분이 손에서 떠나지 않았고 자신의 그림자마저도 사랑해서 항상 돌아보며 기뻐했다고 한다. 수은에 중독된 그의 흰 피부를 보고 사람들은 신선이라고 여겼다. 여자옷 입기를 좋아했고 남풍男風이라고 불리는 동성애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했다. 하안이 남긴 인물평이 있다. ‘깊이가 있어 천하의 뜻과 통하는 사람은 하후현이다. 기미를 알아 천하의 쓸모있는 것을 이루는 사람은 사마사다. 신비스러워 서두루지 않으면서 속히 하고, 가지 않으면서 도착하는 사람은, 내가 그런말을 들었지만 아직 보지 못했다.’ 자치통감의 해석은 신비스러운 사람이 하안 자신이라고. 이쯤 되면 왕자병 9단, 공주병 9단, 중이병 9단으로 합이 27단에 자뻑이 무한대다. 예술은 그런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불쾌하게 여기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을 흉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모이면 명품옷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지만 돌아서면 재빨리 판매처를 알아본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과 닿아 있다. 에너지를 주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대중에게 행복감을 주겠다는 예술가의 의도는 실패한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변기다. 변기야말로 대중적인 소재다. 뒤샹이 변기를 출품하니 난리가 났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난해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변기 하나씩은 갖고 있잖아. 그런데 왜 난해해? 대중적인 소재가 만화다. 앤디 워홀이 만화를 그렸더니 난리가 났다. 난해해. 난해해. 난해해. 뭐가 난해하다는 거지? 하긴 이현세는 40년간 만화를 그렸어도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예술은 감동을 주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발소 그림이 오히려 행복감을 준다. 대중가요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 상업영화가 인간에게 감동을 준다. 예술영화를 보면 속이 거북해지는 경우가 많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김기덕 영화가 상을 받는다. 하안이 얼굴에 분칠하고 여자옷을 입고 자기 그림자를 사랑하면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과 같다. 예술을 대중화시키겠다는 발상은 실로 위태롭다. 모든 사람이 왕자병, 공주병, 중이병, 자기애에 빠져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말이다. 그런 예술이 인간을 진보시킨다. 예술은 배타적이며 반대중적이며 엘리트병이며 오만하고 욕설을 잘하며 건방지고 고상하고 변태적이며 남자끼리 연애하는 그런 것이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은 그저 호르몬이다. 하안의 인물평으로 보자. 깊이가 있어 천하의 뜻과 통하는 사람은 유교적 엘리트다. 기미를 알아 천하의 쓸모를 이루는 사람은 과학자 엘리트다. 신비스러운 사람은 예술가 엘리트다. 배운 사람은 이 세가지 속성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천하의 뜻은 대중의 뜻이다. 지식인은 대중과 한배를 타야 한다. 쓸모있는 것은 현실이다. 지식인은 현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신비주의는 자존감이다. 인간이 부를 원하든 친구를 원하든 명성을 원하든 권력을 원하든 결국 종착역은 자부심과 긍지다. 대중과 함께 하지 않고 현실을 도외시한 채 자존심만 세우면 비뚤어진다. 인간은 언제라도 대중에 뿌리를 두고 현실에 몸을 두고 자존심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술은 문벌귀족의 패거리 놀음이 된다. 청담사상으로부터 예술이 시작되었지만 대개 귀족들의 한가한 취미생활에 지나지 않았다. 이태백의 시가 대중성을 얻었지만 실제로는 황제를 위한 어용시인이었다. 두보는 어용시인이 아니었지만 대중성을 얻지 못했으니 아이러니가 된다. 예술은 늘 아슬아슬하다. 예술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며 에너지는 어떤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체에 있다. 금이든 다이아몬드든 무엇이든 대상에는 에너지가 없다. 오히려 거지나 부족민이나 장애인에게 에너지가 있다. 거지는 부하거지 100명이 있으니 떼거지가 되고 문둥이는 단체로 행동하며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다 조직이 있는 것이다. 벙어리 마을에서 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에너지가 있다. 노무현이 그런 사람이다. 예술은 차별적이면서 동시에 그 차별을 넘어서는 것이다. 거기에 예술의 아슬아슬함이 있다. 홀로 잘난 것은 예술이 아니며 대중을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대중을 배반하는 것이 예술이다. 대중을 이끌고 신천지로 가는 모세의 운명이다. 모세는 대중과 함께 하지만 결코 군중에 섞이지 않는다. 노무현은 국민과 함께 가지만 결코 패거리에 섞이지 않는다. 고흐는 대중에게 인기가 있지만 대중과 다르다. 앤디 워홀은 대중적인 소재를 그리지만 대중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안은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그를 싫어했다. 예술은 그런 것이다. |
중첩된 상태가 에너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새가 한 발로 서는 것이나
사람이 짝발로 서있는 것도
그게 편해서라기 보다는
외부와 내부의 연결된 상태
혹은 걸쳐진 상태
즉 에너지 상태에 머무르는 것
이는 곧 외력에 대하여 준비된 자세라는 것
불편해보이지만 사실은 편하다니깐?
0이나 1은 불편해. 오히려 0.5가 편해.
권투선수가 왼팔을 뻗은 상태에서 오른팔을 접고서 상대를 응시하는 것
인간은 긴장이 아닌 이완을 원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긴장과 이완의 중첩에 머물려고 하는 것.
그게 에너지를 성립하는 방법이므로.
그래서 언어로 딱 잘라 표현하기도 어려운 것.
인간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표현하려 하나
이것과 저것으로 걸쳐져 있는 걸 뭐라고 해야하나?
뇌에 혼란이 오는데,
그래서 이 관계를 명명하기가 어려워.
구조론에서
아싸도 인싸도 아닌 경계를 지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외부와 내부가 중첩된 지점에서 에너지를 성립하라는 거.
"홀로 잘난 것은 예술이 아니며 대중을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대중을 배반하는 것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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