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의 탄생
좌우, 상하, 전후가 공간의 대칭이라면 원인과 결과, 과거와 미래로 성립하는 시간의 대칭은 호응이다. 대칭은 반드시 둘이 공유하는 토대가 되는 코어가 있다. 시간이라도 마찬가지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의사결정이 있고 과거와 미래 사이에 현재가 있다. 둘이 한 배를 탄다. 자연에 근본이 되는 고유한 속성은 없다. 원래 그렇다거나 그냥 그렇다거나 하는 것은 없다. 모든 성질은 에너지의 방향이 꺾이는 정도를 반영한다. 사물이 어떤 성질을 지니는 것은 둘이 만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칭과 호응의 형태가 사물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금이든 은이든 그러하고 소금이든 설탕이든 그러하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그러하고 양반이든 상놈이든 그러하다. 양반과 상놈의 차이는 두 사람의 양반 혹은 두 사람의 상놈이 만나서 의를 맺는 방식의 차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도 의리를 맺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 인간의 근본은 같은데 중매결혼을 하느냐 자유연애를 하느냐 하는 결합방식의 차이가 민족성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며 물질 역시 소립자 단계까지 쪼개보면 핵과 전자의 결합방식의 차이가 물성을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우주는 결합방식을 정하는 하나의 플랫폼을 공유한다. 구조가 아니면 속성이다. 속성은 막연한 말에 불과하다. 오행설이라면 목화토금수의 밸런스가 만유의 형상을 결정한다. 여기에 음양설이 더해지면 제법 있어보인다. 서양의 사원소설도 같다. 음양과 오행과 사원소의 성질은 고유한데 고유하다는 것은 모르겠다는 말과 같다. 이들은 다섯 혹은 넷 혹은 음양의 적절한 비율 혹은 균형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 비율 혹은 균형이 왜 그 비율이고 그 균형인지를 추궁하면 다시 구조로 돌아온다. 균형은 곧 대칭과 호응의 균형이기 때문이다. 비율은 곧 결합의 비율이고 결합은 결국 대칭을 이루기 때문이다. 결국 우주는 대칭 하나로 환원된다. 그 대칭을 만드는 것은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에너지는 스스로 움직이고 움직이면 충돌하고 충돌하면 튕겨나가거나 붙잡힌다. 튕겨나가면 다시 움직여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또 충돌하게 된다. 붙잡히면 곧 대칭이 성립한 것이다. 에너지는 모여서 수렴되거나 흩어지거나 뿐이다. 수렴되는 것은 계에 붙잡힌 것이다. 흩어지면 또 어딘가에 충돌한다. 에너지는 영원히 운동하거나 아니면 충돌하여 계에 붙잡힐 때까지 운동한다. 붙잡히면 계에 가두어져 계 안에서 운동한다. 운동이 숨거나 드러나거나다. 운동이 우연한 충돌을 반복하다가 붙잡혀서 계에 가둬지면 그때부터 구조가 작동한다. 우주의 근본은 에너지고 에너지는 계에 붙잡힐 때까지 영구운동을 한다. 계에 붙잡히면 구조가 작동하고 밸런스의 지배를 받게 되며 거기서 에너지의 방향이 결정된다. 통제가능성이다. 인간은 계를 조직하여 적절히 에너지를 붙잡아서 방향성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그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다. 자연의 여러 가지 모습은 우연히 에너지가 계에 붙잡힌 것이다. 자유운동을 하는 에너지가 계에 붙잡혀 밸런스의 지배를 받으며 확률의 제한을 받는 것이 사건이다. 사건 안에서 에너지는 통제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방향은 수렴방향이다. 모이는 방향이다. 그것은 보다 효율적인 방향이다. 계 내부에 대칭이 만들어지면 에너지는 게임에서 이기는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곧 에너지가 질서를 획득하여 정렬하게 된 것이다. 그 방향일 때만 에너지를 조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는 방향으로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사건이 더 진행될 수 없다. 51과 49가 충돌하면 둘이 공유하는 코어는 51안에 성립한다. 코어를 가진 쪽이 결정권을 가지므로 49는 51에 흡수된다. 에너지의 수렴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적절히 개입하여 코어의 위치를 옮기는 방법으로 사건의 결과를 조직할 수 있다. 시험관이라면 특정한 수험생의 점수를 높여줄 수 있다. 거기에는 비용이 소모되므로 자연은 비용의 조달이 가능한 순방향으로 흘러간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유 역시 그러하다. 낮은 곳으로 흐를 경우에만 흐르는 비용을 조달할 수 있다. 자연은 계 안에서 자체적으로 비용조달이 가능한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며 그것이 엔트로피다. 이 하나의 원리에 지배되므로 우주의 모든 것은 효율의 경계선에 다 모이게 된다. 모두 간당간당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여유가 있으면 스스로 간당간당하게 만든다. 방해자가 나타날 때까지 폭주를 하는것이다. 물은 둑을 만날 때까지 흐르고 인간은 혼이 날 때까지 사고를 친다. 여유있는 사람이라도 지갑이 얇아질 때까지 과소비를 한다. 자연은 모두 안팎의 경계선에 몰려 있으므로 결국 통제된다. |
"우주의 모든 것은 효율의 경계선에 다 모이게 된다. 모두 간당간당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여유가 있으면 스스로 간당간당하게 만든다. 방해자가 나타날 때까지 폭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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