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에너지가 있었다. 물질도 없고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고 정보도 없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다. 에너지는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다가 일부가 우연히 한 지점에 모인다. 모이면 주변보다 에너지가 많다. 그리고 출렁임에 의해 다시 흩어져서 주변과 같아진다. 에너지가 주변보다 많아진 지점부터 다시 같아지는 지점까지의 전개를 딱 잘라서 1회의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다. 사건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정한 방향성이 보인다. 거기서 규칙성을 찾아낼 수 있다. 파동이 마루에서 골까지 변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사건이다. 파동은 마루에서 골의 일방향으로 움직인다. 골에 근접할수록 기운을 잃는다. 엔트로피 증가다. 공을 가슴까지 들었다가 놓는다.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진다. 공이 손을 떠난 지점부터 땅에 이르기까지 잘라서 조사해 보자.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의 위치가 가장 높다. 왜일까? 그 부분부터 조사했기 때문이다. 파도가 가장 높아진 마루부터 조사하므로 엔트로피다. 공이 떨어지는 도중에 묘기를 부려 공중제비를 돌거나 하지는 않는다. 중력은 1회 작용하기 때문이다. 1회의 에너지 작용에 따른 전개를 딱 잘라서 보면 답이 보인다. 메뚜기 한 마리가 어디로 뛰어갈지는 메뚜기 마음이다. 알 수 없다. 그러나 메뚜기 100만 마리가 군집을 이루면 어디로 갈지 알 수 있다. 메뚜기는 빈 공간으로 간다. 그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메뚜기는 언제나 앞으로 간다. 뒤나 옆으로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경우는 다른 메뚜기와 충돌하게 된다. 은하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회전한다. 역방향은 없다. 우주에 동서남북을 정할 수 없다. 우주에는 좌우가 없으므로 모두 하나의 방향이다. 시계방향이 아닌 반대방향으로 도는 은하가 있다면 뒤에서 보면 역시 시계방향이다. 다양한 방향은 인간이 임의로 지어낸 것이고 자연에는 확산과 수렴밖에 없다. 동서남북 사방팔방은 우주에 없다. 모든 은하는 같은 방향으로 돈다. 모든 사건은 수렴에서 확산으로 간다. 수렴과 확산으로 보면 알 수 있는데 있지도 않은 동서남북을 찾으니 헷갈린다. 에너지의 근본은 알 수 없지만 초끈이론이 힌트가 된다. 작은 끈의 진동이 에너지의 근원이 된다. 끈이므로 꼬인다. 닫힌계에서 꼬인 끈들은 풀릴 수 있을 뿐 꼬일 수 없다. 왜냐하면 닫혔기 때문이다. 그것이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물론 열린계에서는 꼬일 수가 있다. 그러나 푸리에 변환을 적용하여 성분을 하나하나 풀어내면 풀린다. 소떼가 모여 있다. 흩어질 수 있을 뿐 모일 수 없다. 목동이 없기 때문이다. 공기분자를 진공 속에 두면 흩어진다. 모일 수는 없다. 모으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건을 부여하지 않으면 무조건 풀려진다. 초끈은 진동하고 있고 그러므로 움직이게 되며 놔두면 그 움직이는 힘에 의하여 흩어질 뿐 뭉치지 않는다는 것이 엔트로피다. 세상의 많은 일은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외력을 막고 내부원인에 의해 저절로 일어나는 일만 추적하면 죄다 흩어진다. 실제로는 대개 태양의 힘에 의해서 광합성으로 생물이 자라고 상승기류에 구름이 모이고 태풍에 바람이 모이고 사막에 모래가 모인다. 태양 덕분이다. 태양의 개입을 배제하고 보면 죄다 흩어진다. 달처럼 고요해진다. 달에 남겨진 발자국은 1억 년 후도 그대로 있다. 생물은 살다가 죽어서 제풀에 멈추고 물은 흐르다 바다에서 멈추고 돌은 구르다가 제풀에 멈추고 바람을 불다가 제풀에 멈춘다. 세상 모든 것은 외력의 개입이 없는 자연상태에서 흩어지며 그 원천은 초끈의 진동 때문이다. 물론 초끈이론이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주의 근본은 무언가의 진동이다. 그 진동은 우주가 탄생할 때 이루어진 것이며 물질이 생겨나고 사라져도 근본은 그대로다. 그 힘이 우주를 팽창하게 하고 모든 것을 가라앉게 하며 세상을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현실은 복잡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은 단순하다. 첫 데이트를 할 때, 진학을 할 때, 결혼을 할 때, 선거에 출마할 때, 시합에 나갈 때, 무대에 설 때, 그럴 때 혼자다. 외력의 개입이 배제된다. 보통은 부모나 선배의 도움을 받는다. 자연은 대개 태양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다가 부모와 친구의 도움이 불가능한 지점이다. TV토론에 나온 안철수처럼 당황하게 된다. 그럴 때 진실해진다. 적나라한 모습을 들키게 된다. 그때 세상의 방향은 마이너스다. 세상은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축구선수가 골대 앞에서 슛을 할 때 외로워진다. 지휘관이 전쟁터에 설 때 이순신처럼 고독하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그 상황에는 어차피 마이너스로 간다면 손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동해야 한다. 바둑고수끼리 바둑을 둘 때다. 하수끼리라면 모험수를 두어도 된다. 상대가 속아주길 바라고 꼼수를 두어도 된다. 그러나 이세돌과 알파고가 둔다면 다르다. 굳이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지 않더라도 엔트로피적 상황은 많다. 기업이 성장하여 주변에 적이 없어지면 고독해진다. 그런 때는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동해야 한다. 이윤은 저절로 따라온다. 혼자 고독하게 의사결정할 때 항상 그렇다. 보통은 눈치보면서 묻어간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첫날 밤에는 남들의 눈치를 볼 수가 없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그렇다. 32강전에서 16강, 8강, 4강을 거쳐 결승에 가까워질수록 그러하다. 꼼수나 잔머리가 통하지 않는 절대고독의 지점이 있다. |
"현실은 복잡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은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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