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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2]이상우
read 3971 vote 0 2009.08.14 (14:07:50)

나이 서른 다섯에 이제 교사된지 1년 반.

 매년 불쑥 불쑥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김 영 호.

 

01학번으로 05임고 떨어지고

우울하게 졸업식 마치고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하니 봄날을 보내던 4월 말.

시흥에서 근무하는 선배의 소개로 1주일 짜리 시간강사를 하게 되었다.

구시가지 시장통과 역근처의 학교와 그 옆에 아파트 단지 학교가 

불과 몇 백미터 차이를 두고 있었다. 

 

당연히 선생님들도 아파트 단지를 선호했고,

시장통 근처의 학교 애들은 활달한 면은 강했으나 수업 집중이나 생활지도 면에서는 부족한 게 많았다.

그래도 처음엔 6학년 치고는 애들이 비교적 괜찮다고 느꼈었는데

여자애들한테 "이 시집도 못갈 x"이란 욕설을 서슴없이 하고

애들간 말싸움과 몸싸움의 비중을 살펴보니 과연 가정형편과 학교가 있는 위치에 따라 애들의 성격이나

말투,행동들도 많은 영향을 받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날 오전엔가 애들이 수업시간에  "우리 노래해요" 라고 하길래

누가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애들은 일제히 영호를 지목했다.

등떠밀려 나오는 영호가 과연 정말 잘할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는데

영호는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릴 뿐 노래는 하지 않았다.

나는 영호가 혹시 왕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영호에게 확실히 무슨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호 옆에 갈때마다 정말 역한 이상한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영호한테는 차마 못물어 보고

주변 애들한테 살짝 물어봤더니 늘 같은 옷을 입고 오는게 벌써 2주째라고 한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영호의 복장.

낡은 운동화에 땀복을 닮은 체육복 하의, 스포츠 점퍼를 닮은 얇은 잠바.

하도 냄새가 나니까 짝 조차도 2-30cm 옆에 떨어져 앉았고 무심코 영호와 가까와지면

두눈을 부릅뜨고 성질을 냈다. 다른 애들에게 친구니까 좀 이해해주라고 얘긴 했지만

역한 냄새에 어떨 땐 나조차도 곁에 있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교사가 아닌가?

나 아니면 영호편을 들어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곧 나는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영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호 아버님은 영업용 택시 운전사고, 엄마는 알콜중독자란다.

영호가 몇번 가출을 감행해서 시장에서 선생님들에게 발견된 경우도 있고

경찰서에 붙들려간 적도 있다고 했다.

작년에 영호 담임 선생님이 영호한테 목욕하고 오는게 좋겠다고 얘기했다가

수업시간에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온 영호 아버지에게 멱살을 잡혔단다.

 

"당신이 뭐길래 애보고 목욕을 하라 마라고 명령하냐?"

그 뒤로 선생님들은 영호 부모님께 무언가 요청할 생각을 버렸다고 한다.

 

나는 영호를 불러서 얘기를 했다. 왜 옷을 안갈아 입는지, 왜 목욕을 잘 안하는지...

영호는 엄마가 갈아입지 말라고 했단다. 옷을 안갈아 입으면 냄새가 나서

친구들이 멀리한다고 말했더니 영호 엄마는 친구는 어른되서 사귀어도 된다고 했다니...

정말 답이 안나온다. 직접 가서 목욕을 시켜주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영호는 혼날 거라며 겁을 낸다.

 

영호의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수없이 망설였다. 

부모님께 전화드리고 싶었지만 일개 일주일짜리 시간강사가 일을 벌리게 되면

일파만파로 일이 커져서 신혼여행을 간 담임선생님이 돌아와서 뒷감당하기는 더 힘들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SBS의 긴급출동 SOS'는  우리의 일상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고

아이는 피해는 계속되고 있는 듯 싶었다.

 

당시 봄운동회 준비로 6교시 후 운동장에서 DJ DOC의 "독도는 우리땅"에 맞춰 음악 줄넘기 연습을 했다.

봄햇살도 따갑고 날도 덮고 운동장 먼지는 나고... 2-30분간의 짧은 연습에도 애들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러니 영호의 옷에서 나는 냄새는 전에 노숙자의 그것과 다름 없었다.  

 

영호가 처음엔 수업에 집중도 잘 안하고 산만했는데 화요일에 상담을 하고 영호에 대한 나의 기대를 알려줬더니

수요일께부터 집중을 잘했다. 당시 쌓기수업을 했었는데 짧은 기간이지만 영호의 실력은 학원한 번 안다니고도

중상위권 이상은 되었다. 책을 읽을 때도 여러 번 손을 들고 수업에도 적극적이었다.

 

모든게 그런거 같다. 어떤 연수든 방학이든, 수업이든 처음에는 좀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가장 느린 방학 기간이 방학 첫주요,

8월 둘째주 부터 방학은 그야말로 며칠 밖에 안되는 느낌이다.

일주일간의 시간강사도 그랬다. 어느샌가 토요일이 되었고 애들과의 이별의 순간도 다가왔다.

나는 좀 섭섭하고 아쉬운데 애들 겉모습은 다들 밝았다.

그때 영호의 눈빛은 내 눈 빛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말도 영호에게 더해 줄 수 없었다.

그냥 걱정만 되었다. 영호에게 약속은 못했지만, 나중에 계속 연락해 봐야겠다고 나혼자 생각했다.

그러기를 몇 달 후.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영호 소식이 궁금해서

싸이를 통해 알고 지내던 여자 애한테 영호소식을 물어봤다.

영호는 이미 전학을 갔고 아이들도 소식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이후에 몇 번 더 애들에게 알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금 고1이 되었을 영호는 무얼 하고 있을까?

 

 

 

-------------

(사족)

 

영호가 걱정된다.

자꾸 나는 후회가 된다.

그러면서 자문하게 된다.

교사가 애들에게 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확실한 것은 포천에 있는 지금의 나는 4년전의 나와 다르다는 것이다.

학교에 전화로 난리치는 아동의 아버지와도 전화로 소통을 했다.

아버지는 전화를 했지만 나는 전화로 직접 찾아뵙고 정중히 말씀을 듣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버님이 도리어 퇴근 전에 우리반 교실로 들렀다.

처음에는 아버님 말씀을 충분히 경청하고 공감을 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달라고 도리어 내가 부탁을 했다.

그것이 아이들한테 도움이 된다고. 학교에 대한 불만은 내게 직접 하시면 성심성의껏

고치도록 애쓰겠노라고.

 그뒤로 담임도 아닌데도 가정방문을 해봤다. 가정방문을 해보니 애들이 왜 그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교감선생님은 학부모가 부담느낀다고 하지만, 나는 교육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학부모가 손사래를 치지 않는한 가정방문은 꼭 한다.

이후로 학부모의 오해로 전화로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교사와 진정성을 학부모가 이해하게 되고 서로간 신뢰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우리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학적 지식도 필요하고 경험도 필요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용기다.

불편한 사람과는 잘 말하기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하물며 담임도 불편한 부모를 대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그러나 교사는 그래도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부모와의 소통을 배제하고 아이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되지만

아이를 이해하고 더 나은 변화를 위해 상담이 필요하다면 나서야 한다.

왜 학부모와의 전화를 두려워하고 학부모를 학교에 오시게 하는 것과

가정방문을 두려워 해야 하나?

 

오해를 받아도 결국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다. 아이들이 깨닫게 되어 있다.

교사의 진실한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고, 아이를 통해서 학부모님은 교사를 믿을 수 있게 된다.

 

영호같이 심각한 경우는 아니지만 유사한 경우를 학교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다.

담임이 아닌 경우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관심을 갖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먼훗날 아이가 자랐을 때,

 

"그 때 그 선생님은 나를 정말 사랑했구나"

 

"선생님은 내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말 애써 주셨다"

 

 

라는 말이 모든 어른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고백되어지길 소망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7]안단테

2009.08.14 (21:27:47)






수국.jpg


날씨가 더운 가운데 두 대의 선풍기 돌리며 '영호'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군데군데 쉬어가며 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글,  이제야 창가의 바람이 시원하게 와 닿습니다... 
시원한 시간 보내시라 수국을.... ^^
첨부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09.08.14 (22:57:04)

진정 필요했던건, 영어도 수학도 아닌, 동지였소...

세상끝나도, 함께한다는 그 믿음.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소.

설악산 대청봉과 지리산 세석산장을 물통 걸머메고, 걷던 그 눈밭의 동지.

그때문에, 그 너른 평전의 눈덮인 광경때문에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오.

난 그렇게 고백할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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