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군..
영화 <아멘>..
김기덕이라면 믿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과의 조우.
그것이다. 배경과의 만남.
카메라..사진이거나 영상이거나..
이 쪽이 있으면 저 쪽이 있다.
이 쪽은 보이나 저 쪽은 보이지 않는다.
김감독은 카메라의 이쪽과 저쪽을 만나게 하려는 것.
아니,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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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파리로 간다. 파리가 아니어도 좋다.
낯선 곳이면 된다. 왜 가는가. <이.명.수>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소녀는 명수가 누군지 모른다.( 혹 명수는 예수?)
그러므로 파리가 아니어도 좋고 이명수가 아니라 홍길동이라도 상관없다.
<뭔가 거기 있을 것>이라는 무의식..이면 움직인다.
어디든 간다. 땡기니 가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가 가는 것도 아니다.
소녀가 광장에서 <이명수>라고 불러보는 것..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이명수>는 원래부터 거기 없다.
소녀는 초반부터 강간 당한다. 마취된 채로..
역시 의미없다.
모르는 것을..보이지 않는 것을..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임신이다.
남자도 보이지 않고 섹스도 보이지 않았는데..
임신이다.
관계가 있었는데..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神이 그녀를 임신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보였다!
(단지 가장 보기싫은..아니 상상하지 못했던..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이었다는 것.)
영화는 여기서 끝났다.
영화는 색즉시공이 아니라 공즉시색을 이야기했다.
색즉시공이 시작이라면 공즉시색은 그 결론이다.
이 영화는 색즉시공의 영화가 아니라 공즉시색의 영화다.
보이지않는 것이 어떻게 해서 보여지는 것인가의 영화다.
아멘~
이다.
직접 볼 수 없지만..
임신이란..직접 본 것이다. 같다.
그런 방식 밖에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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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내 경험을 떠올린다.
취학연령이 되기 전..
나는 학교 옥상에서 놀다가 화단으로 추락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어? 이거 무서운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뭔가가 밑에서 당기는 것 같았다.
아니 지나고 보니 뭔가가 뒤에서 밀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린다.
뭔가가 있다.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다.
귀신?
이명수?
성령?
나 자신?
영화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것을 드러내려 한다.
대칭과 상대성을 이용하여..존재를 설명하려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장면..뒤에..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 본 장면..으로..
내려다보는 존재와 올려다 보는 존재를 한쌍으로 묶으며 주제에 대한 암시를 준다.
그리고 영화는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숨바꼭질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이 영화는 김기덕과 여배우 둘이서 만들었다. 번갈아 찍었다.
하지만 여배우 얼굴만 나오고 김기덕은 <보이지 않는 자>의 역할을 했다.
찾기 게임내지 잡기 게임이다.
그럼 어떻게 찾고 어떻게 잡으며 어떻게 만나는가.
<임신>이다.
<임신>이란 <새로운 것의 잉태>이다.
찾았다!..는 그런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방법은 임신이다.
포태하지 못했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다.
내 안이 가득 찼다면..뭔 일이 있어도 있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것이 작동한 것이다.
나는 임신했는가.
나는 나를 옥상에서 밀어버린(강간한) 그 존재를 찾았는가.
보이지 않는 그것과 만났는가.
그렇다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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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하나가 둘의 역할을 번갈아가며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0과 1의 작난(作亂).
아멘~이거나 메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