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교에 와서 경험한 싸움 사례를 보면 의외로 평소에 잘 싸울 것 같은 '조용한 애들'이 싸우더군요.
예전 같으면 '얘가 왜 이럴까?' 했을거예요. 여기서 조용한 애들이란 뜻은 정말 조용한 경우도 있고,
자기 감정을 '언어'로 잘 표현하지 않는 애들이예요. 이 애들의 특징은 친구랑 다툴 때 말로 몇 마디 안하고서
주먹이 바로 나가는 애들이예요. 절대 폭력적이거나 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예요.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 감정이 어떤지 잘 몰라요. 그냥 막연히 '화'난다 정도예요.
억울한건지, 서운한건지, 당황스러운건지, 창피한건지, 미운건지.. 잘 파악을 못해요.
자기 감정이 어떤지 명확히 알지 못하니까 애매한 상황이 오면 여지없이 감정이 폭발해서 폭력까지 이어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감정코칭과 비폭력대화가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 감정을 모르니 화가 폭발하고
그 화의 에너지가 폭력으로 전개됩니다. 이에 비해 자신의 감정을 자기가 명확히 알려고 애쓰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쉬워지고, 비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은 선생님이 중간에 급하게 중재하거나, 잘잘못을 가리면 '억울'해 합니다. '답답'해 합니다.
그리고 교사의 결정을 불신하고 집에 가서 딴소리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자기도 모르는데 교사도 몰라주니
집에가서 자기 유리한대로 핑계대고 부모님께 교사와 친구를 자신의 적으로 소개하죠.
보통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읽어내지 못하면 부모님들도 판박이인 경우가 많아서,
처음에는 참다가 나중에 교사에게 전화가 오거나 학부모 상담을 요구하면 폭발하게 됩니다.
밤늦게 교사에게 전화를 해서 문제상황에 대한 확인도 하지 않고 따지고 들고
심한 경우 수업중에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오고, 교육청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까지 일삼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을 모르고 아이를 굴복시키고, 학부모에게 아이가 문제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마치 상처받은 동물에게 안전장비없이 손을 내미는 것과 같습니다. 손을 곧 물리고 말겠죠.
그러면서 그 동물에게 '나는 도와주려고 했는데 어떻게 손을 물 수가 있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일 뿐 동물에게 잘못은 없습니다. 잘못은 교사가 한 것이고 억울하지만
책임도 교사가 지게 됩니다.
2년 전에 저희반 6학년 두녀석이 싸웠는데 발단은 장난을 걸고 장난을 받아주다가 발생했습니다.
두 녀석 다 잘못이 있는 듯해서 별로 혼내지 않고 양비론 입장에서 둘다 잘못했다는 식으로 빨리 봉합을 하려는데,
덩치큰 한 녀석이 억울하다며 울고 불고 난리치더군요. 거기서 제가 우선은 아이의 말을 경청해주고 억울함을
잘 읽어줬어야 하는데, 제 잘못은 모르고 상황파악도 못하면서 평소에 산만하기 이를 때 없고, 쉬는 시간에 위험한
장난을 많이해서 저까지 스트레스를 받은 터라
"야, 조용히 못해,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도대체 뭐가 억울해.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싸운게 자랑이냐? 선생님이 봐주면 그냥 넘어가줄 알아야지, 어!'
하며 윽박지르고 애를 한마디도 못하게 했습니다.
아.. 참 지금 생각해보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애 지도하려고 하다가 애 감정을 묵사발 만들고
제가 애랑 싸우고 다른 애들 앞에서 애를 망신줬으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교사역할훈련받고 감정코칭 비폭력대화 독학하고 나니 뭔가 보이긴 보입니다.
그래서 요즘엔 신중해집니다. 물론 저도 화내고 애들이랑 싸울 때도 있어요(개콘 네가지 버전). 그래도 애 감정이 보이고
제 감정이 보이고, 그 감정뒤에 욕구가 보이니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고 있고
아이들도 싸움의 빈도나 강도가 줄고 감정의 파고도 낮아지네요.
아이 감정 읽기가 전부가 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감정도 읽어주지 않으면서
애들이 대든다, 반항한다, 나를 오해한다고 하는 것은 교사의 설익은 '감정의 오개념'일지 모릅니다.
문제해결의 시작에 감정읽기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기술적인 공감이 바로 문제해결의 열쇠가 됩니다.
상담전략에서도 마찬가지라오.
1. 서로 갈등 상황에 처한 아동과 학부모 혹은 교사가 있다.
2. 우선 각자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3. 당연히 서로 상대방 탓을 한다. 그래도 상담자는 끝까지 경청하면서 내담자가 가슴 속에 있는 말을 다 토해낼 수 있게 도와준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담자가 수집한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온갖 증거들에 고개를 끄덕이는게 아니라 당시 내담자가 느꼈을 감정들에 공감하는 것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상담자 역할을 못한다.
4. 어느 정도 감정이 풀리고 나면 이제 서로 함께 모아놓고 일어난 갈등 상황에 대해 다시 한 번 각장의 입장에서.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세히 재진술하고 그때 느낀 감정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이 때의 대화가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단죄의 언어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공감과 자신이 느낀 감정의 표현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다.
초딩 1학년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선생님을 자기편이라고 굳게 믿으며
자기가 잘못했어도 무조건 자기편을 들걸로 착각하고 있는데
이 환상이 깨지는건 초딩에게 엄청난 충격이고
잘못되면 평생 비뚤어집니다.
[NAK 신문 2012-04-18 13:42]
울산시 A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인 교사 이모씨(43)은 아이들이 떠든다는 이유로
단체로 책상위에 올라가 무릎꿇고 손을 들게하는 처벌을 했다.
교무실 용무로 자리를 비운 이모씨는 체벌 사실을 잊고 교실을 장시간 비웠다.
... 뒤늦게 체벌 사실을 깨달은 이모씨는 교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은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고 교실은 완전히 울음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몇몇 쓰러진 아이들도 있었기에 놀란 이모씨 급히 아이들을 수습하고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양호실로 보냈다.
혹시라도 이 사실이 학부형에게라도 알려질까봐 두려워졌던 이모씨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준 뒤
수업일정에 없던 체육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전부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간 이모씨는 아이들에게 피구를 가르쳐 주고 편을 나눠서 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그 더운 날에 더욱이 벌로 인하여 몸이 지칠대로 지친 아이들에게 땡볕에 뛰어 다녀야 하는 피구는 너무 고된 운동이었던것이다.
결국엔 피구를 하다가 김모군(8)을 포함한 3명은
금을 밟아서 죽었고
이모양(8)과 박모양(7) 2명은 공에 맞아서 죽었고 저도 낚였습니다.
억울하다는건
사실판단이 아니라 감정이고
그것은 타인을 개입시키는 공동체적 본능입니다.
그럴때 말로 타이르고 설명하는건 의미없죠.
억울하다는건 '왜 자기를 편들어주지 않느냐'는 거죠.
아이들은 '당연히 자기를 편들어 주어야 한다'고 여기는데
이건 사건 자체의 사실여부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얻은 유전인자일 뿐.
엄마는 무조건 아기를 편들 의무가 있습니다.
아기가 잘못했을 때도 역시 아기를 편들어야 합니다.
너무 일찍 철들어서 당연히 편들어 주는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면
지능이 떨어지고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는등 퇴행현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봉건시대 노예제가 가능했던 것은
일찍부터 애들을 때려서 지능을 퇴행시켰기 때문입니다.
그 경우 독립심을 잃고 평생 노예로 살게 되는 거죠.
한국의 수구꼴통들도 상당은 어릴때 맞아서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괜찮은데
열다섯 살이 넘었는데도 철이 안 들어서
억울하다는 소리나 하고 있으면
내한테 와서 궁뎅이를 오백방 맞아야 합니다.
-억울한 강용석.. 궁뎅이 1천 방
-억울한 나경원.. 궁뎅이 5백 방
-억울한 이명박.. 궁뎅이 무한방.
하여간 아이들은 무조건
부모 혹은 선생님이 자기편이라는 증거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데
둘이 다 잘못했으면 동시에 둘 다 편들 수 없으니까 난감한 거죠.
그 경우 둘을 일단 격리시키고
각각 따로 만나서 대화하고 진정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잘잘못에 대한 지적은 완전히 진정된 후에 하는 것이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