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뭘 모르는 것을 넘어 뭐가 뭔지 모른다.
이 <뭐가뭔지>가 의미다. 적어도 <뭐가뭔지>는 알아야 한다.
그게 뭐지? 이는 동물급이다 적어도 뭐가뭔지는 알아야 사람이다.
의미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세상은 크다..
우주는 넓고 더 높은 차원들이 있다.
뭐지?
뭐가 뭔지?
뭐가 뭔지는 뭐지?
뭐가 뭔지는 뭐가 뭐지?
뭐가 뭐지와 뭐가 뭔지는 토탈 뭐지?
사과가 있고..더 높은 차원에서 금이 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나열 비교가 아니다.
사과 하나에..
가장 질 높은 차원이 있고..
가장 질 낮은 차원이 있다.
만유인력으로서의 사과가 있고..
이브가 아담을 유혹한 사과가 있고..
빌헬름 텔의 강력한 의지의 사과가 있고..
뇌물로서의 사과가 있고..
농부의 재산으로서의 사과가 있고..
한 입 베어 먹으니 맛있는 사과가 있다.
그 하나에 여러 차원이 있는 것이다.
의미가 찐할수록 질 높은 차원이다..
밀도가 더 많이 걸려 있는 것이다.
양이 아니라 질이다..
질이 다른 것이다.
질이 다르다는 것은..
좋은 질의 사람이 있고 나쁜 질의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 있어서.
그 사람이 부처나 예수처럼 살면 질이 좋은 것이고..
그 사람이 양아치나 조폭처럼 살면 질이 나쁜 것이다.
그 사람이 부처나 예수를 친구로 두고 있으면
질이 좋은 곳에 있는 것이고..그 사람도 질이 좋은 것이다.
그 사람이 한나라당이나 이명박을 친구로 두고 있으면
질이 안 좋은 곳에 있으므로 그 사람도 질이 안좋은 사람이다.
예수와의 우정은 질이 좋고 강도과의 우정은 질이 떨어진다.
뻔하지 않은가?
예수와의 우정은 예수하는 우정이고
강도와의 우정은 강도하는 우정이다.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것은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의미와 가치는..
몸의 의미..마음의 의미..정신의 의미..삶의 의미,,영혼의 의미..
위로 올라갈수록 그 질이 높다.
예수와는 가장 높은 질의 의미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강도와의 우정은 몸이나 마음..그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그래서 질이 떨어진다고..말하는 것이다.
"나는 질에 관심없다.
너는 높은 질에 살아라..나는 아무렇게나 살겠다."
이것 자체가 질이 떨어지는 소리다.
아니..낮은 질에서 나오는 소리다.
질이 높으면 뭐하느냐고?
질이 높으면 질이 높은 것이다..뭘 하는 게 아니다.
질이 안좋으면 뭐 어떠냐고?
바보..질이 안좋으면 질이 안좋은 것이다..어쩌긴 뭘 어째..
꽃을 꺽어 시궁창에 버리면 질이 안좋은 것이다.
그 꽃을 창가에 두면 질이 좋은 것이다.
꽃을 꺽어 시궁창에 버려도 된다..누가 안된돼?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리며 살아도 된다..누가 안된대?
아무 생각없이 살련다..그렇게 살아도 된다..
다만 질이 떨어질 뿐이다.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의미가 낮아진다는 것이고 결국 의미없음이다.
의미없음은 의미없음이다..뭐 다른 것은 없다.
사람은
뭘 몰라도 된다.
뭐가뭔지 몰라도 된다.
뭐가뭔지가 뭐가뭔지도 몰라도 된다.
다만..
뭘 모르는 사람은 뭘 모르는 사람과 놀게 되고
그러면서 뭐가 뭔지 모르는 관계를 맺고
뭐가 뭔지조차 뭐가뭔지 모르는 캄캄한 인생을 살게 되며
그것은 의미없음이고..그 의미없음도 모르는 헛깨비 운명을 산다.
그렇다는 것이다.
의미없이 살아도 된다.
가치없는 인생이어도 상관없다.
누가 뭐래?
다만
의미있는 것은 의미있는 것끼리 사는 것이고
가치없는 것은 가치없는 것끼리 뭉치는 것이고
질은 그 질이 같은 것끼리 결합하게 된다는 것일 뿐.
다만..
질이 낮은 이가..
의미를 찾는 것이 욕심이며
예술을 한다는 것은 된장이며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기짓이며
인생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냐?
의미와 예술과 사랑과 자유와 인생이라는 것은..
높은 질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앞에서..
"질 따위는 관심없다..너나 고상하게 살아라.."
이런 이야기는 하지마라.
질이 다르면 소통이 안되고 소통이 안되면
같이 할 수가 없다.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되는 것이다.
질의 이야기는 감정이 아니라 과학이다.
양초를 녹여 망치머리에 잠시 붙혀 놓을 수는 있으나
그 망치로 못 하나를 때리는 순간..양초와 망치머리는 분리되어 버린다.
왜?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질이 다르면 잠시 같이 있을 수는 있으나..
아무런 일도 도모하지 못한다. 그 순간 갈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
그 날에는 갈라진다. 과학이다.
사람의 관계가 때로는 고통스러운 이유는 서로의 질이 안맞기 때문인가 보오.
뭐 좋을 때는 별 상관이 없으나 충격을 받으면 각자 방향으로 떨어져 나가버리므로...
무엇인가 안 맞는 다는 것은 질이 서로 어울리지를 못하기 때문인가 보오.
서로의 질이 수평을 이루어야 밀도가 높아져 관계의 질이 높아지는 건가 봅니다.
사람의 질이 높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안과 밖이 잘 맞물려 있어야 그 사람의 질이 높은 것이라고 보여지며,
안과 밖이 어디라도 뭔가가 밸런스가 맞지 않다면 그 사람에게 괴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에게서 괴리감이 느껴진다면 이미 그 사람 스스로에게 뭔가가 안맞는다는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러기에 관계에서도 자꾸 삐거덕 거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네요.... ^^; 비약인가...?
사람에게는 조금씩 괴리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괴리감은 별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괴리감이 크게 느껴지면 조금 문제가 되기도 하고...또한 문제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도 되구요.
질의 냉정함...무심함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