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김경문 감독, 미쳤거나 아니면 천재거나

최악의 감독은 절묘하게 지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감독이다. 그들은 예선 초반 한 두 경기에 전력을 다하여 면피용 승수를 번다. 그 과정에서 에이스를 소모시킨다. 그리고 팀이 에이스 한 두명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본선 들어가면 상대팀에서 에이스를 집중 견제한다. 에이스가 잘해줘야 이기는데 에이스가 기대만큼 잘하지 못해서 진다. 이때 관객들은 패배한 이유를 충분히 납득하게 된다. 아무도 감독 탓을 하지 않는다.

김경문 감독이 참 해괴한 짓을 했다. 서슴없이 이런 짓을 벌이는 사람이라면 미쳤거나 아니면 천재거나 둘 중에 하나다. 그래서 졌다면 미친 것이 확실하고 이겼다면 천재일 수 있다. 이겼으므로 나는 그의 게임을 지지한다.

졌을 때 모두가 자신을 손가락질 하게 만드는 감독이 명감독이다. 명감독은 다르다. 그들은 한 두명의 에이스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잘 못하는 선수들을 눈여겨 보았다가 그들에게서 숨겨진 능력을 끌어낸다.

엉뚱한 선수가 미친듯이 활약해서 승리하게 된다. 그래서 해설가들은 ‘큰 경기에는 미치는 선수가 나와야 이기더라’는 경험을 말한다. 그들은 노련한 감독이 평범한 선수에게서 숨겨진 능력을 끌어냈다는 사실을 모른다.

명감독은 초반에 오버페이스 하지 않는다. 추궁을 안 당하려면 초반에 무리해서라도 알리바이 차원에서 면피용 승수를 쌓아두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초반에 쉽게 가면 팀이 에이스에게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광현, 류현진이 잘 던지고 이승엽, 이대호가 홈런을 펑펑 쳐주면 물론 좋겠지만 그 경우 팀원들이 그들 몇몇 선수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여 스스로 들러리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

그들은 팀플레이를 한다며 안타 칠 욕심을 포기하고 포볼이나 기다리는 소극적인 경기를 한다. 결정적인 시합에서 항상 4번타자 앞에만 찬스가 몰리고 잘 하던 4번타자는 그날따라 헛스윙을 일삼아서 진다.

관객들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는데 상대팀 투수가 너무 잘 던져서 졌다고 여긴다. 역시 감독탓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쁜 감독은 팀을 단순한 구조로 만든다. 모든 관객이 잘나서 감독을 하게 된다.

모든 팬들이 ‘답은 나왔다 이렇게 하면 이기고 저렇게 하면 진다. 내 말대로 해야 한다’고 정답을 말한다. 장담을 한다. 결과도 꼭 그렇게 된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팀이 된 것이다.

이때 상대편 팀도 이쪽을 확실히 파악하게 된다. 숨겨진 플러스 알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합은 뻔할 뻔자 예상대로 전개된다. 팬들은 혹시나 하고 왔다가 역시나 하면서 발길을 돌린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팀의 이상한 경기운영 때문에 관객들이 한국팀의 실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불안요소가 사전에 확인된 것이다.

나쁜 감독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불안요소를 감춘다. 숨겨진 불안요소는 막판에 특정 선수의 에러 등으로 터져나오고 이때 관객들은 그 선수를 비난한다. 불안요소를 감추어 놓은 감독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물론 김경문 감독의 방법이 반드시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좋은 감독은 선수들에게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석대로 가야 한다.

이상한 방법을 써서 진다면 선수가 감독을 불신하게 되고 그 경우 선수단이 붕괴한다. 그래서 과연 지금 한국 선수단 내부에 감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가? 선수들이 감독을 사이코라고 여기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항상 불신이 문제다. 에이스 투수가 수비실수를 남발하는 동료를 불신하고 ‘내가 아니면 우리팀이 질거야. 무조건 삼진을 잡아야 돼!’ 하고 독선의 마음을 품는 순간 팀은 붕괴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경문식 플레이는 잘못되면 팀을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지만 이겼으므로 팀은 붕괴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선수들이 동료에 대한 믿음을 얻었을 것으로 본다.

한 두명이 잘못해도 다른 선수들이 받쳐주어 승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결과를 보면 한국팀은 쉽게 파악되지 않는 팀이다. 좀 복잡하게 가고 있다. 보통 이런 팀이 아슬아슬해도 끝까지 잘 가더라.

지난 2006년 WBC 대회에서 한국은 일본을 두 차례나 이기고도 준결승에서 졌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때 한국의 팬들은 일본과 무려 세 차례나 붙어야 한다는 사실에 낙담했다. 다들 준결승에서의 패배를 예감했다.

강팀의 저력은 나중에 드러나기 때문에 시합이 오래 끌면 저력있는 팀이 결국 이기게 되어 있다. 쿠바, 미국, 일본이 확실히 저력은 있다. 초반에 몇 점 뒤지고 있어도 9회말에 뒤집을 수 있다는 그런거 있다.

보통 월드컵 등에서 초반에 부진하던 강팀이 천신만고 끝에 턱걸이로 16강 진출하더니 토너먼트에서 저력을 발휘하여 결국 4강에 오르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좋은 팀은 시합을 거듭하면서 팀을 만들어가는게 있다. 그들은 처음 손발이 잘 안맞지만 시합을 계속할수록 점점 강해진다. 선수들간에 전력이 고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반면 약팀들은 전력이 고르지 않아서 못하는 선수들이 잘하는 선수에게 찬스를 몰아준다. 초반에는 동료들이 찬스를 몰아준 덕분에 잘하는 선수가 활약하여 이기지만 막판에는 잘하는 선수가 집중 견제당해서 진다.

약팀의 전략은 몰아주기다. 그러나 이런 수법이 초반 한 두번은 통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게 파악되면 결정적 약점이 된다. 결국은 팀원 모두가 잘해야 이긴다. 팀원 모두의 능력을 고르게 끌어내는 감독이 명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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