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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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569 vote 0 2013.01.06 (14:23:46)

 

    레미제라블의 미덕과 배덕

 

    상영중인 레미제라블이 영화는 잘 만들었지만(이런건 두 번 봐줘야 함), 원작인 위고의 장발장은 철학적 수준이 낮다. 위고가 원래 보수였는데 장발장을 쓰면서 점차 진보로 변해갔다는 설이 있다.(위고는 수구꼴통 나폴레옹 3세에게 핍박받았다. 장발장의 진보성은 박정희 2세 때문일지도.)

 

    어쨌든 영화는 진보에 초점이 맞춰진게 다행이다. 그러나 바닥에 깔린 꼴통의 정서는 속일 수 없다. 위고는 끝까지 저급한 ‘품성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거기서 벗어나려는 약간의 모색은 보여주었다는 점이 미덕이다.

 

    장발장의 꼴통본성은 이 영화(소설이)가 선악구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선악’ 이런 단어 나오면 보나마나다. 관념에 갇히고 만다. 꼴통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쨌든 이 영화(소설)는 배덕이 많은 만큼 미덕도 많다.

 

    장발장과 자베르의 선악논쟁은 돈오와 점수의 대립에 해당된다. 자베르는 원래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퇴계의 수양론에 감화를 받아 수십년간 꾸준히 두타행을 행한 결과 마침내 경감의 지위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는 대통신수가 점수를 행하여 무측천으로부터 부름받아 3제의 국사가 된 사실과 통한다 하겠다. 자베르는 두타행을 하지 않고 미리엘 주교를 만나 단번에 돈오하여 운좋게 낙하산으로 떨어진 장발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토굴에서 17년을 닦지도 않은 장발장이 미리엘을 만나 단번에 돈오했다고? 인정할 수 없어! 장발장은 사기꾼이야. 깨달음이 로또냐?’

 

    유명한 자베르의 대사다. 원작에서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를 만나 한 순간에 돈오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장발장의 돈오한 증거가 돈 뿐이라는데 있다. 장발장은 미리엘의 성당에서 은기를 투자받았으나 초기자본금이 부족했다.

 

    미리엘이 은촛대 두엇을 더 투자하자 사업은 대박이 났고 그의 구슬공장은 번창하여 마침내 그는 시장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때 돌연한 가짜 장발장의 등장으로 졸지에 회사를 말아먹은 장발장 CEO는 빼돌린 회사돈으로 말년까지 호의호식하며 살게 되는데. 이런 줄거리 마뜩치 않다.

 

    이러한 전개는 무측천의 은총을 입은 대통신수의 출세를 연상시킨다. 이건 전형적인 점수의 시나리오다. 그래서 소설은 2라운드가 필요해진다. 소설의 줄거리가 뒤틀려버렸기 때문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장발장은 소설 두 편을 억지로 이어붙인 느낌이다. 그 이유는 초반의 돈오컷이 너무 강렬해서다. 고생 끝에 돈오하는게 뻔한 이현세 버전인데 초장부터 돈오후에 이야기가 나오니 점수를 피할 수 없다. 돈오에서 점수로 퇴행이다. 괴상하다.

 

    장발장 인생의 제 1부가 돈오한 후 재벌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라면(줄거리가 꼬였다. 이건 점수다.) 2부는 코제트를 키우는 이야기다. 문제는 코제트의 성공 역시 재벌과의 우연한 만남에 의해 우연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학은 사망하고 김수현표 주말연속극으로 퇴행한다.

 

    결국 인간은 돈에 의해서만 구원된다는 이야기다. 확실히 장발장은 자베르보다 돈이 많다. 그 방법이 공금횡령임은 물론이다. 그는 가짜 장발장의 등장 때문에 과거가 탄로나서 죄수로 잡혀가면서도 잽싸게 돈을 꿍쳐놓았다.

 

    장발장이 탈출하여 꿍쳐놓은 돈을 회수하는 암굴왕 신은 영화에 없다. 하여간 미리엘 주교가 투자한 자본금을 회수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투자자의 몫을 가로채는 짓은 한국 재벌들의 전형적인 수법이 아닌가?

 

    ‘구원은 돈이다.’ <- 원작에 있을 리 없는 위고의 명언.

 

    영화는 장발장과 자베르의 구원논쟁을 배경으로 바리케이트의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가 성공한 것은 그 때문이다. 돈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위고의 철학은 슬쩍 뒤로 감추는데 성공한 것이다. 어쨌든 영화는 좋다. 원작의 구질구질한 에피소드들을 확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위고의 구원관은 김기덕의 구원관과 완전히 배치된다. 공통되는 점도 있다. 그것은 위대한 만남에 의해 돈오한다는 것이다. 자베르의 점수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건 좋다.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은 장발장이 아니라 코제트가 아닐까? 코제트가 조연으로 묻혀버린건 실패다. 코제트의 비중을 높였어야 했다.

 

    김기덕이었더라면? 주인공은 자베르다. 자베르가 20년간 점수하였으나 실패하고 문득 장발장을 만나 돈오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자베르의 자살로 처리한 결말은 너무나 어색하다. 그 지점에서 예술은 죽었다.

 

    자베르의 자살은 이문열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마지막 감옥행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건 스스로 자기 작품을 죽이는 문학적 자살이다. 잘 써놓고 자기 작품에 똥칠했다. 그 장면 때문에 이문열의 문학적 성취는 자기부정되었다. 그 더러운 몇 줄을 쓰는 순간에 이문열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은 영원히 날아가 버렸다.

 

    자베르는 장발장을 만나 돈오한다. 이것이 김기덕식 구원이다. 물론 극장은 텅텅 비게 되겠지만 황금사자상은 따라온다. 중요한 것은 김기덕이 더 리얼리즘이고 병맛이고 핀란드 가구이고 맥놀이가 길고 위고는 허구라는 거다.

 

    피에타의 결말에서 강도는 엄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건 새로운 시작이다. 자베르는 무대에서 관객의 야유를 견디다못해 슬그머니 퇴장한다. 어색하다. 조졌다. 둘 다 죽음이지만 180도로 다른 각도에 서 있다.

 

    장발장의 미덕은 원작의 실패를 꿰뚫어보고 다른 버전을 내놓을 수 있다는데 있다. 영화도 원작보다 해석이 진보한 버전이다.(일그러진 영웅도 영화가 원작보다 해석을 잘했다는 설이 있다. 안 봤지만.)

 

    위고? 동화책 쓴다. 에구~

 

    진정한 돈오는 자베르에게도 장발장에게도 있지 않다. 죽어간 바리케이트의 아이들에 있다. 그 점을 영화는 잘 말했지만 위고가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위고도 아마 약간의 감을 잡긴 했으리라. 뭔가 느낀게 있다.

 

    왜냐하면 나폴레옹 3세(딱 박근혜)에 의해 핍박받으면서 모태보수 위고도 뭔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바리케이트의 아이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영화는 성공이다. 판타지를 감추고 현실을 들이대어 병맛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근데 러셀 크로가 휴 잭맨보다 더 장발장 같다. 나만의 취향인가?

 

    ###

 

    독자여러분에게 질문.. 작품을 조져놓은 위고의 품성론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보나마나 상호작용, 병맛, 사실주의, 대응행동.. 이런건데 구체적으로..

 

    P.S 오해가 있어서 덧붙임.

 

    품성론의 극복방법 질문은 원작의 줄거리를 바꿔달라는 말은 아니고 그 개념을 나타내는 한 단어만 찍어달라는 말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4]죽어문화개혁

2013.01.06 (14:38:42)

둘이(혹은 둘 중 하나가) 동성애자로 서로에게(혹은 일방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생각해보니, 일방적으로 하는 게 낫겠네요. 자베르가 장발장에게

반하든, 장발장이 자베르에게 반하든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러셀 크로우 눈초리가 사나워서, 자베르 역을 맡았나본데.

동렬님 말씀 대로 거꾸로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글래디에이터에서 했던 막시무스 역할이 참 잘 어울렸던 것도

그렇고요. 경감이라 눈초리 사나운 사냥개 이미지로 간다는 게

좀 안이해보이네요. 현실에선, 무표정하고 묵묵한. 무슨 말을

해도 무덤덤하게 할 일에만 충실한 경감이 더 무서울 것 같습니다.


 

[레벨:15]오세

2013.01.06 (18:20:55)

품성론 극복방법 


1. 레미제라블에서 추적자로. 

자베르가 감옥출신이라고 했으니까. 이 넘이 어려서부터 범죄자들이랑 살다보니 범죄자들의 냄새를 맡는데 도를 텄는데, 우연히 대왕 범죄자 장발장의 냄새를 맡고 그때부터 졸라게 쫒기 시작. 파리 뒷골목과 이리저리 얽힌 어두운 하수구를 배경으로 자베르가 장발장을 추격하는 씬 위주로 스릴과 서스펜스를 자아내고 마침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게 하기. 위장과 도망의 달인 장발장과 추격의 달인 자베르가 만나면? 뭐 이런 컨셉이라고 보면 됨. 한 마디로 고수와 고수의 대결이라고 보면 됨. 이를 위해서 장발장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삭제. 그냥 우연히 길가다가 자베르가 장발장을 보고, '앗 이넘은 범죄자다' 이려면서 시작됨. 여기에서의 핵심은 추적의 배경을 19세기 파리 뒷골목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하수구로 하는 것. 그 정도 배경을 깔아줘야 사실성이 돋보임. 

 

2. 자베르가 주인공

품성론 같은 건 없고, 주어진 환경과의 상호작용, 만남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베르를 주인공으로 삼음. 

일단 시작은 천사 부자 장발장과 악질 형사 자베르로 시작. 그런데 천사 부자 장발장은 알고보니 악질 반혁명분자, 왕정복고주의자, 빨갱이 혐오주의자. 그래서 악질 형사 자베르한테 뒷돈을 줘서 자신의 착한 딸 코제트를 마리우스 일당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함(근데 사실 장발장은 자신의 수양딸 코제트를 사랑하고 집착하고 있음. 음흉한 늙은이임). 자베르는 마리우스 일당으로부터 혁명 정보를 캐내고 코제트도 빼낼겸 늙다리 대학생인척 마리우스 일당에게 접근 그들과 친해짐. 


근데 정해진 혁명 일정에 따르지 않고 갑자기 라마르크 장군이 죽는 바람에 그날 당일에 봉기하게 되고, 얼떨결에 휩쓸린 자베르는 마리우스 코제트와 바리케이트 안에 갇히게 됨. 이 와중에 자베르는 코제트와 사랑에 빠짐. 코제트도 처음엔 마리우스를 좋아했으나, 점점 자베르의 매력에 빠짐. 바리케이트 안에서의 상황이 여의치 않자 자베르는 코제트만 데리고 파리 하수구를 통한 탈출을 시도하려다가 코제트의 완강한 저항에 부딛혀 결국 다시 돌아옴. 코제트는 다시 돌아와 혁명의 여신으로서 동지들을 진두지휘하면서 정부군을 몇차례 격퇴. 


자베르는 사랑하는 코제트를 도와 계속 바리케이트에서 적군과 대치하고 그 와중에 장발장은 코제트 소식이 없자 아예 군인 대장을 매수해 코제트를 제외한 나머지 빨갱이 새끼들 전부를 다 죽일 것을 명령. 그렇게 군인들의 대대적인 투입이 이루어지자 바리케이트가 붕괴하고 어느 멍청한 병사가 코제트를 마리우스로 착각하고(지휘자 마리우스는 진작에 죽었기 때문에 코제트가 마리우스 옷을 입고 남장한채 전투를 지휘하고 있었음) 총을 쏨. 이 때 몸을 날려 코제트를 살리고 자베르는 죽음. 자베르가 죽고나서야 비로서 자신 역시 자베르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코제트는 오열하고 이 와중에 자신을 제외한 동지 전부가 죽어나감. 


마침내 코제트를 찾게 되어 희희낙락한 장발장 앞에서 코제트는 권총을 들어 자살함. 

장발장 멘붕. 영화 끝.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6 (18:43:49)

원작을 뜯어고쳐 달라는 주문은 아니고

(제 질문이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의사전달은 역시 어렵구료.

 

7인의 사무라이에 껄렁한 촌놈이

긴 칼 차고 헛폼잡는 장면이 나오는데(이 인간은 가짜 사무라이)

 

영화는 덜떨어진 키쿠치요가 전투를 치르면서 진짜 사무라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소.

여기서 키쿠치요는 장발장과 같은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는 아니오. 

 

팀 안에서 품성은 소용없게 되는 것이오.

누구든 팀플레이를 한다면 위대해지는 것이며 그것이 깨달음이며

 

장발장과 같은 훌륭한 인격을 가질 필요도 없고

그 인격을 증명하기 위하여 가짜 장발장을 위해 법정에서 증언해 주거나

 

자베르를 살려주거나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오.

(손발이 오글거리는 천사표 출현. 잘났군 잘났어.)

 

장발장이 바리케이트의 동지들을 속이고 자베르를 구해주는 것은 옳은 일인가요?

천만에.. 그건 자기만족적인 행동에 불과한 것이고

 

자베르를 두 번 죽이는 짓에 다름 아니오.

영화의 대사처럼 자베르의 영혼까지 죽인 잔인한 복수요. 좋지 않소.

 

제가 기대한건 '팀플레이' 이 한 마디였소.

 

[레벨:15]오세

2013.01.06 (18:50:50)

전송됨 : 트위터

내가 말귀가 어두웠구려. T-T

프로필 이미지 [레벨:4]죽어문화개혁

2013.01.06 (19:23:09)

제가 첫 댓글에서 본의 아니게 방해전파를 뿌렸습니다. 눈물 닦으시지요. 전 짧게 써선지 눈물까진 안 흐릅니다. (ㅋㅋ)
[레벨:9]길옆

2013.01.06 (18:34:26)

소설 불쌍한 사람들(레미제라블), 제목부터가 마음에 안든다.

불쌍한 사람이라는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도 있을 것이고

분명 그 가운데에서 방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결국은 선이 악을 이긴다라는 단순 권선징악 구도로 갈 수 밖에 없음.

2천 페이지가 넘는 5부로 구성된 대하소설? 더럽게도 길다.


1830년 샤를10세의 7월칙령(프랑스판 긴급조치) 발표 후

그에 반발한 민중들, 학생과 노동자들이 바리케이트를 구축하고 대항에 나선다.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우리의 박정희10세는 몰락하고 만다.

(34년 전 누구처럼 총살은 안 당했지만 외국으로 도망가 죽음)

그러나 이 7월혁명의 실질적 승리자는 상층 부르주아지였으며

흉년과 낮은 임금에 허덕이던 도시빈민들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다시금 들고 일어나고

정부군은 무력 진압한다. 자유는 아직 멀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바스티유의 습격 이후 잠시나마 자유를 맛본 민중들

그 달콤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법.

2년 뒤 1832년 6월 다시 바리케이트는 등장한다. 그 곳에는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하여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봉기에 나선 마리우스

혁명이 뭔지도 모르고 그 자리에 선 어린 에포닌과 가르보슈

반군들에게 정체가 탄로난 자베르와 그를 구해주는 장발장이 있다.


소설에서는 장발장의 선의로 목숨을 건진 자베르가 자살한다.

근데 자살이 아니라 봉기의 현장으로 달려갔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손으로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바르케이트 아이들, 에포닌과 가르보슈

그에 대한 죄값음은 자신의 과거를 죽이고, 적군(봉기군)에 가담하는 것일 것이다.

장발장도 자기의 과거를 밝히며(고백성사?) 성자의 모습으로 죽을 것이 아니라

자베르와 함께 봉기에 참여했다 죽는 쪽으로 가는 것이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어야 돈오 스타일이 아닐지...

미리엘 주교의 선의와 바르케이트 아이들의 죽음은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미리엘 주교의 선의로 장발장은 돈오하고,

비록 6월 봉기는 실패로 끝나지만 바르케이트 아이들의 죽음은

1848년 2월 혁명을 성공시키는 밑거름이 되고.

그러므로 장발장과 자베르는 봉기의 참여와 죽음으로써

신부에게 진 빚을 갚고, 아이들의 죽음을 대속하는 것이야말로

마리우스와 코제트, 바르케이트 아이들이 진짜 주인공이었음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럼으로써 자베르는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6 (18:54:15)

정답이오.

그러나 제가 질문한건 원작을 어떻게 바꿔야 했냐가 아니고

(그건 무리한 주문)

 

진정한 구원은 소승적인 개인의 품성이 아니라

팀플레이에 의한 집단적 상승에 있다는걸 말하고 싶었소.

 

자베르와 장발장은 바리케이트에서

아이들과 한 편에 섰을 때라야 진짜가 되는 것이오.

 

장발장이 단지 내 사위 마리우스를 구출하기 위해 갔다는 식은 좋지 않소.

영화는 그래도 여러모로 원작소설보다 나은데

영화 '화려한 휴가'의 결말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

판틴과 장발장이 환상 속에서 만나는 장면

(이거 장발장이 화려한 휴가를 베꼈을리야 없겠지만. 상투적인 방식일지도)

은 매우 좋은 해석이었소.

 

진정한 구원은 집단적 상승에 의해서만 가능하오.

 

털없는 원숭이가 짐승을 졸업하고 마침내 인간이 된 것은

개인의 상승이 아니라 집단적 상승이며

그것은 인간이 집단지능 곧 문명을 만들었기 때문이오.

 

개인의 품성은 입자 개념이고 팀플레이가 질 개념이오.

[레벨:9]길옆

2013.01.06 (20:59:23)

개인이 아니라 소속집단이 문제다.

소속집단이 바르면 개인도 바르다.

소속집단이 정의로우면 개인도 정의롭다.

그래서 박근혜는 나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6 (18:45:32)

123.JPG 124.JPG

 

질문이 오해되고 있어서 답을 말해버리오.

답은 개인적 품성론(소승의 점수)는 팀플레이(대승적 돈오)에 의해 극복된다는 것이오.

 

7인의 사무라이는 별 볼일 없는 가짜 사무라이 키쿠치요가

우연히 진짜들을 만나 그들과 섞여 마침내 돈오한다는 이야기요.

 

이때 구원은 '품성의 닦음'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팀플레이에 의해 얻어지오.

이것이 동양적 깨달음이 서구적 구원관을 앞서는 지점이오.

 

구로자와 아키라가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이미

서양의 기독교적 구원관은 박살이 나고 말았소.

 

서구인들은 품성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소.

장발장이 착하기 때문에 구원된다는 발상은 유치한 코메디요.

첨부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06 (19:30:47)

[출처] 2월혁명 | 두산백과

 

7월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루이 필리프는 중도적인 군주제를 표방하였다. 이것은 강력한 자유주의를 요구하는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게다가 경제불황의 여파로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치열해졌으며 선거권 확대에 대한 요구도 거세졌다.

 

1848년 2월에 파리에서 열린 공개토론회가 정치적 시위로 번졌다.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루이 필리프는 영국에 망명하였다(2월혁명).

 

그 무렵 구성된 임시정부는 공화주의파와 사회주의파가 대립하였다. 1848년 4월 말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선거를 했는데, 이 때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은 낙선하였다. 1848년에 6월, 정부가 국립작업장을 폐쇄하자 노동자들이 바스티유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카베냐크 장군을 보내 시위를 무참히 진압하였다(6월항쟁).

 

그 동안 은행가, 대지주, 산업자본가들이 질서당(秩序黨)을 결성, 온건한 헌법을 의회에서 승인하게 하였다. 헌법에 따라 보통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이 때 남성 보통 선거가 도입되어 농민들이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나폴레옹1세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 승리하며 제2공화정이 성립되었다. 농민들은 나폴레옹1세의 영광을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다시 재현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

 

지식인과 노동자들이 피를 흘려 농민들에게 선거권을 얻어주었더니 농민들은 배신하여 얼떨리우스 황제에게 반납해 버렸다. 이 얼마나 박근혜스러운가? 이 얼마나 새누리스러운가? 정녕 한국은 프랑스에 150년 뒤져 있는가?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06 (19:35:07)

100년 뒤져 있나... 아니 이젠 한 4~50년 뒤져 있겠지? 했는데...이번 선거로 50년 다시 후퇴.... 150년의 간격을 한방에 날려 버릴려면 뭘 해야 하나...
프로필 이미지 [레벨:4]죽어문화개혁

2013.01.06 (19:36:49)

말씀하신 그 상황은 87년에 한 번 격고 지나간 상황인 줄 알았습니다. 주위에 좋은 이웃도 없고, 고립되다보니 두 번은 격어야 할 모양입니다.
[레벨:9]길옆

2013.01.06 (19:50:39)

어떤 광기라고 할까?

자신들이 왕으로 모시고 또다시 그 자리에서 내치고

프랑스 혁명은 이런 부조리한 과정의 반복

그만큼 앙시엥 레짐의 뿌리가 깊었다는 반증이 아닐까하는..

어째 지금의 코리아와 이토록 닮았는지.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06 (19:54:55)

세상에 거저 먹는 것은 없나 봅니다. 아무것도 청산하지 않고 뭔가 변화를 바란다는 것은 쓰레기 위에 깨끗한 이불 펴고 자는 격.
주변에 제대로 된 나라라도 있다면 그 덕이라도 좀 보겠지만...이미 그럴 가망도 없고... 어쩔수 없이 단계를 거쳐가게 되나 봐요.
[레벨:30]스마일

2013.01.06 (20:54:56)

전,이걸 선거날 조조로 봤는데, 관군의 두번째 침입에서 파리시민이 도와주지 않고 젊은이만 남게 될때,선거에서 졌다는 것 직 감하고 이틀을 잠못 잤어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15門15門

2013.01.06 (23:19:54)

원작을 뜯어고쳐쓴 댓글들을 보고 이왕 삼천포로 빠진거 끝까지 한번 가보자는 
심정으로 한번 마무리부분만 원작을 뜯어 고쳐보았습니다. 
첨부파일로 올려놨으니 보실 분들은 재미 삼아봐주세요.
장면은 마리우스를 구한 장발장이 자베르와 재회하고 그에게 마지막으로 집에 한번만 
들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부분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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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 개를 길들이는 방법 image 12 김동렬 2012-12-26 16199
482 이번 대선의 아쉬움 24 김동렬 2012-12-25 15824
481 나쁜 약자의 나쁜 선택 40 김동렬 2012-12-20 26187
480 한국을 포기한다 51 김동렬 2012-12-19 37561
479 그동안 욕보셨습니다 image 27 김동렬 2012-12-18 17834
478 당신의 한 표가 백 사람을 살린다 image 7 김동렬 2012-12-17 16343
477 박근혜와 사이비 image 4 김동렬 2012-12-17 19867
476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유 image 10 김동렬 2012-12-14 16636
475 박원순과 문재인의 공통점 image 10 김동렬 2012-12-12 13947
474 박근혜가 떨고 있는 이유 image 2 김동렬 2012-12-12 16239
473 박근혜들의 문제 image 7 김동렬 2012-12-07 17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