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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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469 vote 0 2011.03.17 (16:02:54)

 

존엄의 위기. 인간과 비인간이 가려지는 지점이 있다. 조용기, 이상득, 이시하라를 비롯하여 몇몇 아닌 것들은 그 가벼운 세치 혓바닥을 놀림으로써 스스로 퇴치되어야 할 비인간임을 입증하고 말았다.

 

오늘날 인류가 진화해 온 것은, 인간 특유의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 덕분이다. 타인과 고통을 함께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곧 인간의 진화를 부정하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비인간됨의 증거다.


저 덜 된 자들이 나치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들이다. 악의 무리가 태연히 우리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조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문명의 진화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기동하는 자가 인류의 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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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mp/eFs8Bs <- 링크한 글은 20년간 원전 기술자로 일하다가 97년에 암으로 죽은 히라이 노리오씨의 폭로다. 히라이 씨의 폭로에 따르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은 애초에 내진설계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원전 작업자의 방호복이 사람을 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운반되지 않게 할 뿐이라고 폭로한 대목이 특히 충격적이다. 백퍼센트 안전한 방호복은 없다고 한다.


히라이 씨는 또 원전이 비전문가에 의해 시공되었으며, 비전문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설계도가 완벽하다 해도 시공과 감리가 허술했고, 경험많은 관리자는 반복적인 피폭에 의해, 연간 방사능 피폭 허용치를 넘어버려서 상당부분 경험없는 비전문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는 거다.


충격적인 일은 이 외에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문제로 되는 점은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한 원자탄 피폭국가이면서도 무려 원전을 건설했다는 점, 더 한심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에서 대책없이 원전을 가동했다는 점이다. 이건 뭐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다.


게다가 여러번 쓰나미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안가에 쓰나미에 취약한 목조주택을 많이 지었다는 것도 불가사의하다. 원자탄 피해도 상당부분 목조주택의 화재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목조주택은 지진에 따른 화재에도 취약하다.


사고직후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대응도 의문이다. 우왕좌왕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반대로 피해지역의 주민들이나 동경시민들은 침착하게 잘 대응하고 있다. 밑에서는 잘 하는데 위에 문제가 있다.


왜 이렇게 될까? 이런 분위기 익숙하다. 데자뷰 느낌. 2차대전때도 그랬다. 밑에서 졸병들은 가미가제 폭탄매고 열심히 싸웠는데, 위에서는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만 끌었다. 지휘부가 우물쭈물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일본군 지휘부는 일본에 전쟁수행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일본이 무모한 전쟁에 뛰어들게 된 이유는 지도부가 비밀주의로 일관해서 일본의 전쟁수행능력 부재를 상당부분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독일이 소련을 점령해주고, 겁쟁이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으면 어부지리로 추축국에 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애초에 미국을 제압할 생각이 없었고 단지 좋은 조건에서 강화할 셈이었다.


이게 말도 안 되는 거다. 그렇게 얻어맞고 미국이 미쳤다고 강화를 하나? 하긴 독일이 소련을 제압하고 일본을 돕는다면 그것도 가능한 시나리오이긴 하다. 그러나 이는 요행수다. 일본은 요행수를 믿고 도박을 한 것이다.


문제는 야심만만한 젊은 장교들이었다. 이들은 전쟁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런데 일본군 지도부는 러일전쟁에 참여한 할아버지 장군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들은 혈기왕성한 젊은 장교를 통제하지 못했다.


왜? 할아버지들은 급변하는 첨단기술을 따라잡을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러일전쟁때 러시아의 맥심 기관총에 맞서 무모한 돌격으로 자국병사 3만명을 기관총밥으로 희생시킨 정신력 뿐이었다.


러일전쟁 때의 만세돌격이 미국의 첨단무기 앞에는 통하지 않는다. 당시 신무기는 날로 개발되고 있었다. 새로운 항공모함과 제로센 전투기가 속속 개발되고 있는데 할아버지 장군들이 그걸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


할아버지 장군들은 자기네의 무식을 감추기 위해 짐짓 위엄있는 포즈를 취하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일본에 전쟁수행능력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미국이 수출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비행기 윤활유가 얼마없다는 사실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상하간에 엄청난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리더십은 실종되었다. 패전이 명확해졌는데도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전선에서 애꿎은 병사만 계속 죽어간 것이다. 심지어 원자폭탄을 맞고도 그들은 항복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왕에게 건의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태도를 바꾼 것은 러시아의 참전 때문이었다.


러시아군이 독일 본토로 진격하며 동독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러시아가 일본 본토로 진격하려하자 그제서야 태도를 바꾸었다. 그것도 왕이 먼저 말을 꺼내니까 마지 못해 따라간 것이다.


일본의 이런 특성은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일본의 리더들은 대개 자상하여 부하를 잘 챙기고 평생고용을 보장하며, 부하들 역시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잘 따른다. 그러나 위기때 결단을 내릴 진정한 리더가 없다.


전쟁을 해도 한국이라면 이순신 장군이 홀로 고독하게 결단을 내리는데 비해 일본은 장수들과 회의를 해서 결정한다. 이건 전통이다. 봉건영주들은 심지어 일곱살이나 열살에 왕이 되기 때문에 모든것을 장로들과 회의를 해서 결정한다.


일본사에 가신들이 작당하여 무능한 영주를 갈아치워버리고 어린 허수아비를 영주로 세워놓는 일이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영주가 되면 전쟁터에 나와서 깃발을 세워놓고 앉아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고.


그러므로 일본에서는 모든 것이 회의에 의해 민주적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왕이 열 살 먹은 어린애라도 국가는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단성있는 리더가 탄생할 수 없다.


일본의 이런 고도의 역할분담 구조는 꼴찌에서 2등까지 치고올라가기에 유리하다. 상하간에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고 기어의 톱니가 맞물리듯이 빈틈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고도의 효율을 생산한다.


그러나 대열의 선두에 서면 달라진다. 1등은 맨 앞에 있기 때문에 모든 리스크를 고독하게 혼자 감당해야 한다. 전형적인 일본식 조직은 2등까지 가능할 뿐 1등은 불가능한 조직이다.


일본이 근대사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전환기에 자수성가형 리더가 무수히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 일본이 안정되면서 자수성가형 리더는 사라지고 봉건영주식 리더가 많아졌다. 과거로 되돌아간 것이다.


반면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리더가 부하를 잘 챙겨주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부하들도 리더의 판단을 따르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 한국의 유교주의가 자긍심을 키워서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런 상하간의 어긋남은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창의적인 조직이 될 수 있다. 한국식 조직은 일등까지 가기 어렵지만, 일등이 되면 전위가 되어 앞에서 길을 열며 앞서갈 수 있는 구조다.


일본식 상하간 역할분담 구조는 봉건시대의 잔재다. 봉건영주와 가신과 사무라이들과 농민들이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한국은? 다들 저 잘나서 도무지 남의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일본이 명치유신때 대정봉환을 하면서 들고나온 이데올로기는 한국의 퇴계사상을 계승한 유교주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일본은 패전이후 그 패전의 책임을 엉뚱하게 한국의 유교탓으로 돌리고 유교주의를 버렸다.


일본에 유교적 리더는 사라져가고 있다. 다시 봉건영주형 리더가 대세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들은 봉건시대 어린 임금이 나이많은 가신들에게 권력을 위임하던 방식으로 역할을 수행한다. 가케무샤 비슷하다.


현대는 전문가집단이 지배하는 고도의 시스템화 된 사회이며 메뉴얼에 의해 작동하는 사회다. 이런 성격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현대사회 특징이지만 대신 위기에 약하다. 위기에는 후진기어를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식 조직은 오류를 바로잡기 힘들다. ‘이 산이 아닌게벼’ 하면 저 산으로 가야 하는데 이 산이 아닌줄 알면서도 계속 가는 거다. 회의가 길어져서다. 일등이 되려면 지나친 전문가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문가가 전문가인 이유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는 전문가가 보통사람보다 오히려 판단력이 떨어진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전문가인 정치부 기자들의 75퍼센트가 이회창의 승리를 예상한 것이 그 예다. 그냥 찍어도 50프로 맞는 건데 그들은 75퍼센트 빗나갔다.


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일은 매우 많다.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위기에는 전문가가 더 오판한다. 물론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다. 같은 일이 반복될 때는 데이터를 가진 전문가들이 잘 판단한다.


전문가의 데이터가 맞지 않는 상황은 매우 많다. 대표적인 것이 80년대 구소련의 붕괴, 동유럽의 민주화 도미노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 오바마의 집권, 작금의 재스민 혁명 등도 전문가들이 거의 예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기계처럼 정밀하게 돌아가는 사회는 2등까지 가능할 뿐이다. 1등이 되려면 그 이상을 해야 한다. 역할을 나누지 말고 오히려 합쳐야 한다. 멀티 플레이어를 양성해야 한다.


조광래의 패스축구도 기계처럼 정밀하게 돌아가는 축구다. 멋있긴 한데 그것으로 부족하다. 아직은 사람보고 패스한다. 공간보고 패스하려면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한다. 톱니바퀴가 너무 정밀하게 물리면 안 좋다.


21세기는 강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모든 개인이 리더처럼, 대통령처럼, 더 나아가 신(神)처럼 판단해야 한다. 어리광은 통하지 않는다. 역할분담은 없다. 병사도 장군처럼 판단해야 한다. 대장이 시켜서 학살한다는 식은 통하지 않는다.

  

문전에서는 패스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메뉴얼대로 움직이는 전문가형 리더십 말고 난관을 돌파하는 해결사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청용은 적도 속이고 자기편도 속이는 해결사형 리더십이라 조광래와 맞지 않는다.


중요한건 전체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일본식 조직에는 전체과정을 경험한 베테랑이 나오기 힘들다. 일본의 국회의원 중에는 무려 4대 세습을 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태어날때부터 국회의원으로 태어난 것이다.


재벌 아들이 재벌그룹을 물려받고, 국회의원 아들이 지역구를 물려받고, 목사 아들이 교회를 물려받는 식으로 가면 희망이 없다. 일의 전체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 지어놓은 건물에 입주했을 뿐, 본인이 직접 기초를 놓고 뼈대를 세우고 지붕을 올려본 경험이 없는 것이다.


일본의 노회한 가신들은 어린이를 왕으로 세워 놓고 왕의 약점을 쥐고 뒤에서 주무르는게 보통이었다. 왕 역시 가신의 약점을 쥐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쥐고 연환계로 엮이면 한꺼번에 몰사한다.


용기와 건희와 명박이 서로 약점을 쥐고 서로를 비웃는 풍경과 비슷하다. 명박이 동반신공으로 건희를 압박하는가 하면, 건희는 낙제신공으로 반격하고, 용기가 하야신공으로 들이대는 그림 말이다.


박근혜의 독재세습만 악인 것이 아니다. 모든 세습은 악이다. 교회세습, 학교재단 세습, 금뺏지 세습, 재벌세습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결함을 가지며 서로의 약점을 쥐고 연환계로 엮여 거대한 군집을 이룬다. 서로 발목을 잡아 위기에 취약하다.


일본은 오랫동안 아세아의 선두에 서 있었지만 그들은 스스로 아세아를 부정횄다. 그들은 탈아입구를 주장하며 아세아 문명의 리더가 되기 보다는 유럽문명의 후계자가 되기를 자청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 역시 서구문명을 이식해 오려 한다면 곤란하다. 서구문명의 전파자가 아니라, 서구문명의 계승자가 아니라, 아세아 신문명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애초에 그런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나쁜 일본에 대항한다는 식의 소극적 태도를 가지고, 일본 앞에서 감정을 보인다면 아세아의 리더가 될 자격이 없다. 리더는 언제라도 감정을 보이지 말고 의연하게 원칙을 따라야 한다. 한국은 아세아의 리더가 되어야 할 지정학적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구조론에 따르면 조직이 생장하려면 핵이 너무 바깥에 동떨어져 있어도 안 되고, 너무 안에 갇혀 있어도 안 된다. 핵은 안이면서 동시에 바깥인 절묘한 지점에 가 있어야 한다.


사람의 입은 인체의 바깥이면서도 동시에 안이다. 입을 다물면 안이 되고 입을 열면 밖에 된다. 그런 지점이 에너지의 통로가 된다. 일본은 바깥에서 겉돌기 쉽고, 중국은 안에 갇혀서 소통이 안 된다.


리더가 바깥에 나가 있으면 내부의 무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리더가 가운데 파묻혀 있으면 무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판단하지 못한다. 유시민처럼 진보세력의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이상한 곳에 가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아시아의 떠오르는 리더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껴야 할 지점이다. 장사는 한류로 하면서 정신은 일본보다 뒤처진대서야 될 말인가? 우리가 정신에 있어서도 일본을 앞서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이 그동안 잘한 것도, 실상 한 두명이 잘한 것을 재빨리 모두에게 전파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아무 생각없이 그냥 따라왔을 뿐이다. 그것은 하나의 모형이며 그 모형을 잘 만들고 잘 전파하는 자가 승리한다.


그 모형은 완벽한 모형이어야 한다. 일본모형은 한계에 봉착했다. 일본의 역할은 서구의 문명을 아세아에 전파하는 것이고 한국의 역할은 아세아의 신문명을 독립적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한국은 새로운 모형으로 새롭게 일어서야 하며 그 모형은 일본까지도 포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3.17 (19:00:44)

 

대접은 역할을 제대로 해 주었을 때 대접을 받는 것이고 보면...

역할극에 빠져서 딱 그만큼만이거나, 혹은 찾아서 하지 않는 것이 장기간 지속 되었을 때 나타나는 안 좋은 상황이고,

진짜 역할은 해 주어야 할 때 해주는 것, 그 역량을 넓혀가는 것, 창의 하는 것이고 보면...

 

일본은 그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는 볼 수 없으나...

흘러온 시간 속에서 보자면.... 그들은 억지춘향으로 끌려간 측면도 없지 않아보입니다.

일본인들이 역사속에서 보여준 행동을 보면 거의 자학에 가까운 행동들이 많이 보이고, 그것은 어떤 억압에서 자기들만의 해방을 찾는 것일 수도 있었으나...그것이 반드시 인류가 가는 방향과 맞는 것만은 아니었기에...괴리가 발생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느나라가 반드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찾아오거나 자연스럽게 그 역할이 이양되어 받아야 할 때는 받아서 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뺏고 뺏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이동이고 흐름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그 역할을 받는 나라들이 어떻게 그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서 그것에 연동되는 모든 삶들이 규정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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