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전벽에 붙은 흔한 시
이것도 시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
근데 모든 자하철 시는 이런 식이오.
지하철 시라는 고정된 형식이 있는듯 한데
글 좀 써본 사람이라면 이런거 하루 300편까지 쓸 듯.
문상재네 엄마는 노송 닮았나부다.
울엄마는 그냥 엄마닮았는데
설마 저게 시일리가...
저것도 시는 시 입니다.
단지 세상에 말을 걸었는데
과거의 방식으로 말을 걸어서 외면을 받을 뿐입니다.
저 시를 쓴 사람은 몸은 2013년에 있는지 몰라도
생각은 1970년대에서 더이상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버스가 6시이면 다니지 않는 시골에서 자란 저는
허리가 기억자로 휘어서
별반 다른 것이 없는 어제와 오늘을 살면서
자연에 말을 걸며 사는 할머니들을 많이 봤습니다.
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루하루 사시는 것이지요.
저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이
어렸을 때 봐왔던 그 할머니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변화의 방향은 잡지 못하고
과거의 가장 화려했던 순간을 잡아서
그래도 그때는 행복했지
이 사고에 빠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시가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면
세계화, 우주화, 마음, 깨달음
이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합니다.
서사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까?
언젠가 고은선생님의 시를 읽다가
고은 선생님도 같은 고민 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21세기에 서사시는 더이상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게 왜 시죠?
저게 왜 시냐하면
지하철역의 시 뿐만 아니라
신춘문예의 시도 저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어디에서 퍼뜨리고 있다는 느낌.
2년전에 신춘문예에 도전하려다 그만둔적이 있었는데,
저는 아무리 연습해도 저런시가 안 나오라고요.
어떻게 저런시가 많이 나오나 찾아 봤는데
백화점 문화교실, 구청 문화교실, 대학교 문예창작과가 2000년대 부터 신설되어서
시 창작을 가르쳐서 시가 획일화 되어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혼자 시 쓰는 연습을 할 때는
속으로 욕 많이 했습니다.
사람의 본연의 감정을 무시한 시다.
소재의 한정이다.
아직도 파밭에서 김메냐? 등등
그런데 나는 인정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서
그들끼리 인정한다면
저것도 시로 인정해주자
이런 마음이 언제부터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저런 시는 영영 못 쓴다. 스스로는 이렇게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냥 자기의 심상 느낌에서 멈춰 있고...뭔가 비유와 나열이 있을 뿐이므로...
이러한 글이 좋고 나쁘다라기 보다는 그냥 마음을 꽉 채우고 터져나오는 그런 것이 없다는...
시가 갖는 뻗어감이 없이 고인물 같아서...
그러나 간혹 이러한 글들을 읽으면 시가 아니라 그러한 상황의 마음은 전달되는 것을 느끼오.
아마츄어 시인? 들이 저런 식으로 습작을 많이들 한다고 하더군요.
주위의 식물, 동물, 물건 등에 감정을 이입하는 등의
하여튼 위의 글은 감정이입을 통해 조금의 공감은 불러일으키나 거기까지가 한계
사람은 나이들면 늙는다 => 신세한탄?
부모님 늙기전에 효도해라 => 훈계
유통기한 지나서 폐기를 기다리는 삼각김밥처럼 생명력이 부재한다고 할까?
의미의 주입, 계몽의 의도를 가진 일방향성의 소통부재의 글
과거에 머물러 있을 뿐 미래로 뻗어나가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시가 사람들을
마구 찌르거나
정신 번쩍하게 만들거나
울컥하게 만들거나
찌르르하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지하철공사의 깊은 뜻.
시든 뭐든
영화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과학성이 결여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오.
저 시도 시라고 하면 시일 것이나
그 안에서 그 어떤 과학성도 나는 발견할 수가 없소.
구태의연한 복제품일 뿐.
저런 것을 시라고 써서 내놓는 뻔뻔한 낯짝은
어떤 것인지 똥을 끼얹어주고 싶소.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 시가 깨는 것은
어머니가 90살 넘게 살았다는 뜻은
이 양반이 이 시를 쓸 때 나이가 못해도 60은 넘었다는 말이오.
60 넘으면 환갑 진갑 다 넘은 경로당 할배인데
할배가 6살 꼬맹이같은 동시나 읊조리고 나자빠져 있다는 것은 차말로
노송의 껍질은 너다 이 영감탱아.
이런건 3류 지식인의 진부한 자기연민에 불과하오.
어머니가 아니라 자기를 묘사한 거.
김성모 폭룡의 시는 시가 아니오.
정명석의 시도 시가 아니오.
문상재의 시도 시가 아니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누가 말해줘야 하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진짜가 죽는 거.
시가 아닌 증거는
'어머니의 그리운 얼굴'이라는 요거요.
요건 딱 걸린거.
다른건 대개 눙치고 넘어가자고 하면 할 말이 없소.
그러나 정명석의
'미련도 없이 쓰고 가련다' 요거 딱 걸렸지 않소?
다른 부분은 엉망이라도 그냥 엉망일 뿐인데
유딩이라도 그냥 유딩일 뿐인데, 요건 오지게 딱 걸린거
졸작이라도 시라고 우기면 시가 되는 수는 있겠으나
딱 걸린건 어쩔 수 없소.
꽃 중의 꽃에서
우리의 사랑은 오직 일편단심 .. 딱 걸렸소.
폭룡이 최고다.. 요거 딱걸렸소.
왜 딱 걸렸느냐 하면
자기 시를 자기가 해설해 버렸다는 거
해설해 버렸기 때문에 그 구절을 빼면 그 앞부분은 전부 필요가 없다는 거
그 부분만 놔두고 나머지를 전부 삭제해 버리면 오히려 더 문장이 된다는 거.
그러므로 시가 아니라는 증거가 딱 걸린거요.
노송을 보며 .. 문상재
'어머니가 그립다' 끝.. 요거로 다 됨. 나머지 전부 사족.. 결론 시가 아님.
나.. 정명석
'나는 미련도 없이 쓰고 가련다' .. 완벽. 나머지는 전부 사족.. 고로 시가 아님.
꽃중의 꽃.. 정명석
'우리의 사랑은 오직 일편단심'.. 요걸로 완벽.. 나머지는 전부 사족.. 시가 아님
폭룡의 시.. 김성모
'폭룡이 최고다'.. 완벽 이걸로 끝. 시가 아님
시가 아닌 가짜들은
스스로 자기 시를 해설하는 산문을 말미에 끼워넣는데
그게 한 문장으로 시를 요약해놓고 있습니다.
시라면 왜 산문요약구절이 들어가야 하죠?
예컨대 김삿갓이
'송송백백암암회'라고 썼으면 여기서 한 글자도 뺄 수 없소.
하나가 빠지면 전부가 붕괴되어야 시라고 할 수 있소.
그런데 위 열거한 가짜들은
예의 지적한 그 구절만 쏙 빼면 오히려 요약이 되고
나머지는 없을수록 좋소.
문상재.
노송을 보며 어머니가 그립다.
정명석
나 미련없이 쓰고 가련다
정명석
우리의 사랑은 오직 일편단심
김성모
폭룡이 최고다.
요렇게 하면 차라리 시가 될뻔 하겠소.
하여간 내가 초딩 때 배운 글짓기의 첫번째 원칙은
사랑을 노래할 때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지 말라.. 이거였소.
영변 약산의 진달래꽃이 진달래를 노래한 시겠소?
어머니라는 단어가 안 들어갔다면 시일 수도 있다고 보오.
저는 시의 기본은
대상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경써야 될 것이 더 늘었습니다. ^^;;
일단은 감정이 와야
뭘 시작하든 시작할 수 있느니까요.
또 하나는 가독성
내 감정을 잘 읽혀 지는 단어로
쓰는 것이 소통에 가장 중요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크게 실수하는 부분이
산문요약구절을 넣는 부분인 것 같은데
왠지 읽는 사람에게 A/S를 해줘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또 감정공유를 하려면
해설이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런 게 詩 면 파리도 새 일 듯.....ㅎㅎ
이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시 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소
사산아를 위한 비가
1.
네 엄마는 텅빈 물고기 바구니처럼 가볍게 걷는구나
그 친근한 팔꿈치 짓과 끌어당김을 기억에서 지우며
너의 씨 -육(肉)과 뼈- 응유(凝乳)가 함께 묶인 무게는
완강했었다. 저 내쫓긴 세계가
수축한다 그것의 역사, 그것의 상처 주위로
최후심판날 들이닥쳤다 너의 붕괴된 영역이
우리의 환경 속에서 스스로 꺼졌을 때,
너의 어머니는 몸 속의 텅빔으로 무겁고.
2.
6개월 동안 너는 계속 제도사였다
내 친구를 남편에서 아버지로 제도해 갔다.
그는 너의 꾸준한 마운드 그 뒤로 하나의 세계를 짐작했었지
그러다 버팀목이, 별을 쏘며, 땅으로 무너졌다.
3.
고독한 여행 중에 나는 그 모든 것을 생각했다.,
죽음의 탄생, 매장 대신 시체 발굴,
자그마한 옷가지들의 화환, 기념용 유모차,
그리고 헛것인 사지(四肢)를 애써 손에 만져보고자 하는 사람들
나는 원격 조정으로 차를 몬다 이 벌거벗은 길을
가랑비 내리는 하늘, 띠까마귀의 선회 아래,
산 벌판을 지나, 구름이 찰랑찰랑 넘치는 산,
겨울 내포(內浦) 위 차 타고 귀가하는 하얀 파도들.
이 시 를 설마 내가 썼을리는 없고...-_-;;
아일랜드 시인 세이머스 히니 의 시를 한국의 김정환 시인이 번역한 것이오
지하철 시;;;;;와 비교의 대상은 아니고 한 번 보시라고....
이러다가 이발소그림에 버금가는 지하철시 장르가 탄생할 듯....(이미 탄생했는지도...)
풀꽃. [문효치]
누가 보거나 말거나
피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지네
한 마디 말도 없이
피네 지네
###
사진을 잘못찍었지만.
이건 일단 시라고 보오.
그닥 잘 지은 시 같지는 않소만.
대단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소만.
어쨌든 기운이 있소.
세번째 연은 유행가 가사 같아서
없는게 차라리 나을듯.
정명석 시는
다 좋은 말이오.
곱씹어 볼 수록
좋은 말이오.
근데
되게 웃기오.
여기에서 하나의 슬픔이 발생하오.
나같은 사람이 봐도 웃긴데
왜 정명석 자신은 안 웃길까?
혼자만 심각해서 웃긴 사람이
정명석 하나뿐이라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쥐도 웃기고
닭도 웃기고
늙은 지하개도 웃기고
야한 광수당나귀도 웃긴데
나름 진지하고 진지하게 사는 모습이
참 슬프오.
오늘 생각한건데
앞으로 나는 시를 써야겠소.
웃겨서 슬픈세상 열통터져 죽느니
고상하게 시쓰다가 죽으면
좀 낫지 않겠소?
가짜 시는
가만 보면 모두 자기소개를 하고 있소.
특히 정명석.. 누가 물어봤냐고?
왜 자기 이야기를 해?
개인의 감상은 그냥 일기장에 쓰는 거지
시라고 주장하면 안 되오.
세상과 통하는 지점이 포착되어야 시라 할 수 있소.
문상재 시도 잘 보면 자기소개요.
자기가 효자라고 자랑하는듯도 하고
노송=어머니라고 했는데
이 시를 쓴 시점은 자신이 노송임.
자기 늙었다는 신세 한탄.
폭룡의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은근한 자기자랑
자기소개.. 누가 물어봤냐고?
이건 시가 아니오.
첫째는 자기를 넘어 객관화 하여
대상 그 자체의 결을 따라가야 하고
둘째는 강력하게 에너지를 태워야 하오.
사발님이 소개한 시는 에너지가 넘치오.
긍게...
애써서 자기 소개 하기에 바쁜 인간들의 정체가 도대체 뭐냔 말이오.
진짜 박성호처럼 화나는 건
왜 그런 소개정신을 불태우느냐는 거요.
그런 정신은 70년대 새마을 운동때나 써먹지
왜 21세기 문명 대한민국에 대입하려 하느냐는 거요..
문명인들에게 모욕을 주려는 저것들을
역으로 잡들이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내가 시인이 되어야겠소..
구조론은 에너지론 일지도 모르겠소.
누구든 오면 에너지를 훔칠 수있을 터인데
0.00001만 가능하다는 것이 좀...^
과학적이어야하고 에너지 넘치는 '시'는
정작 범부가 에너지 받기는 더 어려운 것 같고^
0.00001 만 가능하다는 이곳에
정작 평범한 범부는 문지방 닳는 줄 모르고 드나들고 있소.
드나들수록 스스로에게 암담하면서도
빠져드는 매력은 어쩔수가 없구려ᆞ
재미들린...것은 아니고
필 받은 김에 세이머스 히니 의 시 한 편만 더 소개하겠소.
번역은 역시 김정환 시인이오.
대양의 사랑을 아일랜드에게
1.
순 데본셔 사투리로
렐리이가 그 처녀를 나무 쪽으로 후퇴시켰다
아일랜드가 영국 쪽으로 후퇴당한 것처럼
그리고 몬다 내륙으로
그녀의 모든 바닷가가 숨가빠질 때까지:
'이 쓰, 이 봐, 내 사랑! 이 쓰, 이 봐, 내 사랑!'
그는 물, 그는 대양, 파도 앞에
들어 올리는 갈대 목도리처럼
그녀의 부푼 치마를 들어 올리며.
2.
하지만 그의 탁월한 볏이 신시아에게로 기운다
심지어 그것이 리이와 블랙워터 강에서
제풀에 하늘거리는 동안에도.
그게 그 질퍽한 지점들이다 그가 눕곤 했던
그의 갑(岬)을 그녀 앞에 두고. 런던에서는, 그의 이름이
물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 어두운 침투 위로:
스머위크, 입을 크게 벌린
6백 교황파들의 시체로 씨뿌려진, '역사상 그
용감하고 착한 풍채들이 없었던' 그들 시체로.
3.
몸 버린 처녀가 아일랜드 언어로 찡찡 운다,
대양이 그녀 함대의 꿈을 박살내 버렸다
스페인 왕자가 금을 흘렸다
그리고 그녀를 찾지 못했다. 약강격(弱强格)의 북소리
영국어의 그 북소리가 수풀을 때리는 그곳에서 그녀의
시인들이
가라앉는다 오난처럼. 희미한 불빛, 버섯 - 육(肉),
그녀가 사라진다 그들 몽유의 포옹으로부터
작은 동그라미 호흡과 이슬 속으로,
땅이 소유되고 또다시 소유되고.
전혀 앞뒤가 안맞거나 혹은 시대감각을 썼다고 하는데 전혀 시대감각이 현대성이 느껴지지 않을 때 심히 스트레스를 받게되고....
이러다보니 불특정다수에게 화나는 일들이 생기오. 뭔가 안맞는 느낌...
누구의 잘못일까...? 어쩐지 간혹 이제 너무 다른 종족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 또한 피곤하다는 생각도 들고... 말못할 고민과 마음앓이가 커져 가지만...
그쪽만을 보면 내가 못사니 상호작용하며 방향을 찾아가는 수밖에... 같이 살아야 하니...
시는 노래요.
라임이 있어야 하오.
서양시 번역도 좋으나 참고 사항일 뿐
원본시의 라임은 표현되지 못 하오.
댓글보기 전에 먼저 의견을 표하려고 하오.
구조론 싸이트 글을 보는 순간,
마치 내가 전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기 때문.
저 글의 느낌은 딱 나옵니다.
어머니, 비유적인 표현들, 자신의 불효를 탓함.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자신의 느낌을 나타낸 것 같으나 결국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써주고 있소.
"너도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정신좀 차려. 엄마의 모성은 지나고 나면 깨닫는 거야. 있을 때 잘해!"
술한잔 하면서 푸념식으로 늘어놓을 수도 있는 글을 시라 한다면 이 세상에 시가 아닌 것이 어딨겠소?"
자신의 감성적 경험을 교훈적인 것으로 포장해서 감동 좀 받아라? 이건 좀 아니잖아요.
개인-교훈-감동???
그렇게 따지면 어머니편, 아버지편, 자연의 아름다움편, 인생무상편, 사랑, 우정 무한한 주제로 하루 백편도 더 쓰겠네. 이미 형식은 정해져 있고, 그렇게 신파극 수준으로 쓰는 것이 시일 수 있을까?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전에 동렬님이 시조의 구조에 대해서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어리고 셩근 매화 너를 믿디 안았더니
눈기약 능히 지켜 두세숑이 피었구나
오호라 너로구나 너 같은이 또 있난가
담머리 넘어드는 달빛은 은은하고
한두송이 소리없이 나려지는 오동꽃을
가랴다 멈추고 다시 돌아 보노라
시조는 그래도 압축된 어구속에 묘사, 집중, 통찰 의 묘미가 있는데, '지하철시'는 수준미달, 공산품 생산이라 지하철 막장시라 붙여주고 싶소.
결론적으로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얘기를 저리도 뻔뻔하게 써대는 것은 시가 아니다.
이미 그런 작품들 수만개는 될 듯. 마치 1+1 = 2 이다를 의미 없이, 연결되는 것 없이 수없이 반복하는 꼴.
20대초반에 장정일, 황지우, 기형도, 김수영시인을 알고난 후부터 나에겐 저런건 시가 아님.
거미
- 김수영 -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
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위 시의 구조가 이 개콘의 코너같다는 인상이 드네요.
맨 마지막에 형사가 불쌍한 죄수를 풀어주라는 모습에서 어쩌면 의미와 감동이란
시 안에 가둘 수 없는 것이기에 풀어주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그런데 인터넷을 돌아다니니 이 코너를 보면서 울었다는 사람도 있네요. 오호...
시사리트윗에 쓴 것을 옮겨왔소.
이 정도는 입어조야 옷 좀 있었다고 할 수 있소.
어떤 옷을 입느냐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그 분위기가 어떠냐
그 주변에 어떤 색상이 있느냐에 따라 절대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을
과학적으로 탐색하여 발굴하는 거지
지 기분대로 입는다는 사람은 옷 입을 자격이 없소.
'난 이게 좋다'.. <- 때려죽여야 함
아 누가 물어봤냐고?
안 물어본 자기 소개를 왜 해?
이는 시를 쓸 때도 마찬가지요.
지 기분대로 쓴다면 그게 어찌 시겠소?
지 기분?.. 어린애냐?
아무도 너의 기분에 관심없어.
세상의 기분에 너의 기분이 어떻게 동조되었는지를 말해봐.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와야 하오.
자기가 느낀 감상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오.
그건 정신나간 자의 넋두리요.
길에서 중얼거리며 가는 사람들 말이오.
과학적 발견이 없으면 시가 아니오.
시는 감상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시의 자궁에서 나오는 것이오.
그 자궁이 세팅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오.
시는 원래 제사장이 신탁에서 비롯되었소.
신과 인간의 매개라는 관점이 없으면 시가 아니오.
지나치게 장식적인 시, 수사법 과잉도 역겨울 뿐이오.
산문시라면 몰라도 뺄 수 있는 단어는 최대한 빼야 하오.
메시지가 있어도 시가 아니오.
세상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울림이 있어야 하오.
물론 처음부터 두보나 이백이 될 필요는 없으므로
처음에는 개인의 감상에서 출발해도 무방하오.
그러나 세상의 감상과 자신의 감상이 동조하는
메커니즘, 코어를 찾아내지 못하면 시라고 할 수 없소.
그것은 반전이 없는 단편소설과 같소.
반전이 없어도 소설은 소설인데 영 매가리가 없소.
왜 거기서 시가 끝났는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오.
근데 대개 시들을 보면
시를 끝내기 위한 그 연은 없는게 차라리 더 나았다는 느낌.
하여간 시라는 것은
그 시 전체를 한 줄에 꿰어
가장 튀는 한 개의 단어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가장 튀는 한 개의 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가장 압축적인 한 개의 연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나머지 부분은 덜 튀어야 하오.
문상재 이 얼빠진 자 보소.
스치었던가.. 감상 나오고
달빛을 이고.. 튀네
어머니의 세월.. 차라리 이게 제목이다
우수살이.. 오호라 절창이다
그리운 얼굴.. 잘났어 정말
별빛에 젖다.. 차라리 이걸로 밀어보지
한 편의 시에
6개 이상의 튀는 단어들이 경쟁하고 있소.
이게 시요 똥이요?
미셸 오바마가 여섯개의 화려한 목걸이를 걸어버린 것과 같소.
왜 미셸은 목걸이도 귀걸이도 브로치도 하지 않았을까?
반짝이는 그 어떤 것도 없소.
여기저기서 번쩍거리면 그게 디자인이오?
언어를 죽인 문상재 같은 자는 때려죽여야 하오.
시를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배껴온 그림이라고 하지만
저건 좀 아닌것 같소
미셸 오바마 ..
원주민 무희같소
버락 오바마..
동네 잔치에 온 노무자 같소.
왜 이런 비극이 생기는고 하니
옷을 너무 잘 입어서 그렇소
글고 우주의 법칙대로 하면
'남좌여우'가 맞소
처음부터 여자운전수를 채용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일본이나 영국차가 맞다고 보오
사람이 살아야 잘 입은 옷이지
옷이 살면 실패요.
암튼 열받는 사람은 나 하나면 족하오
문상재 때려 죽이다 보면
대락 51.6프로는 해당자가 되고 말거요.
실은 그들은 그게 편한거고
우리는 이게 편한거니까
서로 상관말고 살면 되는데
옆집 아저씨가 뽕짝을 크게 틀어놔서
듣고싶은 애청곡 못 들으니
그게 문제요.
아저씨 기분에 맞추려고 입은 옷 아니오.
이건 취임무도회니까 무도회 옷을 입는게 맞소.
그리고 사진은 남좌여우가 맞소.
아저씨가 잘못 본 것이오.
옷에는 세상을 바꾸려는 전복의 의도가 있는 거요.
자기 기분 내려고 옷 입는 사람은 똥통에 던져줘야 하오.
남좌여우인가 해서 다시 보니 2013이란 글자가 선명하구려..
정말 자기 앞을 앞이라고 하는듯.
경상도가 좌도이고 전라도가 우도입니다.
이억기는 전라우수사이고 이순신은 전라좌수사입니다.
화장실도 왼쪽 오른쪽은 지키는데 엉뚱한 말씀을.
구석기때부터 남자가 왼쪽이었소.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 칼을 들기 때문이오.
칼을 왼쪽 허리에 차므로 걸치적거려서 여자는 오른쪽에 설 수 밖에 없소.
참나..
결혼식 구경도 안해본 사람하고는 할말이 없구려 흐흐..
오른손으로는 군중 헤치고
왼손으로는 자기아내 오른손 잡아
앞으로 나가는게 남좌여우요.
미셸이 무희같은 것에는 수긍하오만
왜 원주민 같냐는 것이오
잔치옷에 시비거는게 아니고
버락이 영락없는 노무자 얼굴 아니오?
사람 얼굴보다 비중있는 장면은 없소.
그것은 할배가 늙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오.
동렬 할배도 할말 없을 때가 있구랴.. 푸하하하.
찾느라고 욕봤소.
이참에 전통 혼례나 한번 올리시오. ㅎㅎ
혹시나 해서 덕분에 노무자 뜻까지 찾아봤습니다.
버락의 저 매력 표정에 설렌 마음이 똥이 되었군요.
그대의 설레임에 관심이 없어서 죄송하군요.
아무리 말을 해도 2회 경력자 앞에서는 안통하오.
1회라도 경력을 쌓도록 하시오.
입춘도 지났고 하니 꽃피는 춘삼월 계획한번 세우시오.
요새 많이 벌었으니 두꺼운 봉투 준비 하겠소.. 하하
그 결혼 잘못한거 같소.
다시 하시오.
또 하셔도 안 될 것 같은데요.
2회 경험자가 아직도 그 정도시니.
"Left hand lady is not a lady"
동서양 가릴거 없이 남자는 왼쪽입니다.
검색해본 걸로 말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본 남좌여우가 맞고
바이킹 풍습에 따른 서양결혼식 하고도
오직 입장과 퇴장 때만 남우여좌가 되는데
무도회는 남좌여우가 맞소.
이건 무도회이므로 잘못된게 없소.
남좌여우라는 말이 생긴 유래 자체가 남자가 왼쪽이오.
겨울 거울
장철문
나뭇가지가 바람에 걸려 떨고 있다
바람이 아프고 나뭇가지가 아프고
사람이 아프다
사람에 걸려 바람이 떨고 있다
지하철 역에서 본 시인데,
좀 아깝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렬선생이 어저께인가 그저께인가
과학 이야기를 한것 같은데..
참으로 유감이오.
아닌것 같다.
터져나와야하는데 쥐어짜서 나온 글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