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인간 박근혜 조직은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어야 한다. 한국인은 그쪽으로 훈련이 안 되어 있다. 시스템을 돌리려면 많은 에너지가 든다. 회의를 소집하고 토론해야하는데 그게 다 비용이다. 뒷구멍으로 몰래 의사결정하면 비용절감이다. 대신 리스크가 따른다. 리스크는 나중에 청구된다. 당장은 비용절감의 이익이 달콤하다. 그러다가 리스크로 망하는 패턴의 반복이다. 그렇게 깨지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평생 일등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2등은 몇 문제를 맞췄느냐로 결정되지만, 1등은 몇 문제를 틀렸느냐로 결정된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그 마이너스에 대한 개념이 없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자녀가 7명씩 있었다. 그중에 여섯이 망해도 하나가 성공하면 다들 묻어간다. 여섯 명의 실패보다 한 명의 성공에만 관심이 간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며 무모한 도박을 한다. 현대사회는 다르다. 월드컵 16강은 공격을 잘해서 가지만 결승은 수비를 잘해서 가는 것이다. 자녀도 한두 명뿐이다. 이제는 하나라도 실패하면 안 된다. 리스크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이등주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일등주의 사고방식으로 갈아타야 한다. 구조론으로는 질이야 입자냐다. 질은 1등이고 입자는 2등이다. 그동안 한국은 2등이라도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1등을 노려야 한다.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입자의 노선을 버리고 질의 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시스템은 질이다. 시스템을 쓰려면 질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나타내는 언어가 없다. 언어가 없으니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 질의 언어 – 국민의 신임 배반, 헌정수호의지, 신의성실의무 헌재가 이번에 세 가지 질의 언어를 국민에게 학습시켰다. ‘국민신임을 배반했다.’ ‘헌정수호의지가 없다.’ ‘신의성실의무를 위반했다.’ 이것이 질의 언어다. 입자언어는 ‘뇌물 300억’, ‘최순실’, ‘태블릿PC,’ 따위다. 입자로 말하면 초딩도 알아듣는다. 자연히 입자로 주의가 간다. 글자 배운 사람이면 그런 저급한 유혹을 극복하고 어렵더라도 질을 말해야 한다. 박근혜는 헌재의 판결을 뇌물죄 형사재판으로 몰고가려고 했다. 입자의 문제로 보고 입자로 반격한 것이다. 고영태를 부각시켜 최순실을 물타기 했다. 역시 입자에 대응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뇌물죄를 판결문에 넣지도 않았고, 고영태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박근혜 개인의 입자문제가 아니라 박근혜식 의사결정구조 곧 질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질은 결합한다'고 했다. 헌재가 제시한 국민신임의 배반, 헌정수호의 의지, 신의성실의 의무는 모두 박근혜가 대한민국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즉 박근혜에게 대한민국은 '타자'였던 것이다. 박근혜의 말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박빠들만을 향해 있었다. 박근혜는 대한민국을 내가 아닌 남으로 보는 비뚤어진 마음을 헌재에 들킨 것이다. 질의 결합이 문제다. 박근혜는 이상한 것들과 결합해 있다. 뒤를 봐준 조중동과 새누리당부터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모두가 돈과 결합하고 똥과 결합한 저질이다. 질은 균일원리에 따라 질이 같은 것과 결합한다. 오직 유진룡 장관만 질이 달라서 패거리에 녹아들지 못했다. 박그네 패거리의 질이 저질인데 박빠가 박근혜 입자의 결백을 선전해봤자 허무다. 문제는 한국인이 질의 언어를 알아듣는가다. ‘국민의 신임 배반.’ ‘헌정수호의지.’ ‘신의성실의무.’ 헌재의 이런 화려한 레토릭에 반응하는 능력이 있는가다. 뇌물이라고 하면 얼굴이 벌개져서 즉각 반박하지만 헌정수호의지라고 하면 벙찐 표정으로 가만있다. 뇌가 반응하지를 않으니 죄가 되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꾸준히 박근혜의 거짓말행진을 지적해 왔다. 언어가 중요하다. 박근혜는 줄기찬 거짓말로 언어를 타락시켰다. 한국어가 피해자다. 근본이 훼손된 것이다. 입자의 문제는 부속품 갈아끼듯 다른 입자로 교체하면 되는데, 질의 문제는 통으로 갈아야 한다. 오염된 낙동강물을 정수해도 한계가 있는 판에 더욱 언어의 오염은 해결되기 어렵다. ‘빨갱이’라거나 ‘종북’이라고 하면 초딩도 알아듣지만 거짓말이다. 손혜원의 말실수만 해도 그렇다. 질의 언어를 쓰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손혜원은 노무현이 ‘책임을 헤아렸다.’는 뜻을 표현하려고 하였으나 '계산'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바람에 ‘이득을 계산했다.’는 말로 오해되게 말했다. 평소에 한국어를 공부하지 않은 거다. 독서부족이다. 노무현이 대한민국과 긴밀하게 결합하고 있었기에 모두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헌재의 판결문을 보자. 자구 하나하나에 매우 신경썼다. 잘 다듬어진 문장이다. 박그네 어버버버 하는 비문만 듣다가 제대로 다듬어진 문장을 보니 상쾌하다. 제발 말 좀 똑바로 하자. 우리 사회의 문제는 공사구분이 안 되고 시스템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되려면 무엇보다 말이 되어야 한다. 언어가 똑바로 서야 한다. 공자의 정명이 필요한 시대이다. ###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를 참고하자.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ㆍ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ㆍ사슴을 말이라 칭한다.)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ㆍ세상이 어지럽고 무도하다.)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ㆍ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는다.)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는 거. 배가 똑바로 가면 과연 똑바로 가고 있는 건지는 극소수이 전문가만 알 수 있다. 보통은 불안해하며 '노무현선장 똑바로 못해?' 이런다. 왠지 더 빠른 길이 있을 것만 같다. 반면 배가 잘못 가는건 누구나 안다. 굽어가면 뱅뱅 돌아서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므로 누구나 잘못임을 안다. 뻔히 알면서 부역한 자들을 처단해야 한다.
우리사회의 문제는 몇몇 개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며 나아가 이를 받치는 언어와 소통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헌재의 판결이 이 점을 지적한 것이 다행입니다. 언어를 바로잡는 것은 철학이니 공자의 정명이고 소통을 바로잡는 것은 인지의신예이니 사회관계를 긴밀하게 조직하는 것입니다. 빈부로 갈리고 지역으로 갈리고 성별로 갈려 등돌리고 있으니 거기서 소통의 단절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더 긴밀해져야 합니다. 성별 간에 벽을 허물고, 지역 간에 벽을 허물고, 계급 간에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언어를 바로잡음으로써 가능합니다. 몸에 좋다는 식의 허황된 말 하지 말고, 프로파간다를 구사하여 50 대 50으로 편갈라 묻어가기로 공짜먹는 꼼수를 버리고 제대로 해 봅시다. |
질의 언어에 뇌가 반응하지 않는 것은 그 무서움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눈에 보이지 않고 무시해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무서운 놈은 숨어 있습니다.
뇌물보다 박근혜의 거짓말이 더 무섭다고 하면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습니다.